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예레미아의 마지막 판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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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차라리 숲과도 같은 자연현상에 가까웠다.
길거리위의 뭉친 사람들의 덩어리는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통곡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다만 그들의 눈물이 말라버렸기에, 그 통곡은 깨끗하게 살이 발라져 가장 뼈대에 해당하는 공허함만이 그들을 감쌀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일이 이렇게 풀릴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 누구도. 정부도. 나도, 너도, 모두가.
이 세상에 신의 뜻이 아닌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난파선의 나무판자와 그 위에 간신히 올라탄 수병처럼 파도위에 몸을 맡기고 하염없어 떠다니는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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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2. 11
당연히, 이것은 수기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고, 먼 홋날이 된 지금이 되서야 정리할수 있게된 일들이었다.
43번째.
지금까지 같은 증상으로 내 눈앞에서 죽어간 이들의 숫자이다.
나는 링겔의 숲 사이에 서 있다.
물론 그 의미는 없다.
어차피 죽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거나, 회복이 불가능한 이들이다.
나의 이름은 제이콥 예레미야. 33세.
나는 의사다.
그렇게 되뇌이며 나는 땀에 젖은 마스크를 고쳐맸다.
의사는 무엇이 의사인가.
나는 무엇하나 살리지 못했다.
43번째의 환자는 42번째 환자나 첫 번째 환자처럼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폐가 녹아버렸으니 무리도 아니다.
섬유화된 폐는 그저 무의미한 탄소덩어리가 되어버리니까.
환자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숨이 달아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바늘을 잔뜩 삼킨 것 처럼 기침을 하고 난 후 피를 쏟는다.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총체적 절망만이 병원에 가득하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시체들 뿐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점심시간을 가져본지가 5일째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5일만에 현실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
나는 옥상의 구석에 쭈구려 앉아 말라 비틀어진 빵쪼가리를 입에 우겨넣는다.
구내식당은 3일차에 병원 근처의 식당은 9일차에 모두 문을 닫았다.
거리는 텅 비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거리에 나오지 않는다.
이미 도시는 봉쇄되었다.
천만명이나 사는 도시를 그렇게 봉쇄해버릴 줄이야.
인터넷 상의 정보에 의하면 이미 WHO는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모양이다.
즉, 70억 인구와 천만명의 목숨을 곰곰이 제어보고 70억 인구를 택한 것이다.
아마 한 달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달 내로 천만명은 말도 안 되는 숫자로 쪼그라들겠지.
그 다음은 무엇일까?
국제적 추모행사.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비의 건립.
새로운 방역체계의 설립-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의미 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차피 모두 의미 없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죽고 말 것이다.
그 이후의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목이 메인다.
목이 메서 남은 빵쪼가리를 전부 목에 우겨넣는다.
천만명의 목숨 따위 이미 죽고난 후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깊이 더 깊이 밀어 넣는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환자는 있다.
어쩌면 살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겠는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다- 전부 무의미한 행동이다.
완전히 목구멍을 빵조각으로 틀어막았음에도 깊이를 알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제이콥, 차가운 거라도 마시면서 좀 진정하는 게 어때.”
누군가가 나의 목덜미에 차가운 캔 음료수를 집어넣었다.
마치 돌덩이에 쐐기를 박아넣는 느낌이었다.
돌덩이의 입장이라면 딱히 유쾌하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반가웠다. 아직 돌덩이가 되지는 못한 것 인가.
익히 들은 목소리의 주인은 아나스타샤 카오루.
의학대학시절의 동기다.
“2주동안 쉽지 않았어. 몇 명이나 죽었어?”
“43명”
“우리가 수련의일 적에 몇 명이나 죽었지”
“그보단 많겠지”
“각오한거 아니었어?”
각오 따위 전부 녹아내려 버린지 오래다.
나는 캔을 땄다.
닥터페퍼다.
병원이고 도시고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의 시원한 캔음료수. 그것은 분명 그녀가 개인적으로 보관했던 물건이겠지.
