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때 군인은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고 배워서
군복 입고 있을 때는 그 누구를 만나도 절대 허리를 숙여서 인사하지 않았음
근데 딱 한번 허리 숙여서 인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풀어보고자 함..
짬 높은 상붕이라면 작년 5월달 즈음에
625 전사자 가족 시료채취를 동대에서 할 수 있디고
홍보 했던걸 알고 있을거임
이런걸 하러 누가 예비군 동대를 찾아올까 싶어서
보급 나온 시료 채취 키트도 옆 동대에 넘기고
신경도 안쓰고 할 일 하고 있었음
근데 가끔씩 그런 날 있잖아
아무렇지 않고 평화롭던 일상이라 느끼던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그런날
그날은 예상치 못한 분이 동대를 찾아오셨음
동사무소에서 하는 트로트 노래교실에 참여하셔서
자주 얼굴을 뵙는 할머님이 동대로 들어오시는거임
동대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강당에서 노래교실을 하는데
거기 어르신들이 우리를 잘 챙겨주셔서
우리 동대는 어르신들이랑 인사하고 지냈거든
근데 그 날은 노래교실을 하는 날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찾아오셨던거야
아니나 다를까 시료채취를 하고 싶으시다며 찾아오신 거였음
할머님의 아버지께서 625 때 참전을 하셨는데
그 이후로 돌아오지 못하셨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
그래서 이건 내가 진심을 다해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료채취 절차를 알아봄..
당시에 동대장이 옆 동대 놀러간 뒤로 안들어오고 있어서
전화로 시료채취 원하시는 선생님 왔는데 어케 해냐하냐고 여쭤보니
일단 호적등본 발급받아서 제출하고 나중에 가정 방문해서 유전자 채취를 한다네
그래서 일단 할머님 모시고 주민센터 민원실로 내려가서
호적등본 발급을 해야한다고 주민센터 직원한테 얘기하는데
할머님께서 땀이 많이 나신다면서 휴지를 찾으시더라
그래서 휴지 찾아서 드리면서 보니
눈물을 펑펑 흘리시고 계셨음..
당황스러우면서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감히 위로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닌거 같아서
그냥 눈물 흘리시는거 못본척 묵묵히 직원과 대화함..
호적등본 발급 신청서 양식을 직원한테 받아서
이제 작성해야 하는데
할머님께서 계속 우시고 힘들어하시니
발급 민원 양식도 내가 대신 작성해서 제출했음
주민센터 직원이 내가 대신 작성하는거 봤음에도 별말 안하더라..
아무튼 호적등본을 발급받아서 나는 서류를 챙겼고
주민센터 나와가지고 할머님을 댁까지 모셔다드리려고 했는데
혼자 가도 괜찮으시다며 사양하시더라
그러면 인사를 드리고 동대로 복귀해야하는데
정말 인삿말이 떠오르지가 않는거야
아침마다 동대 출근할 때에도 매일 인사말을 다르게 하는 나인데도
차마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던 순간이었어
그때 머리에 불현듯 든 생각이
아무리 내가 대통령이 앞에 와도 허리를 숙이면 안되는 군인이어도
참전용사의 후손인 이 할머님께만큼은
허리를 백번 숙여서라도 인사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허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라고 인사를 드림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인사였겠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와 존경을 담았던
내 군생활 중 유일하게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히며 인사했던 순간임..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새벽에 좋은 글이네요..
난 선임들한테 허리 숙여서 인사하는데
시발 훈훈하네
멋진 상붕이네
글 잘 쓴다 좋은 글 잘보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