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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본 미드들 중 잘 익은 세 작품을 꼽으라면

Atlanta

Horace and Pete

The OA

이렇게 세 가지를 고를 것 같다.


Atlanta는 인간의 삶을 그대로 까서 생으로 보여주는 현대적 방식의 작품이고

Horace and Pete는 전형적인 연극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갈등을 들춰주는 고전적인 방식의 작품이고

The OA는 듣도 보도 못한 인간 근원의 영역으로 회귀하는 작품이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제작까지 함께 맡았다는 부분이다.

때문에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도 하고,

또 앞으로 더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 낼 것이기에 더욱 칭찬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름 많이 정리를 하고 돌이켜봤다고 생각했지만,

브릿 말링의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예술가와 동시대에 살면서 생생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대충 의역하고 수정하고 생략했으니 가능하면 인터뷰 원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http://www.hollywoodreporter.com/live-feed/oa-creators-defend-movements-959026


안무는 처음부터 예정된 요소였어요. 처음 작품의 밑바탕으로 생각했던 것이 1.사후체험 2. 미국중서부(시카고 주변, 말링의 태생지) 십대 청소년들 3. 천사의 안무, 이렇게 세 가지 였어요. 이 세 가지 요소들의 교집합을 끌어내 작품 위에 올리려고 노력했죠. 어떻게 보면 이번 작품은 이 세 가지 중심요소의 언저리에서 꾸며졌다는 한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서로 대조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죠. 이 소재들은 제가 평소 인생을 살면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이번 작품을 위해 사전조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이기도 했어요. 현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머릿속에만 갇혀 살아가고 있죠. 우리는 각자 머릿속에 갇혀서 생활하고, 기술은 그것을 더더욱 악화시키고 있어요. 다람쥐 쳇바퀴처럼 계속 반복해서 움직이는 부품으로서의 뇌일 뿐이고, 세상과 완벽히 떨어져서 잠에 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던 도중에도 메세지를 확인하기 위해 폰을 켜요. 이러한 선형적/이성중심적 현세대의 두뇌활동에서 벗어나 우리가 그동안 등한시 했던 우리의 몸과 그 너머의 다른 지적 영역들을 되찾는 것이 목표였고, 그 과정에서 다섯 안무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라이언 헤핑턴(안무가; Sia의 뮤직비디오로 유명함)은 제가 평소에 늘 존경하던 분이었어요. 특히 그 분의 쇼나 여러 작품들을 볼 때마다 기존의 안무들과 다른 영역들에 도달하고, 인간 내면 그대로를 끄집어내 보여주는 부분들에서 진정성을 느껴왔죠. 그런 분이 이번 작품을 위해 안무를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은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주어진 큰 선물이었어요. 모든 배우들이 이 안무를 익히기 위해 댄스수업에 참가했고, 처음엔 우리 배우들도 많은 시청자분들처럼 어색하게 반응했었어요. 우리는 댄서가 아니라 배우일 뿐이었고, 몇몇은 아예 운동과 담을 쌓은 사람들이었죠. 무턱대고 츄리닝 입고 세상 초면인 사람들끼리 댄스실에 모였는데, 한 번도 안 춰본 현대무용을 춘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요.


처음엔 너무 어색하고 창피했어요. 웃음으로 겨우 민망함을 달랬죠. 하지만 댄스수업이 2~3개월 계속되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생겼고, 배우들 사이에서도 뭔가 색다른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5화 마지막 부분은 대본에 아예 있지도 않았고, 세트 안에서 촬영 도중에 만들어졌어요. 5화에서 OA와 호머가 다투는 부분이 있죠. OA가 “하바나에서 다른 여자랑 잤지. 난 너를 못 믿겠어. 넌 나를 배신했어.”라고 하면, 호머는 “하지만 OA, 난 아직 너를 사랑해”라고, 그에 대해 OA는 다시 “안돼. 난 너를 용서할 수 없어.”라고 대답하죠. 그때 호머는 춤으로 자신의 내면에 근원적인 고통을 이끌어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표현합니다. 그 동작을 보고 OA는 호머를 용서하구요. 이 모든 것이 한 마디의 대사 없이 이루어집니다. 두 주인공은 춤을 통해 그 모든 대화를 하고, 놀랍게도 언어를 사용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이해합니다. 저는 5동작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OA는 이러한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태곳적의 의사소통의 방식을 5명의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게 되고, 그 친구들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서로간의 결속, 동기부여, 자유를 이 5동작을 연습하며 얻게 됩니다. 이 시점에 이르면 ‘OA의 스토리’가 진실인지, 반쯤 진실인지, 혹은 기저의 진실에 대한 단순한 은유일 뿐인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비웃고, 어색해하는 시청자들부터 감동하고, 동화하는 시청자들까지, 시청자들이 보이는 모든 반응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타당하고, 동시에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들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도 몇 개월간 춤을 배우고 연기하면서 그 모든 생각들과 감정들을 똑같이 느꼈으니까요.


