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붕이들 ㅎㅇ
예전에 폴아웃에도 영향을 줬다던 네빌 슈트의 해변에서를 로컬라이징해서 소설로 만들어봄.
모 공모전에 제출한 건데 잘 되면 좋겠음.
그럼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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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73mSv/100mSv이다.
강릉의 캠핑장에서 자동차들이 모여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고, 그 가장자리에서 페라리를 탄 양아치가 운전석에 누워있다. 페라리에 다가온 캠핑장 주인(이하 주인)이 창문을 두드리자, 양야치는 창문을 내린다.
“누구세요?”
“고객님, 이용료 안 내신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시겠어요?”
“아니, 갈 데도 없고 호텔들도 비싼데 어디로 가요?”
“네, 알아요. 하지만 차가 있으신 분들은 다 내셔요. 그게 아니시면 나가시고요.”
잠시 침묵.
“네. 좀 있다 드릴게요.”
“오늘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예요.”
양아치는 페라리를 몰며 시내 외곽으로 나선다. 거기엔 철조망과 바리케이드, ‘G 섹터 검문소,’ ‘무허가 차량 발포’ 등의 표지판과 함께 군 초소가 세워져 있다.
“하…. 아직 있나?”
군 초소로 다가가서 주위를 살펴본다.
“누구 없어요?”
초소에 들어간 다음 그곳을 뒤적거린다.
“하나는 있을 텐데.”
순간 놀란다.
“뭐야!”
권총을 들고 죽은 군인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내 읽는다.
“유언장. 안녕하세요. 저는 강릉의 G 섹터 초소를 지키는…아, 노잼.”
시신의 손에서 권총을 빼내어 장탄 수를 확인한다.
“오, 개이득!”
양아치는 페라리를 몰고 주인 사무실 근처로 다가간다. 권총을 숨기고 내려서 초인종을 누른다.
“계세요?”
“네, 나가요.”
주인은 문을 연다.
“무슨 일이죠?”
“밀린 거 낼게요.”
“네, 주세요.”
양아치는 권총을 주인에게 겨눈다.
“이거면 될까요?”
주인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아아, 지금 뭔 짓 하세요…네?”
“에이, 왜 그래요. 한 달이나 안 사이끼리.”
그가 뒤로 조금씩 물러서자 양아치가 다가간다.
“에헤이. 꼼짝 마시고, 소리도 지르지 마쇼잉, 네? 어차피 경찰 불러도 대가리 날라갑니다잉.”
“원하시는 게 뭐죠?”
“그냥 다른 건 없고, 차 기름하고 물이랑 먹을 거 좀 주쇼.”
그는 숨을 헐떡인다.
“아, 네네. 잠시만요.”
그는 양아치의 요구에 따라 남은 연료와 음식을 준다. 양아치는 그걸 페라리에 싣고 창문을 연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잉!”
페라리가 떠난다.
“해군 장병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건배!”
데스티니 술집에서 해군 승조원들과 시민들이 웃으며 술을 마신다. 술집에서는 ‘Sheldon Allman’의 「Crawl Out Through the Fallout」가 울린다. 성연은 술집의 안쪽으로 들어가 해진을 발견한다.
‘낙진을 지나 기어와, 자기- 폭탄이 떨어질 때-’
“어? 교수님 뭐하세요?”
“어, 그냥 한잔 걸쳐.”
“아, 그러셨군요.”
‘백혈구 지수가 높아지면- 빨리 서둘러-’
그녀는 교수를 훑어본다.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죠?”
“불편하지.”
“어디가요?”
“많이 미안해서. 못 막았잖아.”
“어떤…거요?”
“핵전쟁.”
‘자기가 폭심지에 있을 때- 자기의 영웅을 생각해-’
그녀는 잠시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미소 짓는다.
“아…. 근데 교수님 잘못 아니세요. 윗대가리 잘못이죠.”
“그래도, 이렇게 된 게 내 책임 같아. 늘 미안해.”
“괜찮아요, 교수님. 그래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다른 거 하시면 어때요?”
“어떤 거?”
‘길을 못 찾겠거든- 그냥 내 노래나 들어줘-’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 강민의 일기장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기록하시는 거죠.”
“기록?”
기록이라면 뭐가 있으려나? 역사서, 회고록, 아니면…
‘낙진을 지나 내게로 기어와 줄래-’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래를 본 다음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럼 내일부터, 너 말대로 기록해야겠어!”
“어떤 거요?”
“이것저것 다! 혹시 있을 후손들을 위해 같은 실수 반복 안 하게 철저히 조사할 거야. 아직 도서관 문 열잖아.”
“좋은 생각이에요!”
우진이 그들 사이로 걸어온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냥…그런저런 일이에요.”
“앞으로 뭘 할지 얘기 좀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 대화한다.
‘낙진을 기어 지나와- 최대한 침착하게-’
한편 술집 구석에서 양아치가 성연을 노려보며 권총을 만지작거린다.
술집 밖에서 사람들이 헤어진다. 사람들 사이에 성연과 우진이 서 있다.
“솔직히 무서워요.”
성연이다.
“뭐가요?”
“곧 죽는 거요. 죽기 싫어요.”
“알아요. 근데 어차피 죽는다면…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어려울 것 같아요.”
성연은 등을 돌린다.
“이만 가볼게요.”
성연이 우진에게서 멀어지자, 양아치가 다가온다. 그녀는 양아치를 쳐다본다.
“누구세요?”
“저기 죄송한데요.”
그는 문이 열린 페라리를 가리킨다.
“이 차에 타세요.”
그녀는 뒷걸음질한다.
“누구신데요?”
계속 뒷걸음질하다 그는 그녀의 팔을 확 잡아챈다.
“아, 거 말 존나 안 듣네.”
그는 권총을 꺼낸다.
“좋게 말할 때 빨리 타.”
“왜 이러세요? 싫어요. 그거 어차피 장난감이잖아요!”