담배도 태우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물건이며 닥터페퍼가 없을 때의 그녀가 어떠한지는 벌써 10년넘게 같이 지내면서 익히 보아왔다.
그녀에겐 생명 같은 물건일 지언데, 이를 건내준다는 건, 내가 그렇게도 꼴사나웠던 것인가.
나는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 보고있었다. 마치 특허라도 낸 듯한 그녀 특유의 표정이다.
나는 그 표정을 기억한다. 그 표정을 처음으로 본 순간을 기억한다.
20대의 초반엔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다면 난 조금 더 행복하고 덜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들은 햄버거를 먹을 때 옷 위로 비어져 나오는 그 속마냥 흘러갔고 나는 그저 그 일들을 수습하느라 나의 젊음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 내용물들을 전부 수습하고 났을 때, 버거는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옷은 옷대로 엉망이었다. 그런 식의 20대를 사는 것은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다. 내가 해봐서 안다.
그렇기에 나는 25세가 되던 날 두가지 결심을 했다. 한가지는 죽기로 결심한 것이고 한가지는 그 죽음의 방식을 정한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되도록 아무도 모르는 그리고 깨끗한 방법으로 나의 인생을 끝맺고 싶었다. 사실 극적이고 이목을 끄는 죽음은 쉽다. 그러나 신체의 생리적 작용 덕분에 그 어떠한 오물도 남기지 않는 죽음은 하나의 도전이 된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나는 의대생이었고, 약학과 생리학에 대한 지식도 없잖아 있었다. 덕분에 나는 하루 동안 굶은 다음 시중에 판매하는 몇가지 약을 정제하여 치명적 독소를 가지는 약을 만들어낼수 있었고 그것을 삼키려 했다.
삼키려했다에서 이 진술이 끝난 것과 이 글은 수기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알약을 삼키려는 그 순간. 내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바로 그녀였다.
얼굴정도는 서로 아는 사이, 목소리는 모르는 사이, 서로의 표정을 해석할 수 없는 그런 사이었을 지언데, 그녀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알약을 들고 있던
내 손목을 틀어잡고 화를 내었다.
-네가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너는 살 거야. 너는 살고 말거야, 그리고 살아서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죽을 거야. 빌어먹게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말이야. 그때가 온다면 많은 걸 말해주도록 해줄게-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한 줄기의 긍정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살았다.
나는 지금 살아서 죽어간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도시의 모두가 죽고 말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녀는 너무나 평온하다.
아니 차갑기까지 하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생각엔 그녀가 말했던 그때가 다가온 모양이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삼킨 것처럼 굳게 닫혔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우리 학년의 수석은 나였고 차석은 너였지. 왜 그랬을까?”
그야 네가 머리가 좋으니까, 너는 타고난 천재니까.
“그야 내가 복습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야.”
너무나 교과서적이지만 너무나도 예상외의 답변이다. 물론 그녀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지만.
“그야, 나는 미래인 인걸, 무얼 배워도 옛날에 배웠던 것의 복습이지.”
그녀는 마침내 한가지 비밀을 토해내었다. 기억의 편린 저 너머의 한가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기가 막히게도 역병학 시간이었지. 아직 학기초였기에 수업의 진도는 아직 흑사병이었다.
그것은 역병이라기 보단 차라리 신의 계시에 가까웠다. 무지몽매한 중세 암흑기를 끝장내고 찬란히 빛나는 인간의 시대를 열기 위한 신의 철퇴.
물론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긴 했지만 수백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고, 그 결과 중세 장원경제는 붕괴, 자유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수백만명이 죽는 그런 수업내용을 들으면서 아무도 마시지 않았던 음료를 마시는 이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녀.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웃으면서 말하였다.
‘다음번은 언제?’
그 다음번이란 지금이란 말인가. 그럼 그녀는 이 사태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 증거는 지금 내 앞에 있다.
얼음장이 낄 정도의 닥터페퍼.
물론 그녀는 평소에도 닥터페퍼를 방에 쌓아두고 사는 인간이다만 예상외의 스트레스로 그녀가 닥터페퍼를 하루 소비량은 폭증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유분량이라는 듯 한캔의 닥터페퍼를 내놓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는 자신이 마실게 부족할 경우 결코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다.
