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왕도 관련 논의는, FZ에서 세이버를 너무 고결한 기사로 만들어놓아서, 세이버를 억까하는 분위기가 납득이 좀 안 갔음. 고매한 이상을 가진 주인공에게 고통을 줘서 오히려 그 비극적 영웅성을 강조하는 우로부치식 추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감탄했던 건 키리츠쿠의 서사 쪽임
5차 성배전쟁이 시작되면 이리야는 성배가 되어 죽을 수 밖에 없음. 그걸 심상세계 속에서 가족의 목숨이냐, 전 인류의 목숨이냐 하고 앙그라마이뉴가 묻고, 키리츠쿠는 울면서 이리야와 아이리를 쏴죽인다는 걸로 대신 표현했음. 가족을 선택했다면 성배전쟁이 끝나서 이리야-아이리는 심상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키리츠쿠는 성배전쟁이 계속되는 걸 선택해서 둘 다 잔혹하게 죽게 됨. 이게 일단 좋았고...
1. 키리츠쿠가 다수를 위해 소수를 배제한다 - 그 결과는 모순적이게도 인류 대다수의 죽음
2. 인류를 위해 가족의 죽음을 선택한다. - '다수를 위해 소수를 버린다'라는 사상을 키리츠쿠 스스로 부정하는 과정이, 역설적이게도 소수(가족)을 버리는 거임. 일반적인 시나리오 작가였으면 '나는 소수를 구하겠다'며 키리츠쿠가 각성하게 했겠지만, 우로부치는 여기서 연출을 역설적으로 꼬아 버렸음. 구도를 모호하게, 서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영웅적 각성의 여지를 아예 없앴음. 자신의 뒤틀린 사상과 결별하기 위해 그 사상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실행해야 한다는... 뒤틀린 전개임.
3. 성배를 파괴해서 마을이 성배에 휩쓸림 -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키리츠쿠가 내버리는 '소수'에 마을 주민들이 포함되게 되었음. 심상세계에서 본 극단적인 영상이 이렇게 실현되고 키리츠쿠는 그 결과를 직접 보고 정신이 나감. 키리츠쿠 자신이 내버린 '소수'인 마을 주민들 속에서도 단 한 사람인 에미야 시로를 구하게 함.
키리츠쿠의 선택은 1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를 버리는 과정이지만, 마을과 가족을 생각하면 마지막으로 공리주의를 시행했던 거임. 이렇게 이야기를 꼬아서 역설적인 결말을 내는 것이, 우로부치가 확실히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능수능란하다고 생각했음.
용병일 하면서 사람 죽일 시간에, 틈틈이 책만 읽었어도...
그런 치밀함이 다른 페이트랑 너무 이질적임 본편만 해도 정의의사도가 뭔지도 모르고 정의의사도 할거라고 난리치는데
ㄹㅇ 타입문 시리즈하고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임. 그렇다고 니트로플러스때 우로부치 스타일하고도 확연히 다른... 17세기 영국 잔혹극같음
문제는 그 서사자체가 나는 불쾌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