하늘로 몇 발을 발사한다.
“이 씨발년이, 빨리 안 타?”
다들 양아치를 쳐다본다. 그는 총을 겨누며 주위를 둘러본다. 우진과 미래도 권총을 꺼내서 양아치에게 겨눈다.
“살려주세요!”
“좀 따라오라고. 거 왜 일을 좆같게 만들어.”
“그 손 놔!”
“시발 군바리 새끼. 어차피 뒤지는데, 확 놀아야지!”
“니만 그래? 우리 다 힘들어!”
“그니까 시발 화끈하게 따먹어야 할 거 아냐!”
미래는 우진에게 속삭인다.
“우진아, 내가 할게.”
미래가 양아치 앞으로 약간 다가간다. 양아치는 살짝 물러서서 성연을 겨눈다.
“니는 안 억울하냐?”
“응, 암 것도 못하니까 존나 억울한데?”
“알아. 하지만 어차피 우리 다 뒤질 건데, 이런 거 안 부끄럽냐?”
“뭔 개소리야?”
“여기서 누구 죽이면, 나 같아선 억울해서 두 번 뒤지겠는데? 우리가 일으킨 전쟁도 아닌데 꼭 이렇게 뒤져야겠냐?”
양아치는 침묵하며 땅을 쳐다본다.
“너나 나나 쏘면, 전쟁 일으킨 새끼들이랑 뭐가 다른데?”
그는 잠시 주위를 돌아본다. 아 씨발, 어그로 존나 끌리네. 글렀다. 튀자.
“있지, 솔직히 딴사람도 너처럼 하고 싶어해. 하지만 그건 스스로 망치고 좆같게 만드는 거거든. 그렇게 죽고 싶어?”
“그럼 난 어쩌라고?”
“그냥 피해 주지 말고, 조용히 꺼져서 원하는 거 해. 성연이도 괜찮지?”
“아, 네네. 총만 압수해요. 어차피 감옥도 못 가니까….”
잠시 침묵 후, 양아치는 성연을 놓아준다.
“중위님, 제가 총 받겠습니다.”
“그래.”
그는 총을 돌려서, 총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잡이는 우진 쪽으로 맞춘다.
“어, 그래그래. 좋아. 이리 줘.”
우진은 총을 잡는다. 양아치는 고개를 여러 번 숙이며 뒷걸음질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들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뒷걸음질하다가 페라리를 타고 도망간다. 사람들은 도망가는 양아치를 바라보고, 잠시 후 성연은 우진과 미래에게 고개를 돌린다.
“저기, 감사해요.”
우진이 미소 짓는다.
“아, 뭐 이런 걸 가지고….”
“아무튼 우진아, 잘했어.”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79mSv/100mSv이다.
대도호부관아에서 시민들이 소고기를 구워 먹는다. 선물 이벤트가 열리는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거나 놀고 있고, 어느 일행은 호주 민요 ‘왈칭 마틸다’를 한국어로 노래한다.
“왈칭 마틸다 왈칭 마틸다- 넌 나와 방랑 생활을 떠날 거야- 그리고 양철통이 끓기를 기다리며 노래했네- 넌 나와 방랑 생활을 떠날 거야-”
성연과 우진은 추첨 이벤트 부스 앞에 서 있다.
“자, 이번에 당첨되실까요? 두구, 두구, 두구, 두구….”
“성연은 상자에서 종이 하나를 뽑아서 보여준다.”
“자, 조성연님 1등 당첨!”
진행자는 성연에게 금팔찌 한 쌍을 준다.
“와, 1등! 감사합니다!”
그녀는 우진을 돌아본다. 우진이 웃으며 말한다.
“진짜 좋네요.”
“그러게요.”
“늘 오늘만 같아라!”
우진은 기지개를 펴지만, 그녀는 그의 눈길을 피한다.
“아…네. 그래야죠.”
“그리고 자네가 연못을 지날 때 유령이 있을지 모른다네- 넌 나와 방랑 생활을 떠날 거야-”
강릉시립도서관에 들어간 해진은 안내데스크로 간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도서관 자료 좀 복사할 건데요. 혹시 보존 프로젝트 같은 거 있나요?”
“네, 저희 강릉시에서는 수많은 자료와 기록을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시청 주도로 납 상자에 자료들을 넣을 거고요.”
“아, 그랬군요. 저도 좀 껴도 될까요?”
“네, 알아보겠습니다. 성함 알려주시겠어요?”
“신해진입니다.”
“잠시만요. 통화를 해보겠습니다.”
안내원은 잠시 시청과 통화한다.
“네, 선생님. 저희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도 시에서 보존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참여도 가능하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일단 강릉시청에 문의해 주세요. 그리고 따로 보존을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납 상자를 무료로 받으시는 것도 가능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안내원과 해진은 인사하고 헤어진다.
해진은 도서관의 자료들을 프린트하거나 USB에 넣는다. 이윽고 도서관이 닫을 시간이 되자 밖으로 나간다.
주인은 캠핑장 사무실에서 알바생과 통화한다.
“어 그래, 그래. 너도 한 번 와. 응, 당연히 공짜고, 여기서 일했으니까 충분히 볼 수 있지. 어차피 마지막이고. 그래, 고마워. 그때 보자. 안녕. 어.”
그는 전화를 끊고 사무실에서 서류를 바라본다. 서류들에는 ‘강릉 레이싱 그랑프리,’ ‘최후의 생존자 모집,’ ‘매드 맥스 in 강릉’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그럼 레이싱까지…3일 남았다!
주인은 컴퓨터 책상에 앉아 레이싱 참가자 목록을 본다. 거기에 ‘벤츠 A클래스,’ ‘지프 랭글러,’ ‘현대 포니’ 등의 차종과 운전자의 명단이 적혀있다.
마감이지만 한 사람만 더, 한 분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그 사람 부를까? 근데 총 있는데.
