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붕이들 ㅎㅇ
예전에 폴아웃에도 영향을 줬다던 네빌 슈트의 해변에서를 로컬라이징해서 소설로 만들어봄.
모 공모전에 제출한 건데 잘 되면 좋겠음.
그럼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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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그날이 오면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어 찾고
그러면서도 애써 말을 피한다.
부어오른 이 강변에서 모여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대신, 훌쩍임으로.
- T. 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에서.
어두컴컴한 집이다. 창문 밖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TV가 켜지며 북한 아나운서가 말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성명! 간악한 미제침략자들과 한국 괴뢰들은 우리 공화국에 대하여 중대한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이에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쥐새끼 같은 놈들의 악행에 분노하여, 그 추악한 대갈통에 공화국의 핵미싸일을 발사할 것이다!”
채널을 돌리자, 영국 BBC 방송국의 생중계가 나온다.
“이제 제임스 워터슨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워터슨 기자?”
화면이 전환되어 유럽에서 전쟁하는 모습이 보인다.
“네, 보시다시피 저 멀리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는 포탄이 날아오자 잠시 몸을 숙인다.
“네, 정말로 세계대전이 발발할 줄은…”
채널을 돌린다. 어느 중동 국가 대표가 성명문을 발표한다.
“여기서 적국의 수도를 타격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지만, 불바다가 될 겁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대표님!”
“네.”
“인근 미군기지에 전술핵 미사일이 배치됐다던데, 사실입니까?”
“그건 제가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이만 마칩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든다.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실 수 있으십니까?”
잠시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리며 침묵.
“아뇨, 장담 못합니다.”
대변인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기자들이 근처로 몰린다. TV를 끄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자, 미국에서 날아가는 핵미사일을 스트리밍한다.
“야, 다 챙겼어?”
“어, 됐어!”
“그럼 빨리 시동 걸고…”
미국인1은 떨어지는 핵탄두를 확대한다.
“어, 저거 설마…. 튀어!”
미국인1과 미국인2는 차를 타고 도망친다. 잠시 후 차에서 내려 대피소 앞에 달려간다. 하지만 열리지 않아서 마구 두들긴다.
“씨발, 문 좀 열어줘요! 제발 열어줘요!”
“열어, 썅! 열어달라고!”
잠시 후 미국인1은 뒤를 돌아 핵탄두가 떨어지는 것을 촬영한다.
그날 이후, 세상은 멸망했다. 처음에는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참사는 우리가 선택했다. 동아시아, 중동, 유럽까지…. 결국 세계는 파괴되었다. 다행히 어느 지역은 무사했고, 그곳은 대한민국의 강릉이었다. 그러나 운명이란 피할 수 없다.
조성연은 핵폭발 사진이 인쇄된 신문을 읽는다. 얼마 후 시민1이 다가간다.
“야, 너 그거 아직도 읽어?”
“아, 그냥.”
“어차피 다 알면서.”
“뭐, 읽을 게 있어야지.”
“그러게. 빨리 수업 가자!”
강릉시립대학교 로비에서 나온 성연과 시민1은 학교 전광판 앞을 지나간다. 전광판에는 ‘2027년 8월 13일,’ ‘오늘의 방사선 수치’라는 문구와 그 밑에 ‘피폭량 45mSv/허용치 100mSv’라는 수치가 나온다.
칠판에 세계사 내용이 PPT로 보인다. ‘코로나 판데믹,’ ‘긴장되는 세계,’ ‘분쟁 격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신해진 교수가 그 앞에서 강의한다.
“그리하여, 이번 학기 수업은 여기서 마칠게. 다들 고생했다.”
학생들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강의실을 나가는데, 성연은 남아있다.
“저, 교수님!”
“왜, 성연아?”
“아쉬운 거 있어요.”
“뭔데?”
“오늘 제3차 세계대전은 안 배우나요?”
“아, 그건…”
해진은 목을 더듬는다.
“그거야 다들 아는 거고, 강의 시작할 땐 일어날 줄도 몰랐잖아. 전쟁의 흐름도 다 모르고.”
“근데 사실 러시아 때문이잖아요?”
“러시아도 있었지만 결국 미중전쟁도 있었고, 그러다가 한반도까지. 다 알잖아.”
“그래도 나중에 기록하지 않을까요?”
“글쎄. 지하 벙커 아니면 어렵지.”
잠시 침묵.
“하긴 어렵겠네요…. 거기도 모를 거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잘 가고!”
성연이 자리를 떠나자, 해진은 칠판을 바라본다.
“오늘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다.”
함장이 맨 앞에 서 있고, 나머지 49명의 승조원이 해군기지 회의실에 앉아서 설명을 듣는다. 승조원들은 소란스럽다.
“생존자 찾았대.”
“와, 진짜?”
“어떻게 찾았대?”
“자, 조용! 집중해라.”
다들 조용해지고, 회의실 칠판에는 ‘구조 요청 신호 발견’이라는 문구와 함께 인천 해수욕장의 위치가 나온 PPT가 비춘다.
“핵공격을 당한 인천 해수욕장에서 신호가 왔다. 생존자가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내용이야.”
작전안을 들으며 엄지손톱을 깨무는 박우진의 모습이 비친다. 함장이 화면을 넘기자, ‘작전명: 「달을 향한 외침」(Crying for the Moon)’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물론 인천도 방사능 낙진으로 심하게 오염됐지만, 혹시나 있을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실행한다. 다행히 바닷가 가까이라서 1명만 보낼 거고. 지원자 있나?”
승조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만 보다가 우진이 손을 든다.
“소위 박우진! 제가 하겠습니다!”
함장이 미소 짓는다.
“박우진 소위. 지난번에 이어서 또 공훈을 남길 거야?”
“아닙니다. 그냥 의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알겠다. 다른 지원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좋아. 그러면 우진을 보내서 생존자를 수색하겠다. 이상!”
