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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본인 입으로 자신이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고 말하는 부류가

의외로 꽤 많이 보인다.

관심이 필요해서 그럴수도 있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이건 멍청함을 드러내는 행동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건 미디어매체의 영향이 큰데

보통 유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예시를 들며 그들을 '고지능자'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싸패 쏘패는 고지능자 > 내가 싸패 쏘패처럼 하고다니면 똑똑해 보이겠지?

라는 괴이한 사고의 발현으로 스스로 싸/쏘패임을 천명하며 인성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유명한 싸패 쏘패들이 유명한 이유는 그들이 타인 그들이 평소에 자신을 완벽히 감추었기 때문이다.

주변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걔가 그런 사람일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대단한 거냐면 싸-쏘패는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되었거나 지체되는 상태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완벽한 '사회화' 를 연기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마치 코끼리나 기린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풍문으로만 얼핏 듣고 그 모습을 완벽히 묘사해 그려내거나
전공자들 사이에 비전공자가 껴서 얘기하는데
그 비전공자가 행간에 오간 말들을을 통해 자신이 전혀 모르는 학술적 내용들을 추론해 내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것 처럼 연기하고 그가 그걸 모른다는 사실은 커녕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경우와 유사한 것이다.

감정의 도움 없이 타인을 이해하는데 오롯이 이성만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를 대체할 수 있기에 그들을 '지능이 높다' 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를 감추는 능력 없이 본인 혹은 남들이 공공연히 싸패-쏘패라 일컫는 것은,
물론 실제로 싸패일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지성 혹은 인격의 부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란 이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불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EQ.

감성지능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싸패는 극단적인 경우일 뿐이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은

인간의 지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손빈은 어떻게 방연이 그 곳에 서서 고목에 씌인 글귀를 읽을 줄 알았을까?

상황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가장 즐겨쓰던 계책이 공갈과 가짜뉴스다.

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엔 뻔한 거짓말일지라 할지라도

상황의 활용, 심리적 빈틈 ,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다면

뻔한 수작에도 속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마의에게 시전엔 공성계 또한

깡다구로만 되는게 아니라 쓰마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계책인 것이다.

역사에 이름날린 책략가들은 공감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제갈무후의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공감의, 갬성의 극은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감의 달인들은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에도 탁월하다.

이렇듯 공감능력은 사물과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고 활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간지성의 중요한 한 부분의 하나이다.

그런데 더러 '자의적 해석'을 공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ㅇㅇ라면 이럴것이다' 와
'"내가" ㅇㅇ라면 이럴 것이다'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내가 카이팅을 이케이케 하면 상대방은 붕쯔붕쯔 하다 뒤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도

상대방도 생각이 있고 사람이기에

이새끼가 카이팅 하려드네 하면서

싸워주지 않거나 나름의 노하우로

내 멱살을 붙잡아 나를 줘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싸패만큼은 아니어도 정서지능이 낮은 사람은

세상을, 특히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혹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도 한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했다'라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계속해서 뜨거운 화제인 젠더이슈와 더불어

창궐하기 시작한 가짜페미들이 좋은 예이다.

할 말은 많지만 이부분에 대해선 말을 아끼겠다.

쨋든 이러한 자의적 공감은

공감대(처럼 보이는 것)를 형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혐오의 외부로의 표출이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 할 수 없기에 자의적으로 해석 할 수 밖에 없고

결국엔 '나'도 모르게 '나'를 대입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ㅇㅇ이(가) 이 상황에 이렇게 행동 할 것이다.



'내가' ㅇㅇ이고 이 상황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러한 자의적 공감, 해석을 통해

스스로의 터부 혹은 죄악을 대상에게 투영하고

이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적개심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호모포비아에게 왜 그토록 게이라면 학을 떼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게이가 내 똥꼬 따먹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이 역겹다 같은 소릴 한다.

사실 당하면 좀 역하긴 하다 ㅋㅋ

하지만 대개는 자신이 이성을 보고 상상하는 모습을

동성이 자신에게 투영하는 상황을 두려워 하기에

이러한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해서 필요 이상의 적개심을 가지고

그들을 비난하고 적대하는데 인생을 소비한다.

어디 유명한 동성애 반대단체 수괴가 사실은 진성 하드게이라더라

라는 식의 사건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어릴적에 인상깊게 본 영화중에 가끔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여주의 엄마가

주인공보다 어린 여자를 애인이라고 데려와 소개하자

여주는 아주 격한 반대를 한다.

이에 여주의 상담사가 묻는다.

당신 어머니의 삶이고 사랑인데 왜 축복해 주지 못하냐고

여주가 답한다.

나도 그럴까봐요.

난 엄마 딸이니까. 나도 그런 '성향'이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이나이먹도록 노처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고.


우리가 살덩이를 미워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속에 한 점 살덩이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