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의 자식이라는 건

k-드라마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는

항상 극에 중요한 떡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실 이는 비단 국산 컨텐츠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창작물에서도 극중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는

일종의 클리셰이다


하지만 프랭크 하버트의 듄에서는

이 클리셰에 대한 취급이 조금 남다른데

정말 뜬금 없이, 밝혀질 필요가 전혀 없는 전개과정 중에

주인공 폴이 아무렇게 툭 던지듯이

저 혈통의 비밀을 독자의 눈앞에 들이민다

주인공이 직접 내용을 스포하는 것이다


여기서 웃기는 것이 저 아무렇게나 밝힌 비밀은

매우 중요하고

극중 인물들의 관계나 상황의 의미를 뒤틀정도로

무게감 있는 내용이며

그 비밀을 그냥 공개해버린 폴 조차도 계속해서 신경쓰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작가는 이런식으로 중요한 내용을 풀었을까?


프랭크 하버트가 똥작가라서?

설정딸만 존나 치고 내용전개는 병신 같이하는 오타쿠 새끼라서?

당연히 아니다


그랬으면 듄이 안빨렸겠지


듄은 치밀한 설정만큼이나 조직적이고 밀도있는 이야기 전개를 선보이는 소설이고

그렇기에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것을 유기적으로 배치 했으며

저 주인공의 셀프 스포 또한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들어간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알기전에 우선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소설내에서 저런 스포가 흔하다는 것이다


소설의 각 챕터는 가상의 듄 세계관 속 서적을 발췌 하는 방식으로

야예 그 챕터의 내용을 요약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챕터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책을 읽게 되며

그리고 그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먼저 알고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유예가 배신자 라는 것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으며

뭐가 등장한다거나 어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도

책을 읽는 우리는 놀랄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공주는 시발년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못받지 병신년이 눈치 없이 존나 쫑알 거리고

저 년 때문에 시발 소설의 흥미가 1/4는 깎였을거다

스포하는 저 씨발련 때문에 독자인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고통을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작중 등장 인물이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며 책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게 바로 실시간 스포속에서 살아가는 쿼사츠 헤더락

폴 무앗딥이다


폴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은 굉장히 흡사하다

그는 미래의 수많은 파도 속을

실시간으로 들여다 보며 결과를 추려내지만

그 과정의 실타래는 항상 복잡하고 난해하기에

순간순간 수많은 고민과 후회를 하며

결과를 아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선택의 소용돌이 속을

항상 헤매고 있다


독자들 또한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공주가 써놓은 미래를 읽어서

그 결과와 큰 흐름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기에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가며 폴의 번민에 동참하고

폴과 함께 정해진 미래를 완성한다


우리는 그저 책을 읽을 뿐이지만

동시에 쿼사츠 헤더락이 살아가는 방식을 체험한다


이것이 바로 프랭크 하버트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신비한 경험이다

스포가 오히려 우리를 주인공과 동화시키고

다음 한장한장의 내용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며

캐릭터가 날뛰며 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어느새 제4의 벽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놀라운 경험


듄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는가?

당신이 영화를 보고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은 상관 없다

당신이 책을 펼친다면

드넓은 아라키아의 사막은 그런 당신 마저 받아드릴 것이고

무앗딥은 그런 당신을 파란색 안구를 통해 미리 예견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