많은 사람들이 대학 카페에 앉아있다. 이때 우진과 성연은 마주 본 채 앉아 있다. 옆에서 미래가 미소 짓는다.
“자 그럼, 둘이 잘해 봐. 잘 되면 좋겠다. 알았지?”
“네, 선배님.”
“네, 중위님!”
“그럼 안녕!”
미래는 자리를 떠난다. 우진과 성연은 마주 앉은 채 웃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래서, 우진님이 핵공격을 막으셨다고요?”
그는 살짝 웃는다.
“아, 네. 미래 중위님 덕분이죠.”
“와, 대단하세요! 저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혹시 뭐 좋아하세요?”
“아, 저요?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고요.”
그의 컵을 툭 건드린다.
“그리고 고기요.”
“무슨 고기 좋아하세요? 같이 말해볼까요?”
잠시 침묵.
“소고기!”
동시에 말한 뒤 서로 웃는다.
“그러면 저도 물어볼게요.”
우진이다.
“네네.”
“취미가 뭐예요?”
“아, 저는 자전거 타기요! 그 다음엔 여행!”
“어? 저도 여행 좋아해요! 어디 어디 가볼까요?”
“음…일단 아무 데나 잘 가요. 안목해변도 좋고, 조용한 허난설헌? 아무튼 그런 곳도 좋아요.”
“저도 아무 데나 가요. 아니면 요 앞에 대도호부관아인가? 아니면 경포호수? 그런 데는 어때요?”
“좋아요! 특히 친구나 썸 타는 분이면 더 좋죠.”
서로 웃는다.
“공통점이 많네요. 저희는.”
“그러게요.”
“아 근데 저, 3일 뒤에 임무가 있거든요.”
그녀는 미소를 푼다.
“무슨 임무요?”
“아, 생존자 수색인데….”
잠시 침묵.
“어디로 가시는데요?”
“인천으로요. 구조요청이 와서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서로 어색하게 다른 곳을 바라본다.
“아 그러셨군요. 깊이 들어가세요?”
“아뇨, 바닷가 바로 앞이요. 얼마 안 가요. 딴 곳에서도 해봤으니까 걱정 마세요.”
“네. 근데 이거, 말씀하셔도 되는 거예요?”
“뭐, 어차피 다 알게 되실 거예요.”
그녀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고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알겠어요. 조심해서 갖다오셔요.”
데스티니 술집에서 해군 장병들과 강릉 시민들이 술을 마신다. 시민2와 시민3이 서로 앉아서 대화하는데, 그 앞에 종업원이 서 있다.
“와인이 몇 병 있죠?”
“100병이요.”
“꽤 있네요.”
“아냐, 별로 안 남았어.”
“왜?”
“저 그만 가보겠습니다.”
종업원은 고개를 돌린다.
“네네, 얼른 가보셔요.”
그녀는 자리를 떠난다.
“어차피 낙진이 오니까 다들 부어라 마셔라 할 거 아냐.”
“하긴 부족하겠다.”
“아, 그나저나 이제 갈 곳도 없는데…어떡하냐.”
“그러게. 도망도 못 가고. 받아줄 곳도 없고.”
시민2는 잠시 전쟁 당시를 회상한다. 그가 강릉에 온 피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중상을 입은 사람, 맨발로 온 사람, 피부가 약간 타버린 사람 등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다.
여기 왔다던데 어디지? 시민2는 주위를 둘러본다.
“민석아! 길민석! 어디야?”
시민2는 조금 찾다가 시민3을 발견한다.
“어? 창호야! 하창호!”
서로 만나서 안긴다.
“다행이야, 다행!”
“와줘서 고맙다, 야!”
“다친 데는?”
“없어.”
“다행이다. 식구분들은?”
시민3은 울상을 짓는다.
“늦었어.”
“왜? 무슨 일인데?”
“그때 빵집 갔는데…늦었어.”
시민3이 시민2에 안겨서 눈물을 흘린다.
시민2는 술집을 돌아보고 시민3을 바라본다.
“맞아. 안타까워.”
“야, 그래도 먹을 건 좀 많아서 다행이다.”
“맞아맞아. 일단 농사짓는 분들도 많고, 아직 버틸 수 있으니까…”
함장이 카운터로 다가가서 잠시 승조원들을 돌아보고, 다시 카운터 직원(이하 카운터)을 본다.
“저희 승조원들 술값 좀 내겠습니다.”
카운터는 두 손을 내민다.
“네, 카드 주세요.”
카운터가 카드를 받고 결제를 여러 번 시도하지만 안 된다.
“이 카드 결제가 안 되네요.”
“네? 잠깐만요.”
카드를 유심히 본다.
“아, 이 나라사랑카드는 이제 안 되겠네요. 여기가 국방부라…. 그럼 현금으로 내겠습니다.”
그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다가 탄식한다.
“아, 죄송하지만 돈이 없네요. 어떡하죠?”
“어, 잠깐만요. 사장님!”
그녀는 사장을 데리고 나온다.
“돈이 부족하시대요. 어떡하죠?”
“음…괜찮습니다. 그냥 반값만 주세요.”
“아니, 돈 안 받으십니까? 그럼 나중에라도 드릴 테니 각서라도…”
사장은 양손과 고개를 젓는다.
“아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핵미사일 막으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사장은 카운터에게 고개를 돌린다.
“시급은 내 꺼 깎아서 줄 테니 걱정 마.”
“네. 감사합니다.”
카운터는 함장에게 지폐를 받고 몇 장 꺼내 든다.
“함장님, 괜찮아요! 얘네도 곧 휴지조각이에요.”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다른 승조원들이 침상에 눕자, 우진이 말한다.
“불 꺼요?”
“어, 꺼.”
미래의 말을 들은 우진은 불을 끄고 조심스럽게 그의 침상에 눕는다. 얼마 후 시간이 꽤 지나갔지만, 우진은 여전히 뒤척인다.
“주무세요?”
“아니, 왜?”
“잠이 안 옵니다.”
“또 왜?”
