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기쁨
뻥 뚫린 논 한가운데 보리 심은 밭뙈기가 보름달처럼 우뚝 솟아 있구나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버린 고독한 섬같은 모양을 한 채 평온한 나의 보리-밭이여
사방 팔방을 다 둘러봐도 온 천지가 모두 휑하고 빈 채로 유독이 바람만 산들산들 밭을 가꾸네
머리는 쾌청하고 말은 적어지고 마음은 빈천한 가운데 평화로운 이 몸이여
공의 도리에 심취한 지 삼 천년인데, 해공 제일 수보리가 따로 없구나!
복잡하고 번뇌로운 서울을 떠나니 나의 집이 바로 이곳뿐인데
평야처럼 느껴지는 넓은 논 한가운데 보리-밭은 불뚝 솟아 아무말도 하지 않네
막혀 있던 나의 이목구비도 모두 텅하고 가벼워지는 듯,
생각과 느낌과 지어감도 모두 녹는 듯하네
아아 어쩌면 이것이 공의 도리인가, 또 어디서 공을 찾을 수 있나
극락이 따로 있는가 무릉도원이 여기는 아닐까
풀잎도 나무도 밭에 심은 참나물과 보리 심은 밭뙈기도 모두가 大同한데
아아 그립던 나의 절 수덕사여-
경虛와 만空도 나를 부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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