즉 그녀는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 그녀는 미래인이다.
“그럼, 너는, 너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전부 알고 있었던 거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 데….
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거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거냐!”
나는 혀에서 비수를 지어내어 그녀를 찌른다. 그녀는 난처한 듯이 대답한다.
“그야. 내가 온 미래에서 이 병으로 30억명이 죽는 걸.
그 미래에서 30억명이 죽는 것은 바뀌지 않아.
이미 내가 관측했으니까.
아직 난 여기 멀쩡하게 서 있잖아?
만일 내가 30억명이 죽는 미래를 바꿔버린다면 나도 여기에 없었을 거야.
물리학적인 지식도 필요 없는 간단한 이야기지.
그리고, 더 나가서, 그런 걸 말하고 다녔다간 바로 MP(정신과)행아닐까?
말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고, 실제로 통제 불가능한 판데믹(국제적 감염사태)은 제러미 다이아몬드니, 새뮤얼 헌팅턴이니 하는 석학들도 전부 예견했던 상태라고.
그 예견 옆에 제 3차대전도 같이 있어서 사람들이 잘 보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까지 대비가 안된걸 보면.”
“아나스타샤 카오루. 그럼 미래에서 왔다는 너는 여기에 뭣 하러 온 거냐.
30억명이나 죽은 미래면 국가고 뭐고 멀쩡할 리가 없잖아, 그저 한가로운 과거 관광객인건가?”
“과거 관광이라… 그것도 괜찮네! 왜냐면 미래엔 이런 게 없으니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새로운 닥터페퍼를 한 캔 꺼내 마셨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의 기술력으로 타임 머신이란 걸 상상할수나 있어?
내가 타고 온 그 물건은 기적의 상징이야.
그런 마법과도 같은 기계를 한가한 관광에 사용할 리가 없잖아?
당연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야.
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 시대로 왔어. 바로 이 병의 치료제. 아니, 백신이라도 찾는 거야.”
처음으로 본 그녀의 표정이다.
그녀의 얼굴은 굳은 결의와 어떠한 종류의 비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ㅡ 이곳은 역병의 그라운드 제로ㅡ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사했을 때 단 한 번 등장하는 백신이 만들어진 곳… 일지도 몰라….”
그녀는 머뭇거린다.
“그리고, 그 백신을 만든 사람은.”
그녀는 일종의 선고를 내린다.
‘넌 살아서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죽을거다. 빌어먹게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말이야.’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님에도 그 선고는 나를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 선고는 나의 현재를 미래를 묶어버렸고 더 나아가 나의 과거에 얽힐 것이다.
“제이콥 예레미야. 바로 너야.”
2020. 02. 12
거대한 위령비가 석양의 색에 물들어 간다.
콘크리트로 마감된 넓은 공원이다.
그 어떤 생명의 기색도 보이질 않는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무기질의 공원과 그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위령비.
나는 그 위의 이름들을 읽는다.
그 위에 있는 이름은 나의 동료들의 이름들 혹은 내가 지키지 못했던 이름들.
그리고 제이콥 예레미야. 나의 이름.
이것이 필연이란 말인가.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눈을 뜬다.
당직실이다.
벌써 아나스타샤와 옥상에서 만난지 8시간이 지난 후다.
그녀는 나에게 일단 좀 자고 난 후 자신의 방으로 올 것을 요구했었다.
어차피 응급실로 내려가봐야 내가 할수 있는 일도 없다.
나는 땀에 전 진료복 위에 백의를 걸친 후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기숙사의 여자동, 4층 제일 구석진 방이 그녀의 방이다.
물론 몇 번쯤이고 맥주를 마시러 왔던 기억은 있다만 사태가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 오는 곳이다.
방의 대다수는 열려있었고 비어있었다.
다들 이미 피난을 갔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한 것이겠지.
그녀는 방문을 열어두었다.
내가 들어가며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나를 맞았다.
“스타샤.”
“아, 제이콥 일단은 좀 씻고 오지 그랬어.