“생존자 때문입니다.”
“그래?”
“네.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얼른 자. 수색하려면.”
잠시 침묵.
“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 좋은 꿈 꿔.”
조금 뒤척이다가 잠이 든다.
우진은 꿈을 꾸며 전쟁 당시를 회상한다.
“여긴 오메가1. 오메가2, 응답 바란다.”
“여긴 오메가2. 평형수 쪽 물이 계속 샌다.”
“알았다. 얼마나 기울었나?”
“오메가2, 현재 7도가량 기울었는데, 엔진실 쪽도 피격됐다. 네, 함장님…네? 네! 여기는 오메가2. 배를 버리라는 함장님 지시다. 함을 버리고 체크 포인트 델타에서 오메가1을…”
순간 치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린다.
“오메가2? 오메가2! 응답하라. 오메가2 응답하라!”
우진은 계기판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씨발, 또야! 또! 또!”
“박 준위, 진정해!”
함장이 말하자 그만둔다.
“네, 죄송합니다.”
“일단 구조요청 보내자. 사령부, 사령부 나와라! 여기는 오메가…”
해군 헬기가 비 오며 파도치는 바다를 서치라이트로 비춘다. 우진과 승조원1은 수면으로 나온 잠수함 위에서 오메가2 함정의 생존자들을 기다린다. 잠수함 옆에는 구조대가 수색하고 있다.
우진은 입술을 깨문다. 역시 안 되나?
순간 구조대원 하나가 물 밖으로 나온다.
“찾았습니까?”
“아뇨! 못 봤습니다!”
우진, 잠수함 난간을 꽉 붙잡는다.
“아, 또야!”
구명보트에 있던 다른 구조대원이 무전을 받는다.
“예? 네네. 알겠습니다. 준위님!”
“네, 왜요?”
“철수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제 더 못 찾는대요!”
“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안 됩니까! 제발…”
“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날씨가 이래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망자 더 나오면 안 된대요!”
우진, 눈물을 머금는다.
“너무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승조원1은 말 없이 우는 우진을 살짝 안아준다. 우진은 구조대원들이 건진 오메가2 승조원들의 시신이 담긴 사체포를 보자, 소리 내어 운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순간 잠에서 깬다. 우진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쉬기 어려워진다.
“중위님! 중위…”
다른 승조원들이 몰려와서 “우진아, 괜찮아?” “우진아, 정신 차려!”라고 말하며 불을 켠다. 미래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우진에게 온다.
“우진아, 우진아! 나야, 나! 보여?”
숨을 잘 내쉬지 못한다.
“아, 네…네!”
미래는 비닐봉지를 우진의 입에 갖다 댄다. 비닐봉지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자, 우진도 조금씩 진정한다.
“이제 좀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계속 콜록거린다.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려서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다.
“하필 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기범아, 따뜻한 물 한 잔만 떠줘.”
“어 잠깐만.”
승조원1이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가져온다. 우진은 호호 불면서 조금씩 마신다.
“그래, 옳지. 잘 마신다.”
“허억, 허억…감사합니다!”
“많이 떨리는구나.”
“네…너무 떨립니다.”
“그래, 그래.”
“인천, 거기가 마지막 희망입니다. 진짜 가야만 해요. 반드시 생존자도…” 콜록거린다. “있어야 하고요!”
“그래. 있으면 좋겠다.”
물을 다 마신 뒤 승조원들을 돌아본다.
“만약에 없으면… 없으면 어떡합니까?”
잠시 침묵.
“그건…그때 가서 보자.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미래는 우진을 화장실로 부축하고, 다른 승조원들도 따라간다. 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린다.
이틀 후,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48mSv/100mSv이다.
잠수함이 정박해 있고 그 앞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달을 향한 외침」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 밑에서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그 가운데 성연과 우진이 서로 바라본다.
“이제 가볼게요. 나중에 봬요!”
“네!”
그는 등을 돌리고 잠수함으로 향한다. 이윽고 잠수함이 출항하여 서서히 물에 잠긴다.
바닷속에서 잠수함이 항해하고, 우진은 함장실에서 노크한다.
“계십니까?”
함장이 문을 연다.
“들어와.”
“소위, 박우진! 함장님, 질문 있습니다.”
“해봐.”
“구조요청 위치가 어디입니까?”
“오차는 있겠지만 GPS를 추적한 결과 인천 해변 에코6 지역이야.”
함장은 컴퓨터 화면을 보여준다.
“잘 보여?”
“네, 잘 보입니다.”
“일단 방사선을 측정하고 보낼 테니 걱정 말고.”
“아닙니다. 다만 저번처럼 아무도 없는 게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잠시 침묵.
“다 아는 거지만, 이번에도 생존자가 없을 수 있어. 다만 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해. 너무 늦어. 박 소위!”
“네!”
“생존자가 없어도 낙담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네!”
“답변이 되었다면 돌아가서 자고.”
“네!”
우진은 경례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함장은 책상에 앉아 타자를 친다.
‘항해 일지. 2027년 8월 16일. 22시 10분. 현재 부산 앞바다에서 잠항하며 인천으로 간다. 이제 막…’
순간 고개를 숙이며 졸음이 쏟아진다.
함장은 꿈속에서 핵전쟁을 회상한다. 잠수함 내부에서 경보가 울린다.
“12시 방향에 적 함대 발견! 어뢰 장전!”
“발사!”
“발사!”
어뢰가 바닷속에서 나아간다. 적 군함을 공격하자 격침된다.
이윽고 지휘실 스크린에 핵미사일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이고, 그 밑에 ‘미사일 도달: 앞으로 10:10:06’이라는 카운트다운 숫자가 보인다.
“적 미사일 포착! 대응탄 발사 준비! 방향 지시 대기 중!”
“1시 방향! 1시 방향!”
“함장님, 안 됩니다! 철회하시고 2시 방향 해주십시오!”
우진이다. 곧 승조원1은 우진의 멱살을 잡고 권총을 겨눈다.
