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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처음으로 함께 누웠던 밤/첫키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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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여왕님의 밤/장미가 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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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독의 밤



어깨에 두른 침대 시트가 미끄러져 내렸다. 잇자국과 키스마크로 덮힌 온몸에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비녀를 뽑자 구불거리지 않아 굿나잇의 손을 스르르 빠져나가는 새까만 머리가 흘러내렸다. 등을 보이고 앉은 빌리는 이제 막 식사를 챙겨올라온 굿나잇을 다시금 긴장시켰다. 숨통을 끊기위함이 아닌 유혹의 비녀, 자욱히 피어있는 아편내음, 그리고 밤의 여왕의 음성.



\"나는 아직 네가 고픈데.\"


이리와, 너로 채워줘. 빌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스키, 빵과 고기가 담긴 트레이가 나뒹굴었다. 굿나잇은 단숨에 침대에 올라 빌리의 머리를 붙들고 진하게 키스했다. 굿나잇의 밤고양이가 그르렁거리며 그의 몸을 휘감아왔다.








두 사람이 처음 아편을 피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내깃돈을 걷는 굿나잇의 모자에 아편을 던져넣은 남자가 필사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저기, 지금은 가진게 이것 뿐이야. 끝내주는 물건이라고!\"


빌리의 목숨값을 더럽힌 자를 단숨에 죽일지, 급소를 피해가며 지옥을 보여줄지 고민하는 사이, 남자는 주머니에서 아편을 죄다 털어놓고 \"다 가져!\"하며 도망쳤다.





숙소로 돌아와 수북한 아편을 두고 빌리가 물었다.


\"해본 적 있어?\"


\"전쟁 때. 뭐 다들 그랬던 때지.\"


\"하면 네 올빼미를 치워버릴 수 있었어?\"


\"...때때로는.\"


빌리가 망설임없이 아편을 말아서 불을 붙였다. 굿나잇이 저지할 새도 없이 한 모금을 빨아올리며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빌리에게 건네주었다. 굿나잇이 받아드는 것도 잊고 빌리만 응시하자 더 깊게 빨아들이며 점점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무겁게 퍼지는 아편연기보다 빌리가 취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자극적이었다.


\"...구디.\"


\"그래.\"


\"칠흑같은 밤에 흰색의 올빼미가 보이지 않는 가지에 앉아있으면 꼭 수의같아 보이기도 하지?\"


뭐?


\"그놈은 흰색이면서도 눈구멍이 안보여서 좀 괴이해 보였겠어. 그리고 꼭 두 번 울고 오른쪽 귀에 속삭이지.\"


굿나잇의 손끝이 하얗게 변했다. 올빼미에 대해 저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 빌어먹을 올빼미가 빌리의 밤마저 괴롭힌다면... 굿나잇은 이제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이 아가리를 벌리고 선 낭떠러지에서 가까스로 붙잡고 지탱하고 있던 가지를 놓친 심정이 되어 숨을 쉴 수 없었다.


\"재미있는 말을 지껄이더군. 빌리 락스, 너는 굿나잇이 나를 보는 걸 즐기고 있어. 그래야 굿나잇이 너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오, 빌리, 더러운 말에 신경쓰지마. 올빼미는... 없...\"


차마 없다는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굿나잇을 붙잡으며 빌리가 입맞추며 아편연기를 흘려넣었다.


\"구디, 올빼미가 있든 없든, 그걸로 네가 날 더 필요로 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놈에게 기꺼이 입 맞출거야. 이런 내가 싫으면 주먹을 날려. 총질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리고 계속 필요로 해줘.\"


내가 그런 것처럼. 빌리의 말이 끝나자 숨을 헐떡이던 굿나잇이 다 타들어간 아편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빌리 위에 몸을 포갰다.


\"...입 맞추는건 나한테만 해.\"


네가 내 숨이니까. 빌리는 엉망이 된 채 속삭이는 굿나잇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입을 크게 벌려 굿나잇의 고통과 연약함을 다 받아주었다. 아편에 젖어 털어놓은 고백이 연기처럼 두 사람 사이를 부유하며 둘 사이의 틈새를 메워가기 시작했다.











아편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고, 지속된 이유는 색스러웠다. 빌리가 비녀를 뽑아 밤같은 머리를 흩날리고, 아편연기가 죽음의 찰나에서 생으로 돌아온 결투자의 긴장을 없애고, 두 사람이 함께 보는 올빼미를 비웃으며  하나로 녹아드는 시간이 그들을 중독시켰다.


굿나잇은 가끔 생각했다. 아편이 그들을 무뎌지게 하지 않은 이유? 별을 가진 자에게 다이아몬드의 빛이 무슨 소용이지? 밤고양이가 더욱 나른하게 사향내를 뿜으며 굿나잇을 전율케 했다. 이미 빌리에게 중독된 굿나잇에게 어떤 자극도 하잘 것 없을 뿐. 이대로 죽어도ㅡ



\"그렇게 침대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안지 마.\"


빌리가 굿나잇의 명치를 후려쳤다. 윽... 밤고양이가 앙칼지게 손톱을 세운다. 굿나잇은 말하진 않았지만 빌리가 거침없이 유혹하고 군림하는 것이 좋았다 .


