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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길고 무거웠고 돈의 숨통을 조이듯 그를 옭아맸다. 돈은 선뜻 그것을 깨뜨리지 못했다. 워낙 말주변이 없던 탓도 있었지만 화를 내며 덤벼드는 대신 차분하게 자신을 짓누르는 매버릭의 분위기에 압도된 탓도 있었다. 돈은 티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는 늘 살짝 열어두곤 하던 아이 방의 문을 조용히 닫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시겠습니까. 여기서 하기엔 조금 부적절한 이야기 같군요."
돈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매버릭은 한참이나 돈을 노려보다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 질렀다. 매버릭이 계단을 내려가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돈은 숨을 터뜨렸다. 긴장감의 여파로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돈은 괜히 주먹을 한번 쥐었다 펴고는 매버릭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돈이 내려오는지 감시라도 하듯 계단참 아래에 서 있던 매버릭은, 돈의 모습이 계단참 위에 나타나고 나서야 부엌쪽으로 가버렸다.
한 시간 전, 그래도 음식의 온기가 남아있어 따뜻했던 식탁은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차갑게 식어가는 음식들과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로 인해 살풍경하게 보였다. 돈은 매버릭의 음식이 자신과 조엘이 식사를 중단했던 그 시점에서 더이상 줄어들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테이블 위로 켜진 백열전구 빛이 유난히 차가워보였다. 돈은 괜히 스위치 위에 손을 올렸다. 이 불이 꺼진다면, 이 모든 상황도 어둠 속에 묻혀 사라져버리는게 아닐까. 다 꿈처럼, 그렇게 묻혀버리는게 아닐까.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지금 돈의 앞에 선 사람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매버릭은 아까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 콜리어 하사."
돈은 더이상 군인이 아니었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돈은 자연스럽게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입을 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몇 번의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돈을 옭아맸고 매버릭은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낀채 가만히 기다렸다. 더는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돈에게 상기시켜주듯이. 결국 돈은 느리게 화두를 뗐다.
"...전역한 이유는 PTSD 때문이었습니다. 1차 대전 때부터 참전했던만큼, 그리고 늘 격전지에서 머물렀던만큼 제 증세는 심각했고 의사가 전역 후 치료를 권유했습니다."
"............."
거짓말. 자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졌지만 돈은 전장에서 단련된 무던함으로 그것을 숨기려고 애썼다. 눈은 차마 앞을 볼 수 없어 내리 깔았다. 덕분에 매버릭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돈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매버릭의 얼굴에 의심의 빛이 서려있는 걸 확인하기라도 한다면, 돈은 꼼짝없이 들키고 말테니까.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조엘을 가진 것을 알게 된 건 전역 후였지만, 굳이 대위님께는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 봤을 때 대위님의 도움 없이도 아이는 잘 키워낼 수 있을거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 수록 입 안이 타들어가는 것같았다. 말도 안되는 소리. 순 궤변 뿐이다. 누구보다도 돈,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자신에 대한 조소와 경멸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돈은 쓴웃음을 삼켰다. 어느 순간부터 매버릭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지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미 살인을 많이 한 접니다. 제 뱃 속에 갓 잉태된 이 작은 아이까지 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위님이 아이의 친부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대위님의 동의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전 무식한 군인이라 그런 것은 모릅니다. 어차피 제 아이기도 하니 상관없을거라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대위님께 괜한 짐을 지워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
"조엘은 제가 품어 낳은 제 아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겁니다. 혹시나 먼 훗날에라도 제가 아이 문제로 대위님을 찾아가는 일은 없을거고, 저 아이가 대위님 커리어에 문제가 되는 일도 없도록 할겁니다."
돈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선언을 하듯 내뱉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말을.
"......조엘에게 필요한 것은 저 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그 말을 끝으로 돈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게 되자 부엌은 조용해졌다. 거실에서 시계가 톱니바퀴 맞물리는 소리를 내며 째깍이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내리깔렸다. 돈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매버릭을 외면하고 있었고 매버릭은 말없이 돈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묘한 대치는 시계의 초침이 열 바퀴 돌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좋아요."
그 침묵 위에 매버릭의 목소리가 깔렸다. 어느샌가 어투는 평소처럼 돌아와있었다. 돈은 눈을 떴고 들려올라갔던 시선이 매버릭의 것과 부딪혔다. 그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매버릭의 두 눈은 너무도 평온한 빛을 담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돈의 육감이 그에게 매섭게 경고하고 있었다. 저 평온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매버릭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눈이 휘어지고 선선한 웃음이 얼굴에 떠올랐지만 돈은 알 수 있었다. 매버릭이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걸. 매버릭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전역할 때 내게 알리지 않았어요? 난 적어도 우리가 매우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당신이 내 아이를 밸 정도면 정말 가깝지 않나요?"
".........."
"적어도 전역한다고,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었잖아요."
"....죄송합니다."
"당연히 죄송해야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한다는 말이 겨우 사과였다. 거기에 단호하게 돌아오는 매버릭의 대답. 그 냉랭한 목소리에 돈은 표정을 침울하게 가라앉혔다. 가슴이 무겁게 짓눌리는 것은 죄의 무게를 이제야 실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매버릭은 팔짱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나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오르고, 노래하듯 묘한 음률을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 무척 당혹스러웠어요. 세상에 갑자기 혼자 남겨져 버린 아이가 된 것 같았죠."
"................"
