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송도가 울릉도 동남방에 그려진 고지도 4 점


1. 숭실대 본 청구도, 1800년대에 제작된 17종 전본 중 제3군

큰 섬작은 섬,제주도 남방의 가파도 마라도, 울릉도 동남방의 독도 등이 모두 표기된 숭실대본 청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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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울릉도, 다시 울릉도에서 동남동 방향의 두 무기명 섬은 현재의 독도와 잘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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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래는 1770년 신경준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도
경희대학교 혜정 박물관 소장 [보물 1598 호]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2,15980000,31 
보물 제1598호 함경도·경기도·강원도 지도 [咸鏡道·京畿道·江原道 地圖] 중 강원도 지도 [江原道 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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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 간 동남동 방위가 강원도도에서 정동 방위로 왜곡된 듯 보이는 사실은 지자극보정 내지 일출방위보정으로 보정된다.
또 거리의 표현 왜곡은 강원도-울릉도, 울릉도-우산도 간 상대적 거리 비율로 보정된다.


3. 1899년 간행 미 National Geographic Society 조선 지도
http://gall.dcinside.com/dokdo/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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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확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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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표현 왜곡은 상대적 거리 비율로 보정된다.
울릉도가 조선반도에 가까이 그려졌을 뿐 아니라, 육지~울릉도 지도 거리와 울릉도~우산도 지도거리 간의 비율이 현재 강원도~울릉도 거리 : 울릉도~독도 거리 비율인 약 3 : 2 

4. 1894년 청국신지도(淸國新地圖) 상의 동해 세섬 중 우산도는 어디?


다음의 세 지리서에서 우산도를 울릉도 동남방으로 기술했다.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1907),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1907),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1908) 


1907년-1908년 당대 지리서의 정보로 한반도 동극지는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가 동경 130도 58분 

(어떤 자료에는 130도 35분도 보이나 하도 여러 자료가 130도 58분을 보이므로 여기서는 다수의 견해를 따른다.)


울릉도와 죽도가 두만강 하구의 동경 경위도 이내인 130도 35-45분까지 

(이후의 자료 중에선 53분~54분~56분까지도 보이나 뛰어봤자 벼룩이지, 역시 58분 이내)


같은 자료에서는 우산도가 울릉도 동남방으로 서술되었는데 이 방향에는 독도(에도기의 우산도=일본명 송도) 가 유일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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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확대도. 울릉도와 죽도가 한반도 동극점 두만강 하구의 130도 58분 안에, 우산도인 송도가 130도 58분 밖에 나왔음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상대적 방위로 울릉도의 동북모에 죽도가, 울릉도의 동남방에 우산도, 즉 오늘날의 독도가 있다.


1890년대 조선과 중국 청나라가 공유했던 국제지명이 각각

*울도--죽도--송도로 (울릉도 지도 지명의 첫 글자는 卽 자인지 아니면 울릉의 陵 자의 오자가 다시 전도된 것인지 화상이 흐려서 상세하지 않다.)

울릉도와 죽도까지는 에도기 조선어 지명을,

독도는 에도기 조선지명 우산도 대신에 에도기 일본어 지명 송도를 국제지명으로 택하였음은 흥미롭다. -- 비록 일본인이 제작하였으나 청나라 신지도라 하였으므로 국제 지명을 고려하여 일본지명 일변도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


고종은 이미 왕실도서실이었던 장서각(?)의 고전적을 열람하여 신경준 등이 정리한 우산도는 왜가 이르는 송도이다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1882년 울릉도 밀사 이우가 제출한 보고서 울릉도기에서 재차 이를 적기하여 지도 상의 송도가 바로 세종실록 지리지 이래의 동해의 두 섬 우산도 무릉도에 포함되고, 

임란 후 안용복 울릉도 쟁계 중의우산도(자산도) 즉 왜명 송도임을 알았을 것이다.