주인이 의자에 앉아 문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울린다. 그는 문 앞으로 나가서 현관 CCTV를 본다.
“누구 없어요?”
주인은 입을 떡 벌린다.
“저기 죄송한데 더 이상 가진 게 없어요! 그냥 돌아가세요!”
“그게 아니라요. 기름이랑 먹을 거 돌려주고 사과하려고요. 총도 이제 없어요. 뺏어서 죄송합니다.”
주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 그래요? 그럼 문 앞에 두고 가시고, 다신 오지 마세요.”
“그리고 한 달 치 이용료도 낼 건데, 알바해서 내도 돼요?”
“어차피 다 죽을 건데 뭐하러 해요. 그냥 가세요.”
양아치는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빈다.
“제발요. 저 이거 못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 그래요.”
그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정말 돈 갚을 거예요?”
“네, 뭐든지, 뭐든지 할게요! 알바라도요!”
주인은 문을 살짝 연 뒤 양아치를 문틈으로 쳐다본다.
“정말 돈 주시는 겁니까?”
“네, 이제 총도 없어요.”
양아치는 일어서서 주머니를 뒤져서 보여준다.
“봐봐요, 없잖아요.”
“근데 알바생도 다 집 갔는데…뭐든지 하겠다 했죠?”
“네, 제발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주인은 문을 닫고 책상에 가서 레이싱 홍보 책자를 꺼낸다. 이거면 되겠지.
그는 돌아와 문을 연다.
“그럼 여기 나가보셔서 1등하시고 상금은 포기하세요.”
책자를 건넨다.
“뭔데요?”
책자를 받아서 본다.
“아, 네. 한 3일치 먹을 거랑 차 기름 좀 주시면 꼭 갈게요.”
“알겠어요. 날짜와 위치는 거기 있어요. 그때 오시면 현장등록 해드릴게요. 사전예약 마감돼서요. 그리고 3일치 꺼 가져가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꼭 이길게요!”
주인은 문을 닫는다. 양아치는 문 앞에 놓은 짐에서 약간의 연료와 식량을 챙기고 페라리로 돌아간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85mSv/100mSv이다.
우진과 성연은 경포호수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밥을 먹는다.
“와, 맛있어요!”
“고마워요.”
그녀가 그의 입에 반찬을 넣어주자 맛있게 먹는다.
“성연님.”
“네.”
“저희 말 놓을까요?”
“응.”
서로 웃는다.
“이제 내가 밥 줄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 해봐.”
“아~”
반찬이 성연의 입으로 들어가려 할 때, 페라리가 옆 도로를 쌩하고 지나간다. 반찬을 돗자리 바깥에 떨어트린다.
“아 씨…뭐야!”
“아, 재수 없어!”
그들은 멀어지는 페라리를 쳐다본다.
“저 새끼 그냥 쏠걸.”
“그러게. 우린 남은 거 먹자!”
그들은 잠시 후 밥을 다 먹는다.
“와! 잘 먹었다!”
우진이다.
“어, 나도.”
“누가 알려줬어?”
“엄마가.”
“아, 어머님? 잘 먹었다고 전해드…”
잠시 침묵. 그녀의 표정이 굳는다.
“아, 미안해.”
“아냐, 아냐.”
“괜히 얘기 꺼냈다. 미안해.”
“아냐, 그냥….”
서로 눈길을 피한다.
데스티니 술집에서 다들 먹고 마신다. 한편 사장은 스탠드만 켜진 사장실에서 술을 마시며 가족사진 액자를 만지작거린다.
자기야, 얘들아…잘 있지? 3일만 지나면 나도 따라가. 기다려 줘.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사장님, 저예요.”
“아, 너구나. 들어와.”
사장이 문을 열고 종업원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와인이 스무 병 정도 남았는데…뭐하세요?”
“그냥 한잔 걸쳐.”
그는 책상의 술을 가리킨다.
“아 네. 죄송한데 저 사진은 뭐에요?”
“아, 가족사진. 우리 집사람, 공주님 두 명.”
“가서 봐도 돼요?”
“어.”
그들은 책상으로 가서 사진을 본다.
“여기.”
그는 액자를 집어 종업원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받는다.
“행복하셨겠어요. 잘 어울려요.”
그가 미소 짓는다.
“그래, 고맙다. 근데 이 세상에 없어.”
“아…설마 돌아가셨나요?”
“거의 그래. 유학 갔다가 방학 돼서 엄마랑 같이 오기로 했는데….”
살짝 흐느낀다.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너희 둘 덕에 버티는 거야. 고마워. 있어 줘서.”
“아니에요.”
카운터, 사장실 문을 두드린다.
“사장님, 저희 잔돈이 없어요.”
“제가 갈게요.”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종업원은 문을 열어준다. 카운터는 사장을 보고 순간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저러셔?”
카운터가 속삭인다.
“너도 잠깐 와봐.”
그들은 사장에게 걸어간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91mSv/100mSv이다.
우진과 성연은 허난설헌 기념관 좌석에 금팔찌를 찬 손을 서로 맞잡은 채 나란히 앉아있다.
“허난설헌은 아까워.”
“그러게.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우리도 평화로울 때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휴지에 대고 기침한다.
“왜 그래?”
휴지에 피가 묻어 있다. 그가 놀라고 그녀는 흐느끼며 운다.
“헐,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나 너무 무서워.”
말할수록 성을 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죽어야 해?”
“죽는 거? 나도 억울해…. 하지만 그냥 사는 게 나아. 왜냐하면…”
“솔직히 지겨워. 피곤해. 다 귀찮아.”
“하지만 성연아, 아직 시간이…”
“언제까지 그런 말만 해? 맨날 그러잖아!”
그는 바닥을 보며 침묵한다.
“됐어. 나 이제 그냥 갈래. 안녕.”
그에게 그녀의 금팔찌 하나를 준다. 그녀는 떠나고, 그는 바라본다. 잠시 후 하늘에서 점차 헬기 소리가 들리며, 헬기가 하늘을 가른다.
