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작품성 어쩌고 했던 글 썼다가, 자막 만들고 싶지만 고소 겁나서 못 만들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내 대신 겁 없는 사람이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걸론 안 보지만 덕분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서 고맙다. 더 닉이랑 파고는 현재 방영되는 미드 중 최고 수준이니 꼭들 챙겨보길 바란다.

 총 몇 화인지 모르겠는데, 저번 시즌 참고하면 절반 온 것 같아서 블로그든 어디든 한번 써야겠다 싶었다. 미드를 소일하듯 흘려 보내지만 말고 같이 얘기해 봤으면 좋겠다. 얼마나 쓸지 모르겠는데, 먼저 당부해두자면 5번째 에피소드 얘기는 맨 뒤로 미뤄서 아직 안 본 사람들 배려할 생각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직까지 이 영화와 시리즈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 코엔 형제가 애초에 지어낸 설정이다. 한국 같은 풍토에선 예술과 현실을 혼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나 TV 시리즈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관객을 모욕했다며 욕 바가지로 먹기 딱 좋다. 여기엔 최근 아이유 <제제> 건이나 그보다 좀 전 이슈였던 솔로 강아지의 시, <학원 가기 싫은 날>의 패륜성 논란도 같이 물려서 생각해 볼 만하겠다. 예술 작품은 가시적인 현실로 환원되거나 그것을 지시함으로써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통의 맥놀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다. <언프리티 랩스타>나 <쇼 미더 머니>가 청소년들에게 적대감과 호전성을 가르치고 세뇌하는 걸까. 또는 그런 식으로 왕따당해 본 적 있는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안기는 걸까. 공옥진의 <병신춤>은 장애인들을 모욕하는 걸까. 그럼 <오아시스>의 문소리 연기도? 이런 오해들은 예술 작품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작품의 어떤 목소리가 작가나 시연자에 대응되고, 이 작가 또는 시연자의 목소리가 현실을 윤리적으로 침해한다고 여기는 거지. 나는 이런 오해가 과거 <경찰청 사람들>(최근에 종영된 거 말고, 십 몇 년 전)에 범인 역으로 나왔던 험상궂은 단역 배우를 현실에서 목격하고 경찰서에 신고했던 사람들의 인식 수준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근원적인 예를 들자면,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첫 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 속에서 기차가 다가오자 관객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기도 했다. 예술은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려 한다. 오프닝에 타이프되는 말들은 코엔 형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위한 거짓 중 하나다. 미네소타 주 사람들이 친절하고 소탈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이런 사람들도 뜨악한 범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겠지.


 첫 번째 에피소드의 멋진 오프닝을 얘기해야겠다. 수 폴스(Sioux Falls)의 대학살이라는 흑백 영화가 촬영되는 중인데, 사실 이 장면은 엄정하게 보자면 뭔가 안 맞다. 치직거리고 필름을 가느라 잠시 끊기고 하는 걸 보면 러프 필름(편집하기 전의 전체 녹화분)인데 거기에 그래픽으로 제목과 출연 배우가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거 따지고 싶지 않을 만큼 재기 발랄한 오프닝이다. 에피소드 제목이 <네덜란드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Dutch)>인데, 파고의 배경이 79년, 지미 카터 집권기고 다음 정권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다. 잘 알다시피 레이건은 배우 출신인데, 별명이 네덜란드인(Dutch)이다. 이건 중의적인 의미가 제법 들어 있는 장면인데, 미 원주민(당시엔 인디언이라고 했지만 이 명칭은 진짜 완전 어이 없는 말이니 고쳐 쓰자) 후손 출신 배우가 추운 2월에 레이건이 준비될 때까지, 자신을 달래주려는 스태프 한 명과 들판 한가운데서 덜덜 떨고 있다. 스태프가 배우에게 "후~ 이 다음에 올 일은..." 하고는 차마 말을 못 잇고 자기는 유대인이니 그 고난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건을 얘기하는 동시에 파고 두 번째 시즌이 얼마나 피칠갑 시체 쌓기가 될지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원주민 후손이 이해 못 하는 고난을 다른 사람이 이해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코엔 형제 특유의 우연과 오인의 세계(물론, 이건 노아 홀리 각본이지만 코엔 형제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다)와 고통에 대한 범인류적 접근을 한번 같은 자리에 놓아본 것은 아닐까.


