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네스 엘멜로이 아치볼트의 수업을 들었던 웨이버 벨벳 학생은 그에게 마술협회의 통념에 반하는 논문을 작성해 제출하게 된다. 케이네스는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 내지는 교수로서 그런 글 따위는 그냥 무시하거나 개인적인 편지로 완곡한 답변을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자의 글을 완독한 케이네스는 잠시 생각하다 다음 수업에서 제자에게 공개 망신을 주기로 했다.

케이네스가 인성파탄자라서, 망신을 당해 굴욕감을 느끼는 제자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폐급 변태 교사라서 그랬을까? 그런 성품이었다면 4차 성배전쟁 이전까지 있었던 명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케이네스는 왜 웨이버에게 망신을 주는 것을 선택했을까?

이것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술사 사회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알 필요가 있다. 마술협회에 법정과가 존재하고 어느정도 질서유지를 행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술사가 마술사를 공격해서 죽으면 죽은 쪽이 허접한 병신이라는 마인드가 전제로 깔려있다. 게다가 그냥 사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배신자라고 죽일 이유가 충분해지고 처단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다시말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죽이는 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시계탑에 반항하는 글을 쓰는 건 60~80년대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가 옳다는 연설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 그에게 공개 망신을 줌으로써 어린 학생의 일탈로 치부하고 사실상 구원해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웨이버는 어쩌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웨이버도 마술사인데 마술각인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마술가문의 연식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를 리가 없다. 달랑 네모 하나 있는 웨이버의 마술각인이랑 다른 마술사의 마술회로를 보면 얼마나 차이나는지 시각적으로도 보인다. 그런 웨이버는 어쩌다 개인의 이해와 역량만으로 그 차이를 뒤집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까?

그것은 바로 케이네스의 존재 때문이다. 케이네스는 엘멜로이의 9대 당주이고, 이를 통해 엘멜로이 학파 1대를 70~80년으로 잡으면 대충 승계 시점에서 560년~640년 정도 되는 연식으로 엄청 오래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역사가 짧은 건 아닌 학파이다. 하지만 아치볼트 가문으로 한정하면 다르다.

아치볼트 가문은 엘멜로이 학파 내에서 연식이 짧은 편이라는 정보가 있다. 그런데 케이네스는 당당하게 제 실력으로 시계탑 색위에 오르고 엘멜로이의 정점에 선다. 웨이버의 눈에 케이네스는 마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웨이버는 아이돌 팬심 마음으로 케이네스의 제자가 되었고, 케이네스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대충 알면서도 망신을 준 것이다. 그야말로 참스승이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