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는 20년을 살았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인서울 상위 대학에 , 미국에 20년 계셨고
주변 친인척도 다 인서울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실들이 나태하게 살아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고3까지 19년.]

초 - 중 - 고 모두 학원을 다니며 지원을 받았지만 제가 제대로 푼 교제라고는 하나도 없고 사람이라는 형태의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는 길에 의식을 잃고 계단에서 쓰러지셔서 몇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정신 차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커녕 , 평소에 놀던 것보다 더 놀다가 수능을 봤습니다.

75557이 나왔습니다.

졸업식 때 초라해진 나를 보고 19년이라는 버려진 시간을 매꾸기 위해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재수 (현) ]

2월까지는 쉬고 공부하라는 말에 정신없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수능 5일 전까지 될 줄 몰랐습니다..

독학재수라는 게 본인의 절제력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인데 지난 365일 동안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작년과 똑같은 상황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성적으로는 대학을 안 보내주신다고 주말에 알바를 해서라도 삼수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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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는 사람이 역겹고 미워졌습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시작한 재수인데

게임도 하지 않고 , 연애도 하지 않고 , 밖에 놀러 다니지도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1년이 또 지났습니다.

부모님께 현 상황을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 지난 20년동안 한번도 흘리지 않으셨던 눈물도 흘리시면서 '그때 죽는 게 편했을 거 같다' 는 말씀과 '지난 1년 동안 너는 뭘 얻었냐' 는 말씀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대화를 하면서 얻은 충격이 20년 살면서 겪은 모든 충격보다 훨씬 크게 처음으로 저에게 다가온 큰 충격이었던 거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잠도 못 잤습니다.

공부를 안 한 것을 떠나서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거 같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사람은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 제가 집에 있는 개보다 못한 존재인 게 맞는 거 같더라고요..

삼수는 사실 기정사실화가 된 거 같습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인생을 살았던 제가 삼수를 해도 괜찮은 걸까요?

지금의 말이 더 한심할 수도 있지만 만약 삼수를 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올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