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게리 베버스씨가 1711년에 울릉도 수토관이던 박석창이 그린 지도를 가지고 '조선에서 우산도라고 알려진 섬은 현재의 독도가 아니라 죽도이다.  따라서, 독도는 한국영토가 아니라 일본영토이다'라는 요지의 투고를 한 것이 일본의 지방신문사인 산음중앙신문에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를 보도한 일본 지방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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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 링크는 이미 깨어진것 같습니다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U>http://www.sanin-chuo.co.jp/news/modules/news/article.php?storyid=345809006</U>


일한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타케시마(한국명·독도)에 도착하고, 한국측이 자국령으로 하는 주장을 뒤집는 한국의 고지도가 발견되었다.22일의 시마네현의 「타케시마의 날」을 앞에 두고, 한국에서 타케시마 문제를 연구하는 미국인의 게이리·비바즈씨(51)가, 산음중앙신보사에 투고했다.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지도도 있어, 전문가도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의 대학에서 영어 교사를 맡는 비바즈씨는, 일본 정부가 타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1905년 이전, 한국의 문서나 지도에 독도의 표기가 없고, 한국측이 독도의 고명은 고문헌이나 고지도에 기록되고 있는 「우산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

그 위에, 한국측의 영토설의 근거를 뒤집는 것을 증명한 자료로서 댄 것이, 타케시마의 북서 92킬로에 위치하는 한국·울릉도를 그린 서울 대학규장각이 소장하는 고지도의 석장.

이 중 연대 미상의 지도에서는, 울릉도의 동쪽으로 그려진 작은 섬에 「소위(이른바) 우산도」 「해장죽전」이라고 쓰여져 있다.「해장」은 대나무의 종류를 가리킨다고 보여져 우산도는 대나무가 나지 않는 불모의 바위의 덩어리의 독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1834년의 지도에 대해서는, 한국의 거리의 단위인 10 한국마을(일리(약 3.93km)는 0·4킬로)의 눈금이 있는 것에 주목.우산도를 나타내는 「우산」은 울릉도의 동해안4킬로로, 거리적으로 독도가 아니고, 울릉도의 부속섬의 죽서로 했다.

타케시마 문제를 잘 아는 국립국회도서관의 츠카모토 타카시 참사는 「한국 거주자만이 가능한 조사에 근거하는 새로운 발견을 포함하고 있다.특히 「해장죽전」이라고 쓰여진 지도는, 우산이 독도가 아닌 증거로 해 귀중」이라고 평가했다.

비바즈씨는, 「타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을 기회로 한국 국내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졌던 것에 의문을 가져, 타케시마 문제를 연구.인터넷상에서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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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베버스의 주장대로 오늘날의 죽도에는 대나무가 많고,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나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죽도 (죽서도)의 대나무 숲>

 

 

그러나, 새삼스럽게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표시된 '소위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가 아니라 독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도를 보시죠.
박석창이 울릉도 수토를 다녀온 뒤에 비변사에 보고한 지도라고하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입니다.
 
1711 박석창 (울릉도도형)
(지도를 누르면 원본 크기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울릉도도형지도>

 

산음중앙신보에는 우산도 주변의 작은 부분만 나와 있었지만, 우산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울릉도 동북해안 전체를 한 번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1번은

산음중앙신보에 보도된 부분이며, 게리 베버스씨가 우산도가 현재의 죽도라는 근거로 삼는 부분입니다.

 

해장죽전 (海長竹田)
소위 우산도 (所謂 于山島)

 

해장죽의 밭이 있고, 이른바 우산도라는 뜻입니다.

 

 

2번은

 

각석입표? (刻石立標?)

"돌을 깎아 표를 세웠다"라는 뜻입니다.  

박석창이 수토 도중에 이곳에다가 돌비석을 세웠다는 이야기 입니다.

 

 

3번은

 

선박소위저전동민인가거처 (船泊所謂佇田洞民人可居處)

"배를 댈 수있고 이른바 저전동인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다"는 정도의 뜻이 되겠습니다. 

저전동은 오늘날의 저동입니다.

 

5번은 위치로 보아 삼선암이 틀림 없습니다.

 

<삼선암 - 다른 곳에서 슬쩍해 온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우산도의 위치가 좀 이상합니다.   저전동, 즉 저동은 현재 울릉도의 중심지인 도동으로부터 북쪽에 있습니다. 또, 저동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간 내수전-와달리 앞에 죽도가 있죠...
그러니까, 우산도죽도라고 하면, 현재 이 지도에 그려진 것 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저전동보다 훨씬 오른쪽에) 그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울릉도 동해안 지도>


만약에 3번이 저동이라 한다면, 박석창이 돌을 깎아 세워 놓았다는 비석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저동 남쪽의 도동이 맞을 것입니다.

