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아홉 개의 의자가 반원을 그리며 높은 단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결.
대한민국 제 25대 대통령.
역대 최단기간 탄핵.
뉴스에서는 연일 그 수식어를 붙여댔다.
취임 석 달 만에 탄핵 소추, 심판까지 합쳐서 딱 1년.
이건 다시 없을 기록이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전국의 모든 채널이 이 순간을 송출하고 있었고, 수천만의 눈이 그를 향해 있었다.
한결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론조사 지지율 6%.
어지간한 범죄자도 이것보다는 높다.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피청구인 한결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에 관하여,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한결을 파면한다."
방청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당연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방청객 대부분이 탄핵 찬성 측 시민들이었다.
한결의 파면을 원하는 사람은 전 국민의 90%가 넘었고, 오늘 이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결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첫째, 피청구인은 국회의 동의 없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남발하여 재정 질서를 중대하게 훼손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취임 2개월 차에 국회 예산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전국 주요 도시에 대규모 지하 구조물 건설을 강행하였으며…"
"지하 대피소입니다."
그때,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한결의 반박에 재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피청구인, 지금은 선고 시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만 지하 구조물이 아니라 지하 대피소입니다. 제대로 용도가 있으니까요."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지하 대피소.
뭘 대피한다는 건가?
이 대통령의 가장 유명한 망언 중 하나였다.
취임하자마자 전국에 지하 대피소를 짓겠다고 했다.
콘크리트 두께 2미터, 지하 30미터, 식량 비축 6개월분.
예산안을 보고 국회의원들이 경악했다.
수십조 원짜리 땅굴을 파겠다는 대통령.
예산안 부결은 당연했다.
그런데도 한결은 긴급명령으로 건설을 강행했다.
그게 첫 번째 탄핵 사유.
재판장이 한결의 발언을 무시하고 선고를 이어갔다.
"둘째, 피청구인은 이른바 특수재난대비법이라는 법률안을 국회를 우회하여 입법 시도하였으며, 이는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 법안 내용을 읽어보셨습니까?"
한결이 또 끼어들었다.
재판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결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특수재난대응인력 등록제, 비정규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비상시 특수인력 동원 체계, 전부 한국을 위한 법률입니다."
방청석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특수재난대응인력.
비정규 위기상황.
특수인력.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를 잔뜩 갖다 붙였지만, 국민 누구도 이 단어들이 구체적으로 뭘 가리키는지 알지 못했다.
한결 정부 내내 그랬다. 뭔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실체가 없었다.
관료적 포장만 잔뜩 둘렀을 뿐.
정작 그래서 누가 대응인력이고, 뭐가 비정규 위기상황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한 적이 없었다.
한결은 방청석의 실소를 들었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이 반응에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예, 뭐. 계속하시죠."
한결이 등을 의자에 기댔다.
재판장이 인상을 쓰며 서류를 넘겼다.
"셋째, 피청구인은 국가정보원 및 군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불특정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사찰을 자행하였습니다."
이건 웃을 수 없는 사유였다.
방청석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걸로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었다.
한결 정부가 특정 가문들을 대상으로 국정원과 군 정보기관을 동원해 사찰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폭로됐었다.
칠곡 한씨, 남양 홍씨 별파, 경주 서씨 명월당.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한결은 해명 한 번 없이 침묵했고,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건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한결이 말했다.
재판장은 이번에는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봐야 소용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찰이 아니라 조사였습니다."
방청석이 차가워졌다.
실소도 나오지 않았다.
"해당 가문들은 일반 시민이 아닙니다."
한결이 말을 이었다.
"일반 시민이 아니면 뭔데요."
방청석 누군가가 소리쳤다.
재판장이 제지하기 전에 한결이 대답했다.
"그건…"
한결이 잠시 멈췄다가, 그 누구도 믿지 않을 변명을 늘어놓았다.
"…특수한 배경을 가진 집단입니다."
방청석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또 저 소리다.
저 대통령은 매번 저랬다.
구체적인 건 하나도 안 말하고 모호한 단어만 반복했다.
1년 내내.
재판장이 서류를 넘겼다.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넷째, 피청구인은 합리적 근거 없이 향후 수년 내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빌미로 비상 권한을 확대하려 시도하였습니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다른 사유는 전부 이 망상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한결은 취임 직후부터 주장했다.
수년 내에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에 전례 없는 재난이 닥친다고.
그래서 대피소를 지어야 하고, 법을 바꿔야 하고, 국가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근거를 대라는 질문에 한결은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한결이 말했다.
"근거가 없는 건 사실이니까요."
담담하게 인정했다.
방청석은 반응 없었다.
이 사람이 뭘 인정하든 말든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다섯째, 피청구인은 대통령 특수활동비 중 약 7억 원을 개인 용도로 유용한 혐의가 있으며—"
“…….”
한결은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방청석에서 보기에 그것은 패배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변명을 시도하다가 반박할 수 없는 횡령을 인정하고, 결국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불쌍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자업자득이었으니까.
지지율 6%의 대통령.
괴상한 망상에 사로잡혀 나라를 뒤집어놓은 남자.
1년밖에 못 버틴 역대 최악의 대통령.
그게 대한민국 국민이 아는 한결이었다.
"…이상으로 탄핵 심판의 사유 고지를 마칩니다."
재판장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피청구인은 선고 결과에 대한 최종 의견이 있으시면 지금 진술하십시오."
최종 의견.
형식적인 절차였다.
