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실조차 제대로 하려는 의지도 안 보여서 더 모르겠다.


한창 부성애가 필요했던 내 어린시절엔 늘 맞고, 참는 것밖에 배운 게 없었다. 그때 나는 그냥 “아빠”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무서운 사람. 가까이 가면 아픈 사람. 마음 놓는 대상이 아니라, 눈치 봐야 하는 사람. 그래서 더 서러웠다.


고딩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가 친구 아빠한테 아무렇지 않게 볼뽀뽀하는 걸 봤을 때, 나는 진심으로 멍해졌다. 참고로 남자임. “아빠한테 뽀뽀를 한다고? 그게 가능해?”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ㅋㅋ. 내 세상에는 그런 장면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또 어떤 친구는 아빠랑 같이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서로 장난치면서 정말 친구처럼 지내더라.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부럽다 못해 서러웠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누리는 관계를, 나는 왜 평생 상상만 해야 했을까.


지금 화가 나는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갑자기 아빠 노릇을 하겠다는 듯 굴 때다. 그것 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이미 망가질 만큼 망가진 뒤에, 이미 마음의 문이 닫힌 뒤에, 이제 와서 아무일도 없던 것 처럼 굴면 예전의 상처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예전처럼 받아줄 거라고 착각하는 걸까. 너무 늦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더 아팠다. 미워하고 싶어서 미운 게 아니라, 끝내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커서 미웠다. 제대로 된 아빠였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차갑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서운함을 오래 품고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억울하다. 내가 원한 건 거창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냥 조금만 따뜻했으면 됐고, 조금만 안전했으면 됐고, 조금만 내 편이었으면 됐다. 그런데 그 아주 작은 것조차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혼자 큰다. 혼자 버티는 법만 배우고, 혼자 상처를 삼키는 법만 익힌다. 그리고 다 큰 뒤에야 깨닫는다. 아, 나는 아버지를 잃은 게 아니라,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구나.


나는 분명 말도 잘하고 잘 웃고 떠드는 밝은 아이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친구들은 내가 로봇같다고 한다. 항상 무표정에 말 수 적고. 잘 웃지도 않고.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닌데. 혼자 거울을 보며 웃어보니 참 징그럽더라. 그렇게 못생긴 웃음이 다 있나 싶더라. 그래도 친구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친구가 안아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더라. 조금만 사랑받고 자랐으면 난 내 어릴적 성격을 유지 했을까? 에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