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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어봄
폴이 통제를 잃어서가 아니라 통제를 가져서 문제고 그 길이 두렵다고 말하는데 공감이 안갔었음
그 대사칠 당시에는 미래의 재앙이 파편적으로만 보여서 막연히 두려웠기 때문에 그랬던거고,
벌레즙 마시고 각성한 후에는 모든 끊어진 미래 경로가 이어짐으로써 그 재앙과 불행들이 결국엔 최선의 미래로 이어지는 좁은 길목에서 일어나야만 함을 납득했기 때문에 영웅, 메시아로서 행동하게 됨.
그렇다면 그 재앙은 인류의 최선을 위해 일어나야만 하는 필연이고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섭건 간에 그 필연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퀴사츠 헤더락, 즉 메시아 신앙이 왜 경계되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감
만약에 퀴사츠 헤더락이 최선의 미래는 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기에 감정을 버리지 못해 그 최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실수를 하게된다 뭐 그런 거 말고 정말 초인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는 존재라면 말야. 그런 메시아는 인류에게 있어 축복이면 축복이지 경계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누가 납득시켜줄 사람?
마지막에 수억이 죽을 전쟁하러 가는거보면
그거때문일듯
다음 파트3에 나올거임
폴이 퀴사츠 케더락이 된 계기는 가문의 복수와 연광을 되찾고 본인이 황재로 등극하능거였음. 그러기 위해 프레멘이 필요했던거고. 챠니르르살릴려고 생명수를 마시고 위에 언금한 사실을 깨달았겠지. - dc App
퀴사츠해더락으로 각성했을 때 보는 미래는 대부분 지옥도임. 그중에서 그나마 나은 미래가 인류의 폭발적인 팽창이고, 그 팽창을 위해선 강력한 억압을 통한 자유에 대한 갈망의 자극이 필요함. 그리고 그 자극을 위해 몇천년의 독재가 필요하고 그 독재자가 되기 위해 수백억이 전쟁으로 죽어야함. 이게 퀴사츠해더락의 역할임.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구원일지 모르나 그 과정은 희생과 살인, 억압으로 점철된 재앙임. 그리고 이조차도 원래 의도와는 달리 스토리가 연장된 6권에서야 나오는 내용이고, 사실 작가는 2권쯤에서 스토리를 마무리 지으려 함.
2권까지로만 스토리를 본다면 수백억을 죽이면서 까지 황제가 된 폴은 결국 실패하고, 장님이 되어 방랑하다 살해당함. 그리고 제국은 또 다른 인격에 삼켜진 여동생의 폭정으로 고통받음. 그 어느 부분으로 보던 퀴사츠해더락은 재앙이며 불행임. 따라서 작품의 주제는 메시아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는 거
폴의 실패가 스스로 예견한 실패인거야 아니면 실수로 인한 실패인거야? 한 세대 건너뛰어서 불완전한 퀴사츠 헤더락이라 그런건가 ㅋㅋ 책을 봐야겠다
스스로 포기한 것에 가깝지. 끝까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주변인의 죽음에 대한 좌절이나 학살에 대한 죄책감 등 인간적인 면모가 많았음.
그래서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하코넨 혈통이 퀴사츠 헤더락에 맞는 거였구나..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게, 하코넨 혈통을 섞는 건 순전히 베네게세리트의 계획이었음. 반항적인 아트레이데스 혈통에 욕망에 충실한 하코넨의 혈통을 섞어 퀴사츠해더락을 본인들이 제어하고자 함. 그러나 이건 퀴사츠해더락의 본질(=재앙)을 몰랐던 베네게세리트의 희망회로에 불과했고 그들은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게 됨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나 욕망을 초월하여 앞서 말한 독재자의 길을 끝까지 걸었던 존재는 모래벌레와 한 몸이 되어 인간이라 부르기도 힘들게 된 폴의 아들임
상상력 진짜 대단하네...
아 작가가 무슨 말 하고 싶은건지 알 것 같음.. 통제를 개인에게 맡겨선 안된다. 그게 아무리 뛰어난 존재더라도. 이거 같다. 현 시점에 강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진 존재가 인류의 최선을 어떻게 판단할지 모른다는 거니..근데 어렵다 어쨌건 통제는 누군가 해야하는 거 아닌가
굉장히 공감해. 폴이 통제를 잃어서가 아니라 통제를 가져서 문제라고 한 것도 그 의미에서 한 발언이라 생각함. 재앙과도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프레멘이라는 광신도 전투집단을 통제하게 됐으니 비극이 되어버림.
작품의 메시지 중 하나가 메시아라는 개념의 순수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서, 다소 비약해서 단정적으로 말하면 우리/네가 바라는 메시아 누가 작업친 거 아님? 다짜고짜 의지해도 됨? 라는 것, 종교와 권력의 관계 서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일반적으로 확장하면 주관으로부터 자유로운 완전히 순수한 개념이 있을 수 있는지 상상하고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라서 한편으론 도발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