관례상 주어지는 마지막 발언 기회.
대부분의 경우 피청구인은 짧은 유감 표명이나 국민에 대한 사과를 하고 끝낸다.
한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초.
10초.
카메라가 한결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움직이지 않는 남자.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뭐래. 울기라도 하나."
"할 말이 없겠지."
그때,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재판관님."
"네."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끝나는 재판이었다.
마지막 질문 하나쯤은 허용할 수 있었다.
"김 재판관님."
호명당한 재판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주 서씨 명월당 서정환 씨. 아십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시면 됐습니다."
한결이 시선을 옮겼다.
다섯 번째 재판관.
"안동 장씨 귀은파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 혹시 아십니까?"
다섯 번째 재판관의 표정이 굳었다. 미세하게.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을 정도로.
"피청구인, 지금 재판부를 상대로…"
"여덟 번째 재판관님은 따로 여쭤보지 않겠습니다."
한결이 말했다.
여덟 번째 재판관을 쳐다보지도 않고.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아까까지의 어설픈 변명과는 다른, 뭔가 무게가 있는 목소리.
재판장이 벌떡 일어났다.
"피청구인! 지금 재판부를 능멸하는 겁니까!"
"능멸이 아닙니다."
한결이 말했다. 조용하게.
"확인하는 겁니다."
한결이 재판장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재판장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한결의 눈이 뭐라고 해야 할까.
아까와 달랐다.
아까까지는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탄핵 대통령에 걸맞은 눈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뭘 보고 있는 건지, 재판장은 자기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 눈과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한결이 말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한결은 아홉 명의 재판관을 한 명씩 훑었다.
"아홉 분 중에 이 조항 지킨 분이 몇이나 되십니까."
침묵.
아까까지 웃고 수군거리던 방청석이 조용해져 있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한결이 무슨 대단한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한결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까 제가 특수재난대응인력이라고 했더니 웃으셨는데."
한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그게 뭔지 보여드릴까요?"
한결의 눈이 변했다.
생방송을 보고 있던 수천만 명이 그것을 봤다.
카메라를 통해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한결의 눈이 색이 변한 건지, 빛이 난 건지, 그런 물리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화면 너머에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인간의 눈이 아닌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방청석이 얼어붙었다.
"뭐, 뭐야 저거."
"특수효과……인가?"
"아니 생방인데."
한결이 오른손을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느릿하게. 마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한결의 손 위로 무언가가 모였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심판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느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니, 그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중력이 바뀐 것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방청석 앞줄의 기자가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경호원이 움직이려 했지만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재판관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결이 입을 열었다.
"이짓거리도 이제 지겨워서 못해먹겠군."
가볍게 말했다.
마치 야근에 지친 직장인이 사직서를 던지듯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는 한결은 6% 지지율의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근거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나라를 뒤집어놓은 무능한 남자.
그건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절반만 맞았다.
이 남자는 미치긴 했다.
하지만 무능하지는 않았다.
한결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작은 소리였다.
아홉 명의 재판관의 몸이 발화했다.
동시에 서류가 타들어갔다.
탄핵 심판 기록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재판관들의 몸을 감싸고 화염이 타오른다.
“꺄아아악!!!”
“뭐, 뭐야! 부, 불이야!”
“사, 사람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청석이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이 출구를 향해 밀려갔다.
비명, 고함,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
한결은 아수라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카메라는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촬영기사가 도망치지 않은 건 용기가 아니었다.
단순히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지만, 덕분에 카메라는 한결의 다음 행동을 고스란히 담았다.
한결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무렇지 않게 방금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킨 남자가 불타는 서류 사이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야."
짧은 침묵.
"응. 방금 본 거 맞아."
한결은 재가 된 재판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원 소집해. 청와대 앞으로."
끊었다.
한결은 카메라를 바라봤다.
정면으로.
수천만 명이 그 눈을 봤다.
1년 동안 TV에서 봐왔던 피곤하고 지친 눈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눈이었다.
30대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뭔가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의 눈.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한결이 말했다.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 목소리에는 그런 것이 묻어 있었다.
한결이 재판관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전히 재판관들은 불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딱.
한결이 손가락을 튕기자, 재판관들의 몸에 붙은 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아극…?”
“부, 불이…”
화염에서 풀려난 재판관들의 몸엔 상처 하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모두가 멍하니 한결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한결이 한 걸음 올라갔다.
단상 위로.
“히, 히익…!”
재판장들은 모두 한결에서 도망치듯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한결은 재판장의 자리에 섰다.
아홉 개의 의자 한가운데.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청석이 보였다.
카메라가 보였다.
수천만의 눈이 보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한결이 말했다.
방청석의 누군가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속삭였다.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거지?
하지만 아홉 명의 재판관은 이해했다.
방금 자기들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자기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재판.
이 남자가 다시 시작하겠다는 건 재판이었다.
피청구인과 재판관의 자리가 뒤집어졌다.
"국회의원분들도 준비해두세요."
한결은 담담하게 말했다.
"순서가 되면 부르겠습니다."
***
[한결]
-재앙급 주술사, 대한민국 25대 대통령
[제약]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
위반 시: 사망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위반 시: 사망
***
#
어떠냐?
뮤블로 줄 수 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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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ㅅㅋㅇ 대통령이 주술사 같은 건가. 흥미롭네
@해월일화리부트 저면 다음화는 무조건 클릭해볼듯
문피아에서 잘 먹힐거같군
다음화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