 첫 시즌에서 노아 홀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시리즈 전체에 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거나, 장자가 죽거나 하는 설정은 물론이고, '평범한 악인'인 레스터가 다른 이에 의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집어삼켜진다는 결말도 최종적인 처벌권을 신에게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즌엔 그 테마가 UFO로 옮겨온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에 나오는 곡도 뮤지컬 버젼의 <우주전쟁>(맞다. 스필버그 영화의 원작) 음악이다.

 

 


 그렇다면 이 UFO는 대체 이번 시즌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 답을 어느 정도 해준 것 같다. 한지가 와플집에서 조사를 하고 주차장에 나와 또 그 UFO를 목격하는데, 이때 식당 안에선 7시를 갓 넘겼던 시각이 금세 2시간이 흘러버렸다. 자, 다시 첫 번째 에피소드로 되돌아가 보자. 그저 여자는 운전을 못 한다는 편견을 작동시키고 싶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라이 게르하르트가 차 사고를 당한 곳은 가파른 커브길도 아니었고 페기의 차는 충돌 전까진 헤드라이트가 멀쩡했다. 눈 오는 날 직선 도로에서 그렇게 아무나 칠 정도면 페기는 처음부터 운전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정말 라이가 순식간에 그 도로에 나타난 거라면? 내 말은, 거의 순간이동한 것처럼 빨리 나타난 거라면? UFO가 시간을 왜곡한다든가 시간의 상대성을 극대화하는 중력 기술을 사용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UFO가 순식간에 두 시간을 옮길 정도라면 페기의 운전 실력이 아일톤 세나 수준이라도 라이와 부딪히는 건 막을 수 없지 싶다. 외국 리뷰 대충 훑어봐도 이 말은 없는 걸로 봐서 아직 많은 이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효과라 앞으로 중대한 결투나 조우에 다시 한번 쓰이면서 누군가를 살리거나 죽일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 첫 번째 학살극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 측은하고 안됐다. 판사도 올곧은 사람이었고 조리사 친구도 프라이팬을 들고 달려들 만큼 용기 있었으며 서빙하는 아가씨는 두말 할 것 없이 상냥해서 픽 쓰러지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심지어 난 라이도 웨스 앤더슨(로얄 테넌바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세계에 속했다면 찌질하지만 그 나름의 개성을 인정 받는 주인공이었으리라고 상상이 돼서 동정이 갔다.


 두 번째 시즌은 79년을 배경으로 한 만큼 여러가지 사회 문제도 건드리고 있다. 내 눈에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건, 페미니즘 문제다. 내가 DC를 '한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잘 모르겠는데, 여기도 막 여성 혐오 심하고 그런가. 여성 혐오는 남녀 편 갈라서 남자편 이겨라, 여자편 져라 하는 게 아니라 여성적 상태, 여성적 본성에 대한 혐오다. 한국에서 제일 터프한 남자들이 간다는 해병대 소대원들 전체가 한둘의 약자를 성추행한 건, 그들이 동성애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극단적인 마초이즘으로 인해 [약자=여성]이라는 공식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약한 놈들은 계집애고, 계집애는 한번 해줘야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 폭력이 생긴다. 많이들 여성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오해하고 그 오해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페기와 에드도 어려움 속에 그런 갈등을 배경으로 두고 있고, 플로이드와 첫째 도드, 도드와 그 딸도 도드의 마초이즘에 의한 갈등 상황이다. 내 생각엔, 도드가 오래 못 가지 싶다. 자기 딸내미건 엄마건 여자의 술수에 뒤통수 맞고 최후를 맞지 않을까. 아니면 페기한테??? 페기는 곧 죽을 것 같다는 전망이 많던데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를 설마 그렇게 없앨까 의문이고, 페기의 얼굴이 사라지면 뭔가 파고 시리즈를 이어가는 핵심적인 게 사라진다는 느낌이라 그리 될까 싶다. 세상과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순진한 멍청이의 얼굴 말이다.