저는 스토리텔러의 임무가 순간순간 느끼는 바를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유형적인 이야기로 최대한 풀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매 번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더 실재에 더 가깝게 풀어낼 수 있을 거라 희망하는 편이고, 이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의 반응은 납득해요. 제가 살면서 정말 감동받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정말 복잡하고 무서운 세계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그런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역설, 냉정, 냉소라는 망토 안에 숨어 살고, 때로 그것은 아주 효과적이기도 하죠. 다들 각자의 영역 안에 많은 것을 품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하지만 이 작품엔 그런 장벽을 허무는 특별한 힘이 있었어요. 이 작품이 탄생한 과정이나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을 돌아보면,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이 작품을 통해 경계와 냉소를 허물고 서로의 진정한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작품들을 계속 만드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해요. 저는 교외에 늘어선 트랙트하우스들을 싫어해요.(tract house; 북미의 동일규격주택. 건설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성행하지만, 성냥갑처럼 개성없고 따분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비아냥의 대상이 됨.) 제가 그런 곳에서 자랐거든요! 하지만 코스트코나 트랙트하우스 안에서도 분명 삶은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그런 교외지역의 슬픈 일들, 추상적인 것들, 공포스러운 일들,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고 작품으로 펼쳐내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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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가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시카고 트리뷴의 여기자가 OA의 어머니에게 접근한다.

특이한 것은 그 배경이 생필품들로 천장까지 빼곡히 가득찬 코스트코라는 것이다.

효율이라는 이유로 창고같이 쌓은 물건 속에서 카트를 밀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역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코스트코 공장의 부품에 불과하다.

대량생산품과 돈이 무진장하게 교환되는 코스트코 안에서,

여기자가 OA의 어머니에게 제시하는 해결책 역시 대량생산이다.

피해자인 OA의 이야기를 대량생산해서 팔면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의 효과도 일부분 있다고 설득하지만, 과연 그럴까.

대중들에게 OA는 식당에서 마주쳐서 셀카를 함께 찍는 우리 안의 동물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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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선생님)가 스티브(껄렁한 애)의 아버지를 만나는 곳도 코스트코이다.

OA가 엘리자베스를 만나 소외된 학생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고 설득하고

엘리자베스는 이에 마음이 움직여 진정한 선생님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는데,

그 인간성에 닿기 위한 노력이 깨어지는 곳이 코스트코이다.


브릿 말링의 인터뷰에서 처럼 작품 전반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효율중심적 사회의 차가움과 어두움이 흩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는 코스트코에서 효율적으로 시장을 보고, 학교에서 효율적으로 불량학생을 제거하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마약중독자인 동생과의 틈을 좁히지 못해 효율적인 클리닉 시설로 보내고, 동생은 자살을 하게 된다.


스티브의 부모와 OA의 부모는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관점에서 무조건적인 단절로 대응하고

OA 역시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생활한다.

이러저러한 사건이 생긴 이후 부모는 OA의 문을 떼어내 버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OA와 부모의 관계는 마지막화까지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

양산형 드라마라면 복귀하자 마자 어떤 사건을 계기로 엄마아빠와 안고 울고 해피엔딩으로 가겠지만,

이 작품에선 절대 그 사이를 좁혀주지 않고, 그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그런 대본의 설정 자체도 뛰어나지만, OA부모와 OA의 연기도 한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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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는 처음 스티브를 만날 때 No touching이라는 조건을 거는 반면,

스티브는 연인의 관계도 아닌 여자동기와 짐승같은 섹스를 한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는 정말 매력적인 배치방식이다.

얼핏 보면 스티브의 원나잇이 쿨하고 정상적인 성생활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여자동기와 어떠한 친밀함도 나누지 못하는,

OA의 No Touching보다 더욱 더 단절된 인간관계이다.

그 관계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여자동기 역시 현대의 비인간적인 방식에 상처받은 사람일 뿐이며,

여자동기가 스티브와 거리를 두는 것도 고등학교-대학-결혼이라는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쳇바퀴 속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취하는 방어자세일 뿐이다.

결국 세 명 모두 상처받고 쿨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절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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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더벅머리)는 누나의 친구를 '콧수염XX'라고 부르고, 제시의 누나는 OA를 '장님괴짜'라고 부르는 타인에 대해 냉정한 전형들이다.

제시와 제시 누나의 타인에 대한 타자화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제시 스스로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더벅머리 흔남이기 때문이다.

