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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최태민. : 클리앙

남산의 부장들 재미있게 보고 왔습니다. 2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갔습니다. 영화에서 한가지 빠졌던 점을 저자가 지적합니다. 바로 최태민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1979년 10월 23일, 즉 10 26 불과 3일전에 김재규가 직접 박정희에게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인 김충식은 최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동형> 진실이 묻힌 감이 있는데요. 김재규 재판 때 보면요. 김재규 중정부장이 최태민 이야기도 합니다. 최순실 아버지죠. 시해에 있어서 최태민이 원인이 됐다고도 보십니까, 혹시? 김충식> 네, 큰 원인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최태민에 대한 여러 가지 나쁜 여론 때문에 정보부가 정보보고를 했더니 박 대통령이 큰 영애한테 그것을 던져서 큰 영애가 그것을 반발해서 우리는 좋은 일만 하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 앞에서 큰 딸하고 김재규가 같이 심문을 당하는 그런 치욕적인 일이 있어서 그 점도 굉장한 프라이드의 사나이 김재규로 봐서는 욱하는 대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정희한테 여자들 바치는 데도 진력이 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달에 도합 10차례, 소행사(박정희만의 밀회), 대행사를 치뤘다고 하니까요. 김재규 자신만도 200여명의 여자를 데려왔다고 변호사에게 얘기했습니다. 애초에 육영수 여사는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에 아주 이가 갈려,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을 사람을 택했고 그게 박정희였다고 합니다. 이미 그때 박정희는 시골여인 김호남과 결혼한 상태였고, 딸까지 낳은 그녀를 수준이 낮다하여 버렸습니다. 그 후 이화여대생 이현란과 동거하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되자 헤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영수는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박정희가 풍기는 인상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육영사는 박정희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엽색행각은 육영수여사 서거이전에도 매우 빈번한 것이었습니다. 청와대의 채홍사, 김삼화 배우,,,, 육영수여사는 당시의 뭇 여성들과 달리 참지 않았고, 자주 싸웠습니다. 박정희의 엽색행각 때문에 육박전(육영수-박정희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졌다. 70년대 언젠가 육영수의 얼굴이 멍이 든 것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눈에 포착되어 박정희의 손찌검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1970년대 편'에서) 김재규가 아니어도 박정희는 곱게 가진 못했을 겁니다.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1726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54627 http://cafe.daum.net/ok211/680V/738721?q=%EB%B0%95%EC%A0%95%ED%9D%AC%20%EA%B9%80%EC%82%BC%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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