뭐 수도가 고장 난 이 시점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야.
NS(생리식염수)라도 들이붓지 그랬어?
소금기가 껴도 어쨌건 물은 묻힌 거잖아?”
그녀는 작업중이던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나에게 헤어스프레이와도 같은 것을 던져주었다.
물 없이도 머리에 뿌린다음 적당히 닦아내면 머리를 감을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평소의 청결을 제 1법칙으로 삼는 그녀라면 절대로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을 일이 없을 터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는 이 사태를 알고있었다는 것인가.
적당히 머리를 감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더미 처럼 쌓인 닥터페퍼들이다.
이미 마시고 난 후의 캔들이 방 한구석 가득히 상자에 쌓여있었고 어림잡아 20박스정도는 되는 닥터페퍼가 한쪽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이래서야 네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겠군, 닥터페퍼 사재기라니 완벽하잖아.”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살짝 웃었다.
“그야 나는 담배도 태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까. 이런거에라도 의지해야지. 그건 그렇고 말야. 조정이 끝났어.”
“조정이라면?”
“내가 타고온 타임머신.
다행히도 오만가지 기기에 호환이 가능하게 설계되어서 말야.
20년전의 컴퓨터로도 충분히 조정이 가능하네”
그녀는 내쪽으로 노트북을 돌렸다.
그 위에 나타난 화면엔 3개의 날짜와 사망자 수가 적혀있었다.
날짜는 각각
2040년 8월 13일.
2020년 2월 12일.
2020년 1월 21일을 가르킨다.
그 옆에 각각 표시되어있는 사망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20년 1월 옆에 있는 칸의 숫자는 0.
20년 2월 12일, 그러니까 오늘의 사망자 수는 130명에서 빠르게 150명 200명을 향한다.
그러나 40년의 숫자는 변동이 심하다.
줄어들다가도 늘어나며, 늘다가도 줄어든다. 그러나 그 숫자는 대략 30억정도의 선에서 증감중이다.
“자, 이 노트북은 현재 미래와 연결되어있어.
미래에서 정보를 받아서 업데이트 중이지.
요컨대 양자통신과 비슷한거야.
그래서 숫자가 불안정해.
아직 이 시점에서는 명확하게 관측되지 않았으니까 말야.
나와 같은 시간여행자 같은 요소가 불안정요소라 생각하면 되고, 그 시간여행자들의 행동에 따라서 미래는 바뀔수도 있어.
그래도 지금의 현재가 될 수 있는 미래들에선 아직 크게 변동하지 않았나봐 30억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걸보면.”
30억인가.
대략적인 숫자로도 현 인류의 절반이다.
물론 20년이 지난 만큼 인류 전체의 숫자는 늘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 큰 숫자다.
당장 지금있는 사람들중 절반이 죽어버린다 생각하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참고로 내가 왔던 당시의 미래 살아남은 인구는 40억.
지금의 지구와는 다르게 조금 한산하지.
이 바이러스가 꾸준히 착실하게 사람을 죽여왔거든.
그 덕분에 국가고 인종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어.
모두가 적당한 공동체를 이루고 뭉쳐서 살고 있지.
내가 온 공동체는 런던의 소호야.
템즈강 아래로는 싹다 전멸해서 다리를 전부 터트리고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시체로 꽉 차있어.
글로브 극장에 소장되어있던 퍼스트 폴리오도 불타버리고, 우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체 그저 살아 남다가 우연찮은 방법으로 타임머신을 발견했어.
그 결과 우리는 과거를 바꿔보겠다고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뛰어들었지, 하지만 그들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고, 종국엔 내차례가 됬어.
그 결과가 이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시간여행자 아나스타샤-카오루입니다.”
그녀는 마침내야 말했다는 듯이, 처음뵙겠습니다. 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이콥 예레미아. 순환기내과의, 지금은 막 응급실에서 도망친 패배자다.”
그녀는 조용히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10년넘게 안 사이인데도 이제야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진 기분이다.
“아니, 패배자라고 해도, 내가 왔던 곳에서 너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니까.