마침 1894년 일본인 수미타니 제작의 청나라 지도 청국신지도는 울릉도를 일본인들이 송도라고 불렀다던 1880년대 울릉도 검찰관들의 보고가 주는 혼란을 변별하여 

고종의 동해 세 섬 이해를 도왔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올바른 동해 세 섬 이해가 1900년 울도군 설군 칙령 41호의 울릉도 죽도 석도 편제와 

1900년대 초 조선인의 근대기 지리서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장지연은 증보문헌비고 편집위원으로 봉직하면서1903년대부터 개정에 들어간 증보문헌비고의 지리문을 담당했던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 우산도 ... : 이제 울도군이 되었다. " -- 증보문헌비고


(참고로 1880년 아마기 호의 탐사 이래로 아마기 호의 오류 소위 지이볼트의 오류+아르고낫토의 오류가 인지되었으므로 본 지도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음)

(여기에서 한반도 육지 동극지인 두만강 하구의 동경 경위도 130도 58분이 변별력을 제공하여 혹여나 들고나올 것이 뻔한 지이볼트/아르고낫또/아마기호의 오류론을 사전에 박멸하여 통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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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이래 1910년 전, 확고부동선명하게 울릉도 본도와 2.5 km 거리의 죽도/댓섬과 87.4 km 거리의 우산도/독섬를 잘 구별하여 부른 기록

동해의 세 섬 관념의 역사.  시간 순으로 나열하되 불확실하여 연구자의 추정연도만 알려진 경우는 빈칸으로 남기는 대신 대표적 연구자나 관련기록의 연도 앞에 *로 표시했다. 


1693 박동지    : 우루친토우 -- 죽도? -- 부룬세미 (쓰시마인 역관 나카야마에게 조선 정부 관료의 동해 세 섬 인지를 알린 첫 문증으로 다케시마기사 권1 겐로쿠6년 6월 5일)

1693 실명씨    : ?             -- ?      -- 우산도 (于山島; 거기에 가본 사람; 안용복에게 조선인의 우산도 인지를 계승해준 선행 답사자)

1693 안용복    : 무루구세무 -- 죽도  -- 우산도 (아직 답사하진 못했고 다만 울릉도에서 2 번, 해상에서 1 번 관측)

1693 장한상    : 울릉도      -- 무명섬 -- 무명섬(동남 300리, 울릉도 1/3 크기로 목측)

*1695 안용복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于山島우야마시마, 우사모수무)/자산도(山島; 가나주기가 소우산토로 자산도의 가나독음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子山島는 小于山島/芋山島의 오류)

*1882 개척민   : 울릉도      -- 떠난셤/댓셤 -- 독셤/돌셤?

**1894 청국신지도 : *울도 -- 죽도 -- 송도 <이 자료는 일본인 제작의 지도 청국신지도이나 조선의 동해 3 섬에 대해 조선의 지명 3 중 2 개를 반영한 소중한 방증적 자료로서 의미가 있어 추가함>

1899 황성신문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 (최저자 제1이 우산도; 최저자 제2가 죽도; 이는 섬의 최고봉/주회 기준으로 볼 때 나열 순서와 잘 부합한다. 해상 면적은 죽도가 좀 더 크다.)

1900 고종       : 울도        -- 죽도  -- 석도 

1904 新高號    : 울릉도      -- 죽도? -- 獨島( “리앙꼬루도岩은 韓人은 이를 獨島라고 書하고 本邦 漁夫들은 양고島라고 호칭”하며; 여기까지가 1905년 이전에 동해 세 섬을 구분하여 부른 조선인의 언어기록)

1906 심흥택    : 울도        -- 죽도?-- 獨島(당시 실제로 어떻게 읽었을지 알 수 없음; 늦게는 1940년대까지 최남선이 독섬을 쓴 걸로 봐서 아마도 독셤~돌셤 쯤이지 않았을까?)

1906 이명래    : 울도        -- 죽도?-- 獨島

1906 황성신문 : 울도         -- 죽도 -- 석도

1907 안종화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1907 장지연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1908 안종화류연: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참고문헌 : 


지도류

1894. 청국신지도(淸國新地圖) 수미타니 *** (炭谷傳(博?)次郎)


지지류

1907.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1907.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장지연(張志淵) 

1908.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류연(柳瑾)

1911.04. 대일본지리집성(大日本地理集成) ****(矢津昌永) 등(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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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울릉도 밀사 이명우가 고종에게 제출한 울릉도기 


“여지지에서 말하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인데, 우산 은 바로 일본이 말하는 송도다’라고 하였다(輿地云鬱陵于山皆于山國 而于山則日 本所謂松島也)”는 내용도 싣고 있다. 안용복이 일본에 가서 울릉도가 “우리나 라에서는 하루 여정이고, 일본에서는 5일 여정이다”라고 한 사실도 소개하여 고종뿐 아니라 당시 조선의 조정대신들이 안용복의 2차 일본행으로 결론에 도달한 울릉도 쟁계 관련 기록을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출전: 유미림. 1882년 고종의 밀지와 울릉도 잠행.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2013년 12월 31일


