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묵새 이야기 및 댓글들을 보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한 번 적어봅니다.
들묵새가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농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 분야에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에버렛 로저스라는 학자가 주장한 "혁신의 전파 (Diffusion of innovation)"라는 이론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기술이나 정보의 혁신이 이루어져도 이러한 변화가 사회 전반으로 한꺼번에 퍼져나가지는 않으며
심지어는 그 효과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입증된 경우에도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전파되거나, 아예 사장되는 혁신 기술도 부지기수라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배를 오래 타고 항해하면 영양소 부족으로 인해 괴혈병이 걸리는데, 여기에는 레몬 주스가 특효약입니다.
처음에 이걸 알아낸 사람은 그 효과를 실험해 보려고 배 세 척을 원양 항해 보낸 다음 그 중 한 척의 선원들에게만 매일 레몬주스를 한 스푼씩 먹였지요.
그리고 오랜 항해 끝에 배들이 돌아왔는데, 레몬주스를 먹인 선원들은 다 건강한 반면 다른 두 척의 선원들은 절반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건 뭐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지요.
이 당시 괴혈병은 선원들에게 태풍보다 더 한 끔찍한 재앙이었고,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혁신적인 방법은 곧바로 전국으로 퍼져야 정상인데...
그 뒤로 150년 동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묻혀버립니다. 발견자가 비밀이라고 꽁꽁 싸맨 것도 아닌데, 그냥 이 효과적인 방법이 안 퍼져나간 겁니다.
150년 뒤에 영국 군의관이 기록을 뒤지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실험을 한 다음 그 효과를 입증했는데, 이 당시 영국 해군은 전투로 인한 사망자보다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영국 해군에 레몬 주스가 정식으로 보급된 건 군의관이 실험한 후 45년이 더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상선 연합이 관련 규정을 만든 건 해군에 레몬 주스가 보급되고도 70년이 더 지난 후였구요.
괴혈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확실한 치료법이 발견되고 그 전파에는 25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아무 이유도 없어요. 레몬이 구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고, 레몬에 반감을 가진 거대 기업이 로비를 펼친 것도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안 받아들인 겁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꽤나 많이 있지요. 두벌식 자판보다 모든 면에서 기능적인 드보락 키보드가 사장된 사실이나 페루의 물 끓여먹기 캠페인의 실패 등등.
농업에서도 가뭄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모내기가 전파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일이 걸린 역사가 있지요.
그리고 이건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분명히 혁신적인 기술이고, 상용화 되는 것도 아무 문제 없는데, 그냥 사람들이 안 써서 묻히는 거죠.
그래서 새로운 기술, 그런데 아직 널리 확산되지 않은 기술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좋은 기술이라면 왜 아직도 아무도 안 쓰는가?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거지."라는 선입견을 갖기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 기술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과, 부정적으로 단정짓고 배척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혁신의 전파'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 보이는 말이구려. 감사하오.
어떤 그 무엇이 '혁신적'인 것이라면 그 혁신의 신빙성이 몇 퍼센트인가. 이건 99프로 이상 혁신적인게 틀림 없다. 혹은 이게 혁신적으로 보이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거나..하는 것이 깊고 넓게 논의되어야 하겠소. 그 논의의 시간이 한세월이라 100년이 갈 수도 있겠지만 말이오. 한편 논의의 여지 없이 이건 혁신'이라는 게 확실한 경우에도 그 전파는 늦어질 수 있겠구려. 이런 경우 초고속 인터넷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이를 널리 펴서 만인 만물을 이롭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소.
그런데 저 책을 읽다보면 통신망이 아무리 발달하고 효과가 분명히 입증된 혁신 기술이라도 그냥 묻히는 경우가 많아서 재미있습니다. 부작용보다 그 효용성이 훨씬 더 큰 경우에도 부작용만 강조해서 전파가 늦어진다거나, 아예 사람들이 그냥 안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예로 들었던 드보락 키보드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쿼티 키보드보다 우월한데도 사람들이 그냥 귀찮아서 안 써버린 거지요. 타자 속도가 월등히 빨라지는 명확한 이득이 보여도 말입니다. 그런 반면에 크롬 브라우저는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정착했으니... 어쩌면 혁신 기술에 가장 필요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운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글입니다. 레몬 이야기 유명하지요.
문제가 있더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없는한은 적용가능한 범위에서 유용하다면 활용할 일입니다. 예로 들묵새를 어떻게 볼지는 ..글세요 스스로 균형잡힌 관점으로 접근해야할 듯.
확실히 발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원래 다른 동물들 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지는 않은 존재라고봄. 합리적 모습 보다 비합리적 모습이 더 많았던 것이 역사적 선택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