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중에도 보려고 피갤에 자료용으로 올림 
올림픽 직후 구메닉 어머니 인터뷰인데 내용 긴데 흥미로움 
특히 향수 저작권 문제가 실제로 고의성 다분했던 내막이 있었단 게 충격인데 아무리 러시아선수라 해도 너무하다 싶네 
타기사에서 비자도 막판에 터져서 출국 직전 즈음 받은걸로 앎 
인터뷰 내용은 후반부가 재밌슴 


«아이가 정신을 놓을까 봐 두려웠어요»: 독점 인터뷰

표트르 구멘니크의 어머니가 말하는 올림픽, 긴장, 그리고 부모로서의 실수

2026년 2월 17일 16:14

저자: 세르게이 푹스

남자 싱글 부문의 미친듯한 결말은 이번 올림픽의 주요 화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팬들에게는 일리야 말리닌의 부진이나 미하일 샤이도로프의 성공보다, 온갖 난관을 뚫고 생애 첫 올림픽에서 6위에 오른 표트르 구멘니크의 연기가 더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표트르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마주한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그가 피겨 스케이팅을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왜 어린 시절 그를 식단 조절시켜야 했을까요? 이 모든 이야기를 표트르의 어머니이자 소아 신경과 전문의인 옐레나 구멘니크가 들려주었습니다.

- 옐레나 씨,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얼마나 긴장되셨는지요?

물론 매우 긴장되고 걱정되었습니다. 제 둘째 아들이 생물학 전공이라 모스크바에서 캠프 중이었는데,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으니 "캠프가 생각만큼 생산적이지 못했어요. 형 때문에 너무 걱정돼서요"라고 하더군요. 우리 가족 모두가 정말 많이 걱정했습니다. 저 역시 업무 중에 실수를 할까 봐 직장에 일주일 휴가를 냈을 정도였으니까요. (참고: 옐레나 구멘니크는 소아 신경과 의사이다.)

- 표트르의 경기를 생중계로 보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불안감을 극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요?

기도합니다. 프리스케이팅 당일 아침에는 크론슈타트의 이오안 사원에 가서 기도했어요. 요컨대, 기도를 합니다.

- 표트르 본인도 긴장을 풀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나 의식이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특별한 의식 같은 건 잘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평소처럼 하고요. 제 생각에 아이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것 같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마음을 가다듬는 법을 알게 된 거죠.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단단한 편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에 관심사가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모스크비나 코치님의 유익한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페탸(표트르의 애칭)는 올해 휴학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치님께서 휴학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죠.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생각에만 파묻혀 스스로를 괴롭히게 될 거라고요. 대신 학업 스케줄과 마감 기한에 쫓기며 "여기 가야 하고, 저기 늦으면 안 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긴박함 속에 있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 명문대 학업과 운동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나요?

네, 아이는 훌륭한 대학(저와 페탸는 ITMO 대학이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 양성 대학이라 생각합니다)의 명문 학부에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고, 그곳에서의 성취도 기뻐합니다. 한번은 팀 과제를 받았을 때 자기가 너무 신이 나서 과제를 거의 혼자 다 해버리는 바람에, 동기들이 참여할 틈도 없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아이는 도전을 즐기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만약 그런 큰 도전이나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이는 시들해졌을 거예요. 쇼트 프로그램 음악 문제(사용 금지 논란)가 터졌을 때도 그랬죠. 물론 그 상황 자체는 비극에 가까울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페탸, 누군가 너를 해치려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잘될 거야. 어려움은 네가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니까." 어떤 사람들은 강한 시련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하잖아요.

- 음악 문제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텔레그램 채널 어딘가에 그 음악 저작권 회사가 러시아 선수인 페탸에게만 권리를 철회했다는 취지의 글을 쓰셨는데요.

