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내년이면 33세가 된다. 올해 초 부터 부모는 물론 하나 있는 누나랑도 다 끊어냈어. 그냥 푸념 해보고 싶어.


유딩 시절부터 부모는 날 나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지 않았어. 2002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였지. 그 때 월드컵으로 엄청 난리였잖아. 우리 가족도 다 난리였었지. 부모고 누나고 다. 근데 난 그 때 당시에 월드컵을 떠나 축구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 그냥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게임하는게 좋았지. 굳이 좋아했던 스포츠를 꼽자면 집에 있던 볼링 장난감 정도. 


어쨌든 축구로 엄청 떠들썩했던 그 날 저녁에도 가족들은 거실의 TV앞에 있었을 때 난 방에서 조용히 컴퓨터를 하고 있었어. 근데 별안간 아버지란 사람이 들어와서 이러더라. 


'넌 남자애가 축구에도 관심 없고 그게 뭐하는거냐?' 


근데 이게 그냥 흘러가는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소리 치며 혼내듯 한 말이였어. 별로 보고 싶지 않은게 마치 내 잘못이라는 것 처럼 몰아가더라. 완전히 연 끊기 전까지도 종종 손흥민 이야기를 하면서 축구 좀 보라고 잔소리 했어. 그러면서 종종 '쟨 남자앤데 운동을 안 좋아해서 틀렸어.' 라는 말도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젠 운동 관련 말만 들어도 괜히 떨리고 그러는 지경까지 왔네 ㅋㅋㅋㅋ


초등학교 다닐때 하고 있던 게임 가지고도 부모가 쌍으로 뭐라고 했지. 난 그 때 소닉을 매우 좋아했는데(지금도 가끔 함.) 그 게임을 하고 있을 때면 종종 부모가 와서 '나이가 어느 때인데 왜 그런 게임을 하냐. 다른 애들처럼 수준 좀 높여라.' 이렇게 말하더라. 다른 부모들은 서든어택 같은 게임 보단 건전한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판이였는데 우리 부모는 아니더라고. 심지어 컴퓨터가 거실에 있어서 내가 뭘 하는지까지 다 알 수 있었지. 게임 하는걸 볼 때 마다 저런 소릴 하고 가더라. 그 어린 나이에 용기내서 부모한테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지나가면서 하는 말인데 그냥 듣고 흘리면 되지 뭘 그런걸 따지니?' 라는 엄마의 답변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성인이 되고 나서 한다는 말이 '네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말을 했겠지.' 라고 하던데 참 기가막힌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더라. 끝까지. 

뭐 여기까진 그렇다고 하겠어.


난 어릴때부터 그냥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였어.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생기면 외향적이게 될 때도 있었는데... 어쨌든 조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 근데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사람이 나보고 '남자애가 왜 이리 소심하게 그러냐. 다른 애들처럼 축구도 좀 하고 활발하게 지내봐!' 라고 소리치면서 내 가슴을 탁탁 치더라. 가슴 펴고 살라는 의미였지. 그 어린 나이에 난 내가 잘못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어. 매번 '다른 애들'을 말하면서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을 들어주더라. 심지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주. 그러다보니 더욱, 난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가족을 아예 연 끊자고 다짐하게 된 사건이 과거에 있었는데 2007년, 내가 14살이던 때에 일이 터졌지. 중학교 3년 내내 악몽이였어. 몸엔 누런 멍을 달고 살게 되었을 정도로 교우 관계가 매우 안 좋았지. 점점 내 마음이 무너져가고 있었는데 학원 같은 곳에선 공부 못 하면 인생 못 산다는 말은 계속 들려왔지. 거기에 사춘기였다보니 난 점점 내 스스로를 비관적이게 봤어. 안 그래도 위에 말한대로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 있었는데 중학교를 다니면서 그 생각이 더욱 커졌어. 그 어린 나이에 자살이란 생각을 너무 쉽게 생각했지. 학교에서 하는 심리 검사 결과지에는 온갖 부정적인 점수가 최대치를 찍었어. 지금도 기억나는게 중학교 심리 검사 결과지 오른쪽 상단에 '삶의 만족도' 라는게 있었는데 그 때 숫자가 '3%'였어. 


근데 그 때 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냥 받아들이고 매일매일을 우울하게 살아갔어.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얘기해봐야 괜히 더 혼날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덕분에 콜린성 두드러기까지 앓고 지냈지. 