“야, 어디서 장교도 아닌 게 깝쳐! 다 좆될 각인데, 명령 불복종이냐?”
이에 미래가 승조원1을 말리려 하고, 함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함장님, 박 준위 말을 믿어주십시오! 제 군 생활을 전부 걸고 박 준위는 단 한 번도 군대에서 오판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잠수함에서 대응탄이 날아가고, 핵미사일을 격추한다.
잠시 후 지휘실 스크린에 ‘줄루5’라는 문구와 북한 신포시의 위성사진이 보이고, 사진 밑에 ‘북위 40°00′, 동경 128°06′’이라는 좌표가 보인다.
“여기는 오메가1. 사령부, 수신 바란다. 줄루5가 정확한 타격 지점인가?”
치직거리는 잡음만 들린다.
“줄루5, 신포시, 조준 완료! 명령만 주십시오!”
“잠깐! 응답이 없는데…. 쓸데없이 전력 소모할 순 없어.”
“그럼 측정기 하나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 하나 보내!”
잠수함에서 방사선 측정기가 발사되어 올라간다.
“5, 4, 3, 2, 1, 0!”
가이거 계수기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신포시 방사선 수치는 현재 170Gy! 핵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럼 공격할 필요 없다. 전 인원, 기지로 복귀해!”
“하지만 사령부 명령입니다!”
“이제 소용없어! 사령부는 전멸했으니까…”
함장이 깨어나고, 숨을 크게 헐떡이며 침상에 앉는다. 누군가 함장실 문을 두드린다.
“함장님?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함장은 살짝 비틀거리며 문을 열어준다.
“아, 정 중위. 그냥 꿈이야, 꿈. 괜찮아.”
“중위, 정미래. 큰 소리가 들려서 와봤습니다. 이상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그래, 역시 미래야. 고맙다. 이제 괜찮으니까 가서 자.”
“네.”
미래가 돌아가자, 함장은 문을 닫는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51mSv/100mSv이다.
강릉 시내에서 큰 나뭇가지에 의지하며 비틀거리는 강민이 보인다.
“허억, 허억…여긴가…?”
계속 비틀거린다. 그가 보는 풍경은 하얗게 변하다가 돌아가는 것이 반복된다.
“누구 없어요? 좀 도와주세요!”
성연은 그의 앞을 지나간다.
“어? 누구세요?”
“아, 제발 좀…”
강민이 팔 하나를 뻗으며 쓰러지자, 성연은 주위를 돌아본다.
“어? 저기요? 누구 없어요?”
핸드폰을 꺼내서 119를 부른다.
“여보세요? 병원이죠? 여기 피폭 환자 한 분 계시는데요!”
강릉 종합병원 지하에는 피폭 환자 격리실이 있다. 그 안에서 강민은 침대에 누운 채 신음하고, 그 옆에는 방호복을 입은 채 의료진과 성연이 서 있다.
“환자 상태는요?”
“아주 나빠요. 며칠 내로 사망합니다.”
간호사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와 유성매직을 가져와 강민에게 다가간다.
“환자분, 환자분? 죄송한데 성함이랑 어디서 오셨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으으으…네, 저는 강민, 강민이고요….”
의사는 종이에 큰 글씨로 ‘강민’이라고 적은 다음 그에게 보여준다.
“‘강민,’ 맞습니까?”
“으으…네.”
“그러면 어디서 오셨어요?”
“수도권…그냥 수도권….”
“아 그러셨군요. 간호사님!”
의사와 간호사가 대화한다. 한편 성연은 강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저기 실례합니다….”
“네…?”
“혹시 서울에서 오셨나요? 거기서 저희 부모님 연락이 끊겼는데….”
“…아, 네. 서울분들과 같은 곳에…”
강민은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지른다. 이에 성연이 뒷걸음질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놀라 다가온다.
“으으으…또…또야! 머리가…!”
“아, 죄송합니다….”
“성연님, 트라우마가 심하십니다. 더 묻지 마세요.”
의사다.
“아, 네…”
성연은 강민을 바라본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며 잠시 눈을 질끈 감는다.
이틀 후 새벽, 잠수함이 인천 앞바다에 도착한다.
“함장님, 인천입니다.”
승조원2가 말하자 함장이 지휘실 스크린을 쳐다본다. 스크린에 ‘인천광역시, 동경 124°36', 북위 36°55'’라는 문구가 표시된다. 옆에 있는 우진, 왔다 갔다 하며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함장님, 나갈 준비 하겠습니다.”
“일단 측정이 먼저야. 측정기 보내!”
잠수함에서 측정기가 발사된다.
“10, 9, 8,…”
함장이 스크린을 쳐다보며 긴장한다. 기대는 없지만…해보자.
“3, 2, 1, 0!”
측정기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난다. 함장은 눈을 질끈 감고, 우진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현재 방사선 수치는 120Gy입니다!”
“역시!”
“함장님, 일단 신호가 왔으니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우진이다. 함장과 나머지 인원은 그를 보며 침묵한다.
“박 소위, 괜찮아?”
“네, 함장님. 괜찮습니다. 괜찮아야 합니다.”
“알았다.”
함장은 승조원1에게 고개를 돌린다.
“가서 방호복 가져와.”
“네!”
승조원1은 자리를 비운다.
잠수함 입구 아래서 방호복을 입는 우진 옆에 미래가 서 있다.
“누가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우진을 바라본다.
“글쎄. 가봐야 알지.”
“이번에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미래가 입술을 깨물며 생각한다. 못 찾으면 정말 슬퍼할 텐데. 첫 번째 생존자 수색을 마쳤을 때만 생각해도….
미래는 수색 당시를 회상한다. 우진은 미래에게 안겨서 운다.
“그래, 그래. 마음 아프겠다.”
“대체 왜 생존자가 한 명도 없는 겁니까? 대체 왜! 집구석 하나하나 다 뒤졌는데 왜!”
미래는 우진을 내려본다.
