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늘 고생하는 상붕이들 20-8 전역한 상붕이다 

예전에도 전역하면서 한 번 적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와봄

내 후임은 예비군 업무능력도 떨어지고 처음 왔을 때 고등학교도 똑바로 안 다녔다고 해서 처음엔 색안경을 끼고 봤었다

하지만 난 만났던 또래 친구들 중에 얘가 가장 대단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후임이 공부도 못 하고 고등학교도 똑바로 못 다녔지만 인간의 기본기에 충실하고 예의가 엄청 바른 친구라 내가 배울 점이 너무 많았다

출근도 8:40까지인데 7시 40~50분에 먼저 와서 동대 창문 확 열고 청소하고 겨울철 가습기 물 채우고 국동체 컴퓨터랑 행정 컴퓨터 딱 켜놓고 기다리고

다른 동대장이나 예비군 혹은 다른 손님들 오시면 커피나 음료도 빠릿하게 잘 대접하고 용지 세절 문구류 사오기 등등 혼자 시키기 미안할 정도로 너무 잘 하고 늘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예의바른 성격이었다

하지만 처음 일병 1호봉 땐 출근 하면 일찍 오긴 하지만 9시만 약간 지나면 자꾸 꾸벅꾸벅 졸아서 동대장님이 혼낸 적도 많았다 나도 덩달아 혼나는게 솔직히 좆같긴 했다

실무편람 읽어라고 해도 뭔 소린지 이해도 못 하고 꾸벅꾸벅 잠만자고 말도 많이 없었다

어느날은 주말에 치킨 먹으려는데 비비큐 닫아서 옆 동네 비비큐 가니까 웬걸 후임이 비비큐 모자 쓰고 알바하고있는 것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알바하다 동선이라도 겹치면 ㅈ되는 시절이었는데 진짜 주문하러 들어가서도 뭐라해야지 싶었다

나를 보고는 다급하게 숨으려는걸 보고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불러내니까 알고보니 후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치킨집이었다

알고보니 후임은 부모님은 안 계셨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계속 자라왔고 퇴근하고 6시부터 새벽1시까지 비비큐 일 도와드리는거라고 했다 자취촌이 많아서 주문이 많은 동네라 안 도와드리고는 영업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동대 와서는 잠을 못 이기고 꾸벅꾸벅 졸기나 했던 것이었다 마감하면 새벽2시인데도 불구하고 7시 40분에 출근 했던 것이었다

진짜 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지고 후임한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후임이 조부모님께 근무하는 곳 선임이라고 소개해드리는데 할머님께서 너무 환하게 웃으시면서 섭이 잘 부탁한다고 말 하셨다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고 내 스스로를 쥐어박고싶었다

다음 날 동대장님께 따로 다 말씀드리니까 동대장님도 그제서야 아차 싶으셨는지 후임이랑 따로 면담하기 시작하셨다

동대장님께서 섭아 대학 가고싶은 생각은 없나? 하셨고 한참 뜸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역사교육과에 가고싶다고 했다 

늘 기본기 이상은 하던 놈이니까 일은 빵꾸나더라도 내가 커버하면 되고 모르는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주면 되고 부수적인 손님응대나 물품 채우기 장비고 관리 정도만 해도 2인분은 하던 놈이라 업무는 늘 내가 맡기로 했다

동대장님도 후임한테 동대에서 공부는 지금부터 시작해도,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까 공부 허락해줄테니 수능 공부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후임은 알겠다고 했다

공부에 서툴렀던 후임은 정승제 중학수학부터 시작해서 사설인강 하나 없이 ebs 인강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할머니 비비큐 일 도와드리고 낮에는 동대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동대장님은 일찍 안 와도 되니까 잠도 푹 자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21년 수능에서 결국 동국대랑 경북대 역사교육과 두 곳을 붙어서 대학을 갔고 후임 할아버지께서는 직접 동대 찾아오셔서 감사하다고 동대장님께 인사드렸다

동대장님도 내 후배가 되겠네 허허 하면서 좋아하셨다(동국대 알티출신임)

복학하고도 종종 연락하는데 성인 되고나서 내 인생에서 생각이랑 가치관을 크게 바꿔준 첫 번째 인물이었다

섭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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