이미 14살 시점에 약물 치료를 받았어야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1년 뒤였나, 그 결과지가 부모한테 들통난거야. 근데 저런 전문 검사 결과지의 안 좋은 결과를 보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가 너에 대해 너무 몰랐나보다. 우리가 미안하다.' 이런식으로 말해주며 안심시켜주는게 보통 아닐까? 근데 부모란 사람은 그 결과지를 내 눈 앞에서 휘적거리면서 


'왜 이런 결과를 내서 부모를 힘들게 하니? 아주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구나.' 이러면서 되려 날 혼내더라. 뒤이어 아빠라는 사람은 '네 나이때 힘든게 뭐가 있다고 삶의 만족도가 3%가 나오냐. 너 나이면 80~90%는 나와야 정상인데. 넌 나를 닮아서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어.' 하면서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냥 내 잘못으로 몰아갔지......... 자기가 중학교때는 안 이랬다면서. 


이런 와중에도 난 용기내서 '나도 치료를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최대한 완곡하게 내 의견을 말했어. 돌아온 답변은

'왜 그런식으로 나아지려하냐. 그런건 네 끈기와 의지로 이겨내야 맞는거야. 그런 생각 하면 넌 망하는거야. 그거 알려지면 너 인생은 그냥 끝나는거 몰라?' 라고 말하며 날 죄인 취급 하며 다그치더라......... 그래... 뭐, 2007년 그 때 당시엔 정신건강의학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긴 했지. 근데 내가 어떤 병원을 다녔는지는 내가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이상 모르잖아? 설령 그게 알려져서 다른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보고 있을 때 부모 만큼은 자식을 감싸주며 자식 편을 들어주는게 맞지 않아? 하다못해 흉악범도 대중들에겐 많은 질타를 받지만 그 흉악범의 부모 만큼은 그래도 자기 자식이라고 감싸려고 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진짜 너무 화나면서도 슬프네.... 


뭐... 부모라는 사람들은 옛 시절, 정신과 관련된 편견이 심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니까 진짜 수십억 번 생각해서 양보할 수 있다고 치자. 근데 하나 있는 누나라는 년은 좀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4살 차이 정도면 비슷한 세대니까. 내가 중학교 시절 저렇게 살 때 그 년은 고등학교 2~3학년이였어. 나를 동생으로서 정말 아낀다면, 그년은 내 편이 되어서 부모를 설득했어야 맞다고 생각해. 중학교 다니는 동생이 저렇게 자살이니 뭐니 죽어가고 있는데 부모는 동생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으면...... 누나인 자신이 나서서 내 편이 되어 부모를 설득하고 나와 같이 싸웠을 것 같은데......... 자기 공부에만 빠져있어서 그런지 나한텐 관심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되려 성적이 나쁜 나를 나쁘게 보고 있더라. 꼴에 인문계 이과라고 나보다 그깟 숫자들이 더 중요했나봐. 뭐, 덕분에 서울의 경희대를 가긴 했지. 경찰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결혼도 했어. 참 기가막히지. 매우 가까운 사람인 자기 동생한테는 온갖 싸가지 없는 짓을 해놓고 정작 외부인인 매형한테는 잘하고 있다는게...... 나한테도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보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도 기가찬건지 중학교 3학년 때 청소년 상담 센터에 날 보내주더라. 정확히는 도에서 운영하는 1388 청소년 심리 상담 센터였어. 지금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담을 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무 소용 없었어. 정확히는 상담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이 좀 나아지긴 했는데... 돌아오면 부모가 매번 '오늘은 무슨 얘기 했니. 이런 얘기 한건 아니지?' 하면서 내가 상담하는 것에 관여를 하더라......... 그러다보니 나중에 가서는 상담하는 행위 자체를 눈치 보게 되었어. 이런 얘기 하면 안 되겠지? 하면서. 



고등학교에 가서는 그냥 입도 안 열고 3년을 지냈어. 치료도 물론 못 받았지. 부모가 그렇게 말하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간신히 진학했어. 그 때 22시, 23시까지 야자에 시달렸다보니 부모랑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어. 이 때가 차라리 조금 편했던 것 같기도 해. 물론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지. 긍정적인 사고를 한 날이 거의 없었어. 덕분에 먹는양이 많아졌고, 살도 찌기 시작했어. 이 때 우리집은 가게여서 부모님 방이랑 내 방이랑 별개였다보니 몰래 나가서 야식을 사오는 것도 쉬웠어. 어차피 내 인생은 망했을테니 공부는 진작에 때려쳤고... 그냥 몰래 연습장에다가 소닉 그려보고 코난 그려보는게 내 유일한 낙이였어. 이러다가 나중에 죽으면 되지 하면서. 난 내가 서른 되기 전에 죽게 될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14년 5월 13일. 21살에 군대에 가게 되었지. 이미 마음은 다 곪고 썩어 문드러진 상태에서 입대했어. 군 생활이 될리가 없었지. 자대 받은 날 부터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더라. 주변 선임들이 나한테 죽여버리겠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 공포의 연속. 정말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 그 때 까지만 해도 내가 나약했다고 생각했지. 


