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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잘 안씻는 편인데, 오늘로 총 2주동안 머리를 안감은 날이었음


집에서도 가족들이 좀 씻어라 씻어라 해도 손님 오는거 아니면 세수만 함. (양치질도 이틀에 한 번 한다)


우리 가족은 매 크리스마스 전후날에 꼭 맛있는 외식을 하거나 아니면 다같이 모여서 케이크를 먹곤 하는데


동생들이 케이크는 매년 먹던 투썸 케이크를 예약했다길래


당연히 오늘도 외식을 나갈거라고 생각하고 방 안에 드러누워서 냅다 잠들어버렸다.


그런데 누가 파판 귓말을 연속 보내는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온 집안이 어두컴컴하고 불 한 줌도 없이 고요한게 아니냐?


시간을 보니까 이미 다 늦은 밤이더라고


가족들이 깜짝 파티라도 하는줄 알고 가만히 있었는데 을씨년스럽게도 아무 사람이 없더라


그제서야 가족들한테 전화를 해보니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안씻어서 더러우니 외식은 우리끼리 간다' 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러워져서 파판이 켜져있는 컴퓨터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한 30분 동안을... 혼자서... 계속...


그동안 내 머리 속에는 온갖 잡다한 생각이 떠돌아다녔지.


계속해서 울리는 개씨발놈의 귓속말 테러(자기네 갱신팟에 섭힐 없다고 와달라고 귓한거였음)와


가족들이 오순도순 다정하게 모여 앉아서 맛있게 먹고 있을 따뜻한 외식 풍경,


그리고 혼자서 외롭게 책상 앞에 앉아, 2주동안 머리도 안감은 더러운 몰골을 한 이 나의 처량한 모습.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여서 볼 위로 눈물이 흐르는게 아니냐.


사실 내 인생 살아오면서 이성에게 차였던적 외에는 단 한순간도 울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서럽고 또 서러웠다


그런데 내 캐릭터가 초코보 림사에 있었는데 어떤 닭머리 탈을 쓴 캐릭터가 나한테 오더니 하는 왈.


"수정공님, 저는 오늘 성당에 갑니다."


갑자기 이놈이 내게 와서 자기가 성당에 간다고 하더군.


그 말을 보자마자 나도 성당에 가야겠다고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래라면 씻지도 않았을 내가 성당에 가야한다고 결심을 한 순간, 새로운 나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머리에 물도 묻히고 오늘은 가족이 쓰는 클렌징폼으로 세수도 깔끔하게 한 뒤에 서랍에 넣어진 깔끔한 옷도 입었다.


집 5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가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경건해지더라.


흰 면사포를 머리에 드리운 채로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모습을 본 순간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나처럼 머리가 더럽지도, 옷차림이 추레하지도 않고,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온 거더군


성찬이랍시고 앞에서 빵인지 물인지 뭔지를 나눠주는데 난 세례를 받지 않아서 못먹었다.


미사 도중에 내 앞, 뒤,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나한테 인사를 하는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보는 내게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가 있는건지.....


성당 의자에 앉아서 흐르는 콧물만 쓱 닦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새해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되리라..............


새해부터는 깨끗하게 씻는 습관을 들이리라....


새해부터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리라....


그리고 집에 와서 컴퓨터 책상에 앉았지.


경건하게 내 캐릭터(주사위 내기에서 진 상태, 여자 미코테임) 야짤을 누가 찍어준걸 보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리라고..........


그렇게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이게 내 크리스마스 이브에 겪은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