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송도가 울릉도 동남방에 그려진 고지도 4 점
큰 섬, 작은 섬,; 제주도 남방의 가파도 마라도, 울릉도 동남방의 독도 등이 모두 표기된 숭실대본 청구도
육지에서 울릉도, 다시 울릉도에서 동남동 방향의 두 무기명 섬은 현재의 독도와 잘 부합한다.

다음의 세 지리서에서 우산도를 울릉도 동남방으로 기술했다.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1907),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1907),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1908)
1907년-1908년 당대 지리서의 정보로 한반도 동극지는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가 동경 130도 58분
(어떤 자료에는 130도 35분도 보이나 하도 여러 자료가 130도 58분을 보이므로 여기서는 다수의 견해를 따른다.)
울릉도와 죽도가 두만강 하구의 동경 경위도 이내인 130도 35-45분까지
(이후의 자료 중에선 53분~54분~56분까지도 보이나 뛰어봤자 벼룩이지, 역시 58분 이내)
같은 자료에서는 우산도가 울릉도 동남방으로 서술되었는데 이 방향에는 독도(에도기의 우산도=일본명 송도) 가 유일한 섬이다.
아래는 확대도. 울릉도와 죽도가 한반도 동극점 두만강 하구의 130도 58분 안에, 우산도인 송도가 130도 58분 밖에 나왔음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상대적 방위로 울릉도의 동북모에 죽도가, 울릉도의 동남방에 우산도, 즉 오늘날의 독도가 있다.
1890년대 조선과 중국 청나라가 공유했던 국제지명이 각각
*울도--죽도--송도로 (울릉도 지도 지명의 첫 글자는 卽 자인지 아니면 울릉의 陵 자의 오자가 다시 전도된 것인지 화상이 흐려서 상세하지 않다.)
울릉도와 죽도까지는 에도기 조선어 지명을,
독도는 에도기 조선지명 우산도 대신에 에도기 일본어 지명 송도를 국제지명으로 택하였음은 흥미롭다. -- 비록 일본인이 제작하였으나 청나라 신지도라 하였으므로 국제 지명을 고려하여 일본지명 일변도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
고종은 이미 왕실도서실이었던 장서각(?)의 고전적을 열람하여 신경준 등이 정리한 우산도는 왜가 이르는 송도이다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1882년 울릉도 밀사 이명우가 제출한 보고서 울릉도기에서 재차 이를 적기하여 지도 상의 송도가 바로 세종실록 지리지 이래의 동해의 두 섬 우산도 무릉도에 포함되고,
임란 후 안용복 울릉도 쟁계 중의우산도(자산도) 즉 왜명 송도임을 알았을 것이다.
마침 1894년 일본인 수미타니 제작의 청나라 지도 청국신지도는 울릉도를 일본인들이 송도라고 불렀다던 1880년대 울릉도 검찰관들의 보고가 주는 혼란을 변별하여
고종의 동해 세 섬 이해를 도왔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올바른 동해 세 섬 이해가 1900년 울도군 설군 칙령 41호의 울릉도 죽도 석도 편제와
1900년대 초 조선인의 근대기 지리서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장지연은 증보문헌비고 편집위원으로 봉직하면서1903년대부터 개정에 들어간 증보문헌비고의 지리문을 담당했던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 우산도 ... : 이제 울도군이 되었다. " -- 증보문헌비고
(참고로 1880년 아마기 호의 탐사 이래로 아마기 호의 오류 소위 지이볼트의 오류+아르고낫토의 오류가 인지되었으므로 본 지도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음)
(여기에서 한반도 육지 동극지인 두만강 하구의 동경 경위도 130도 58분이 변별력을 제공하여 혹여나 들고나올 것이 뻔한 지이볼트/아르고낫또/아마기호의 오류론을 사전에 박멸하여 통쾌함)
1693년 이래 1910년 전, 확고부동선명하게 울릉도 본도와 2.5 km 거리의 죽도/댓섬과 87.4 km 거리의 우산도/독섬를 잘 구별하여 부른 기록
동해의 세 섬 관념의 역사. 시간 순으로 나열하되 불확실하여 연구자의 추정연도만 알려진 경우는 빈칸으로 남기는 대신 대표적 연구자나 관련기록의 연도 앞에 *로 표시했다.
1693 박동지 : 우루친토우 -- 죽도? -- 부룬세미 (쓰시마인 역관 나카야마에게 조선 정부 관료의 동해 세 섬 인지를 알린 첫 문증으로 다케시마기사 권1 겐로쿠6년 6월 5일)
1693 실명씨 : ? -- ? -- 우산도 (于山島; 거기에 가본 사람; 안용복에게 조선인의 우산도 인지를 계승해준 선행 답사자)
1693 안용복 : 무루구세무 -- 죽도 -- 우산도 (아직 답사하진 못했고 다만 울릉도에서 2 번, 해상에서 1 번 관측)
1693 장한상 : 울릉도 -- 무명섬 -- 무명섬(동남 300리, 울릉도 1/3 크기로 목측)
*1695 안용복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于山島; 우야마시마, 우사모수무)/자산도(子山島; 가나주기가 소우산토로 자산도의 가나독음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子山島는 小于山島/芋山島의 오류)
*1882 개척민 : 울릉도 -- 떠난셤/댓셤 -- 독셤/돌셤?
**1894 청국신지도 : *울도 -- 죽도 -- 송도 <이 자료는 일본인 제작의 지도 청국신지도이나 조선의 동해 3 섬에 대해 조선의 지명 3 중 2 개를 반영한 소중한 방증적 자료로서 의미가 있어 추가함>
1899 황성신문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 (최저자 제1이 우산도; 최저자 제2가 죽도; 이는 섬의 최고봉/주회 기준으로 볼 때 나열 순서와 잘 부합한다. 해상 면적은 죽도가 좀 더 크다.)