"생각해봐요, 출장갈 때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좀 더 무뚝뚝하긴 했어도 잘 다녀오라고 볼에 뽀뽀까지 해주던 사람이, 돌아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채라니. 그때의 내 당혹감이 짐작가요?"
"................"
"사실 당혹감으로는 표현하기 부족하죠. 거의 배신감 수준이었다고나 할까. 미친듯이 당신을 찾아다녔지만 당신은 아예 작정하고 숨은 듯이 온데간데 없고."
"............"
"와.. 정말 그때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죠. 내가 뭘 잘못했나, 이거 혹시 몹쓸 장난인가, 아니면 개꿈인가. 진짜 별 생각을 다해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국에는 내가 가장 부정하던 가설만이 남더라구요."
".............."
"난 버려진거구나."
빠르게 쏘아붙여지는 매버릭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팠다. 고운 미성임에도 날카로운 단도보다, 뜨겁게 달구어진 인두보다 더 아프고 괴롭게 느껴졌다. 그가 느꼈을 감정을 짐작 못했던 것이 아니기에, 다 알고서도 외면했던 것이기에 이렇게 마주하고 나니 더 그랬다. 하지만 돈은 자신을 방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난 당신을 많이 의지했어요. 어쩌면 당신을 사랑했는지도 모르죠. 당신을 위해서라면 정말,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었고 당신의 미소가 탑건이라는 호칭보다, 내가 이룰수 있는 그 모든 것들보다 소중했어요."
"................."
"그걸 위해서라면, 당신이 지어주는 그 한 번의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면 난 전투기를 몰고 혼자 적진으로 뛰어들 수도 있었을거야. 나에게 당신이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
"돈. 대답해봐요."
"............"
"당신에게 나란 어떤 존재였나요?"
어떤 존재였냐고? 돈은 멍하니 생각했다. 빛, 태양, 희망, 행복. 온갖 좋은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그걸 표현할 수 있을까? 입가에 쓴 웃음을 머금은채 돈은 입을 열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온갖 좋은 수식어를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소중한 사람. 하지만 너무도 소중해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놓아주어야 했던 사람.
"좋은 상관이었고 다정하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답니다.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혹시나 머뭇거리다 내가 당신을 붙잡을까. 그래서 나와 내 아이가 당신에게 짐이 될까. 그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베고, 어쩌면 당신을 베면서까지도 밀어내려 하는 사람.
"상관과 부하. 사적으로는 좋은 친구. 그정도겠군요."
부디 언제나 빛나기를 바라는 사람. 사랑한다는 말이 혹여 누가 될까, 혹여 당신을 다치게 할까 그마저도 아까워 고이 혼자서만 가슴에 담아두던 사람.
그게 당신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돈은 침묵했다. 필요 이상으로 모질게 말한 것을 안다. 매버릭이 오해하게 될거란 것도 안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을터였다.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이대로 끝나면, 그걸로 족했다. 돈 자신은 조엘과 함께 이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고 매버릭은 부대로 돌아가 다시 자신의 길을 걷고 자신의 인생을 살면 그걸로 되는 거였다. 그거면, 돈은 충분히 자신을 추스리고 만족한 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돈은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매버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버릭은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아 돈의 얼굴을 두 손에 담았다. 흉터 진 입가를 쓰다듬고 눈가를 더듬는 매버릭의 얼굴은 상냥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마치 3년 전, 옛날의 그 매버릭의 표정처럼.
돈이 당혹감과 향수에 젖어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있을때, 매버릭이 속삭였다.
"거짓말."
벼락이 내려치는 기분이었다. 돈은 화닥닥 놀라며 몸을 뒤로 빼려했지만 등받이에 걸려 더이상 물러날 수가 없었다. 매버락은 의자 팔걸이에 두 손을 짚고 제 팔 안에 돈을 가두어 버렸다. 매버릭은 허리를 숙여 돈의 귀를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뾰족한 혀끝이 돈의 귓바퀴를 간질이고 관자놀이를 건드렸다.
"윽...!!"
콰득, 살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돈은 주먹을 쥐며 비명을 참아냈다. 뜨거운 것이 턱선을 따라 흘러 목을 타고 떨어져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돈의 귓불을 물었던 매버릭의 입 안은 피로 적셔져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매버릭이 돈에게 짧게 키스했다. 선득한 혈향이 훅 끼쳐들었다.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면, 말할 생각이 들게 해줄게요."
매버릭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밀어를 속삭이듯 달콤한 어조였으나 그의 위압감은 전에 없이 강렬하게 돈을 짓눌러와 돈은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터지기 직전의 화산, 그리고 얼음 밑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거대한 불. 그 불로 돈을 완전히 삼켜버리기 전, 매버릭은 완전히 얼어붙어버린 돈의 티셔츠 아래로 손을 밀어넣으며 으르렁거렸다.
"난 당신이 어떨때 가장 솔직해지는지 기억하고 있거든."
갤잘못 올린거야? 박제수치플당하기전에 삭제 ㄴㄴ
앗 센세ㅜㅜㅜㅜㅜㅜ아직 갤에 ㅇㄱㄹ있을 수 있으니까 ㅎㅍㅅ에 올리는게 어떨까오ㅜㅜㅜ재업은사랑이에오ㅜㅜ
센세 갤에 ㅇㄱㄹ 있을 수 있으니까 ㅎㅍㅅ에22222 재업은 사랑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다시보니까 너무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해피소로 와..제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