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업로드가 힘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 힘들다....

조금 후에 글을 조금씩 붙여 봐야겠습니다.

여기 일빠들은 독도문제에 대해 균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1
부제: 일본의 독도 왜곡 1 - 김인우의 우산도 귀환 기록

출처:  http://gall.dcinside.com/dokdo/4526 
출처:  http://gall.dcinside.com/history/615200   조회수708  전체댓글수514

보면 자체적으로 자료 조사할 능력은 없고 그냥 웹자료만 보고 일빠짓 하는 애들이 많은데 좀 고쳐야 된다는 얘기.
신용하식 우리나라 만세 사관은 자제해야 되지만 반대로 일본 만세 사관도 자제해야 된다는 거.

가령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귀환했다는 태종 17년 기사를 가지고 독도가 우산도가 아닌 근거랍시고

일본애들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실록 조금만 뒤져보면 알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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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7년(1425) 8월 8일

初江原道平海人金乙之李萬金亐乙金等曾逃居武陵島, 歲丙申國家遣麟雨, 盡行刷還

처음에 강원도 평해인 김을지·이만·김울을금 등이
무릉도에 도망가서 살던 것을,
병ㅅㅣㄴ년 1416년 에 국가에서 김인우를 보내어, 모두 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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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7년조 기사에는 분명히 태종 17년에 데려온 섬주민은 무릉도 출신이라 해놓고 있음.
그럼 세종이 무릉도=우산도로 봤느냐? 그건 아님.
세종실록지리지부터 해서 각종 실록에서 별개의 섬으로 기록해두고 있으니.


게다가 태종 16년 즉 출발할 때의 기록을 보면
김인우가 데려온 섬주민이 우산도 출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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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6년 1416년 9월

庚寅 
以金麟雨爲武陵等處按撫使. 戶曹判書朴習啓.

「....武陵島周回七息, 傍有小島, 其田可五十餘結, 所入之路纔通一人, 不可並行. 昔有方之用者, 率十五家入居, 或時假倭爲寇....」
上可之, 乃召三陟人前萬戶金麟雨, 問武陵島事....上然之, 以麟雨爲武陵等處安撫使...

 김인우를 무릉 등처 안무사로 임명했다. 호조참판 박습이 아뢰었다.


「.... 무릉도의 주회가 7식이고, 곁에 작은 섬이 있고, 전지가 50여 결이 되는데,

들어가는 길이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하고, 병행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방지용이란 사람이 있어, 15가를 거느리고 입거하여, 때로는 가짜 왜구로서 도둑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옳다고 생각하여, 삼척 사람 전만호 김인우를 불러서, 무릉도의 일을 질문했다.....

왕이 옳게 생각하여, 김인우를 무릉등처 안무사로 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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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에 15가가 입거했다고 나와 있지.
근데 17년 귀환 기록을 보면 김인우가 데려온 거주민의 섬의 호수 역시 15구라고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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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
其島戶凡十五口, 男女幷八十六。 麟雨之往還也, 再逢颶風, 僅得其生。

안무사 按撫使 김인우 金麟雨 가 우산도 于山島 에서 돌아왔다. 
토산물 土産物 인 대죽 大竹 · 수우피 水牛皮 · 생저 生苧 · 면자 綿子 · 검박목 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구 口 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 颱風 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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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의 17년 기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임?
그래도 섬 주민은 울릉도 옆 죽도 출신이라고 할 것임?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무릉도 출신이라 생각하겠지.
17년 기사에서 우산도 운운한 것은 마지막 방문지일 뿐
거주민이 있던 섬과는 관계없던 걸로 보거나,
혹은 잘못 기록된 걸로 보는 것이 상식이겠지.
김인우는 애초에 우산도 하나만 향해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무릉 등처를 향해 출발한 사람이니까.

이처럼 일본측의 왜곡질에 그대로 넘어가는 애들이 너무 많아.
실록은 그냥 검색만 하면 나오는 건데도 김인우 기사랍시곤 17년거 밖에 모르더군.

정리하면 독도논쟁은 기본 구도가 이래.

한국측 - 1905년 이전에도 독도를 한국령으로 기록하거나  우산도가 독도로 추정될 수 있는 기록이 있음.
전거: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산도는 왜인이 말하는 마쓰시마라는 전거는《동국문헌비고》

일본측 - 영유선언을 한 기록 자체가 없음. 전멸.

그래서 일본측은 우리측 자료의 신빙성을 공격만 하지 결코 자신들의 영유기록은 제시 못함.

판 자체가 한국 기록에서만 벌어진다는 얘기임.


예전에 여기서 한 일빠랑 독도문제로 얘기를 해봤는데
자기 말로는 스스로 자료를 조사한 것이지 타나카 쿠니타카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하더만.

그래서 한문 해석상의 문리를 토대로 반론을 했더니 뭔말인지 이해를 못하더만.

결국 나중에야 자신이 한문 해석 못한다는 거 실토하고 말이지.

일본웹 기계번역한 거 가지고 지식인인척 하는 사기꾼이 너무 많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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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붙인다면 한문이라 하는 것은 해석하기 이전에

1. 정확한 한자 해독 : 수년의 훈련이 요구되는 식자 능력 없이는 불가능함
2. 정확한 한문 문해 : 수년의 훈련이 요구되는 해독 독해의 경험 없이는 불가능함

위의 두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자신감에 충만한 주장을 하다가 해석문제로 견해차가 발생했을 경우,
스스로 사료 증거인 본문 한문 해석 못한다는 고백에 해당하는 분들은
독도 토론에 앞서
수 년간의 인생 경력을 속이고 토론에 임하고 있다 보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위의 글은 끝의 사족을 제외한 본문 글이
작년 12월 상식 이란 유동 닉으로 독도갤러리에 글을 올리셨던 분의 글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이 글을 보고 독도 토론에 앞서 관련 문서 읽을 능력 없이 무작정 뛰어드신 분들은
남의 한문 문장 해독과 독해와 이의 역사지리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들어가는 것이 정직한 행동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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