제시의 집은 낙서로 가득하고, 제시와 누나는 부모도 없이 거실 쇼파에 앉아서 대마를 한다. 

부모에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 스스로가 이미 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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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트랜스젠더)은 말 그대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소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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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조(똑똑한 애)는 마이너리티라는 이유로 쿼터제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이름 조차 잘못 불리우는 아이러니한 소외를 받고, 

아침엔 일상적으로 약을 한다.

알폰조에 위치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정말 풀어갈 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하도록 하자.


OA는 햅(납치범)으로부터 감옥에서 쫓겨난(?) 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양부모가 어릴적부터 계속 약을 먹인 것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선 처음 다리에서 떨어진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추측하자면 OA에겐 물 속에 빠지고 사후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마지막 방법이었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OA는 실마리를 찾는데 성공한다.

투신사건으로 인해 유명인이 되고, OA에 대해 알게 된 5명의 조연들이 버려진 빈집으로 모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각자 집의 문을 열어놓고 나와 빈집으로 모인다는 조건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문이 단절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문을 여는 행위는 냉정함과 쿨함으로 무장한 단절의 벽을 허무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I need help.

I need to cross a border that's hard to define.

Maybe you know what I'm talking about?

Or you don't, but... you feel it.

Because you've felt other borders, like youth and adulthood, maybe.

I can't change your fate... but I can help you meet it.

We begin our journey to the border tonight. Midnight.

The unfinished house at the edge of Crestwood View.

Don't come unless you leave your front door open.

You have to invite me in.


내가 이렇게 길고 지겹게 적은 글들은 '단절'이라는 시각을 통해 정리한 1화의 일면일 뿐이다.
그런데 스토리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서로의 문을 열고 빈집에 모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세계(트랙트하우스, 혹은 현대한국사회와 대조되는)가 아름다운 OST와 함께 펼쳐지고
이를 더욱 귀중하게 만들기 위해 OA는 장님이 된다.

역설적이지만, OA가 버스사고를 겪지 않았다면, OA가 햅(납치범)에게 잡혀 갇히지 않았다면,
OA는 천사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역전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편리함 때문에 오히려 상실하는 가치들을 가리키고, 또 되찾게 하는 작품이다.
효율중심적인 현대의 인간들은 선형성, 언어적 논리에 상당히 익숙하고
일반적으로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초반 빌드업부터 속시원한 결말까지 가는 기승전결의 전형에 익숙하다.
그래서 완력의 행사로 통쾌하게 적을 무찌르거나 속시원한 대사로 결말을 땅땅땅 완료해줘야 한다.
그런 현대인에게 마지막회의 안무를 통한 비언어적 표현방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열린 결말은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이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청자의 상상력에 맡겨두면 어쩔줄을 몰라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엔딩의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방식에 대한 시청자의 어색한, 혹은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브릿 말링은 그 모두가 다 아름답다. 타당하다. 납득한다. 라고 대답한다.
누군가가 새로운 예술분야의 문을 하나 열 때,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게 마련이다.

장학금 때문에 OA와 친구들을 멀리하려 했던 알폰조는 다시 마음을 돌려 빈집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알폰조를 설득하는 사람이 벅이다.
효율중심적인 삶을 살던 엘리자베스는 남과 다름없는 불량학생을 구하기 위해 
초라하게 소리지르며 발악을 하고, 끝내는 5천만원의 수표까지 날려버리며 스티브를 구한다. 
스티브는 방과후에 남는 벌을 받는 도중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진심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렇게 2편, 3편, 4편을 구간구간 나눠서 한 장면씩 이야기하고 해석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다.
5차원 공간, 공간 사이 운명의 이동, 시간 순서의 정렬, 시카고 트리뷴 여기자나 FBI 상담요원의 개입 등등까지 얘기하면
정말 끝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제작진의 의도가 비언어적 방식에 기댄 연출이라는 점에서
이 이상 언어적으로 작품을 도축하는 것은 오히려 작품을 오독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비언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민식이 여후배들에게 성형외과 가지 말고 미술관 가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브릿 말링이 그의 모범사례가 아닌가 싶다.

얼굴 포기하고 거지꼴로 8화를 찍었는데, 인터뷰를 보니 생각이 너무 깊고 독특하고 아름답다.

"이런 게 재미 없으면 도대체 뭐가 재밌단 말이야?" 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러기엔 이미 비언어적 결말에 대한 반감이 너무 흔히 보인다.

이런 반감에 대해, 인터뷰 말미에서 감독 Zal Batmanglij는 이렇게 대답한다. 

 When I read a visceral reaction that's so violent a reaction, I think, "Ah, interesting, something's happening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