전기도 있고 사진도 어디서든지 10분내로 찾을수 있을 정도야.
이를태면, 너는 닥터페퍼를 엄청 좋아했어.
그래서 말야. 나도 한번 마셔봤더니 꽤나 맛있더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한 캔 던져주었다.
나는 그 뚱뚱한 캔을 까며 내가 이 마이너한 취향의 음료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 분명-
“뭐 그거 외에도 은밀한 취향이라던가 사적인 비밀이라던가 잔뜩 알고있지마는 말야.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예컨데 초등학교때의 짝사랑 이라던가 말야.”
“아니, 나는 중요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너희 미래인들은!
그런거 알고 있어도 말 하지 않는게 예의라고 미래의 학교에선 안가르치는거냐!”
“미래엔 학교가 없어.
교육은 있지만 애초에 모든 조직은 준군사조직처럼 운영해.
보건군이나 위생경찰같은 이름 아래서 말이야.
건강은 돈을 대체하여 새로운 시대의 신의 자리에 올라가.
어찌 됬든 간에 감염의 방지가 최우선인 시대니까 말이야.
한가지 다행인건 우리에게 마지막 기적이 남았다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를 툭툭 두드렸다.
그것은 변동되는 수치들을 기록하며 미미한 기계음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 물리학의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이 한없이 터무니 없는 이야기야.
타임머신 이라니.
차라리 16세에 학술지에 실릴 정도로 훌륭한 SCIE급 논문을 쓴 여고생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그녀는 말없이 한쪽 벽에 걸려있던 학술지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되지만 표지엔 앳되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올라가 있다.
“….. 때로는 말이야.
비현실적인건 의외로 현실적인 법이야 제이콥.
과거를 바꾸는 것도 그것과 비슷하지.”
나는 옥상에서 그녀가 뱉었던 말들을 기억한다.
-나는 미래인인걸
--내가 그 미래에서 30억명이 죽는 것은 바뀌지 않아.
이미 내가 관측했으니까
“그래서 너는 미래에서 과거를 바꾸기 위해 온 것인가?
모순이다.
네가 과거로 온 미래는 30억명이 이 역병으로 죽었기에 발생한 미래다.
네가 과거를 바꿨다면 네가 여기 서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야.”
방안에는 순간 그녀의 책상 위에 있던 수상한 이중진자의 모형이 똑닥이는 소리만을 제외하면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그녀가 뭔가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때 종종 하는 행동이다.
“그건 통시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존재의 발언이야.
뭐, 너는 타임머신이 없는 시대의 사람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과거인.”
그녀는 서랍에서 테이프를 꺼내어 3개의 토막을 만든 후 벽에 걸려있던 화이트 보드에 붙였다.
맨 마지막의 토막 위에 그녀는 파란 자석을 붙였다.
“파란 자석은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현재야.
이 토막은 내가 과거로 넘어온 시간대.
중간 토막은 내가 겪은 미래, 첫번째 토막은 내 미래가 겪은 과거.
내가 과거로 넘어온 순간부터 내가 겪었던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야.
내가 경험한 과거가 되는 거지.
즉, 현재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아.
물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내가 온 미래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겠지만 말야.”
그녀는 파란 자석을 꺼내어 마지막 토막의 시작 부분에 붙였다.
“이 파란 자석이 바로 역병이 발생한 순간.
1월 15일….
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추정이야.
그보다 더 일찍 시작 했을 수도 있어.
판데믹의 시작을 찾는 것은 사실상 최초의 생명체를 찾는거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희망적인 건 우리가 몇 번이고 1월 15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거야.”
그녀는 파란 자석 위에 1월 15일이라고 적었다.
불현듯 무엇인가가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소름끼치도록 이번 대창궐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닥터 페퍼를 사 모으고 어제 옥상에 숨어있던 나를 찾아내었다.
“이봐 스타샤.
너는….
어제 내가 옥상에 숨어있었을 때, 나를 무슨 수로 찾아낸 거지?”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지금이 반복되는 2월 2일 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일이 좀 작위적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난 언제나 너를 찾아냈잖아.