1900 고종 : 울도 -- 죽도 -- 석도
1904 新高號 : 울릉도 -- 죽도? -- 獨島( “리앙꼬루도岩은 韓人은 이를 獨島라고 書하고 本邦 漁夫들은 양고島라고 호칭”하며; 여기까지가 1905년 이전에 동해 세 섬을 구분하여 부른 조선인의 언어기록)
1906 심흥택 : 울도 -- 죽도?-- 獨島(당시 실제로 어떻게 읽었을지 알 수 없음; 늦게는 1940년대까지 최남선이 독섬을 쓴 걸로 봐서 아마도 독셤~돌셤 쯤이지 않았을까?)
1906 이명래 : 울도 -- 죽도?-- 獨島
1906 황성신문 : 울도 -- 죽도 -- 석도
1907 안종화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1907 장지연 : 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1908 안종화류연:울릉도 -- 죽도? -- 우산도(“울릉도 동남방에 재하니라”)
참고문헌 :
지도류
1894. 청국신지도(淸國新地圖) 수미타니 *** (炭谷傳(博?)次郎)
지지류
1907.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1907.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장지연(張志淵)
1908.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류연(柳瑾)
1911.04. 대일본지리집성(大日本地理集成) ****(矢津昌永) 등(等)
13-14 쪽 우산도 울릉도[ ... 이도, 일즉우산. (속) 금위 울도군] -- 우산도 (공란) 울릉도 [세자주: ... 두 섬이니 그 하나가 우산도이다. [속: 1900 광무4년 칙령41호로 인하여 증보된 문구] " 이제 울도군이 되었다 "]
16쪽: 여지지운 울릉우산 개우산국지. 우산 즉 왜 소위 송도야.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가 모두 우산국 땅이었다. 우산도는 곧 일본인이 말했던 송도였다.
21쪽: 송도 즉 우산도. -- (안용복이 꾸짖기를) " 송도는 곧 우산도잖아! "
친절한 번역 해설은 다음에 가서 보시오.
1947-1948년 울릉도 독도 조사대 울릉군청서 심흥택 보고서 발견
1948년 신석호 논문
독도 소속에 대하여(On Where Dokdo Belongs)
o 저자 : 신석호, 고려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o 논문 정보 : 사해 , 89~101쪽, 1948
o 주요 내용 : 저자는 1947년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일원으로 참가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독도 연구 논문을 발표함. 다양한 역사자료를 통해 독도가 예로부터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의 부당성을 밝힘. 특히 1906년 울도군수(심흥택)가 “본군 소속 독도”라고 하여 상부에 보고한 ‘심흥택 보고서’를 처음으로 소개
http://www.dokdohistory.com/kr/?stctgr=1&stsqn=41&fidx=25879
심흥택 보고서 부본은 1950-1953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분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1978년에 국사학자 송병기가 서울대 규장각을 탐색한 결과 심흥택 보고서 전문을 전재한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가 의정부에 상신한 보고서를 발견하여 본 보고서의 망실을 만회하였다.
| 제목 | 울릉도에 입항한 일본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인원 및 행태 보고 |
| 문서번호 | 報告書 號外 |
| 발송일 | 光武十年四月二十九日(1906년 04월 29일) |
| 발송자 | 江原道觀察使署理春川郡守 李明來 |
| 접수일 | |
| 수신자 | 議政府參政大臣 閤下 |
島郡守 沈興澤 報告書內開에 本郡所屬獨島가 在於外洋百餘里外이살더니 江原道觀察使署理春川郡守 李明來 議政府參政大臣 閤下 光武十年四月二十九日 |
指令 第三號 |
| 來報 閱悉이고 獨島便地之說은 令屬無根니 該島形便과 日人如何行動을 更爲査報 事. |
| 五月十日 |
<1906년 4월 29일, 보고서 호외(報告書 號外)와 보고서 상에 첨기된 의정부 지령 3호 - 심흥택 보고서를 전문 전재하였다>
1894년 청국신지도(淸國新地圖) 는 동시대 조선 국토를 다룬 지지류에서 언급된 우산도가 조선 울릉도 동남방이라는 정보를 주어 우산도 = 독도였음을 입증하는 새 증거로 채택함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조선의 육지 동극지를 두만강 하구로 기술하면서 울릉도를 두만강 하구의 동경도 이내, 독도를 두만강 하구의 동경도 밖으로 기술한 1894년 청국신지도(淸國新地圖) 가 ...
우산도를 울릉도의 동남방으로 기술한 한국의 지리 교과서 1907.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1907.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 장지연(張志淵), 1908. 초등대한지지(初等大韓地誌) 안종화(安鍾和) 류연(柳瑾) 등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장지연의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남에 있느니라"가 결코 고립된 장지연 한 사람만의 인식이 아니고 당대 지리서를 편찬 내지 번역 편집하여 소개한 한국의 지식인들은 물론 일본인 지리서와 지도 제작자들 간에도 널리 공유된 지리 지식이었다는 사실이다.
팩트1. 위에건 관리를 쓰레기 해서 생긴 얼룩이다
저기 맨밑에 남해안 섬들 표시한것도 다 얼룩임 ㅋ?
팩트2. 다 까고 아래 그림들이 독도라고 치자. 그럼 죽도는 어디감? 왜 하필 죽도 모양으로 죽도가 아닌 존나 멀리떨어진 독도를 그렸을까? 이걸 주장하는게 국뽕들이 끼워맞추다가 뇌도 장애인이 되었단 근거
4번 그림 죽도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