결국 난 중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나왔어. 전역 처리 되기 전 날이였나, 중대장님이랑 부모랑 나랑 이렇게 넷이서 대화를 하는데 왜인지 부모가 울더라. 그 때는 슬퍼서 우는건가 싶었는데 아니였더라고. 부모가 운 것은 내가 군 생활을 못 하고 나왔다는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 화가나서 운 것이였더라. 앞으로 넌 아무런 대접도 못 받을텐데 어떻게 살거냐면서. 


그러면서 '그렇게 치료를 받아야 했으면 네가 강력하게 주장했어야지!' 하면서 날 다그치던데 참 기가막혔어. 자식이 아프다는데 이게 강력한 주장이 아니면 뭘까 싶었지. 아니, 애초에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면 더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였는데... 


어쨌든 14살때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치고 7년이 지나 21살 중후반 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 난 서울에 살지 않았지만 서울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도 다녔지. 근데 다니고 나서부터가 더 힘들었어. 약을 먹을 때 마다 부모는 계속 무언의 눈치를 줬어. 그리고 병원을 갔다가 돌아오면 종종 '오늘은 무슨 얘기 했니? 약은 얼마나 더 먹어야 한다고 하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니? 너 전역한거 주변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다녀라.' 이런 질문을 계속 하면서 자꾸 압박을 주더라.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관심도 없고 그저 내가 약을 먹는 행동에만 집착하더라고. 2014년이면 스마트폰이 많이 대중화된 시점인데 정신건강의학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내가 약 먹는 것만 신경쓰더라. 


아, 알아보긴 했더라. 자신들이 원하는 답이 나온 정보만. 100개의 뉴스 중 99개는 일단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중 1개의 뉴스에선 '운동이 치료에 중요하다.' 라는 말이 나오면 그냥 그게 답인거야. 어느 순간부터 '니가 운동을 안 해서 치료가 안 된 거야' 라고 했었으니까. (물론 운동이 치료에 도움 되는건 맞음.) 



약을 먹은지 한 달 째 되던 날이였어. 정황상 2014년 10월 말이네. 그 때 엄마랑 누나랑 나랑 셋이 집에 있었는데 내가 그 때 조금 부정적인 말을 했었어. 근데 그 때 엄마가 과일 껍질을 내 얼굴에 던지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였지.

"약을 먹은지 한 달이나 되었는데 왜 달라진게 없니? 언제까지 부모 피 말려 죽일거야?' 이랬어. 지금도 이 말이 매우 강하게 기억에 남아......

7년 동안 곪아버린게 한 달만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기가 막히지만 더 기가 막힌건 내가 부모의 피를 말리고 있다는 말이였어. 물론 부모도 걱정은 되겠지. 근데... 힘들게 치료받고있는 자식만큼 걱정될까? 


자꾸 이런 일상들이 계속 되니 되려 치료에 방해가 되더라. 하루는 아빠라는 자가 나한테 오더니 '정신과 약 먹으면 살찐다는데 너 그만 먹어라. 여기서 더 찌면 너 큰일난다.' 이러는거야. 병원 다녀올 때 마다 '이제 약 그만 먹어도 되지 않니?' 이러면서 오늘은 무슨 얘기 했냐고 또 묻고... 그래서 마지못해 아주 짧게 어떤 얘기 했다고 말했더니 아빠라는 자가 나한테 '그런 얘기를 왜 해! 왜 사람 못되게 만들어?' 이러더라. 그러면서 '그 사람이 진짜 의사면 너한테 부모에게 그러면 안됩니다 라고 말했어야해. 병원 가지마!' 라고 말하면서 그냥 모든걸 다 자기가 정해버리려 했지. 그렇게 의지가 없어서 어떻게 살아갈거냐는 말은 덤이고. 


먹으면서 가족들한테 압박 당하는게 더 힘들었어. 약 먹으며 온갖 욕먹을 바엔 그냥 안 먹고 나 혼자 곪아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이제 약 안 먹고 내가 스스로 해볼게' 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아주 기뻐하면서 고맙다고 울더라? 진작에 네 의지로 할 수 있었다면서. 엿 같은 것들. 덕분에 얼마 안 가서 치료는 중단되었고, 내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지. 덕분에 점점 가족이라는 존재와 멀어져갔어. 