“그러게, 참 하늘도 무심하다….”
잠시 후 미래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다.
“일단 신호가 왔다면 있지 않겠습니까?”
“언제 왔느냐에 따라 다르지.”
잠시 침묵. 우진은 방호복을 완전히 입었고, 미래는 무전기를 든다.
“내 말 들려?”
“네, 들립니다!”
“이미 알겠지만 무전기가 먹통이 될지도 몰라. 한 시간 안으로 복귀해야 하니까 15분 주기로 신호를 낼 거야.”
“네.”
“물론 바다 앞이라 금방 오겠지만, 거기서 생존자랑 생존자의 짐을 뺀 그 무엇도 가져오면 안 돼. 만일 생존자가 없으면…그냥 그걸 보고한 다음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고 복귀해.”
“네!”
우진의 등을 두드린다.
“잘해봐, 이번에도 믿는다!”
“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53mSv/100mSv이다.
우진은 아침 해가 뜬 인천에 도착해 고무보트에서 내린다. 이때 ‘뿌뿌, 뿌뿌’ 소리가 난다. 그는 지도와 GPS 추적 장치를 보며 해안가를 두리번거린다.
에코6라면 이쯤인데….
더 깊숙히 들어간다.
그는 전쟁 당시 다른 지역과 교신을 시도했던 걸 회상한다.
“여긴 오메가1. 아무도 없나?”
무전기에서 치직거리는 잡음만 들린다.
“여기는 오메가1, 강릉이다. 응답하라. 제발 응답하라!”
머리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한다.
“아…또야….”
핵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 사이를 걷는다.
“아무도 없습니까? 있으면 제발 나와주세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른다.
“끄아아…아아아아!”
길을 걷다가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간다.
“어, 우리 집!”
털썩 주저앉아서 절규한다.
“씨발, 제발 그만해…!”
서로를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워 죽은 가족의 시신을 본다. 그 모습을 보고 온갖 집안 물건들을 부숴버린다.
“이 씨발새끼들아!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개새끼들아!”
‘뿌뿌, 뿌뿌’ 소리가 난다.
“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잠시 바닷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벌써 30분!
우진은 GPS 신호의 진원지로 뛰어간다. 그곳이 가까워지면서 GPS 장치가 ‘삐, 삐, 삐,’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자, 긴장하는 동시에 미소 지으며 뛰어간다.
이제 다 왔어!
“여러분, 갑니다! 드디어 왔어…요?”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 태양전지 보조배터리와 연결된 핸드폰이 하나 놓여 있다. 그는 GPS 장치를 끈 다음 가까이 걸어간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먼저 문자 버튼을 눌러 구조요청을 보낸 메시지를 읽어본다.
“여긴 인천 해변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핸드폰의 설정으로 들어가서 배터리 사용 시간을 본다. 배터리 사용 시간이…뭐야? 핵 투하 때 꺼졌다가, 다시 켜졌네?
테이블 의자에 앉는다. 잠시 후, 표정이 일그러지며 일어선다.
“겨우 이거야? 겨우?”
그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콜라 캔 하나를 바라본 뒤 발로 차버린다.
“썅!”
발을 동동 구른다.
“대체, 왜! 왜 이래!”
핸드폰에 삿대질한다.
“왜 니만 있냐? 주인은? 주인은 어디다 쳐두고 왜 여기 혼자 있는 건데!”
잠시 발을 구르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양손으로 얼굴을 툭툭 친다. 아냐, 아냐…보고해야지, 보고!
무전기를 켠다.
“아아, 정 중위님 들리십니까?”
“어, 말해.”
“진원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핸드폰 혼자 켜져 있습니다.”
잠시 침묵.
“자세히 얘기해 봐.”
“폰 배터리 사용 시간을 보니까 핵 공격 직전에 꺼졌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보조배터리가 태양광을 써서 폰이 켜졌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알았다. 그건 그대로 두고 복귀해, 이상.”
‘뿌뿌, 뿌뿌’ 소리가 난다.
“어, 가야지….”
등을 돌아 바닷가로 향해 뛰다가 핸드폰을 돌아본다.
아 잠깐.
핸드폰의 보조배터리를 뽑은 뒤, 전원을 끄고 뛰어간다.
병원 격리실에서 강민이 신음한다. 그는 거친 숨을 쉬며 몸을 움직인다. 그 옆 탁상에는 강민의 가방과 살짝 삐져나온 일기장이 있다.
“이거 하나만…으으…알아줘요.”
“뭐죠?”
성연이다.
“저 여친이…죽었어요….”
“아, 안타까워요.”
“같이 오다가…묻어줬는데…그 위치는…으으윽…!”
나도 곧 저렇게 되는 걸까….
“차라리…여친…으으윽…에게 갈게요…으으윽!”
의사는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간호사님, 그 약 가져와요!”
“아직 시험용인데요?”
“상관없으니까 빨리요!”
간호사가 약들이 들어있는 서랍을 열어본다. 성연은 강민을 바라보며 서 있다.
“성연님!”
“아, 네네!”
“제가 환자분 고정할 테니, 알콜 솜 좀 가져와요!”
“네!”
그녀는 다른 서랍을 열어 알콜 솜을 들고 온다. 간호사의 주사기를 봤다가 의사를 바라본다.
“이거…설마.”
“네, 맞아요. 환자분을 고통 없이 보내드리는 약이에요. 시험용이라 성능이 좀 별로지만 지금 쓸게요.”
의사는 누워있는 강민을 일으켜 세운다. 강민은 구토하며 콜록거린다.
“자, 환자분!”
의사, 강민의 뒷머리를 손에 받치고, 그의 눈을 쳐다본다.
“강민님, 강민님! 정신 차리세요!”
강민이 시야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한다. 의사만 겨우 보인다.
“네….”
“이 약은 안락사용 약이에요!”
안락사? 그거면….
강민은 피 섞인 기침을 하고, 그렇게 의식을 잃는 듯하다가 의사의 말이 들리며 겨우 의식을 되찾는다.
