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뭔 책 읽고 불합리 얘기 자주 했는데
걔가 얘기하던 카뮈의 실존주의적 불합리는 모르겠고

난 그냥 오늘 수능이 끝났는데도
내 세상이 끝나지 않은 게 불합리하게 느껴짐

자퇴하고 17살에 수능 본 건데
그냥 후련하기보단 허무함
끝나고 혼자 인천이나 갔는데 진짜 오래도 걸리더라
하늘이 이렇게 높고 세상이 이렇게 넓었다는 걸 오늘 19시에 처음 알았음
지금까지 내 세상은 한 평 짜리 독서실이 전부였는데
1월에도 4월에도 7월에도 11월에도
가끔 책 넘기는 소리랑 숨소리만 들리는 독서실 책상이 내 전부였는데

난 뭐가 그리 간절했을까
무얼 바라고 안온하던 학교를 박차고 나와서
몇 살씩 많은 사람들과 같이 앉아서 무슨 꿈을 꿨길래
봄 벚꽃이 어떻게 날리는지도 가을 낙엽이 어떻게 스러지는지도
겨울 아침 숨이 어떻게 부서지는지도 모르고
부러진 손목으로 구멍난 폐로
문자와 도표와 그래프만을 추억하고 싶어 헐떡였을까

허무하다
무의미해지기 싫어 발악했던 순간들에
지나고 보니 되려 내 십칠년을 한낱 서류 하나에 가두고 있었음을 나는 왜 몰랐는지

세상이 너무 넓은 거 같아...
나는 이만치의 삶에도 매일이 두려워 울었는데
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
내 세상은 모의고사랑 오답노트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더는 시험이 끝나도 오답노트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게
나는 좀 오래 공허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