 

실제로 1937년 도동 항만 공사중 바다속에서 1711년에 세웠던 박석창의 비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석이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 앞에 있는 향토사료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즉, 도동 앞바다에 우산도가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죽도우산도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도동에서는 아예 죽도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박석창의 비석>

 

죽도에서 저동, 도동쪽을 바라본 장면 (도동은 지형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죽도에서 관음도, 삼선암쪽을 바라본 장면

 

 

 

 

 


이렇게 생각하면, 4번의 정체는 스스로 명백해 집니다.  바로 오늘날의 관음도와 죽도인 것이죠....

< 울릉도 도동 앞바다에서 바라본 관음도와 죽도>

 

 


     해장죽전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만, 

     오늘 독도에 대나무가 살지 않는다고, 1711년에도 대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억측은 아닐까요?

  

    다음은 이미 잘 알려진 태정관 지령문 중, 독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U></U> 

    <U>다음에 一島가 있는데 松島라고 부른다.</U> 둘레의 주위 30町 정도이며, 竹島와 동일선로에 있다.

    隱岐와 거리가 80리 정도이다.<U> 나무나 대나무는 드물다.</U> 

 

   "나무와 대나무는 드물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없다"고 하지 않고, 왜 "드물다"라고 표현했을까요?

 

    드물게 있는 것을 "대나무 밭"이라 표현하는 것이 여전히 무리가 있는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독도에 대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것 역시, 이 기록의 의미대로라면 좀 무리가 아닐까요? 

 

   ( 태정관 지령문 <U>http://blog.naver.com/cms1530/10026000526</U> )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박석창이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던 시기에 대해서 입니다.   요 위에 있는 울릉도 향토사료관이 이 비석을 설명하는 자료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삼척영장 겸 첨절제사 박석창"은 1711년 1월부터 1712년 12월까지 삼척영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국왕은 숙종이며, 숙종은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조선의 19대 국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숙종이 누구입니까?

 

숙종은 안용복을 원인으로 발생했던 일본과의 외교분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을 때의 조선의 국왕이었기에,  안용복을 심문했던 비변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안용복의 발언을 보고받고 있었으며,

 

倭言: ‘吾等本住松島, 偶因漁採出來。 今當還往本所。’ 松島卽子山島, 此亦我國地, 汝敢住此耶?’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 안용복 - 1696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U>http://blog.naver.com/cms1530/10003697550</U> )

 

 


이 뿐 아니라, 1694년 첫 번째 수토관이던 장한상으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직접 받았던 인물입니다.

 

西望 大關嶺遠迤之狀 東望海中有一島 杳在辰方 而其大末滿蔚島三分之一不過三百餘里

 

"울릉도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대관령의 구불구불한 모습이 보이며, 동쪽을 바라보니 바다 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아득히 동남방에 위치하며, 섬의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에 못 미치고 거리는 300여리에 지나지 않는다."

 

( 조선은 독도의 존재를 몰랐나? -울릉도사적 <U>http://blog.naver.com/cms1530/10005190262</U> )

 


그런데, 1711년에 박석창이 울릉도로 수토를 다녀와서, 숙종에게 "우산도는 사실 알고보니 죽도"라고 보고를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소위 우산도"라고 표시되어 있는 섬에 "대나무 밭"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고 해서, 그리고, 대나무 밭이 지금의 죽도에 있다고 해서,  우산도 = 죽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경솔할 뿐 아니라 무식한 행동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산도 = 죽도'라고 주장하는 당신.

 

당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비정상이 됩니다.

당신만 비정상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비로소 정상이 됩니다.

 

바로 당신이 비정상인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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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박석창의 울릉도도형에 대한 자료제공 및 울릉도도형에 그려진 '소위 우산도'를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의 발견지역과 연관하여 우산도죽도임을 부정하는 이 글의 논지는 외국인 독도지킴이 스티브 바버 (Steve Barber)씨의 아이디어에 의해 작성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스티브 바버씨의 독도사이트 방문은 여기로 (<U>http://dokdo-takeshima.com</U>)

 

 

 

 

( 두 개의 울릉도 수토관 관련 비석 ( 鬱陵島搜土官關係碑二 )  <U>http://blog.naver.com/cms1530/10033707103</U> )

( 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 <U>http://blog.naver.com/cms1530/10033192287</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