함장과 미래가 웃으며 헬기를 조종한다. 시끄러운 노래가 들린다.
“히~하! 베트남에 온 기분입니다!”
함장이 미소 짓는다.
“그래, 멋있네.”
“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함장님은 어떠십니까?”
“난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됐어.”
“그럼 언제 가십니까?”
함장은 눈을 감는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가 다시 눈을 뜨고, 손으로 바다를 가리킨다.
“이틀 뒤에! 승조원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돌아간다!”
미래도 웃는다.
“역시 함장님이십니다! 그럼 저도 할 거 찾고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 웃고, 헬기가 저 멀리 사라진다.
해진은 시청 민원실로 간다. 차례가 되자 담당자에게 자료 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힌다.
“이렇게 해서 내일 작업이 다 끝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근데 저도 납 상자를 갖고 싶은데요.”
“자료는 있으신가요?”
“네, 차에 있습니다. 가져올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일단 늦었으니까 내일 가져오세요. 그럼 저희도 상자 드릴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해진은 시청을 나오며 석양을 바라본다.
하루에서 이틀….
주먹을 불끈 쥔다. 그래, 고생해 보자!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에 타서 시동을 건다.
해군기지 앞에서 우진은 성연에게 전화한다.
“여보세요? 어, 성연아. 잘 지냈어?”
“아니, 별로. 왜?”
“아 다름이 아니고, 내일모레 안락사약 주잖아. 그래서 너랑 같이 먹고 싶은데.”
“말했잖아, 난 죽기 싫어. 몇 번을 얘기해?”
“아니, 어차피 다 죽잖아. 난 너 보고 싶어. 나나 너나 그날 죽는데 혼자는…”
“너 어디 모자라? 난 애초에 죽기가 싫다고!”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린…사귀잖아. 적어도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성연도 기숙사 밖에서 통화한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난 죽어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오래 살고 싶어. 넌 안 억울해?”
“아니, 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누구는 죽고 싶어서 죽어?”
“언젠간 죽겠지만, 너랑은 싫어. 맨날 뻔한 소리나 하잖아?”
“아, 진짜! 나도 죽기 싫다고 몇 번을 말해!”
“갑자기 너 왜 소리쳐? 나한테 화내냐?”
“나도 떠나보낸 동기가 몇 명인진 알아? 답답하잖아!”
“아, 됐어. 이런 얘기 피곤하니까 하지 말자.”
“알았어. 맘대로 해. 끊어.”
전화가 끊긴다. 그가 기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함장이 서 있다. 우진은 얼굴을 붉힌다.
“소위, 박우진! 안녕하십니까, 함장님!”
“아, 박 소위. 좀 시끄러워서. 잘 안 풀렸어?”
“네, 실패입니다. 용기 냈지만 결국 망쳤습니다.”
함장이 우진에게 다가간다.
“박 소위.”
“네.”
“안타까워. 나도 옛날에 여친이랑 다투고 헤어졌어. 충분히 이해해.”
“아,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진짜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뭘 할지 고민해 봐. 중요한 순간은 도둑같이 오니까.”
“네.”
우진은 문 앞에 나온 미래와 함께 들어간다. 함장은 밖에서 뒷짐을 지고 저 멀리 바다를 돌아본다.
손님이 북적이는 대학 카페에서 성연과 시민1이 앉아있다.
“그랬구나.”
“어. 깨졌어.”
“안 됐다. 잘 맞았는데.”
“뭐 어때. 그래도 너 덕분에 살아.”
“그래. 야 근데 너 커피 4잔째야? 잠 못 자!”
“뭐 어때. 어차피 곧 죽어.”
“그래, 알았어. 나 내일 레이싱 때문에 갈게.”
“그래. 잘 가.”
시민1은 자리를 뜬다. 성연은 시민1의 뒷모습을 보며 턱을 괸 채 한숨을 쉰다.
나도 가족이랑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미래에게 문자를 보낸다.
‘선배님, 뭐하세요?’
‘어, 우진이랑 얘기 좀 했다가 씻으려고.’
‘소식 들으셨나요?’
‘응, 들었어. 내가 미안해.’
‘아니에요. 저 많이 외로운데, 함께 가주실 수 있으세요?’
‘미안. 난 혼자 헬기 타고 갈 거라. 많이 힘들어?’
‘지금 전화 가능하세요?’
그녀는 카페 밖에서 그와 통화한다.
“아, 네네.”
“그래서 우진이도 많이 힘들어해.”
“그렇군요.”
그는 해군기지 밖에서 통화한다.
“성연아, 근데 있지.”
“네, 말씀하세요.”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어.”
“무슨 뜻이에요?”
“뭔 소리냐면 세상이 내일 당장 망해버려도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애인이든, 적어도 내 옆에 누가 있어야 덜 외롭고 덜 힘들다는 말이야.”
잠시 침묵.
“아, 네네.”
“그래서 우진이도 많이 고심해. 미안해하고. 물론 누구나 죽고 싶진 않아. 그건 맞아. 하지만 내가 봤을 땐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단 너희 둘 다 서로 사과하는 게 어떨까 싶어. 결정은 너가 해. 난 조언만 할게.”
“네네.”
“이건 내가 서로 소개해 줘서 그런 것만은 아냐. 너희들은 내 소중한 후임이고 후배잖아. 그래서 뭐가 더 좋은지에 대해서 말만 하는 거야. 너희도 나처럼 후회하기 싫을 거 아냐.”
“아…전에 말씀하신 그 동기분?”
“어 맞아. 내가 걔랑 전쟁 바로 전날에 롤하다가 졌잖아. 지고 돈 줘서 걔한테 싸가지 없게 대한 거.”
미래는 살짝 흐느낀다.
“전쟁 때 걔가 인천으로 전출되고 나서 영영 사과 못한 거. 난 지금도 마음이 정말 아파.”
