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섬은 돌섬(石島)인데 우리 三島(거문도)에 사는 김치선(지금으로부터 140년전) 할아버지 때 부터 꼭 저 섬에서 많은 '가제'를 잡아간다"고 가르쳐주었다 - 지금 그 김치선씨의 증손 김철수(57세,1905년생)씨가 장촌부락에 살고 있다 -
놀랍군! 하치에몬이 밀항해서 밀무역하던 것보다도 10년 전이네!
이 대목에서 잠시 1600년대로 돌아가 울릉도 쟁계가 어떻게 종결됐는지 복습해 보자.
결과 :
왜관의 쟁계: 1600년대 말 조선 국서에 "우리의 울릉도" 문구를 문제 삼아 이를 삭제해야 한다고 쓰시마 차왜와 실갱이가 벌어짐.
쓰시마번: 1693년 안용복 박어둔이 쓰시마로 압송돼 오자, 간계를 꾸밈.
쓰시마번: 1693년 박동지를 매수하여 안용복, 박어둔을 타일러 "울릉도 입도" 사실을 은폐시켜 조선국서의 "우리의 울릉도" 문구 삭제를 유도해 봄.
조선조정: 왜관의 역관들을 조정으로 불러 일본의 사정을 탐문, 특히 울릉도 우산도가 기재된 여지승람이 일본에 전해졌는지 물음. (동국여지승람은 2도론임; 1도설은 주석에 찔끔 나와 당시 쓰시마도 주석을 꼬투리 삼아 덤벼 봤는데 한문에 밝은 조선인한테는 안 통했음. 문필의 전통이 미약한 일본에서나 이따위 우격다짐이 통하는진 몰라도 문명지역에선 안 통하는 짓임.)
조선정부: 1696년 안용복 등 11명 소송인단, 울릉도 독도 오키 항로를 경유, 일본으로 도해하여 준비한 조선 관찬지리서 지도를 제시하며 울릉도(죽도) 우산도(송도=독도)가 조선령임을 재확인
에도막부: 1696년 1월 죽도 도해면허 회수 즉 금지령
에도막부: 1696년 8월 오키의 어부들까지 금지령 전달
에도막부: 1697년 1월 쓰시마를 통해 도해금지 시행을 조선정부에 알림.
이어서 울릉도 쟁계의 결론이 1700년대와 1800년대 개화기에 울릉도 개척령으로 발전하여 독도를 조선령으로 정한 국제적 인식을 복습해 보자.
에도막부: 1722년 쓰시마 번에게 "죽도 도해 금지에 송도(독도)도 포함되는가?" 조회
쓰시마번: 1722년 회답, "(송도 또한) 죽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건너가서 고기잡이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느라 말 참 길게 한다 하라키리는 무서운 겨)
오야가문: 1740년 에도막부에 편지, "죽도 송도 양도 도해가 금지된 이후에는 하쿠슈의 요나고 성주가 가엾게 여겨주신 덕택에 생활하고 있습.nida."
1820년대 공도기 김치선 할아버지 때부터 거문도주민 돌섬(石島) 왕복
1870년대 조선 개항과 함께 동해 상에서 블라디보스톡 왕래하던 일본인, 울릉도를 보고 신발견 드립 침
1877년 태정관, 죽도와 송도는 일본과 무관하니 지적에 올릴 것 없다 판결
1883년 고종, 울릉도 개척령
1886년 『개정 일본지지요략』조선의 독도 지배를 인지
1895년 김노인이 20세(1895년)되던 여름철에 "천석짜리" 무역선 5,6척이 원산을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여 그 울창한 나무들을 찍어 뗏목을 지었다. 날이 맑은 때면 동쪽바다 가운데 어렴풋이 보이는 섬이 보였다.
"저 섬은 돌섬(石島)인데 우리 三島(거문도)에 사는 김치선(지금으로부터 140년전) 할아버지 때 부터 꼭 저 섬에서 많은 '가제'를 잡아간다"고 가르쳐주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칙령 41호, 울도군 ... 석도를 관할할 것.
1900년 10월 27일 고종 칙령 41호 관보에 반포, 울도군 ... 석도를 관할할 것.
1900년 10월 29일 고종 칙령 41호 황성신문에 재반포, 울도군 ... 석도를 관할할 것.
1901년 3월 10일, 일본의 어용단체 흑룡회, 독도를 신발견 섬으로 홍보하여 국내외 일간지에 허위를 유포하기 시작함.
1901년 4월 1일 (만우절 날) 흑룡회의 허위기사, 제국신문에서 '~라 카더라' 통신으로 게재함.
...
2015년 6월 1일 게리 비바스 상(재한 친일파 미국인), 흑룡회의 허위기사 114년만에 재발굴하여 재차 유포를 시도; 이걸 따라쟁이 ㅋㅋㅋ가 독도갤러리에 제국신문 기사로 유포함
2016년 4월 18일 게리 비바스와 ㅋㅋㅋ의 허위유포 기사를 폭로 원천 궤멸, 발본색원하여 흑룡회의 음모에 대한 청소를 마침. 끝!
자료 : 1886년 『개정 일본지지요략』조선의 독도 지배를 인지한 문구
" 오키...는 일본해 중의 서쪽 끝의 절도(絶島)인데 그 서북 해상에 송도와 죽도의 두 섬이 있다. 서로 떨어지기를 거의 100리인데 조선에서는 울릉도라고 한다. 근래에 결정하여 그 나라(조선)의 속도로 삼았다고 한다. " -- 1886년 오츠키 슈지 (大槻修二) 『개정 일본지지요략』 p. 16
" 隱岐 ... 此國ハ日本海中西邊ノ絶嶋ニシテ、其西北海上ニ松嶋竹嶋ノ両嶋アリ、相隔ル殆一百里ニシテ、朝鮮ニテ蔚陵嶋ト稱ス、近來定メテ其國ノ屬嶋トナスト云フ、" -- 1886(明治19)年 - 大槻修二「改正日本地誌要略」
http://kindai.ndl.go.jp/info:ndljp/pid/762422/1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