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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 3년(1899) 9월 3일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은 전면에「별보(別報)」로 울릉도의 역사와 라뽀떼의 조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첫 머리에, 

    "울진지동해(鬱珍之東海)에 일도(一島)가 유(有)니 왈(曰) 울릉(鬱陵)이라 
    "기(其) 부속(附屬)한 소육도중(小六島中)에 최저자(最著者) 우산도(干山島) 죽도(竹島)이니 
    "대한지지(大韓地誌)에 왈(曰) 울릉도(鬱陵島) 고우산국(古于山國)이라. 운운."


분석적 세밀함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나면,
전에는 안 보이던 다른 세부가 눈에 들어노는 것을 발견한다.
1899년 황성신문 기사에서 묘한 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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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신문 보도의 “우산도(于山島) 죽도(竹島)”

1899년 해 9월 23일 황성신문은 별보의 제1면 전체에 울릉도의 역사와 라포테(Lapo[r]te)의 조사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 첫머리가,

“울진지동해(鬱珍之東海)에 일도(一島)가 유(有)하니 왈(曰) 울릉(鬱陵)이라 
"기(其) 부속(附屬)한 소륙도중(小六島中)에 최저자(最著者)는 우산도(于山島)
"죽도(竹島)니 대한지지(大韓地誌)에 왈(曰) 울릉도는 고우산국(古于山國)이라”

고 하여 울릉도에서 가장 큰 섬을 우산도와 죽도(竹島)로 보았다.
황성신문이 울릉도에서 가장 큰 섬을 우산도와 죽도라고 한 것, 즉 “최저자(最著者)는 우산도(于山島) 죽도(竹
島)”라고 기술한 것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먼저, 여기에서 제시된 죽도(竹島)가 현재의 댓
섬을 가리킨다는 데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연구자 사이에 특별한 이견이 없다.


"자료출처: 선우영준. "1900년 울릉도시찰관 우용정의 돌섬 인식과 울도군 칙령의 석도(독도) 문제". 2011년 12월 9일-10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대회 및 정기총회
http://210.101.116.28/W_ksi1/01308554_pv.pdf

'보도 기사 문장 중 '최저자(最著'''者)'의 저(著) 자는 훈이 '나타날 저'이므로,
최저자(最著""者)라는 말의 뜻은 "가장 높은 섬"일 수 있다.
과연 울릉도 부속 도서 중 고도 순위로 보면 독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
측정과 기록에 따라 최저치와 최고치의 범위를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1위: 독도/독섬의 서도가 168m~174m
2위: 죽(서)도/댓섬이 106m~116m
3위: 관음도/깍새섬이 100m~106m
4위: 독도/독섬의 동도가 98m 

이 순위는 황성신문 기사가 말하는 1-2위 순위 소도 두 개와 나란히 보면 두 자료가 가지런히 정렬된다.

1위: 우산도(于山島) > 정상고도 174m의 독도 서도

2위: 죽도(竹島) > 정상고도 116m의 댓섬/죽서도



황성신문의 위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적어도 두 개의 다른 "우산(도)" 관념이 존재함을 알았다.

1. 울릉도에 소속된 작은 여섯 개 섬 중 한개로서의 "우산도(于山島)" : 

이 "우산도(于山島)"는 울릉도 본도를 제외한 여섯 개 작은 섬 중 최저자, 즉 가장 두드러진 섬이었다고 적었다.
최저자(最著者) 저(著) 자를 물리적 특징인 고도 표현으로 해석할 경우 우산도=독도 해석은 매우 타당하다.


2. 울릉도 소속의 소도서 말고, 울릉도 본도에 근거한 고대국가 즉 옛 우산국(古于山國)의 치소로서의 "우산도(于山島)"

이는 고 우산국의 중심과 외곽이 모두 한 때 우산국의 영역이었음을 이유로 한 때 우산도로 불렸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산이라는 이름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옛 우산국의 영역 다른 곳이 출현한 것을 말함이다.

이를 민속학 내지 방언학의 관점에서 보면, 옛날 공자가 주나라 왕실이 예법을 잃으니 변방의 사이에게서 구했다고 했고, 
또 방언학에서는 언어의 중심지역에서 잃은 언어요소가 변방의 방언에 남았다고 일컫는 현상의 한 사례라 하겠다.

매우 보편적이고 개연성 짙은 현상이 마침 첨예하게 주장과 논리와 증거가 엇갈려 제시되고 있는 
폭풍의 중심에 나타났다 하여 조금도 이상하게 여길 논리적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