“아, 네…괜히 생각나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건 없고, 그냥 어떤 게 너한테 마지막에 더 좋을지 고민해 봐.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알았지?”
“네. 선배. 감사합니다.”
“그래, 고마워. 아 근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내일 헬기 타고 레이싱 찍거든. 그래서 일찍 잘 건데, 전화 끊어도 돼?”
“아, 레이싱. 알아요. 마지막이라면서요. 먼저 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네.”
전화가 끊긴다. 그녀는 카페 앞을 걷다가 달을 쳐다본다. 어떡하지? 화해할까, 아니면 그냥 나대로…아, 모르겠다.
뒷짐을 진 채 카페 앞에서 왔다갔다 한다.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108mSv/100mSv이다.
미래의 헬기가 하늘을 날며 경기장을 녹화 및 중계하고 있다. 도로에는 양아치의 페라리를 포함해 포니, 싼타페, 랭글러, 랜드로버(이하 랜드), 레토나, 에쿠스, A클래스(이하 A), 레이 등의 차량이 카메라를 부착한 채로 모여 있다. 중계석에는 주인과 보조 중계자가 헤드셋을 끼고 앉아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강릉 캠핑장 주인인 오석철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강릉 최후의, 아니 어쩌면 인류 최후의 레이싱을 곧 보실 텐데요. 참가자분들께서는 출발시간 지키시고 열 바퀴를 도시는 걸 빼면 지키실 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음껏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하시면서 달려 주세요!”
“또 관객분들께서는 저기 나오는 스크린과 강릉 MBC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구도에서 레이싱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중계해주시는 해군 장교이신 정미래 중위님께 이 자리를 대표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다들 준비되셨죠?”
자동차 운전자들이 “네!”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10, 9, 8,…”
양아치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부릉, 부릉’ 소리를 내고 담배를 피운다.
“씨발, 쩔겠네.”
“4, 3, 2,…”
“가즈아!”
“출발!”
자동차들이 출발한다. 헬기가 차들을 따라다니고, A가 제일 앞선다. 그 뒤로 레토나, 에쿠스가 따라간다. 페라리는 맨 뒤에 있다. 중계석은 차들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
“자, 지금 시작한지 1분 정도 지났는데 아직 크게 보이는 건 없죠?”
“네. 근데 맨 뒤에, 랭글러랑 페라리 쪽에 있는데요.”
페라리가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랭글러가 앞길을 막는다. 페라리가 경적을 울린다.
“빵빵거려도 소용이 없죠.”
“네. 비켜줄 수가 없으니까요.”
레이가 조금 뒤처지자, 랭글러 옆으로 온다. 페라리는 잠시 코스를 벗어났다가 그 둘을 앞지른다.
“뭐, 일단 꼴찌는 아니네요. 더 지켜보죠.”
한편 시민1, 시민2, 시민3, 시민4(이하 4인방)는 관중석에서 레이싱을 지켜본다.
“와, 진짜 치열하다!”
“그러게. 저러다 사고 나면 어떡해.”
“뭐 어때. 다 어른이고, 이래 죽든 저래 죽든 마찬가지지.”
“당신은 왜 그런 말을 해? 누구 죽을 일 있어?”
“아니, 다들 죽는 거 감수하고 온 거니까.”
“자자, 다들 지방방송 끄시고 일단 지켜봅시다.”
페라리는 어느새 6등이다. 그의 사이로 싼타페와 랜드가 주행 중이고, 두 운전자끼리 무전기로 대화한다.
“여긴 태양, 3시 방향 페라리.”
“여긴 대지, 9시 방향 확인.”
“햄버거 고고?”
“고고!”
랜드와 싼타페가 페라리의 양옆으로 다가온다. 양아치는 둘을 번갈아 본다.
“뭐야?”
둘이 간격을 좁히자, 양아치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 사이로 포니가 들어와서 충돌한다. 양옆의 차들이 빠져나가자 포니는 결국 미끄러져서 벽에 충돌한다. 중계석은 입이 떡 벌어진다.
“아, 결국 한 분 탈락. 안타깝네요.”
“네, 첫 번째 탈락자 발생했습니다.”
전광판에 ‘탈락자 1명’이라는 문구가 생긴다.
“네, 과연 페라리가 앞지를까요? 당하면 뼈도 못 추려요!”
“그러게요. 어? 근데 랭글러에게 비켜줍니다.”
페라리가 랭글러에게 길을 내준다. 랭글러가 속도를 더 올리자, 싼타페와 충돌한다.
“오! 랭글러의 공격!”
“와, 과연?”
랜드는 랭글러의 옆을 공격한다. 그러나 랭글러는 별 타격 없이 랜드의 옆을 공격한다. 이에 싼타페가 다시 랭글러의 옆을 공격해서 붙어버린다.
“네, 세 차량, 아주 딱 붙어버렸어요!”
“이야, 대단한데요? 역시 지프차!”
갑자기 랭글러가 옆으로 미끄러지자 싼타페와 랜드도 튕겨나간다. 싼타페와 랜드는 서로 충돌해 폭발하고, 랭글러도 양옆으로 빙빙 돌다가 결국 한 바퀴 뒤집힌다.
“와! 한 번에 세 분! 게다가 폭발!”
“네, 세 분 탈락했습니다! 끝내주네요!”
전광판에 ‘탈락자 4명’이라는 문구가 생긴다.
미래도 차들을 따라다니며 전광판을 본다.
“와, 존나 아슬아슬하네.”
양아치는 사이드미러로 부서진 차들을 보고 손짓한다.
“후! 잘 가라, 병신들아.”
관람객들 다수가 놀라고, 일부는 환호한다.
“이야! 밟아라 밟아! 다 죽여버려!”
“와, 저게 사람이 할 짓이냐? 못 보겠다, 못 보겠어!”
일부는 퇴장한다. 한편 시민1은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가린다.
