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 쯔음부터는 아마 근무기보단 생존기가 맞지 않나 싶은데
난 돈에 그닥 관심이 없는 편으로 '존재'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뭔 소린고 하니 나도 설명하기 귀찮다)
즉 카드빚을 지면 대책이 없는 인간이란 소리다.
딱히 유흥이나 도박이나 비싼 취미가 없었던 까닭에
빚이 크게 늘 일도 없었지만, 반대로 카드빚을 꾸준히
줄여나갈 계획성도 없었다.
월급이 줄어도 괜찮을 줄 알았던 카드빚은 어느 시점부터
내 신용도를 깎아먹었고 돌려막기 과정에서 이자가 점점
오르면서 빚도 한계까지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오늘만 살았네.
원금은 2-3천 사이었을텐데 몇년을 갚고나서도 보니깐
4천대에 육박해있었다.
......
일단 안경원으로 돌아가야지 별수 있나...
여친도 이정도면 살만해진거 같고, 친척네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누군가 차라리 회생해서 정리하라고 일러줬긴 했는데
내가 빌린건데 까짓거 그냥 갚지 뭘 안갚겠다고 용을 쓰나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폐업하고 여태까지 원금의 몇배를 줬는데 줄긴 커녕
더 늘었다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나서야 어이를 상실하고 회생을 알아봤다.
돈이 내 신경을 뺏어가는거 자체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걍 시키는대로 떼오란 서류 다 떼오고 신경을 꺼버렸다.
애당초 가난하게 컸고 나중에 아버지가 크게 사업하면서
번 돈이야 다 교회에 갔지 내 수중에는 들어온게 없었다.
학비도 내 벌이나 대출로 때울 지경이었으니 가난은 익숙하다.
시골의 월세 12짜리 쥐나오는 창고딸린 방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고등학교를 다닐때도, 나라에서는 이것저것 지원금이 나왔지만
내 앞으로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안경원을 다섯개를 하고 있으니 나올 턱이 있나.
대학에 가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은
모두 날 비껴갔다. 교수님은 나를 불러 처지가 힘든걸 알지만
나한테 지원금을 줬다간 문제가 된다고 양해해달라 부탁했다.
고3을 졸업하고는 한동안 아버지 안경원에 딸린 숙소에서 지냈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형이 늘 신세한탄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당시 반 강제로 안경광학과로 결정나긴 했지만 꿈이 완전히
좌절된 것은 아니어서, 안경광학과를 졸업하고 면허증만 던져주면
다시 인문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새빨간 독일철학책에
빠져 살때였다.
maid in germany는 안경렌즈만 유명한건 아니고 철학쪽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책이 사위때문에 두개로 보여 한쪽 눈을 가리고 읽는데
그것마저 방해하겠다고 옆에서 시도때도 없이 신세한탄을 늘어놓으니
화가 불쑥 치밀었고
"그럼 우리아빠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게 더 낫단 소리에요?"
라고 맞받아쳤다.
눈을 열심히 굴리더니 "그건 아니지...." 하고는 조용해지긴 했다.
하루만.
경제적으론 없는게 더 이득인 아버지였기 때문에 친구들이 흙수저 같은
한심한 소릴 읊을때도 마이너스 수저론으로 침묵시키기가 편했다.
그리고 그런 인생에 그리 좌절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노동과 소비 때문이라도 노예들을 굶겨죽이진 않는다.
돈에는 뜻이 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교를 못간 것만 한이었는데
이건 나중에 여친 따라서 학회나 행사 다녀보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이것들 배우는게 별거 없네.
종종 책을 읽다보면 번역한 놈도 이해를 못한 채 번역을 해놔서
원문 찾아서 맥락까지 다 흝고 나서야 이해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런 작자들이 꼴에 교수 직함 달고 애들 가르치는게 한국 인문의 현실이었다.
그럴거면 걍 프랑스처럼 독일꺼 대놓고 훔쳐서 이름표라도 바꾸던가.
김수행 교수는 한국에 자본론을 이해한 사람이 열명도 안된다고 개탄을 했더랬지.
그러나 여친을 데리고 사니 처음으로 가난이 무서워졌다.
가난은 날 죽이진 못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는 있구나.
그 쯔음 종종 연락하던 평택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뜯어말려도 기어코 내가 하지 말란 특정 프랜차이즈를 끼고 몰 안에
안경원을 차렸었는데
(보통 백화점이나 아울렛 같은 몰은 영세한 안경원과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본사와 계약하고 이 프랜차이즈가 안경원을 모집하는 식)
이 친구는 내가 안경원 할때 괜찮대도 찾아와서 도와주고 그랬던 놈이다.
친구 빚은 갚아야 하니 별수 없이 평택까지 오가며 일을 도와줬다.
그래도 먹고 살만하다고 페이는 꼬박꼬박 챙겨줬다.
알바 내내 자꾸 평택 내려오라고, 실속도 없는 서울에서 뭣하러
발버둥 치냐고 계속 꼬셨다.
"나랑 너랑 일하면 니 머리 다 빠져 임마"
그 친구는 천성이 장사꾼에 딱 맞아서 혀가 아주 춤을 추는 타입.
걍 쉽게 쉽게 가자는 타입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오자마자 그 프랜차이즈 책자 펼쳐놓고 다초점들
원청 어딘지, 설계 어떤지 캐물으니 혀를 내둘렀다.
매장도 쥐꼬리만한데 그냥 지나가다 테가 맘에 들어서 들어온
아줌마들에게 기능성이며 다초점까지 팔아놓고
찾아갈때 뭐 체크해야 하는지 메모까지 해서 이 건성건성인 놈
놓치는 거 없게 챙겨줘야 했다.
그러면서 난 여친 사정으로 다시 이사를 해야 했는데, 도봉구였다.
이사를 하고나서 보니 사람 구하는데가 별로 없었다.
여기는 왜이렇게 ㅇㄸ이 많냐....
ㅇㄸ은 거르고 ㄷㅂㅊ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ㄷㅂㅊ 근무했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어떤지 물어보고 빠른 포기.
그 친구도 나를 알기 때문에 어림없다고 단칼에 잘랐다.
그 외에도 후질근한 동네 안경원들 구인글 올린 곳에 찾아가서
밖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염탐 좀 하다가 돌아오기 일쑤였다.
창동역 근방 위주로 뒤져보다 한 군데 발견한 곳이 있었는데
면접을 가니 내 또래거나 한두살 많아보이는 사장이었다.
면접을 보니 꽤 놀라웠는데
300 원한다 했더니 페이를 내 기준 꽤 낮게 불렀다.
그리고 심지어 책임자로.
...... 280에 책임자까지 시키겠다고?
출근 10분이라 웬만하면 그냥 하려고 했는데 이건 좀....
의정부는 구인이 많았다. 그냥 지하철 타고 의정부로 다닐까 싶어서
구인글들을 살펴봤는데 동네가 어떤지 파악이 안됐다.
이럴때는 여러 안경원들 돌아다니는 영업사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아휴 그쪽으로 이사가셨구나.... 그쪽은 힘들어요 사장님...."
"의정부쪽으로 올라가면 어때요?"
"거긴 더해요. 진짜 더 올라가지 마세요"
별로 희망적인 얘기는 못들었다.
잠시 여친과 별거하고 나만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있을까 고민했는데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
안경왜 안경원 차렸다가 망했었음??
1편. 차린게 아니라 받은거
도ˇ박에 잃ˇ은ˇ돈 회ˇ수 해드림 ㅌˇㄹ DˇDˇSˇSˇ4ˇ3 +현직 은행원도 구함 목돈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