싸구려 소설에서라도 그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는 건 말도 안되지.”
“…… 25세때도?”
“2020년 이전까지는 2번정도.
2020년부터는, 햇갈리네.
아마 7번인가 8번일꺼야.
어제 말했잖아?
다 ‘복습’인 덕분에 공부가 수월 했다고.
애초에 이 대화도 5번째라고?”
나에겐 처음인 이 대화를 그녀는 5번씩이나 했던 것이다.
마치 하나의 끈에 매달린 진자처럼 그녀는 똑같은 행위를 5번이나 반복했던 것이다.
나는 눈 앞의 노트북에 표시된 사망자 수를 본다.
2040년의 사망자 수는 끊임없이 변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절대로 30억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단지 30억과 31억사이를 반복해서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래서야, 다 소용없는 것 아닌가.
그저 진자처럼 무의미한 반복…”
“그 대답도 5번째야.
그럼 나도 5번째로 답해줄게.”
그녀는 책상위에 있던 이중진자의 모형을 작동시켰다.
단순히 반복할 뿐인 단진자와는 다르게 두개의 연결된 진자로 구성된 이중진자는 인간을 예측을 거부하는 모양으로 운동한다.
힘없이 떨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솟아오른다.
솟아오른 진자는 다시 왼쪽으로 비틀어진다.
도무지 예측하기 힘든 혼돈이다.
“아무리 이중진자여도 결국엔 한정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야 절대로 12시 방향에 도달일은 없지.
우리가 할 일은 진자를 늘리는 거야.
삼중… 사중.. N중진자까지.”
그녀는 모니터에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띄운다.
그곳에선 하나의 이해할 수 없는 곡선이 중력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역병의 발병은 결국 중력과도 같아.
진자를 아래로 당기지.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혼돈을 더 하는거야.
역병을 거스를 때까지.
30억의 생명이 바스러지지 않을 미래에 도달할 때 까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완전히 우리 편인 건 아니야.
2월 28일.
A국은 병원균의 확산을 막기위해 이 도시에 핵무기를 발사해.
불행히도 그 핵무기는 역병의 근원에 대해 접근할 방법만을 없애고 병의 확산을 막지는 못했지.
즉, 우리는 그 이전까지 이 도시에서 찾아야하는 거야.
네가 찾아내었다는 그 백신을 말이야.”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엉성한 편집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말이 된다.
중력에 순응하여 밑으로 하염없이 떨어질 진자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중력의 속박에서 해방시킨다.
의외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이젠 이해한 거 같네.
시간여행자가 된 것을 환영해. 제이콥.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탄 표류자야.
이 배가 어디로 갈 진 모르지.
그렇기에 우리에겐 새로운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아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지도 몰라.
그렇지만 한가지만 알아 둬.
길을 잃었기에 희망이 있는 법이야.”
그녀는 나에게 냉장고에서 차가운 닥터페퍼를 한 캔 꺼내어 던져주었다.
나는 그것을 잡아챘다.
손 끝을 타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듯한 한기가 타고 올라온다.
그것이 썩, 싫지는 않다.
“자, 그럼 준비해.
우선은 20년 2월 초순으로 가자.
최초의 발병케이스지.
역학 조사 결과 그라운드 제로는 역 앞의 수산시장.
그곳에서의 집단 발병 이후 역병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2020-01-15
잿빛 하늘은 눈을 뿌린다.
마천루의 옥상에서, 나와 스타샤는 그 차갑고도 그리운 것을 조용히 맞는다.
우리는 약 3주의 시간을 도약해 과거에 도착했다.
발밑에 펼쳐진 도시엔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서 건물들이 서있다.
그 건물들 속에는 저마다의 주민들이 각양각색의 불빛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불빛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소음들.
사박사박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의 소음이 우리를 반겼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내는 자동차의 엔진소리,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무엇보다도 오로지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낼수 있는 공간감으로 가득한 도시의 소리.
분명 생명으로 가득한 공간만이 낼수 있는 소리다. 아직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불빛이다.. 사람들이야..! 살아있어..! 스타샤! 살아있다고!”
