독도를 돌섬(石島,석도)이라 불렀다. (노어부 김윤삼옹의 증언) )(파인트리 본 김윤삼 독도 기사 재업)
[원본주소: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okdo&no=10332 댓글 읽어보면 잼남]
다음은 신문기사의 내용 :
김노인이 20세(1895년)되던 여름철에 "천석짜리" 무역선 5,6척이 원산을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여 그 울창한 나무들을 찍어 뗏목을 지었다. 날이 맑은 때면 동쪽바다 가운데 어렴풋이 보이는 섬이 보였다.
"저 섬은 돌섬(石島)인데 우리 三島(거문도)에 사는 김치선(지금으로부터 140년전) 할아버지 때 부터 꼭 저 섬에서 많은 '가제'를 잡아간다"고 가르쳐주었다 - 지금 그 김치선씨의 증손 김철수(57세,1905년생)씨가 장촌부락에 살고 있다 - 일행 수십명은 원산등지에서 명태등을 실은 배를 울릉도에 두고 뗏목을 저어 이틀만에 200리 되는 '돌섬'에 도착했다.
섬이 온통 돌바위로 되어 있는데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한다.
돌섬은 큰 섬 두 개 그리고 작은 섬이 많이 있는데 큰 두 섬 사이에 뗏목을 놔두고 열흘 남짓 있으면서 '가제(海狗=옷도세이)'도 잡고 미역, 전복등을 바위에서 땄다.
그리고 울릉도에 다시 돌아와 부산이나 대마도로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팔았는데 '가제'를 퍽 좋아했다한다.
'가제'의 살은 먹고 가죽을 가지고 신발등도 해 신었다한다.
그가 마지막 다녀온 것이 28세 (1904년) 때라 하는데 세상이 어수선해서 그 후에는 '돌섬'에는 못갔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잡은 가제를 일본 사람들이 돈과 물건을 주고 사갔는데 그 때 일본사람들은 돌섬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으며 돌섬에서 일본배조차 본 일이 없는데 그 섬이 일본 섬이라니 고약한 일이라고 김노인은 흥분하는 것이었다.
; 요약
1. 울릉도에서, 날이 맑을때, 울릉도 동쪽바다에 어렴풋이 보이는 섬을 돌섬(石島)이라 불렀다.
: 대한제국 칙령의 석도(石島)와 동일한 표현임.
2. 돌섬(石島)에 갈때는 뗏목을 이용했다.
3. 1904년 이전에, 일본인(**부산항,대마도거주 일본인)들은 돌섬(石島)을 알지 못했다.
;중요한 사항
돌섬에 갈때 , 뗏목을 이용한것으로, 독도는 암초때문에, 큰배는 접안을 못한다.
큰배가 접안하려면, 수심이 낮은데서, 해저에 앵커링해야하는데, 독도는 수심이 깊어, 큰배는 접안이 어렵다.
만약에, 큰배로 수심이 낮은 곳으로, 접안을 시도하다가는, 암초에 배가 파손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서,
일본인들도, 독도에서는 작은배를 이용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만약에, 큰배를 오키섬에 두고 작은배로 독도를 오갈수는 없기 때문에,
당시에 일본인들도, 울릉도의 저전동에 큰배를 놔두고, 작은배로, 독도를 오가면서, 큰배에 화물을 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이유는, 일본인들이, 조선시대에 독도만 침탈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ㅋㅋㅋ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