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집도 없었다.
전세 1200만원에 방 2칸인데 달동네 이하의 수준이였다. 천정은 가라앉고, 쥐들은 주방에서 돌아다니고, 잘때도 비오는날이면 천정이 주저앉아
몸을 뭉갤까봐 겁도 났었다. 그런곳에서 5년을 넘게 살았다. 물론 그 전에는 여기보다 더 한데서 살았었다.
화장실 자체가 없는 단칸방에 부모님과 3식구 살았었다. 쌀살돈이 없어 옆집에서 밥을 빌리기까지 한적도 있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님은 운전수.. 빚이 너무 많았다. 20년넘게 빚을 갚아온걸 보면 그 빚이 어느정도 인지 상상이 가리라 여긴다.
대학교때 나는 철이 없었다. 1학년으로 들어가자 마자 결석을 밥먹듯이 했고, 비싼 등록금 쳐 발르고 부모님 등골휘는데도
머리에 돌덩이가 들었는지 자취방비 30만원에 매주 용돈 5만원씩 꼬박꼬박 받아썼다.
운전수래봤다 월급 80~90만원. 일을 쉬지를 못하셨다. 쉬면 월급이 그 만큼 까인다. 얼굴에 황달끼가 오시는데도 죽어라 일하셨다.
그런데도 난 그 돈들을 다 받아스고 있는데도 모자라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1개.. 2개.. 3개..
3개를 쓰다 결국 돈을 못갚아 여기서 현금서비스 100마원 받고 그걸 못갚으면 카드깡이라는걸 해서 카드로 상품권을 사고 그걸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되팔아 다시 그 돈을 썼다.
카드 빚 380만원.. 감당이 안되었다. 카드사 직워들이 집에 찾아오기 까지 했다.
부모님께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청약통장, 적금통장을 다 깨셔서 내 돈을 막아내셨다. 난 ㅄ이였다.
거기에 차까지 할부로 400만원을 긁어 샀으니 참 ㅄ중에서도 상ㅄ 이였다.
그런 내 모습에 아버님은 주름만 깊어갔다. 고기 한번 못사드시고, 한달 , 두달이 지나도 내 돈 갚느라 생활비가 없어 김치국, 된장국만 번갈아 드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님은 교회 바자회에서 천원짜리 옷을 겨우 사서 걸치시고..
집에는 기름보일러 인데.. 돈이 없으니 당연히 뗄수도 없었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한겨울에 보일러를 떼지못해 내복을 입고 거기에 두터운 잠바를
입고 주무셨다.
21살이 되던해 난 군대를 갔고, 갔다와보니 23살이였다.
군대를 갔다오면 철이 들줄 알았었다... 그러나 , 아니였다.
이듬해 대학등록금을 대출받아 간 나는 다음달에 자퇴를 하고 등록금을 용돈으로 탕진해 버렸다. 여자 만나서 돈 쓰고, 매일같이 술사가지고 친구들과
놀고 학교도 안가는 놈이 자취방을 얻어서 죽어라 돈을 써댔다.
인간말종의 극치를 새삼느꼈다.
그렇게 ㅄ짓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00회사를 들어갔다.
초봉 55만원. 3교대로 근무를 하는데 평일 야간은 아침8시 부터 그 다음날 아침 11시까지 하는 상당히 고된 일이였다.
주말은 더 했다. 토요일 아침8시에 출근해서 월요일 아침11시까지 회사안에서 죽어라 근무를 서야했다.
그렇지만 배울건 있었다. 시설관리에 잡부에 이사진 대리운전에 야간 경비일까지... 일은 고되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거기서 난 그렇게 4년을 다녔다.
사표쓰고 한달이 지나 마지막 가는날이 오자 부사장은 날 붙잡고 보름휴가와 연봉인상 얘기를 꺼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이유인즉슨 회사는 매각중이였고, 난 언제 쫒겨날지 알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것은 내가 배운일중 하나를 써먹을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었고 , 더 위로 올라서고 싶었다.
(4년동안 힘든 여건을 이겨내고 난 1천 5백만원을 모았다.)
그 회사를 다니며 여자친구도 생겼다. 비록 내세울건 없는 여자친구 였지만 마음이 무척 착했다. 한남자만 좋아했고, 나밖에 몰랐다.