“아! 못 보겠어!”
“그래. 대신 알려줄까?”
“어, 어. 그렇게 해줘.”
“아, 근데 진짜 다시 없을 경기긴 하네요.”
“그러네요. 이게 참, 운명이니까요….”
전광판에서 페라리를 비춘다.
레이싱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해진과 직원들은 납 상자들을 옮기며 작업한다. 해진은 끙끙거리며 말한다.
“근데, 이거 다 어디다 둬요?”
“여러 군데요. 일단 주요 시설 지하에 매장했고요. 이제 제왕산 정상까지…”
직원1은 상자들을 가리킨다.
“얘네들을 옮기시면 주요 작업은 마무리됩니다. 그 외엔 각자 자료를 보존하시면 되고요.”
해진은 놀란다.
“제왕산이요? 어떻게요?”
직원2가 웃으며 말한다.
“저기 계신 정미래 중위님이 헬기를 타시고 올 겁니다. 딱 1대 남았어요. 이번 레이싱 끝나면 다 거기로 옮기실 겁니다. 시간 보니까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알겠습니다.”
해진은 하늘 저 멀리서 움직이는 헬기를 본다.
페라리를 탄 양아치가 1등을 했다. 2등과 3등 단상 사이에 양아치가 1등으로 올라와 있다. 1등 단상은 ‘최후의 승자,’ 2등은 ‘탁월한 승자,’ 3등은 ‘준수한 승자’라는 문구가 붙었다.
주인은 양아치에게 트로피와 상금, 엠블럼을 건넨다.
“우승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양아치는 물건을 받고 단상에서 내려간다. 막 떠나려고 하는 순간 생각한다.
시발, 어차피 내일 다 뒤지는데 뭐….
약속대로 상금은 다시 건넨다.
“상금은 그냥 포기할게요.”
“감사합니다! 진짜 치열한 경기였습니다.”
관중석에서 사람들이 질서 있게 퇴장하고, 4인방은 여전히 앉아있다.
“와, 예상 못했네.”
“그러게.”
“아, 저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해….”
“뭐,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사히 들어온 게 제일이죠.”
양아치는 페라리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다가 잠시 코스를 돌아본다. 코스 이곳저곳에는 떨어지거나 서로 충돌한 차, 불에 타버린 차들이 널려 있다.
시발, 다들 지 좆대로 운전하니까 나까지 뒤질 뻔했네….
그는 페라리 바깥문에 붙은 ‘최후의 승자’ 엠블럼을 만지작거린다.
함장과 해군 승조원들은 해군기지 앞에 집합한다.
“드디어 내일이다. 내일 안락사약이 나온다. 다 알지?”
“네!”
“다들 편안하게 침대에서 죽고 싶을 텐데, 그래도 내 입장을 밝힌다. 나 혼자 잠수함을 몰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해군답게 강릉 앞바다에 자침해서 먼저 떠난 전우들을 만나고 싶다. 질문 있나?”
승조원5가 손을 든다.
“어, 황요환 대위.”
“함장님, 전 못합니다! 바다에서 죽는 게 얼마나 끔찍합니까?”
“맞습니다! 저도 못합니다!”
“네! 저도 아직 결정 못…”
승조원들은 서로 떠들썩하며 시끄러워진다.
“그니까 원하는 사람만 해.”
모두 함장을 쳐다보며 순간 조용해진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모두가 동등하니까 계급을 들먹이며 강요하진 않는다. 괜찮나?”
“네!”
“좋아. 그러면 나랑 함께 잠수함에서 전우들을 만날 쪽은 손들어.”
16명의 승조원들을 제외한 승조원들이 조금씩 손을 든다.
“둘, 넷, 여섯, 여덟…(중략)…. 좋아, 손 안 든 사람만 앞으로 나와.”
우진과 미래를 포함한 16명의 승조원은 앞으로 나와서 일렬로 선다. 함장이 맨 앞에 있는 미래에게 다가간다.
“중위, 정미래!”
“그래, 정 중위는 어떻게 죽어?”
“저는 헬기를 타고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함장은 차례대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묻는다. 맨 마지막 순서인 우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어떡하지…못 정했는데.
곧 함장이 우진에게 다가간다.
“박 소위는?”
“소위, 박우진! 저는…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친이랑 헤어졌지만 보고 싶습니다. 근데 어제 다퉈서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내일 다시 기회를 줄 테니 그때 말해.”
“네!”
우진은 침상에 앉아 달력을 쳐다본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드디어 내일…. 바닷속으로 돌아간다.
성연에게 문자를 보낸다.
‘안녕. 지금 뭐해?’
잠시 답변을 기다리지만 읽어도 답장하지 않는다.
‘내일 드디어 다 같이 바다로 돌아가. 오후 5시에 안목해변 앞바다에서 자침하는데, 난 빠져.’
‘그래서 너도 거기로 와주면 좋겠어.’
잠깐 기다리다가 답장이 온다.
‘글쎄, 아직 몰라. 생각해 볼게.’
‘그래도 나올게. 여전히 좋아해. 안녕.’
침상에 누워 한숨을 쉰다.
어떡하지? 동기들이 알아줄까. 걔가 안 나오면? 하아, 어렵다, 어려워.
그는 침상에서 뒤척인다. 시계는 계속 째깍거린다.
전광판도 꺼져 있다.
캠핑장에서 공무원들이 파란 십자가를 새긴 약통을 나눠준다. 주인은 그물침대에 앉아 설명서를 읽는다.
‘경고. 이 약의 용도는 안락사입니다. 반드시 물과 함께 복용하십시오.’
시민5와 시민6은 집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린아이에게 주사를 놓고, 자신들도 약을 먹는다.
‘어린 유아나 반려동물에는 주사기를 활용하십시오. 약을 복용하실 경우, 5분 이내로 졸음이 옵니다.’
두 사람이 침대에서 눕고 서로 안아준다.