“이거 맞으시면 고통 없으실 거예요. 알겠죠?”
“…네! 주세요!”
“간호사님, 제가 직접 할 거니까 환자분 잡아주세요. 성연님도요!”
간호사와 성연이 강민을 붙들고, 의사는 안락사약을 주사한다. 여전히 고통받는 강민을 내려다보며 성연은 울상을 짓는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57mSv/100mSv이다.
미래가 함장에게 다가간다.
“중위, 정미래! 함장님,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얘기해.”
“현재 저희 위치는 부산 앞바다입니다. 현재민의 고향이니까 한 번 보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봐야지. 현재민 중위! 잠망경을 올려줄 테니 부산을 마지막이라도 봐봐.”
재민은 잠망경 앞으로 온다.
“중위, 현재민! 함장님 감사합니다!”
잠망경을 통해 부산이 보인다.
“이거…다 끝장났습니다. 군부대나 산업시설은 다 박살났는데…어?”
해운대해수욕장으로 잠망경을 돌린다.
“의외로 해운대는 좀 멀쩡합니다.”
함장은 고개를 까딱인다.
“그래? 의외네.”
“저기 해운대 안쪽 횟집에서 저희 부모님이 횟감을 파셨습니다…. 오, 아직 있습니다! 다른 데도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저기 클럽에서는 여자 몇 명 꼬시기도 했습니다.”
다들 웃는다. 잠시 후 재민은 잠망경을 닫는다.
“그래, 충분히 잘 봤어?”
“네, 감사합니다.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가봐.”
“네.”
그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떠난다.
재민은 권총을 차고 어뢰실 앞에 서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지휘실의 함장과 승조원들이 경보음을 듣는다.
“함장님, 1번 어뢰실이 개방됐습니다!”
“1번이라면…비었잖아.”
“함장님, 재민이가 없어졌습니다!”
“뭐라고? 빨리 1번 어뢰실로!”
함장과 승조원들은 1번 어뢰실 앞으로 온다. 해치를 열고자 하나 쉽게 열리지 않는다.
“현재민 중위! 현 중위, 들리나?”
해치가 열리고, 함장과 승조원들은 그곳을 확인한다.
“벌써 나갔습니다!”
함장, 지휘실로 뛰어가서 잠망경을 들여다본다. 바깥에서는 재민이 고무보트를 타고 해운대로 향한다. 함장은 잠망경에 달린 외부 스피커를 켠다.
“현재민 중위, 함장이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당장 복귀해!”
재민은 미소 지으며 조용히 경례한다. 함장은 한숨을 쉰다.
“지금이라도 괜찮아! 방사능 제독시설이 있으니까 당장 복귀해.”
“함장님, 죄송하지만 전 집에 갑니다.”
잠시 침묵.
“알았다. 무운을 빈다.
잠수함 회의실에서 승조원 48명이 함장 앞에 모여 있다.
“현 중위의 탈영은 너무 갑작스러워. 군 생활에서도 처음이야. 그래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보자. 의견 있나?”
승조원2가 손을 든다.
“어, 민준영 준위.”
“현 중위님은 저희 모두 아끼셨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헤어지는 건 도리가 아닙니다. 마지막에라도 작별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승조원3이 손을 든다.
“어, 전영진 대위.”
“재민이도 중요하지만, 현재 남은 승조원들과 강릉 시민들이 더 중요합니다. 내일 다시 볼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정박하는 건 무리입니다.”
우진이 손을 든다.
“박우진 소위, 말해봐.”
“저도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강릉에서 할 게 많습니다!”
“야, 우진아! 아무리 그래도 여기 애들 다 가족 같은데, 좀 이기적인 거 아냐?”
승조원4다.
“하지만…”
승조원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소란스럽다.
“조용!”
잠시 침묵.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한다. 현 중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오늘 하루 정박할지, 아니면 지금 바로 귀환할지 결정하자. 계급에 상관없이 다 동등하니까 자유롭게 손들어.”
“네!”
“자, 부산에 하루 정박한다 손!”
49명 중 31명이 손을 든다. 함장이 숫자를 센다.
“다수결로 정해졌으니 오늘 하루는 정박한다. 이상!”
성연은 방호복을 입고 방사능 폐기물 처리실에서 강민의 시신이 있는 침상을 민다.
“끙차, 끙….”
다른 침상들이 놓인 곳으로 끝까지 민다.
“으차, 으차…끙! 됐다.”
침상을 바라보며 어젯밤을 회상한다. 강민이 병상에 누워있고, 그 옆에 환자 모니터링 장치가 있다. 그 반대쪽에는 의료진이 서 있다.
“정말…감사합니다. 이제 여친에게 돌아갑니다.”
그가 눈을 감자 그의 심장박동이 멈추고, 장치에서 ‘삐-’소리가 난다. 성연은 눈물을 흘린다.
한숨을 내쉬며 시신을 바라보는데, 그 옆에 가방이 보인다.
뭐 있나?
강민의 일기장을 꺼내본다. 물에 약간 젖었고 흙먼지가 묻었다.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그의 일기를 펼쳐서 읽는다.
“2027년 7월 1일. 벌써…”
대피소에 사람들이 꽉 차 있다. 강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TV 뉴스를 보는데 ‘북한군, 핵무기 사용 결정’이라는 속보가 나온다.
‘벌써 공격했다. 하필 어제. 핵미사일은 아니었지만…곧 쏜다. 오늘 밤 자정까지 항복 안 하면 쏜다던데. 참담하다. 다들 지하로 대피하라지만 여긴 체육관이다. 이대로 죽는 걸까?’
대피소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있고 어떤 물건들은 아예 뒤집혔다. 피난민들 일부는 콜록거리고, 어떤 이들은 쓰러졌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고, 일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부둥켜안으며 울거나 계속 흔들며 일어나라고 말한다.