항상 내게 모든지 물어보고 내 의견에 따랐다.
그렇게 회사를 관두고 난 다른 곳을 알아봤다.
그러던중 거래처 사장님의 소개로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일명 낙하산.. 그들은 그것을 낙하산이라고 불렸다.
사실 난 새 직장 오기 3일전에 다른곳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었다. 연봉 2,100만원에 주간근무에 격주5일.. 00전문팀으로
그러나, 아는 사장님 소개였고, 직장이 크고 좋아서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그 직장 사람들 하는말은 가히 가관이였다.
나 오기 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몇일을 못버티고 관두었다고...
상사라는 사람의 성격을 눈여겨 보라고 내심 강조들을 하였다.
그 말은 사실이였다. 밥먹다가도 불려가기 일쑤였고, 바쁜 와중에도 빵사오라는 심부름과 자기 컴퓨터 미리 안켜놨다고 나한테 성질부리고,
사람들 많은데 앞에서 복사용지 이면지로 안썼다고 큰소리로 날 밟는 그런 인간이였다.
그러나 난 거기서 2년을 버텼다. 이를 악물고 부모님 얼굴 생각해서 진짜 피눈물 흘리며 버텼다. 직장 사람들은 날 굉장히 인내심 많은 사람이라
칭찬했고,
난 관두기 전까지 단 1분도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켜본적이 없었다. 그만큼 열심히 했고, 배우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2년후 사표를 썼다. 이유는 급여가 너무 적고 상사 윗선은 다 사장의 지인들이라 꿰찰 자리가 없었다.
실제로 월급여가 경력 6년째인데도 실수령액이 140만원이였다. 이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였다.
그러나 결혼도 준비해야 하고, 외아들인 내가 책임져야할 부모님의 미래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난 일을 다니며 다른곳을 찾았다.
참고로 내 스펙은 다른곳을 찾고 있었을 당시 아래와 같았다.
1. 지방대 건축학과 대퇴
2. 자격증 없음
3. 토익,토플 전혀 없었고 내세울만한게 전무했음
그렇지만... 난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무엇보다 쇠약해져 가는 부모님을 보면 약하나 좋은거 못사드린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내 경력을 최대한 살릴만한 곳에 응시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STX조선, 유비스, 은행권, 삼성 등...
내 스펙이 도전하지 못할 것들임에도 난 무조건 응시했다. 안될수 있는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응시했다. 이력서는 종이 한장에 불과하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난 결국 해냈다. 연봉 2,700에 퇴직금 별도에 자녀 학자금 지원에 해외연수등 수많은 복지혜택이 있는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은 실화다..
저 스펙으로 저정도 연봉과 정규직을 따냈다. 회사도 대기업계열사이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행여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거나 , 낙심하거나, 희망이 없거나, 부모님을 욕되게 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내 수년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깨닫게 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부모님께 효도하라. 인생은 잠깐 왔다가는 안개와도 같아서 없어지고 나면 남는건 후회밖에 없다.
나처럼 부모님께 몹쓸짓 저지른것 다 갚고 힘차게 살아라.
난 최근에 아버님의 차를 내가 대출받아 직접 바꿔드렸고, 어머님 건강기능식품및 화장품도 내가 다 사드린다.
물론 크지는 않을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꿈을 가져라.
주변말만 듣지말고 본인의 마음이 행하는대로 해라. 그것이 정답이다.
어느길을 가든 후회는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항상 최선을 다해라.
와~ 축하해~
나도 대학학벌 버리고 경력6년 갖고싶다 ㅡㅡ
그렇치 학벌보단 경력이 우선이지 경력은 살아남기위한 필수조건이야 학벌은 그저 학벌일뿐이고
근성 굿......부모님께 잘 해드리셈.
역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듯....추카추카
철들었네. 앞으로도 계속 힘내라
근데 형 무슨일하는거?
그대신 그 댓가로 부모님은 등골빠지셨겠네요. 겨우 연봉 2700에 자녀복지혜택 갖고는 절대 부모님 등골 못펴드릴 겁니다. 그러게 젊어서 정신 못차리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the잉여킹말은 씹어버리고 축하해! 앞으로 연봉도 오르겠네.거봐.하면 되잖아. ^^
ㅇㅇ 근데 대학교 대퇴가 아니라 대학교 중퇴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