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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형이 객관화가 가장 잘 될까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외부환경을 객관화하든, 자기를 객관화를 하든 결국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경험과, 볼 수 있는 시야,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음.



가령 S유형들은 사물과 인간 이면의 본질에 주의를 기울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기본적으로 감각적인 현실에서 실제하는 것들을 판단기준으로 삼게됨.


보고 만지고 우리의 뼈와 살을 유지시켜야 할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하는 자원을 포착하고, 그 자원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계산하고, 직접 쟁취하는 것임.


각자 보유하고 있는 특정 자원의 총량, 자원을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은 중요한 가치가 됨.


이는 T 뿐만 아니라 F 또한 마찬가지임.


예를 들어 돈 뿐만 아니라 사랑마저도 한정된 자원임. 개인은 사랑이라는 자원을 얻기 위해 조건을 충족해야 함. 안타깝게도 모두가 똑같은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음.


그러나 T와 F가 중요시 하는 자원은 서로 다르고 이는 서로의 교환관계에서 갈등을 만들어냄.


왜 내가 줄 수 있는 자원을 하찮게 여기는 것인지, 어째서 내게 하찮은 자원을 주는 것인지 상대의 관점을 알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음.



그리고 N유형들은 사물 혹은 인간 이면에 가려진 본질을 보려 할수록 감각적인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고 바로 눈 앞의 물체에 무신경해짐.


이들은 왜 S가 그토록 사소해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함.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도 그곳에 관심을 두기 어려움. 일부는 S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함.


ESXX에서 INXX로 갈수록 감각에서 멀어지고 본질에 다가서려 함.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며 또다른 인생을 포기해감. INXJ는 S적 관점을 세속적이라 느끼기도 하고, INXP는 S들의 관점을 속물적이라고 느끼기도 함.


그러나 S와 마찬가지로 N들끼리도 노력 없이는 서로가 바라보는 본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N들만 따로 추려서 예시를 들어보면,


XNFP는 주관적인 감정에 서로잡혀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가치관에 따라 외부자극에 반응함.


XNTP는 주관적인 논리에 사로잡혀 사실관계를 형성하고 그 사실관계에 따라 외부자극에 반응함.


그러나 이들의 주관적인 감정과 주관적인 논리는 다분히 지협적이며 여기에 갇혀 있고는 함. 너무나 몰입되면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조차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음.


XNFP는 감정, 가치관을 배제하고 마치 세금처리나 사무작업처럼 처리되어야 할 판단에서 눈을 돌리려 하고


XNTP는 자신과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행동, 상태를 결정하는 감정으로부터 눈을 돌리려 함.


그리고 이 두 유형 모두 실제하는 감각의 세계를 밀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침.



INXJ는 외부의 정보를 끌어모아 확고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감.


그러나 개인이 모든 정보를 모을 수는 없고,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세계관에는 항상 모순이 존재함.


INXJ가 우월감에 빠질수록 그 세계관은 지고불변하는 이념이 되고 여기에 어긋나는 정보를 축소하거나 배제하기 시작함.



결국 모든 유형들은 저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정도 터널시야에 빠져 있음. 결국 어느쪽도 진짜 객관은 볼 수 없음. 이게 인간의 기본 상태인 것 같음.


미성숙한 상태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이해하기 싫은 서로의 관점을 애써 무시하게 되고 이는 결국 도피임.


그리고 이런 도피가 서로 충돌하면서 서로 미움을 낳음.



이처럼 각 유형들이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각자의 분야와 그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음. 8기능에서 말하는 의식상의 4기능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나 함.


동시에 우리는 이미 모든 분야를 작게나마 가지고 있음. 단지 신경쓰고 싶지 않으니 어두운 방 한 켠으로 치워뒀을 뿐임. 이게 무의식상의 4기능이 아닐까 함.


감정적이기만 한 사람은 없고, 이성적이기만 한 사람은 없음. 단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이 있을 뿐임.


따라서 어느 유형도 진짜 객관이라는 것에 더 근접해 있지는 않다고 생각함.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살고 있지 않음.



그러니 서로가 서로의 관점을 이해해보려 시도해야 그 객관이라는 것에 다가갈 수 있지 않나 싶음. 죽을 때까지 시야에 다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태어났을 때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을 것 같음.


자기객관화, 메타인지가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아님.


걍 개개인 모두 평생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