‘7월 2일. 결국 썼다. 씹새끼들…. 근처에서 터졌는데 여기도 날아갔다. 다 다쳤다.’
그가 옆을 돌아보자, 머리카락과 얼굴 일부가 타버린 여자가 앉아있다.
‘옆은 학교 선생님이다. 이름은 최새봄. 올해 임용. 첫해 전쟁이 나니…끔찍하다. 많이 울었다. 난 산 게 어디냐고 했지만…있는 건 먹을 거, 마실 거 조금. 군인도 죽었다. 어떡하지?’
강민은 새봄을 부축하며 산길을 걷는다.
‘7월 27일쯤. 둘뿐이다. 강릉이 안전하다지만 도착할지 모르겠다. 새봄 덕에 외롭진 않다. 강도도 피했고, 달래주니 힘을 낸다. 듬직하다. 자꾸 생각난다…’
마지막 장이다. 그는 홀로 큰 나뭇가지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강릉 시가지를 걷는다.
‘마지막 일기. 8월쯤. 새봄은 죽어서 뒷산에 묻었다. 도착했다. 강릉…. 살기 싫다. 왜 나만. 새봄이 보고 싶다. 다리도 떨리고, 앞이 가끔 흐려진다. 더 못 써. 한 마디 더…’
성연은 울먹이며 일기를 읽는다.
“한 마디 더…새봄아, 곧 가.”
결국 운다. 잠시 울다가 알림벨이 울린다.
“아, 벌써…!”
그녀는 가방과 일기장을 폐기물 용기에 넣은 뒤 처리실에서 나와 문을 닫는다.
“하, 참…좆같네, 진짜.”
우진은 잠수함 침상에 앉은 채, 머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옆에 ‘좆됐다,’ ‘개노답,’ ‘시한부’ 등 온갖 낙서가 적힌 그의 공책이 놓여 있다.
잠시 후 미래가 노크한다.
“우진아, 바빠?”
“아뇨.”
문이 열리고 미래가 들어온다.
“왜 그래?”
“소위, 박우진!”
“됐어.”
미래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다 공책을 본다.
“왜 그래?”
“생존자가 없어서요. 재민 중위님도 갔고….”
“그래서?”
말이 갈수록 흐려진다.
“뭐랄까, 남은 희망마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우진아, 일단 앉아서 두 손 다 줘볼래?”
우진은 침상에 앉아서 두 손을 내민다.
“네.”
미래는 우진에게 몸을 숙이고 두 손을 꼭 잡아준다.
“우진아, 앞으로는 지금 남은 거만 신경 쓰자. 알았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니까, 우리가 살날이 별로 없잖아. 그동안 절망하거나 난동 부리기보다는, 남 피해 주지 말고 보람 있게 보내자는 거야. 알았지?”
붙잡은 우진의 손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체념 아닙니까? 시한부 인생인데.”
“그래, 체념이야. 동시에 저항이야.”
“무슨 뜻이죠?”
“음, 우리가 끝까지 남한테 피해 주거나 서로 싸우다 죽으면 민폐잖아? 딴 사람 거 뺏는다거나, 잘못 없는 사람을 때린다거나 하는 거. 그건 곧 전쟁 일으킨 새끼들이 원하는 거고.”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는 옆에 공책과 샤프를 든다.
“잠깐 써도 돼?”
“네.”
미래는 버섯구름과 사람들을 스케치한다.
“생각해 봐. 이미 핵전쟁이 났어. 그래서 많이 죽었잖아?”
“네.”
버섯구름 아래의 사람들에는 X 표시를 하고, 구름 옆에 바람 모양 무늬를 그린다. 바람 아래에도 사람들을 그린다.
“그리고 이젠 낙진이 와서 나머지도 곧 죽어. 핵 터진 곳에 있었거나 전쟁 일으킨 사람들도 거의 다 죽었을 거고.”
“네.”
“결국 다 죽어.”
“네.”
“근데 이미 전쟁은 끝났고, 다 같은 신세잖아?”
“네.”
“그럼 우진아, 남은 사람끼리 뭘 하면 될까?”
뭐가 좋을까…이미 지난 걸 욕할 수도 없고.
“막 서로 싸우기보단,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 뭘 얘기할까?”
“예를 들면…마지막까지 뭘 먹을지, 뭘 마실지, 뭘 하며 놀지를 말입니다.”
미래는 고개를 조금씩 끄덕인다.
“맞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다행히 정할 수 있어. 강릉에도 먹을 게 많고.”
“네, 다행입니다.”
우진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 미래는 공책에 무언가를 적은 뒤 보여준다.
“이게 뭐죠?”
“내가 인스타에서 본 말이야. 난 정말 맞다고 보는데 넌?”
“저도입니다.”
미래는 우진을 보며 미소짓는다.
“그럼 우진아, 우리 약속 하나만 할까?”
“어떤 거요?”
“적어도 우리만큼은, 딴 사람 피해 안 주고 행복하게 지내다 가기. 어때?”
잠시 침묵.
“네, 약속하겠습니다.”
둘은 서로 약속하는 손가락을 짓는다.
“그래. 그럼 잘 지내고, 앞으로 뭐할지 고민해 봐. 난 간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미래가 나가며 문이 닫힌다. 우진은 공책에 적힌 문구를 본다.
‘우리의 역량은 무너지기 전이 아닌 무너진 후에 결정된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69mSv/100mSv이다.
재민은 고무보트에 앉아 콜라를 마시며 낚시 중이다. 그의 옆에서 잠망경이 올라간다.
“안녕, 현 중위.”
“중위, 현재민!”
“몸은 좀 어때?”
“아직 괜찮습니다.”
“다행이다.”
재민은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한다.
“어제 일은 죄송합니다. 항명하려던 건 아닙니다.”
“괜찮아. 상관없어. 근데 고통 없이 죽을 방법은?”
재민은 권총을 보여준다.
“여기 한 발 있습니다.”
“그래. 뭐 좀 잡았어?”