\"구디, 살아있어야 이런 것도 하는거야. 알아들어? 오늘은 밤새 울어주겠어.\"


내키면. 굿나잇을 타고 앉아 자신이 때린 명치를 핥으며 빌리가 속삭인다. 그럼 내키게 해드려야지요, 내 여왕님. 굿나잇이 빌리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살짝 드는 것을 도왔다. 밤고양이가 목을 울리며 두 손을 뻗어오자 굿나잇이 상체를 일으켜 맞잡아 자신의 목에 단단히 감아주었다. 몽롱하고 색정적인 밤의 항해를 떠나기 전에.





밤의 허기가 연기처럼 요요히 피어올랐다.






6  빌리 락스의 밤






\"구디, 짧게 잘라줘.\"


굿나잇은 빌리의 머리를 이발사에게 맡기지 않았다. 빌리의 흘러내리는 밤같은 머리에 손가락을 넣고 찰랑이게 하는건 나뿐이어야 해! 면도를 핑계로 내 빌리보이의 얼굴에 감히 더러운 손을 올리다니, 올빼미보다 추악한 놈!


\'아니, 애초에 이발사가 동양인의 이발을 해주고 싶어하지 않을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빌리는 잠자코 머리를 내주고 앉아있었다. 이제 굿나잇이 빌리의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 키스하고 참새 눈물만큼 자른 머리를 하고 방을 나서게 되겠지.


한번은 빌리가 길게 자란 앞머리를 대충 칼로 잘라버린 일이 있었는데 굿나잇은 충격으로 3일 동안 손도 대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빌리는 프랑스인의 감성이야말로 \'petit\'하다는 결론을 내고 그 뒤로 굿나잇의 사심이발에 적응해버렸다. 애초에 칼을 던질 때 시각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굿나잇의 눈동자 속의 눈부처로 비춰진 자신이면 충분했다.


섬세하지만 길이에는 하등 변화를 주지 않는 이발이 끝나고 라이플만 잡았던 못 박힌 손이 쓱쓱 빌리의 머리를 묶기 시작한다. 지난 밤에는 유혹의 비녀였다가 지금은 빌리를 지키고 그럼에 굿나잇까지 살게하는 결투의 비녀를 꼽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키스한다.


\"빌리보이, 다 됐어. 가서 널 노리는 더러운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자.\"











보안관과 무법자가 뱃지 하나로 갈리고, 어제의 참전용사가 현상금사냥꾼이 되고, 총잡이들이 부호의 용병으로 몰려드는 시절에도 굿나잇의 명성은 굳건했다. 진작 끝나버린 전쟁이지만 그렇기에 그 기록은 전설이 되어 성역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런 굿나잇이 동반하고 다니는 동양인의 행보에 시비를 거는 놈들이 넘쳐났고, 나가떨어지는 수 이상의 도전과 응전이 되풀이 되어갈수록 빌리 락스 또한 보이지 않는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욕설과 비아냥으로 점철된 것일지라도 실력만으로 보면 뭐... 그덕에 빌리에게 말을 거는 뜨내기들이 많아진 것이 굿나잇의 심기를 건드리곤 했다.



오늘도 여전한 상승의 빌리를 앉혀두고 굿나잇이 위스키를 주문하러 간 사이 자리가 소란해졌다. 굿나잇이 흉흉한 기세로 돌아왔을때 빌리의 의자 하나와 애송이 하나가 나란히 부서져 있었다.


\"구디, 술은 다음에 할까? 보다시피 의자가 사망했어.\"


빌리를 자기 무릎에 앉히지 않는 것에 마지막 사회성을 다 쓴 굿나잇이 다른 의자에 빌리를 앉히고 캐물었다.


\"이 더러운 자식이 뭐라고 했지?\"


\"원래 이름. 빌리 락스는 노예주 이름이었냐? 원래 이름은 뭐냐 그런거?\"


개자식! 굿나잇이 라이플을 꺼내 널브러진 놈을 겨냥하자 빌리가 이미 내가 칼구멍도 내줬지. 가자.하며 굿나잇을 숙소로 이끌었다. 굿나잇은 그제야 라이플을 거두고 빌리를 앞세우고 걷다가 뒤돌아 술집 안의 남자들을 한번씩 훑기 시작했다. 분노의 천사가 든 라이플이 흔들리자 모든 소리가 뚝 끊겼다.



빌리는 안다. 굿나잇은 빌리의 원래 이름이 화제에 오르면 동요하는걸. 자신이 빌리 락스로 살기 시작했을 무렵 이미 버린 이름이라는걸 설명하지 않아도 알텐데, 굿나잇은 여전히 두려워했다. 빌리가 지난 삶을 되찾고 싶어하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바보같은 내 프랑스 남자.



