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즐기다
정모씨(23·서울 ㅎ대 2년)는 8월5일 핀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체코, 폴란드, 헝가리, 네덜란드, 싱가포르…. 열 손가락에 열 발가락을 꼽아도 넘칠 정도다. 정씨에게 핀란드는 29번째 여행지다. 이번에는 핀란드뿐 아니라 주변의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다녀올 계획이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자연을 상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는 정씨. 그동안 다녀왔던 수많은 나라 중에 그리스를 최고의 명소로 꼽았다. 하얀 벽돌집과 경계를 알 수 없는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산토리니 섬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의 외국생활과 부모의 뒷받침이다. 외국계 회사를 다닌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부터 5년동안 싱가포르에서 살았다. 덕분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부모도 적극 지원했다. 방학마다 해외여행길에 데려갔다. 친구들과 여행할 땐 비용을 대줬다. 2008년 6월 서유럽 여행 때는 부모께서 500만원을 지원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정씨를 보며 “나도 좀 데려가라”고 부러워한다. 정씨는 “다들 해외여행 하면 돈부터 걱정하는데 돈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가고 싶으면 장학금 타서 그 돈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씨는 앞으로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할 예정이다. “대학생활 하면서 여행은 꼭 즐겨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은 학교 안에서는 결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정씨에게 해외여행은 ‘대학생활의 낭만’이고 방학은 ‘낭만을 즐기는 기간’이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의대생이 지니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의 보장된 미래는 선망의 대상이다. 최고 명문대 의대 본과 4학년인 최모씨(26)의 삶의 색깔은 회색이다. 지난해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최씨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실직했고, 빚이 늘면서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졸업 1년을 앞둔 최씨는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장 등록금이 문제였다. 정부가 보증하는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기한이 지났다. 그래서 제2금융권을 찾았다. 최씨는 “그게 실수였다”고 후회했다. 원금 400만원에 한 달 이자만 9만원. 연 20%가 넘는 고리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대출을 받았다. 최씨는 “등록금도 많이 올랐고 한 달에 책값만 20만원이 든다. 실습비에 밥값까지 더하면 한 학기에 1000만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외를 시작했다. 불황임에도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이름이 주효했는지 2건이나 구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10시간. 6월 말부터는 막노동판에도 나갔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철근을 나르고 먼지투성이 공간에서 청소하니깐 딱 죽을 것 같더라.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다가 죽는 건 참 쉽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은 한 학기. 최씨는 걱정이 앞선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가세는 기울고 집 나간 아버지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지방에 내려가 식당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나 같은 애들과 잘 사는 애들은 성적, 전공 선택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면서 “의사로서의 출발선이 다르다”며 한숨지었다. 치솟은 등록금과 홀로 해결해야 할 생활비. 최씨에게 방학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기간”이다.

끌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