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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다.


진주에 운석이 발견되었고 소유자는 국가와 


가격협상을 하지만 결렬되었다.


소유자가 원하던 가격은 270억


국가가 제시한 가격은 3억 5천



가격에 큰 차이가 보이고 소유자는


해외에 눈을 돌린다.




그러자... 이상한 법이 생긴다.


그 법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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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 국외반출 금지법이다.



국내에서 발견된 운석은 해외에 반출금지!!!


즉, 이것은 운석 소유자의 자유를 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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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운석사태의 결과도 조센징의 역사를 보면 당연히 이런 결과가 올것이라고 충분히 예상가능했던 일이다.



李圭景이 1835~45년 사이에 쓴 책에는 조선조 시대에도 어촌에 가끔 고래들이 밀려 왔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민들이 밤에 몰래 나와서 이 고래를 바다로 밀어 넣어 버린다는 記述이다.


횡재거리가 생겼는데도 이 무슨 짓인가. 李圭景은 관의 수탈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고래가 좌초하면 관아(官衙)에선 어민들을 혹사시켜 고래의 기름을 뽑아 팔고는 돈을 벼슬아치들만 나눠가졌다.


그러니 어민들은 고래라는 돈덩어리를 보고도 '또 고생하겠구나'라면서 영차영차 바다로 도로 밀어 넣어 버렸다는 얘기다.
   
 19세기말 한국여행기를 쓴 미국의 비숍여사의 글에서도 이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어민들은 돈을 벌 생각을 않는다. 모조리 관리들에게 빼앗겨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빈곤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빈곤만이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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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운석사태의 교훈 1>


조센징 양반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착취를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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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운석사태의 교훈 2>


역사는 되풀이되고 조센징은 영원히 고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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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헬조센에선 원래 그렇게 사는거고 니들이 전생에 죄를 많이져서 조센징으로 태어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