‘복용 후 10분 뒤에는 뇌사 상태에 빠지고, 안락사하게 됩니다.’
4인방은 강아지와 함께 파티를 연다.
“아빠!”
시민1이다.
“왜, 우리 공주님?”
“이번 전쟁이 왜 났을까?”
“글쎄. 여러 가지 이유지. 북한도 있을 거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랑 유럽도 자기 딴에는 스스로 지키려다 망했잖아.”
“난 과학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알버트 아인슈타인.”
시민3이다.
“아저씨, 과학자들도 엄청 노력했어요. 아인슈타인도요. 자기 밥그릇 싸움하는 정치인이 제일 문제죠.”
“뭐, 어쨌든 우리가 쇳덩이랑 돌덩어리 한 줌으로 망하니까 참 아이러니해.”
“맞아요.”
시민4는 짖는 강아지에 고개를 돌린다.
“괜찮아, 괜찮아. 토토야. 곧 편해질 거야.”
“누가 먼저 쐈든, 얼마나 쐈든 참 슬프다. 우리 애기 웃는 사진만 핵미사일에 붙였어도….”
시민2가 말하며 흐느낀다. 시민4는 약을 꺼낸다.
“자, 그럼 가야지.”
시민1은 한 손을 펼쳐 말린다.
“엄마, 잠깐만!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찍자!”
“글쎄, 볼 사람이 있나?”
“뭐 어때. 다음 생에도 기억할 거니까.”
4인방과 강아지가 소파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서로 한 번씩 안아준다.
“다들 고생했어요.”
시민3이 시민2를 바라본다.
“특히 우리 동창,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객식구로 받아줘서 고맙다.”
“에이, 뭘…. 괜찮아, 임마.”
“아무튼 식구분들한테 폐 안 끼쳤으니까 먼저 간 우리 집사람과 아들도 반겨주겠지.”
시민2와 시민4가 강아지에 함께 주사를 놓은 다음, 다들 그 자리에서 건배하며 술과 함께 알약을 삼킨다.
사장은 불이 다 꺼진 술집에 홀로 앉아있다. 앞 탁상에 가족사진과 거울, 약통을 두고 거울 속 자신과 건배한 다음 술을 마신다.
“이제 끝이네. 고생했다!”
한 모금 마신 뒤에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누구세요?”
“사장님, 저희 왔어요!”
종업원과 카운터가 미소 짓는다.
“너희들이? 왜 왔어? 친구들이랑 안 먹어?”
“아, 그냥 같이 먹고 싶어서요.”
“네, 저도요.”
“어이구…. 고마워, 얘들아.”
사장이 의자를 탁상에 끌고 온다.
“여기 좀 앉아라.”
종업원과 카운터도 의자에 앉고 약통을 꺼낸다. 셋 모두가 술잔을 들며 건배할 준비를 한다.
“자, 건배하자. 뭘 위해 할까?”
“저는 다음 생을 위해서요.”
“그래, 다음엔 안전해야지.”
사장은 종업원에게 고개를 돌린다.
“넌?”
“저는 눈먼 세상을 위해서요.”
“좀 특이하네. 무슨 뜻이야?”
“어, 극소수의 윗대가리 말고는 이번 전쟁 때문에 다 망했잖아요. 다음 세상은 눈을 뜨길 바라서요.”
“좋아. 그럼 난…”
사장이 술잔을 든다.
“먼저 떠난 우리 집사람과 따님들을 위하여.”
“다음 생을 위하여.”
“눈 먼 세상을 위하여.”
셋 모두 “건배!”라며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알약을 입에 넣고 술과 함께 삼킨다.
해진만 있는 사무실은 납 상자들로 가득 차 있다. 상자들에는 ‘유언,’ ‘회고록,’ ‘핵전쟁,’ ‘강릉시립대학교’ 등의 문구가 붙어 있다.
그는 상자 하나를 들어서 확인한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상자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이 정도면 후손들도 같은 실수 안 하겠지.”
물과 알약을 삼킨 뒤, 의자를 젖히고 눕는다.
성연은 홀로 어두운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다.
“왜 하필 나만….”
그녀는 시민1의 집에 갔을 때를 회상한다. 거기서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도 안 계세요?”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들어갈게…헉!”
4인방이 소파에 앉아 죽어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친구야…아저씨…아주머니….”
소파로 다가가 시민1의 핸드폰을 본다. 핸드폰 잠금화면이 안락사 직전에 찍은 단체 사진이다. 눈물을 흘리자 핸드폰 화면에 떨어진다.
성연은 엎드린 채 계속 운다. 어떡해…엄마, 아빠도 없는데….
그녀는 우진에게 문자를 보낸다.
‘나 안목해변 갈게 꼭 나와줘’
그러나 문자 서비스도 종료되어 보내지 못했다는 알림이 온다.
못 보내네. 그래도 나가볼까. 5시에 자침인데. 지금 시간이…
“4시 16분?”
그녀는 공공자전거 정류장에 뛰어가서 쓸 수 있는 자전거를 찾는다.
“이거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아, 된다!”
자전거 바구니에 실린 헬멧을 쓰고 출발한다.
“오늘은…”
함장이다. 잠수함 회의실에서 빠지기로 한 사람들 외 나머지 승조원들이 전부 모여 있다. 일부는 비위가 상한 표정을 짓거나 콜록거리고 기침한다.
“우리가 바닷속으로 돌아간다.”
또 다른 승조원들은 비장한 표정을 한다.
“해군의 본분에 맞게 죽는다.”
우진은 한 손에 금팔찌들을 찼고 다른 손의 엄지손톱을 깨문다.
“지금 빠질 사람은? 있으면 당장 얘기해.”
우진은 고개를 들며 천천히 손을 든다.
성연은 자전거로 빈 도로를 빠르게 달린다.
“제발…제발…!”
콜록거리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우진은 잠수함 갑판에 나와서, 바로 앞의 함장과 승조원들에게 경례한다.
