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연기한 김혜윤은 웃음기 하나 없는 버석한 얼굴로 등장해 단숨에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동안 정확한 딕션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을 뽐냈던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선배를 향한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고 일상적인 감정선을 잘 유지하다가 살목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로 인해 이성적인 내면에 균열이 생기는 인물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공포 연출에 과하게 의존하거나 주변 캐릭터들에 과장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게 아닌, 미세하게 흔들리는 호흡과 눈빛이나 떨리는 손끝 등 디테일한 신체 표현으로 말이다.

케미 요정답게 이종원과도 좋은 합을 자랑한다. 전 연인인 수인과 기태로 분한 두 사람은 몇 없는 대사로만 이러한 관계성 속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고 살목지에서 함께 탈출하는 것에만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