 79년 미국 남성들에겐 전후 후유증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람보의 얼굴을 한지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베트콩 학살용으로 무지막지한 인간 병기를 훈련시켜서 써먹고 집에 다시 가져온 거다. 이런 문제는 현대 미국에도 적용된다. 사람을 죽이던, 실질적으론 수없이 많은 민간인도 같이 죽인 이들이 살인의 추억을 안고 본토에 돌아와 멀쩡하게 밥 먹고 일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파고가 이 주제를 심화할 것 같진 않다. 람보의 얼굴을 루의 얼굴로 대체하고 나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되니까. 루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거나 전우가 죽는 걸 보며 겪었던 정신적 피폐함에 몸서리치고 있진 않다. 우리 사회에서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월남전 참전 군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루는 미생의 영업3팀 트리오만큼 이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몇 가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가장 눈에 띄는 건 분할 화면이다. 어떤가. 아주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그 많은 인물을 하나하나 다 챙길 때 이 분할 화면이 좋다. 분할 화면에 음악을 깔고 몽타주 몇 번 흘리면 인물 간의 심리와 정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에피소드 시작할 때, 서장(overture)으로 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것이 거대한 교향곡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 교향곡의 지휘자는 부감숏 시점의 주인일 것이다. UFO일까. 추격 장면에서 도망치는 자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부감숏은 파고 시리즈의 운명론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첫 시즌 피날레에서 레스터가 도망칠 때도 이 구도가 사용됐다. 음악도 매번 훌륭하다. 음악과 분할 화면과 마이크 밀리건(Bokeem Woodbine) 등의 위협적인 대화씬만 보면 천재적인 타란티노 영화 같기도 하다.


 


  등장 인물 이름에 뭔가 재밌는 배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다. 마이크 밀리건이 "우릴 무슨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처럼 소개하는구만" 하고 말해서 나는 다들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이름을 딴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플로이드 게르하르트가 있는데, 다른 이름은 뭐 어떤 밴드의 누구와 관계 있는 건지 몰라서 확신할 수 없다. 첫 시즌의 론 말보 같은 경우 lone wolf(홀로 범죄를 저지르는 외로운 늑대)를 적당히 변형해서 W를 뒤집은 형태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뭔가 있을 것 같다.


 이제 오늘 봤던 5화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제 본격적인 시체 쌓기 전쟁이다. 1화에서 스태프가 말했던 상황은 자아 찾기 세미나가 열리는 수 폴스에서 터지겠지만 이미 엄청나게 죽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 반농진농의 실존주의적 질문도 던지고 있다. 노린이 읽은 책도 까뮈의 책이고 앞서 세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 시시포스의 신화인데 이 역시 까뮈 책의 제목이다. 단, 이 질문은 어쩐지 인간의 몫이 아닌 것 같다. 라깡은 이렇게 삶의 바깥으로 나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이 거짓이라고 말한 적 있다. UFO의 외계인이라면 그런 질문을 던지고 동물원의 조련사가 된 것처럼 인간에게 실험해 볼 수도 있겠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파고의 두 번째 시즌은 첫 시즌의 신 자리에 UFO가 와 있는데, 이것은 묘하게 영화, 또 정치와 연결돼 있다. UFO-영화-정치,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뜬구름 잡는다는 거? 루가 유세 중인 레이건에게서 출구를 찾지만 레이건은 영화 속의 대사 같은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UFO와 마찬가지로 봤다고 해도 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만큼 텅 비어 있는 한 허무한 정치의 중심이다. 이 뻔뻔스럽고 달변인 정치인을 우리의 영원한 미친손 브루스 캠벨이 연기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 요새 뭐 이블 데드도 시리즈로 한다던데 거기도 카메오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대강 훑어본 것 같다. 시즌 다 끝나면 한번 더 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