장지연이 편집위원으로 봉직한 증보문헌 비고
http://botw.egloos.com/10926781
증보문헌비고31-13
증보문헌비고31-16
증보문헌비고31-21

http://www.dlibrary.go.kr/JavaClient/jsp/wonmun/full2.jsp?v_kw_str=(증보문헌비고)&v_db=1&v_doc_no=30556&mode=1


13-14 쪽 우산도 울릉도[ ... 이도, 일즉우산. (속) 금위 울도군] -- 우산도 (공란) 울릉도 [세자주: ... 두 섬이니 그 하나가 우산도이다. [속: 1900 광무4년 칙령41호로 인하여 증보된 문구] " 이제 울도군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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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여지지운 울릉우산 개우산국지. 우산 즉 왜 소위 송도야.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가 모두 우산국 땅이었다. 우산도는 곧 일본인이 말했던 송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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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송도 즉 우산도. -- (안용복이 꾸짖기를) " 송도는 곧 우산도잖아! "viewimage.php?id=29b2db22ea&no=29bcc427b38777a16fb3dab004c86b6f05711d878ee273b04ca2958b415a9b7032b78034d9c802b7b760da787d1b88c604b1c7ebb6375e43e23d3b


친절한 번역 해설은 다음에 가서 보시오.

http://botw.egloos.com/10926781



본군 소속 독도를 상기시킨 심흥택 보고서 부본의 발견과 연구보고서 발표

1947-1948년 울릉도 독도 조사대 울릉군청서 심흥택 보고서 발견


1948년 신석호 논문 

독도 소속에 대하여(On Where Dokdo Bel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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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저자 : 신석호, 고려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o 논문 정보 : 사해 , 89~101쪽, 1948

o 주요 내용 : 저자는 1947년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일원으로 참가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독도 연구 논문을 발표함. 다양한 역사자료를 통해 독도가 예로부터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의 부당성을 밝힘. 특히 1906년 울도군수(심흥택)가 “본군 소속 독도”라고 하여 상부에 보고한 ‘심흥택 보고서’를 처음으로 소개

독도 소속에 대하여의 pdf 한글본 내려받기는 다음을 누르심

http://www.dokdohistory.com/kr/?stctgr=1&stsqn=41&fidx=25879


심흥택 보고서 부본은 1950-1953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분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1978년에 국사학자 송병기가 서울대 규장각을 탐색한 결과 심흥택 보고서 전문을 전재한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가 의정부에 상신한 보고서를 발견하여 본 보고서의 망실을 만회하였다.


제목울릉도에 입항한 일본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인원 및 행태 보고
문서번호報告書 號外 
발송일光武十年四月二十九日(1906년 04월 29일) 
발송자江原道觀察使署理春川郡守 李明來 
접수일 
수신자議政府參政大臣 閤下 


島郡守 沈興澤 報告書內開에 本郡所屬獨島가 在於外洋百餘里外이살더니
 
(울도군수 심흥택 보고서에는 울도군 소속 독도가 백여리 밖 멀리 있는데 )

울릉도에서 독도는 약 87.4 km니까 광무개혁의 도량형 (1리=420 m) 기준 약 208리; 100리의 밖이란 먼거리 진술은 사실과 부합한다.


本月初四日辰時量에 輪船一隻이 來泊于郡內道洞浦 而日本官人一行에 到于官舍야 自云獨島가 今爲日本領地故로 視察次來到이다 이온바 其一行則日本島根縣隱技島司 東文輔及事務官 神西田太郞 稅務監督局長 吉田平吾 分署長警部 影山巖八郞 巡査一人 會議一人 醫師技手各一人 其外隨員十餘人이 先問戶總人口土地生産多少고 且問人員及經費幾許諸般事務을 以調査樣으로 錄去이기 玆에 報告오니 照亮시믈 伏望等因으로 準此報告오니 照亮시믈 伏望.

江原道觀察使署理春川郡守 李明來 


議政府參政大臣 閤下 光武十年四月二十九日


指令 第三號
來報 閱悉이고 獨島便地之說은 令屬無根니 該島形便과 日人如何行動을 更爲査報 事.
五月十日


<1906년 4월 29일, 보고서 호외(報告書 號外)와 보고서 상에 첨기된 의정부 지령 3호 - 심흥택 보고서를 전문 전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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