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 검사를 사용한 첫 번째 집단은 손다이크와 그 동료들이다. (Thorndike & Woodworth, 1901) 그들은 당시를 풍미한 '형식 도야(formal discipline)'의 원리를 검증하기 위하여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 원리에 따르면 라틴어와 같이 어려운 교과목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것은 일반적인 학습과 주의집중 기술을 발달시키는 것과 같이 광범위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형식도야의 가정에 근거하여 교육경험을 고안하는 것이 유용한가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학습은 다양한 영역의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일반 기술'이나 '정신 근육'의 발달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과학 - 뇌, 마음, 경험 그리고 교육 : 3장 학습과 전이]
뇌는 근육이 아니므로 한 가지 기술을 강화한다고 해서 다른 기술들도 자동적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 인출 연습과 심성 모형의 형성과 같은 학습과 기억 전략들은 연습한 내용이나 기술에 한해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이지만 거기서 얻은 이득이 다른 내용이나 기술을 숙달하는 데까지 미치지 않는다. 전문가의 뇌와 관련된 연구들은 전문 분야와 관련된 축삭돌기의 수초가 증가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피아노 거장들의 뇌에서는 피아노 기술과 관련된 수초만 증가한 것이 관찰된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 김아영 저
학습전이transfer of learning는 ‘교육의 성배’라고 불린다. 이는 우리가 어떤 맥락에서(예를 들면 교실에서) 뭔가를 배우고 나서 그것을 다른 맥락에서(현실 생활에서) 사용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기술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학습전이는 우리가 대부분 공부할 때 기대하는 일이다. 공부한 것을 새로운 상황에 활용할 수 있길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100여 년 이상의 강도 높은 작업과 조사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서는 대부분 학습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심리학자 로버트 해스컬Robert Haskell은 《학습전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 90년 이상의 연구 조사들을 보면 학습전이가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든 교육기관이든 우리가 학습한 내용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학습전이하는 데 실패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말 그대로 이것은 교육적 스캔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교육의 효용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해스컬은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학습전이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면 고교 시절 잠시 맛본 심리학 입문 이론이 대학 심리학 입문 과정에서 적용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고교 시절 심리학 입문 과정을 들은 학생이 심리학과에 들어가서 고교 시절 심리학을 수강하지 않았던 학생보다 더 나을 바가 없다는 것은 수년 동안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교 시절 심리학 입문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 일부는 대학 과정을 들을 때 오히려 더 퇴보하기도 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대학 졸업자들이 경제학 주제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경제학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듣지 않았던 사람들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예시들이 학습전이를 좀 더 돕는 듯 보이지만 인지과학 연구자 미켈레네 치Michelene Chi는 이렇게 지적한다.
“예시의 역할에 관해 이뤄진 지금까지의 실증적인 작업들 거의 대부분에서, 예시를 공부한 학생은 종종 예시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면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발달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교육받지 않은 정신》The Unschooled Mind: How Children Think and How Schools Should Teach에서 “대학 물리학 수업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종종 자신이 받은 공식적인 교육과 시험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기초적인 문제도 풀지 못한다.”
이런 학습전이 실패는 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업 교육 또한 타임스 미러 트레이닝 그룹의 전前 회장 존 젠거가 지적했듯이 “훈련에 따른 가시적인 변화들을 거의 찾기 힘들다”.
사실 학습전이 실패에 관한 인식은 학습전이 문제 연구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1901년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와 로버트 우드워스Robert Woodworth가 쓴 세미나 보고서 〈한 가지 정신 기능 증진이 다른 기능의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이다.
두 사람은 당시 지배적인 교육 이론이던 형식도야型式陶冶 이론(기억, 추리, 상상 같은 기본적 정신 기능을 개발하는 데 적합한 교과를 학습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학습에 전이할 수 있는 일반적 정신 능력을 습득하는 교육. 훈련의 일반적 전이를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 옮긴이 주)을 공격했다. 이 이론은 뇌가 근육과 유사하며 기억, 주의력, 추론과 관련해 상당히 일반적인 능력들을 담고 있어 이런 근육들을 훈련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라틴어와 기하학의 보편적인 지도 방식에 깔린 지배적인 이론이었다.
손다이크는 학습전이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협소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 개념에 반박했다.
라틴어 공부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많은 교육 전문가가 형식도야 이론의 화신들을 부활시켰다. 누구나 프로그래밍이나 비판적 사고를 배우면 일반적인 지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기 있는 수많은 두뇌 훈련 게임 역시 인지적 과제들을 훈련하면 일상적인 추론 능력이 확장된다는 추정을 기반으로 한다. 학습전이 과정에 관한 판결이 나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학습전이의 매력은 여전히 성배를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사실에도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경험적 작업과 교육기관들은 유의미한 학습전이의 증거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지만 학습전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는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버트 매키치Wilbert McKeachie는 학습전이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학습전이는 역설적인 것이다. 바라면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학습전이는 늘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비유를 이용할 때마다, 즉 어떤 대상이 다른 어떤 대상과 유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지식에 관한 학습전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롤러스케이트를 배운다면 기술에 대한 학습전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스컬의 지적처럼 학습전이가 정말로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단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세상에서 제 기능을 하는 데 학습전이가 필요하다면 왜 교육기관들은 학습전이의 유의미한 증거를 보여주느라 애쓸까? 해스컬은 지식이 제한적일 때 학습전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지식과 기술을 더 많이 개발할수록 그것들을 학습했던 좁은 맥락을 벗어났을 때 훨씬 더 유연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울트라러닝, 세계 0.1%가 지식을 얻는 비밀 | 스콧 영, 이한이 저
가변성 전이적합성 (메타인지 학습법)
https://mobile.twitter.com/practical_core/status/1477237169878364165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책에서 정교화(elaboration)을 얘기하던게 생각나네요 그대로 외워서 그대로 뱉는게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고 기존의 지식과 연결하고 다른 사례와도 연관시켜보고 해야하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정교화의 예시로 스스로 다시 설명해보기, 스스로 질문해보기 등등이 있네요) (여기서부터는 제 의견) 솔직히 시험 치려고 보는 공부를 누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겠어요. 단순 시험 볼때는 다른 사례에 연결시키는게 아무 이점이 없기도 하고 ㅇㅇ 학생들은 실제 활용을 위한 공부가 아닌 특정 규칙과 특정 사례만을 위해 공부하는게 이득이니 당연한 결과죠 자격증 공부하는 사람들이 인출이 아닌 단순 회독으로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는 맥락이랑도 비슷하다고 느껴지구요
트위터 링크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 풋볼인지 럭비인지 거기서 나온 얘기랑 비슷하네요 항상 A->B->C / A->B->C 블럭 방식 훈련이 아닌, 무작위로 좌좌좍 돌려가면서 해야 실전에 비슷하다는 내용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자리도 바꿔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