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4화까지 보면서 느낀걸 바탕으로 써 봄.


 먼저, 터미네이터 역으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인공 역할을 맡은 '6번째 날'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성인의 정신과 육체를 복제한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단, 정신복제는 완벽히 가능하나, 육체적 복제 기술은 완벽하지 않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복제인간의 육체가 소멸된다는 것. 반면, 웨스트월드의 설정은 반대로 정신을 호스트에 결합시키는 기술이 불완전하고 육체 복제(?)기술은 완벽하다는 설정임. 사실 웨스트월드에서는 육체 복제기술이 완벽한걸 넘어서 실제 원본 인간의 육체적 컴플렉스 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력이 구현된 상태. 

 델로스가 죽기 전에 자신의 정신을 복제하여 호스트에 넣어 영생을 하려하지만 정신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서 실패한다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위의 '6번째 날'이 생각났음. 재밌는건, 정신복제 기술에서 문제를 겪는 이유가 사실은 정신복제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정체(cognitive plateau)'는 것. 델로스와 윌리엄의 대화에서 윌리엄은 "처음에는 장기이식의 사례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 처럼 복제된 정신이 새 육체를 거부하는 것인줄 알았지만 그보다는 정신이 스스로가 복제됐다는 현실을 거부한다."고 말함. 결국에는 정신복제가 제대로 됐어도 스스로가 복제인간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복제인간으로서의 영생을 누릴 수 없다는 말임. 이 부분이 중요한데, 자세한 것은 후술하도록 함.


 종합해보면, 웨스트월드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의 세 가지라고 봄.

1. '로봇의 육체 + 인간의 정신이라는 조합을 가진 개체를 사람들이 인간과 동등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사람의 정신을 프로그래밍으로써 코드로 완벽히 복제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를 사람들이 납득하고 프로그래밍 된 정신을 인간의 정신과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질문에 '예'라고 답이 가능하다. 우린 이미 인공 장기, 로봇 등을 이용해 특정 인물 신체의 일부분을 대체해도 장기가 대체 되기 전과 후에 그를 동일인물로 받아들이지. 이는 인간이 상대를 인간으로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육체적 무결성이 아닌 정신적 무결성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함. 그런데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복제할 수 있다면 그 둘의 조합으로 이뤄진 개체를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2. '첫째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면, 기본적인 학습능력이 프로그래밍 된 상태의 호스트가 현실에서 인간과 맞먹는 수준의 여러 경험을했을 때, 이 호스트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프로그래밍으로써 복제된 정신을 인간의 정신과 동등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복제 인간이 아닌 일반적인 호스트들도 정신적 능력으로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복제된 정신과 호스트의 정신 둘 사이의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현실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반면, 후자는 그러한 깊이가 없다는 것 뿐이지. 그렇다면 호스트가 현실의 시간에서 인간과 같은 수준의 경험들을 했다면 그 경험의 깊이를 인간은 인정해야 할까? 이 두 번째 질문을 위해 돌로레스의 스토리 라인이 존재한다. 돌로레스는 현실에서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으로부터 몹쓸짓도 당하고 사랑도 받아보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돌로레스가 겪은 30년은 인간들이 겪은 30년의 경험과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3. '첫째와 둘째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면, 사람이 짜 놓은 코드로 자신의 인생을 인식하고 있는 호스트들(테마파크의 호스트들)도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메이브는 딸과의 추억을 현실의 경험과 동등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딸과의 추억은 프로그래밍된 스토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프로그래밍된 스토리에 불과한 가상의 경험에서 모성애를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는 것을 통해 호스트의 입장에서는 현실의 경험과 프로그래밍된 경험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은 호스트의 프로그래밍 된 경험과 현실의 경험의 무게를 동등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위 세 개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게 윌리엄이 하고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만든 포드박사는 위의 질문들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낸 뒤 윌리엄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윌리엄은 시청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함. 처음 호스트들을 보고 신기해하고, 그들에게 사랑이나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만, 현재는 호스트가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 상태지. 하지만 포드박사의 게임을 하면서 호스트에 대해 뭔가 다른 관점을 얻게 될거라고 봄. 4화에서 자살한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로렌스의 아내를 구해준 것도 점점 호스트에 대한 관점이 단순한 로봇에서 그 이상의 존재라고 인식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중이라는 방증이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델로스가 인지 정체를 겪은 이유가 바로 이 세 개의 질문들에 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이 복제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복제인간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영생에 대한 욕심만으로 정신을 복제했으니 인지정체가 나타나게 된 것이지. 기억에 의하면 스스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복제인간이기에 경험과 인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테니까. 그리고 그러한 고찰을 충분히 하기 전의 정신을 갖고 실험을 했으니 100번이 넘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하지만, 누군가 위 질문들에 대해 답을 내린 상태의 정신을 복제하여 같은 실험을 하게 되면 인지 정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래서 한편으로는 위 질문들에 대해 답을 구한 포드박사가 엔딩에 복제인간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봄.


 결론적으로 앞으로 웨스트월드는 윌리엄이 호스들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흘러갈 것이라고 봄. 돌로레스와 메이브의 스토리라인은 시청자들에게 '호스트들이 과연 인간과 구별될만한 차이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들 것이고. 4화 마지막에서 로렌스의 딸이 게임을 계속하러 떠나는 윌리엄에게 "네가 앞을 보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방향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결국 호스트에 대한 질문들의 답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호스트를 인정하는 데에 있다'는 뜻이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