“소위 박우진! 저의 선택을 존중해 주신 함장님, 그리고 승조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약통을 든 양아치는 페라리에 탔다. 차 지붕을 열려 있고, 한 손으로는 ‘최후의 승자’ 엠블럼을 만지작거린다. 잠시 후 다른 손으로 약통을 던져버린다.
“인생, 그래도 화끈하게 살다 가야지!”
시동을 건다.
“바로.”
함장이 경례를 풀자, 나머지 승조원들도 푼다.
“그래, 고생했다!”
“특히 함장님의 약속은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양아치가 빈 도로를 빠르게 운전한다. 길에 따라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돈다. 회전교차로에 가자 빙글빙글 돈다. 차의 속도가 200km/h로 올라간다.
“좆같은 인생이었다!”
함장이 미소짓는다. 우진은 고무보트를 바다에 내려놓고 거기로 떨어진다.
“야! 박우진!”
승조원1이다.
“네, 왜요?”
우진은 고개를 돌린다.
앞으로 쭉 달리는 차의 속도가 300km/h로 올라간다. 저 멀리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양아치는 핸들을 놓는다.
“간다!”
속도는 340km/h에 다다른다. 차가 날아올라, 광고판을 꿰뚫고 땅에 부딪쳐 폭발한다.
“만약 다음 생에 또 핵전쟁 나면, 그땐 내가 막는다, 새끼야!”
“예? 알겠습니다!”
우진은 웃으며 승조원1에게 중지를 날린다.
“중위님 다 해 쳐드세요!”
모두 웃는다. 그가 출발하자, 나머지는 바라본다.
“행운을 빈다.”
함장이다.
광고판을 꿰뚫은 차가 완전히 부서진 채 불타고 있다.
드디어 성연은 안목해변에 도착한다.
그녀는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린다. 저 멀리 페라리가 불타는 연기를 잠시 바라본다.
뭐야? 설마 그 새끼?
“아, 아니지!”
자전거에서 내려 해변으로 다가간다. 모래사장에 헬멧을 내던지고 손을 입에 모은다.
“누구 없어요? 있으면 제발 나와주세요!”
뒤에서 미래의 헬기가 나온다. 헬기는 검은 연기를 내며, 성연의 오른쪽 저 멀리 앞에서 양옆으로 돌아가며 추락한다.
돌아가는 헬기 내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Pull Up! Pull Up!’ 등의 기계음도 들린다.
“히~하!”
헬기가 추락하여 폭발한다. 그녀는 털썩 주저앉아 운다. 왜 또 나만….
바다를 향해 입에 손을 모으고 외친다.
“우진아! 미래 선배! 함장님!”
계속 운다. 잠시 주위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누구지?
그녀가 눈물을 닦고 다시 앞을 보는데, 저 멀리 왼쪽에서 누군가 양팔을 흔들며 뛰어온다.
“누구세요!”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린다.
“성연아! 성연아!”
“어? 우진아!”
성연도 우진에게 뛰어간다.
“우진아!”
“성연아!”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운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나도야, 나도!”
“전에 싸가지 없게 굴어서 미안해.”
“괜찮아! 나도 소리 지르고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
“아냐 아냐! 이제 함께야.”
그녀는 금팔찌 하나를 받아서 찬다.
해변에서 돗자리를 펴고 두 남녀가 앉아있다. 그의 핸드폰은 셀카봉에 달려서 둘을 녹화하고, 그녀의 핸드폰은 ‘Morrissey’의 「Everyday is Like Sunday」를 튼다.
둘은 서로 눈물을 맺은 채 술잔을 맞대고 약을 먹은 다음 키스한다.
‘젖은 모래 위를 터덜터덜 걸어-’
“다음 생에도 보는 거다?”
“어. 꼭.”
다시 키스하며 소리 없이 운다.
‘네 옷이 도난당한 벤치로 돌아갔지-’
잠수함 승조원들이 물이 새는 침상에 누워있다. 승조원1은 안락사약을 먹고, 승조원2는 십자가 목걸이를 쥐고 기도한다.
‘여기는 그들이 미처-’
식당에서도 물이 차오르는데 승조원3, 승조원4가 팔씨름을 한다.
‘문 닫지 못한 해안 동네-’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지휘실에서도 함장과 승조원5가 물살을 맞고 있다.
“발사 대기 중.”
“약속을 위해, 발사.”
“발사!”
‘오라 멸망이여- 오라 멸망이여 오라-’
둘은 동시에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다.
서서히 가라앉는 바닷속 잠수함에서, 흰 물살과 함께 미사일들이 올라간다. 곧 미사일들이 밤하늘로 발사되어 불꽃처럼 터진다.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아-’
갈수록 희미하게 강릉항, 경포호수광장, 허난설헌 기념관, 대도호부관아, 데스티니 술집, 그리고 대학까지 소리가 들리고 불꽃이 보인다.
‘매일매일이 조용하고 잿빛이야-’
노래와 불꽃 소리가 다시 커지고, 두 남녀가 불꽃을 바라본다. 여전히 눈물이 흐른다.
“멋있다! 잘 왔네.”
“그러게.”
‘다시 자갈과 모래를 터덜터덜 걸어-’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부탁드렸어?”
그도 고개를 돌린다.
‘네 손 위로 낯선 먼지가 쌓이네-’
“어. 가능하시면 해달라 했어.”
“그래.”
함께 앞을 바라본다.
“하긴 이제 쓸 일도 없으니까….”
둘은 금팔찌를 찬 손을 서로 잡는다.
‘그리고 네 얼굴 위로도-’
불꽃놀이가 보이는 해변에서 핸드폰이 둘을 녹화한다. 이윽고 그들이 돗자리에 나란히 눕자, 핸드폰 배터리가 5% 남았다는 알림창이 뜬다.
곧 불꽃과 그 소리가 점차 줄어들면서 핸드폰과 노래도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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