“2020년 1월 15일에 온 것을 환영해 제이콥. 사람들이 살아있는 건 당연하다고. 지금은 2020년 2월 12일이 아니야.”
그녀는 내가 도시전체를 눈에 집어 넣을 때 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내 옷섶을 당겼다.
“내려가자.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리고 지금 이 위치는 너무 위험해.”
“위험하다니?”
너무나 빠르게 일어난 일의 경우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인식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관자놀이에 서늘한 감각을 남기고 빗나간 총알이라던가.
맨 처음 느껴지는 것은 살이 찢어지는 감각이다.
그 다음에는 귀에 우겨넣어지는 총성.
그 다음엔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도탄되는 흉탄의 궤적.
빛을 흝뿌린 듯한 도시의 야경을 담아 그 검은 총알은 반짝였다.
스타샤는 내 머리를 잡아끌어 방금 도착한 승강기 속으로 밀어넣었다.
관자놀이에는 방금까지 혈관속을 흐르던 피가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는다.
시야가 흐리다.
무미건조한 철제 문이 닫히고 철커덕-철커덕- 차가운 금속의 소음을 남기며 구식 엘리베이터는 지상으로 향한다.
간신히 몸을 스타샤에게 기대어 서있다.
“스타샤 방금 그건 도대체... ”
“내가 말했던 우리의 목적 기억나?”
“분명 수많은 변수들을 더해서 30억명이 죽는 다는 최악의 결과를 막는 것.. 이었지.”
“그렇다면 그 변수들에 대한 설명은?”
나는 조용히 어제 그녀의 방을 떠올린다.
-나와 같은 시간여행자 같은 요소가 불안정요소라 생각하면 되고, 그 시간 여행자들의 행동에 따라서 미래는 바뀔 수도 있어.
“시간 여행자들. 시간여행자들의 행동에 따라서 미래는 변한다고.”
나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
“그래 맞아. 시간 여행자들. 시간여행을 우리만 하는 건 아니야. 시간여행자들을 상당히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있어.”
“자신들의 미래가 바뀌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제이콥. 내 설명을 듣긴 한거야? 미래는 바뀌지 않아. 단지 과거가 될 뿐이야.”
“나는 시간여행 초심자라고.”
“그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래가 생기길 원하지 않는것 뿐이야. 그들은 그들 자신을 관리국이라 부르지.
무엇을 관리하는 지는 아무도 몰라. 단지 그들은 질서를 추구해. 하나의 정립된 시간을 방해하는 걸 일종의 신성모독으로 여겨.”
패널 위의 숫자는 천천히 하강한다.
그럴 수록 의식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미치광이들이네”
“즉 우리가 30억명을 구하려고 타임리프 한 걸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
미래엔 역병 과거엔 총격이라.
썩 유쾌하지 않다.
가느다랗게 잡고있던 의식의 끈마저 놓아버릴 정도로.
“총에 맞은 것도 처음이라서 말이지… 우선 정신을 잃어도 될까.”
“…어쩔 수 없지. 조금 쉬도록해. 너는 빌어먹을 제이콥 예레미야니까. 어찌든 풀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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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위의 여성은 한참이나 목표물들이 사라진 엘리베이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총을 빗맞춘 것도,
후속타를 놓쳐 목표를 잃어버린 것도
전부다 정해져있다는 것이 씁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신성한 시간선에 따라 정해져있는 일이었으니까.
“…시간…위치…보고해”
인컴 너머로 노이즈가 잔뜩 낀 음성이 들린다.
다.
관리국이다.
“현 시각 2020년 01월 15일 19시 39분. 시립병원 맞은편 시티타워 옥상. 목표물들은 예정대로 시간여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럼, 건투를 비네.”
그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로 격려의 말을 전했다.
“네. JJ. 이상. 시간관리국 공안 0과 소좌 아나스타샤 카오루 .”
그녀는 조용히 옥상에서 발밑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파에 치여 이리저리 흘러간다.
한달후면 전부 죽고 없어질 살아있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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