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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리는 밤이었다.
‘곰들의 모임’ 행사장 안은 이미 술 냄새와 욕설 섞인 함성으로 가득했다.



“김태룡 나와아아!”
“강백호한테 덕담이나하고 자빠졌냐 이 새끼야!”
“작년엔 누구 데려왔냐? 아무도 없잖아!"



플라스틱 의자가 덜컹거리고, 여기저기서 ‘단장 OUT’ 피켓이 흔들렸다.
무대 위에 서 있던 김태룡 단장은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은 두산 점퍼를 입은 그는 평소처럼 말수가 적었다.
팬들은 그 침묵이 더 밉상이었다.



사회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단장님 인사말… 듣고 싶으신 분?”



“듣고 싶긴 개뿔!”
“빨리 내려가!”


김태룡은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다.
그러고는 한 마디 했다.

“김현수.”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저씨도, 핸드폰으로 단장 얼굴에 필터 씌우던 대학생도 멈췄다.

“… FA 계약 완료했습니다.”

3초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
잠실구장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부둥켜안았다.
“현수 잡았다! 현수 잡았어!!”
“김태룡 사랑해에에에!!”



김태룡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다만 입꼬리가 살짝, 정말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걸 본 앞줄 팬 하나가 소리쳤다.



“단장님 웃었다! 봤어?! 웃었어!!”
“와 진짜 미친… 나 지금 단장님 사랑해…”
“김태룡 내 남편!!”


사람들이 무대로 뛰어올라왔다.
누군가는 김태룡의 손을 잡고 흔들었고, 누군가는 어깨를 툭툭 쳤다.
30분 전만 해도 “물러나라” 외치던 입에서 이제 “단장님 최고”, “평생 간다”라는 말이 쏟아졌다.



김태룡은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번엔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김현수는… 두산에서 은퇴합니다.”


또다시 폭발.
이번엔 아예 팬들이 “김태룡! 김태룡!”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포기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이 무대는 김태룡의, 그리고 두산 팬들의 것이었다.



행사 끝날 때쯤, 한 할아버지 팬이 단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단장님… 미안했소. 작년엔 내가 제일 욕했는데…”
김태룡은 고개만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베어스는 믿음이잖아요.”
그날 밤, 잠실은 오랜만에 정말 따뜻했다.
그리고 두산 팬들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욕도 사랑도, 결국 같은 마음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