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태정관 문서에서 외1도는 독도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 기조는 1905년까지 지속 됐다고 보여진다.

이기조가 유지 안됐으면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로 규정하지 않았지.

가장 확실한 것은 일본 역시 1905년 당시 독도를 자기 영토로 생각 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고지도니 뭐니 그 전에 독도를 어쨌느니 다 무의미 하다.

내가 독도와 관련된 문제를 접하면서 보게되는 한가지 현상이,
독도와 관련된 사실이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한국의 주장들이 억지와 왜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일종의 정신붕괴 현상을 경험하는 이들 중엔,
그반대로 일본쪽의 주장은 맹목적으로 비판 없이 수용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숨기려고 하고 왜곡을 하고 감추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일본이 독도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거짓말에 해당한다.

일본은 1905년까지 독도를 주시만 했지 결코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한 적이 없었다.
1905년이 최초 시도였다.

1900년 조선 칙령에서의 석도는 내 솔직한 생각으론 독도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그이유로는 만약에 석도가 독도였다면, 그 석도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죽도와는 달리 결코 가깝지 않은 90키로 떨어진 섬을 관할 지역으로 포함 시키면서
달랑 석도라는 표현 하나만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최초로 사용되는 석도라는 표기에 대해서도 뭔가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학자들은 석도=독도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십년을 탐구했지만 결국 결정적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한 것이라곤, 전라도 방언을 근거로 석도=돌섬=독섬=독도
근데 석도가 내가 밑에 보여준 지도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쓰였기 때문에
그 석도가 울릉도 주변의 죽도를 제외한 소오도를 지칭한 것인지 독도를 지칭한 것인지가 결국 불분명 한 것이다.


내 생각으론 독도가 울도군 소속으로 들어간 것은 석도가 아니라 독도라고 불려진 이후라고 본다.
일본쪽 기록상으로 1904년 최초 등장하는 독도....독도가 독도로 한국에서 불려진 이후에는 울도군 관리로
들어 갔다고 본다.

그이유는 심흥택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1906년도 정부에 보고서를 올릴 때 울도군 소속 독도라는 표기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울도군이 독도를 관할하지 않았다면, 공식 정부 보고서에 저런 표현을 쓸 수가 없다. 조선 정부에서도 독도 울도군 소속임을
서로 같이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독도를 울도군 소속으로 편입 시켰다는 행정적인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이게 조선 정부의 가장 큰 실수라고 본다.


결국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독도는 1900년 당시에는 한국/일본 양국 모두 사실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무주지였는데,
1900년부터 1904년 사이 어느 시점부터, 즉 한국이 이 섬을 독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사실상 한국은 이 독도를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혹은 심정적으로 관리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이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는 남기지 않은 상태...

이를 간파한 얍삽한 일본놈들이 잽싸게 1905년에 고지를 통해 영토편입을 한 것.

그러니 1906년에 이 사실을 안 조선정부는 당연히 열받음..


결국 식민지 35년 지나고 우리가 실효지배 상태가 되고...


이런 저런 과정을 보면 이건 식민지 35년에 대한 인과응보 형태라고 본다.

결론은 독도는 그냥 한국땅이라고 생각하고 실효지배하는 게 정답이고, 그냥 공동 어로로 계속 가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