“아직 못 잡았습니다. 근데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해봐.”
“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습니까?”
“짧게는 4~5일, 길게는 일주일.”
“네, 감사합니다.”
“우린 다시 안 올 건데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저는 가족들 옆에서 죽겠습니다.”
“그래, 식구분들은?”
“집에 가니까 다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이게 있었습니다.”
그는 파란 십자가를 새긴 약통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약을 잡수시고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아 재민 중위!”
“네!”
“남은 승조원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던데. 들어줄 수 있나?”
“네, 물론입니다.”
48명의 승조원이 차례로 재민에게 인사를 나눈다. 재민은 인사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웃거나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윽고 함장은 마지막 차례로 인사한다.
“현재민 중위는 내 최고의 후임 중 하나야. 잊지 마.”
“저도 함장님이 최고였습니다.”
“그럼 안녕. 다음 생에서도 꼭 보자.”
재민은 경례한다. “네!”
밖으로 나온 잠수함은 다시 항해한다.
함장이 미래에게 다가가서 CD 하나를 건넨다.
“정 중위.”
“네!”
“이거 하나 틀면서 분위기 좀 띄워줘.”
“네!”
잠수함 내부에 ‘아이유’의 「Love Wins All」이 울려 퍼진다. 다들 떼창하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몸을 흔든다.
“저기 멀리 from Earth to Mars, 꼭 같이 가줄래-”
“그곳이 어디든 오랜 외로움, 그 반대말을 찾아서-”
함장은 조리실로 찾아간다. 조리병들은 식기를 꺼내 밥 준비를 한다.
“꽃등심이랑 배추는?”
“네, 많습니다.”
“소주랑 맥주도?”
“네. 가득 쌓였습니다.”
“그거 싹 다 꺼내.”
함장은 웃는다.
“오늘은 파티다!”
“네!”
다들 식당에서 음악을 들으며 맛있게 밥을 먹고 술도 마신다.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몸을 흔들며 떼창한다.
“자, 우진이 너도 한잔!”
“그날 그 밤처럼, 나와 함께 겁 없이 저물어줄래-”
“자, 미래랑 기범이도 한잔!”
“산산히 나를 더 망쳐 ruiner 너와 슬퍼지고 싶어 my lover-”
“함장님, 근데 적한테 안 들킵니까?”
“상관없어. 다 용왕님 만났겠지.”
“알겠습니다! 마음껏 즐기겠습니다!”
깊은 바닷속에서 노래와 함성이 울려 퍼진다.
“Our love wins all- love wins all- Love, love, love, love-”
병원에서 의사는 간호사 옆 책상에 앉아서 작업한다. 성연은 책상 앞에 앉아있다.
“성연님, 어제 좀 늦으셨는데 무슨 일이었나요?”
의사다.
“아, 네. 뭐 보느라요.”
“뭘요?”
“일기장이요. 강민님 꺼.”
“그래요? 뭐라고 쓰셨어요?”
“대피소랑 여친 분 얘기요. 좀 울었어요.”
성연은 순간 흐느낀다.
“그러셨군요. 성연님, 일단 기운 내시고요. 하나 더 물어볼게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다.
“네네. 말씀하세요.”
“혹시 일기장에 여친분 무덤 위치도 나왔나요?”
“네, 대충 나왔어요.”
“어디죠?”
“강릉 서쪽에 철도길 근처니까…가봐야 알 것 같아요.”
“알겠어요. 피폭 시신 처리 업체 부를 테니까 직원분들께 여친 분 무덤 위치 알려주시겠어요? 병원에도 방호복 달라고 말씀드릴게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간호사님은 사망신고서 문항을 좀…”
저녁이 되자 간호사와 의사, 성연은 병원 로비서 다시 만난다.
“자, 다들 고생하셨고 이제 곧 퇴근하죠.”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와 의사가 멀어진다. 성연은 출구로 향하다 발을 돌려 그들을 따라간다.
“저기, 선생님! 지금 바쁘세요?”
“아뇨, 말씀하세요.”
“혹시 강민님께 주신 약, 더 있으신가요?”
“네, 있어요.”
“지금 2개만 주시겠어요?”
“아뇨, 안 됩니다. 때가 되면 나옵니다.”
“사실 그게, 제가 해군 장병분을 기다리는데요, 제때 못 오실까 봐요….”
잠시 침묵.
“알겠습니다. 간호사님! 성연님께 주세요.”
“네.”
간호사는 잠시 자리를 비운다. 잠시 후 파란 십자가를 새긴 약통을 들고 온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약통을 가방 속 보이는 곳에 넣고 간다. 가면서도 종종 약통을 쳐다본다.
재민은 어둑어둑한 집에서 가족들 시신을 거실 소파로 옮긴다.
“으, 차가.”
시신을 모두 옮기고 소파 가운데 앉는다.
“좀 무서운데….”
구역질하다가 약간 토하며 손으로 입을 가린다.
“어라?”
손에 피가 묻는다. 아까 콜라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이제 가야지.”
그가 권총을 장전하고, 자신에게 권총을 겨눈다. 식은땀이 난다.
유언은 뭐가 좋으려나? ‘충성?’ ‘필승?’ 아니면…역시 기본적인 게 낫겠지.
“엄마, 아빠. 지금 갑니다!”
탕.
강릉 인근서 방호복을 입은 성연과 신부, 그리고 인부 2명이 두 무덤 앞에 서 있다. 한쪽은 강민, 옆쪽은 여친의 무덤이다. 일행 뒤에는 트럭 한 대가 있다.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천국에 가셨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부다.
인부1은 삽을 든다.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합니다.”
인부2는 손전등을 챙긴다.
“네, 가야죠.”
신부와 인부들은 자리를 떠난다. 성연은 두 무덤을 보면서 가만히 서 있다. 신부는 뒤를 돌아본다.
“성연님, 빨리 가셔야죠.”
“아, 네! 가요!”
그녀도 자리를 떠난다. 한 번 더 무덤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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