26살이던 2016년 후반.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가게 되었어. 이것도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어난 일이였지. 서울 살면서 가족들하고 계속 싸웠고 좋은 날이 없었어. 누나라는 년은 '가족들이 너 눈치 보느라 힘든 것 모르겠냐'는 질문을 하더라. 정작 가장 눈치보게 만드는 사람은 아빠였는데도. 와중에 엄마는 TV에 나오는 보이그룹을 보면서 '요즘 애들 누가 너 처럼 이렇게 살이 쪘나. 너도 다른 애들처럼 저렇게 살 좀 빼고 자신을 가꿔봐!' 하면서 화내기도 하고...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더라. 하루하루 그냥 있는 것도 너무 죽겠는데... 그냥 내 상태에 관심이 없다는걸 깨달았지. 치료 받는 중에 단 한 번도 고생이 많다거나 많이 힘들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어. 근데 내가 한 번 집을 나가버린 뒤로 다시 치료를 받게 되긴 했지. 물론 다시 치료 받는 것도 고역이였어. 오죽했으면 선생님도 '검색해보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자격증 공부가 많이 있으니까 그거 신청하고 공부 핑계대고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세요.' 라고 했었으니까. 마침 난 이와중에도 그래도 밖에 나가 전철 타고 놀거나 간단한 알바 자리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선생님 말론 우울증 환자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하더라? 대단하다고 했어. 


근데 언제부턴가 느낀건데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 쌓여가는데 얘기를 못 하다보니 자꾸 엉뚱한 곳에서 터지더라. 트위터 같은 곳에서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우울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서 불쾌해한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나. 어쨌든 내 잘못이니 내가 사과해야지... 요즘은 그들에게 너무 미안해. 


그러다가 2021년에 다시 이사를 가게되었어. (이 때도 다시 치료중.) 경기도 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그리고 1년 뒤인 2022년 1월, 서울로 이사 가기 전 지역에 살고 있던 유일한 친구가 카톡으로 그러더라. 집 주변 대형마트에 사람 한 명 뽑고 있다고. 그 친구는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였는데 난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어. 곧장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어찌어찌 이력서를 넣게 되었고, 출근이 확정되었어. 서울로 이사가기 전에 잠시 알바했던 마트였다보니 바로 일할 수 있게 되었지. 집에서는 엄청 반대했어. 비전 없는 직장이라고도 하고, 넌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보내면 안 된다는 둥... 온갖 말로 날 못가게 하더라. 그래도 내가 밀어붙였어. 계속 밀어붙이다보니 결국 '그럼 거기서 일해라' 라고 하더라. 


2022년 3월 1일. 짐 챙겨서 원룸 계약 하고 혼자가 된 날, 두근거렸어. 믿기지가 않았지. 일도 내가 해본 일들이라 잘 맞았고, 같이 일하는 직원도 대부분 엄마뻘 되는 분들이라 편했어. 인사만 자주 했는데 주변 이모님들이 매우 잘 해주시더라. 월급은 적긴 했어도 내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행복했고, 기뻤어. 혼자서 생활하고 난 뒤부터 다시 시작했던 우울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치료되어갔어. 가족들이 없었다면, 적어도 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면 1년 정도에 치료되었을텐데 싶더라. 22년 8월에 약을 더 이상 안 먹게 되었어. 그래도 그 이후로도 1달에 1번 정도는 병원에 가서 선생님과 이야기했지. 혹시나 안 좋게 재발할 수도 있었으니까. 


혼자가 되고 나서 부터 가족과의 연락을 조금씩 줄이고, 어느 날 부터 아예 연락을 끊었어. 그 과정에서 많은걸 느꼈지. 나도 혼자 할 수 있는게 있구나 부터 나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위에서 말했듯 난 서른 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없어질 줄 알았는데 지금도 계속 살고 있다는게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행복이란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 작은 것에도 계속 만족하게 되더라. 내 취미 활동도 내가 정할 수 있다는게 매우 좋아. 그림도 스스로 공부해보고, 음악도 만들어보고, 내가 만든 음악을 이용해 그림 그리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보고. 


지금은 그 친구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친구가 날 집에서 꺼내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불행하게 살았을테니까... 물론 지금도 그 친구와는 가끔 싸운다 ㅋㅋㅋ


미안. 글이 너무 길었네. 가끔 가족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서 일이 안 될 때가 있어. 마침 그게 어제였는데 새벽에 검색하다가 가족 갤러리를 발견했어. 다들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을까 하며 보고 있는데 마음 아픈 사람들도 많구나. 모두에게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좋은 사람도 만나고, 연애도 해보고... 


행복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