\"빌리, 내려가서 총알 몇개라도 박아주고 올게.\"


\"구디, 닥치고 앉아.\"


침대를 가리키자 굿나잇이 라이플을 놓고 머리를 감싸쥐며 앉았다. 그 많은 밤들을 보내고 진심을 쌓아올려왔는데 대체 왜 저렇게 소심해지는걸까, 관계의 주도권을 갖는 것은 왜 항상 빌리일 수밖에 없는지, 굿나잇은 처음보는 순간부터 빌리에게 끝없이 많은 것들을 내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빌리가 칼집을 벗고 다가가자 허리를 부둥켜 안는다.
  

\"구디, 내가 누구지?\"


\"...빌리. 빌리 락스.\"


그리고?

\"내 빌리보이, petit.\"


\"처음에 네가 내 이름을 물었을때 내가 뭐랬지?\"


\"...미국에 있는 모든 욕을 들었지.\"


\"그게 철도회사 놈들이 날 부르던 이름이었어. 그 전엔 타고왔던 배 이름에다 숫자를 붙였고. 그런게 다 알고싶어?\"


고개를 젓는 굿나잇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나는 네 빌리잖아. 가고 싶은 곳엔 너와 갈거야. 굿나잇의 머리에 키스하면서 빌리가 속삭였다. 나는 두 번째 빌리보이지만 네게는 유일한 빌리니까, 꽤 괜찮은 이름이지.














이것은 굿나잇이 막 \'그\'를 찾았던, 아직 그가 \'빌리\'가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를 찾기란 과연 어렵지 않았다. 술집의 문을 연 순간 성한 자들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바에 피와 멍에 절은 자만이 꼿꼿이 앉아있었을 뿐. 문소리에 그가 굿나잇을 돌아본 순간, 눈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쏘아보던 그 새까만 눈동자에 홀려서...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뭐야?\"


\"굿...굿나잇 로비쇼, 굿나잇이 내-\"


그가 웃었다. 형형한 눈빛이 순간 진심으로 기가막히다는듯 누그러지면서 웃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그런 인사는 조선에서도 들어본 적 없어. 죽기엔 나쁘지 않은 밤이네. 당신이라면 괜찮은 것 같아. 이제 지쳤어.\"


미처 알아듣지 못한 말보다 굿나잇을 전율케 한 것은 누구도 제 이름을 듣고 죽음의 선고면 모를까 다정한 인사로 생각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굿나잇을 완전히 흔들었다. 오늘밤이 그에게 죽음의 밤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구디. 내 이름은 구디야. 나랑 같이 갈텐가?\"


그는 이미 기절해 있어서 굿나잇의 말을 들을 수도, 대답도 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굿나잇은 그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길로 네가 날 데려간 곳이ㅡ\"


\"ㅡ지미 락스의 농장. 내 부관이었던.\"


\"그가 내게 칼을 가르쳤었지. 네가 다시 나가버리고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같이 칼은 던질 수 있었거든.\"


\"내가 우리가 쉴 만한 곳을 찾아낼 동안 지미랑 좋은 시간을 보냈단거야? 엉? 빌리, 넌 지금 내게 상처를 줬어.\"


\"시끄러워, 구디. 그리고 농장을 떠나던 날엔 이름을 주었지.\"




[대장, 구디. 대체 왜 주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장이 저 동양인을 보는 시선에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고. 소중하면 단단히 지켜. 동양인이 살기 힘든 곳이니까. 샘 취좀이 대장과 나를 풀어준건 이런 날이 있을 걸 알고 그랬던건 아닌가 싶어. 나는 마음에 들었어. 그는 훌륭한 칼잡이가 될 거야. 언제든지 와. 올때는 대장과 그가 뭔가 달라져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환영이야.


헤이, 이봐. 난 자네를 \'동양인\'으로 부르고 싶지 않아. 대장이 자넬 살렸을진 모르지만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지금까지 뭘 한건가 싶군. 자네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니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하나 주지. 빌리 락스. 저기 가문비나무 숲에 누워있는 내 아들이지. 윌리엄 어빙 락스. 내 가장 귀한 것이었어. 어디가도 부끄러워질 이름은 아닐걸세. 내 빌리보이는 착한 아이였어. 자네도 빌리보이로 잘 살아보게. 기분이 나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빌리. 빌리보이. 내 빌리.\"


\"그래, 구디. 나는 네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게 아니야. 네 빌리보이가 되어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걷고 싶은거지.\"


이래도 불안한가? 내 구디는 연약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내가 더 강해져야지. 내 다정한 밤인사, 구디, 내가 네 빌리보이인걸로 부족해? 빌리가 굿나잇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부족하냐고? 장난해? 방금 그가 내게 인생을 주었는데? 부족하냐고? 그래, 부족하지. 어떻게 그를 더 사랑할 수 있을지 언제나 부족할거야.



\"인사해줘, 빌리.\"


굿나잇이 빌리를 잡아끌며 침대에 누워 빌리를 품에 안았다.


\"굿나잇, 구디.\"


두번째이자 유일한 빌리가 다정한 밤인사를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