제가 텔레그램에 직접 쓴 건 아니에요. 제 허락 없이 유출된 개인적인 메시지 캡처본인데, 사실 관계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공식적인 정보를 내놓지 않은 이유는 모든 내막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에요. 출국 하루 전날 벌어진 일이었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페탸의 컨디션이었고 급히 음악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도 조언을 하며 도왔고 아이도 저에게 후보곡들을 보여줬어요. 그 상황에서 아이를 더 자극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몰아넣어서는 안 됐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베로니카 아나톨리예브나나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코치님께 여쭤보는 게 제일 정확하겠지만), 처음에는 허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페탸가 이 상황을 두고 이런 농담을 했거든요. "이러다 비행기도 음악처럼 되는 거 아냐? '우리 비행기가 당신을 태워다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생각해보니 안 되겠네요'라고 하면 어쩌지?" 그래서 제가 "그럼 이륙하기 전에 그런 일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자"라고 답했죠.

페탸가 받은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음악 사용을 허락할까 생각했지만 나중에 금지했다고요. 거기에는 "우리는 그가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하기를 바랐는데, 그는 소셜 미디어에 정치적 발언을 전혀 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 세상에나.

특정한 정치적 발언을 원했던 거죠. 제가 이해한 상황은 그렇습니다.

- 비자 문제도 있었다고 동료들에게 말씀하셨는데요.

네, 비자도요. 처음에는 "걱정 마라, 모든 올림픽 선수들에게 전자 비자가 발급될 거다"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서류가 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자 비자가 안 되니 일반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받았죠. 다행히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코치님 덕분에 아주 빠르게 일반 관광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재가 쏟아진 느낌이네요.

네, 정말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아이의 진을 다 빼놓으려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페탸는 맷집이 꽤 좋은 아이입니다.

- 최근 몇 년간 출전 금지 문제 등으로 인해 일부 러시아 선수들이 다른 나라 국가대표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표트르는 그런 생각이 없었나요?

저는 그런 선택을 한 선수들을 절대 비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페탸는 항상 러시아 국가대표팀에 있고 싶어 했으며 다른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우리는 항상 밝거나 차분한 표트르의 모습만 봅니다. 아이가 화를 내는 경우도 있나요? 그 감정은 어떻게 나타나나요?

아이는 착합니다. 긍정적이고 밝으며 아주 다정해요. 또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농담을 정말 많이 하죠. 하지만 타인을 비하하거나 상처 주는 농담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는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못 하게 했어요. 부모 입장에선 가끔 다른 선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한번은 페탸가 친구 제냐 우스텐코와 같이 훈련할 때였어요. 
제냐를 뒤쫓아 뛰어가다 페탸가 넘어져서 손가락이 부러졌죠. 그래서 제가 다른 엄마랑 앉아서 "제냐 우스텐코 쟤는 왜 저렇게 빨리 달려서 애를 넘어지게 만드니..."라며 뒷말을 좀 했어요. 그랬더니 페탸가 다가와서 "내 친구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나쁜 말 하지 마세요"라고 하더군요. 저희가 "왜 안 되니? 우린 어른이고 그냥 얘기 좀 하려는 건데"라고 하니까 "제 친구니까 안 돼요"라고 하더군요. 페탸는 절대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게 아이의 원칙이고 모두를 존중해요.
하지만 아주 가끔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정말 드문 일이지만 한번 터지면 아주 격렬해요. 우리 집 문 한쪽이 부서져 있거든요(웃음). 사람들이 "왜 문에 큰 구멍이 있어요?"라고 묻곤 하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예쁜 문양의 판지로 메워 두셨죠. 뭐, 그럴 때도 있는 법이죠.

- 표트르는 완벽주의자인가요?

아니요, 완벽주의자는 아닙니다. 매우 합리적이죠. 사실 그 점이 스포츠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는 자신이 대략 몇 위쯤 할지 항상 알고 있습니다. 1등을 못 할 것 같으면 "네, 중위권 다툼을 해볼게요"라거나 "아직은 그 정도까지 안 돼요"라고 말합니다. 무조건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아이가 아니에요. 피겨 스케이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1등을 못 한다고 해서 그만둘 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최선을 요구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정합니다.

- 이번 올림픽이 인간 표트르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더 단단하게 만들 거라 생각합니다. 음악이 바뀌었을 때 저는 사실 아이가 훨씬 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줄 알았어요. 솔직히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페탸는 음악적인 아이인 데다, 그 프로그램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아니까요. 최근에 점프도 안정됐고 모든 게 좋았어요. 동작 하나, 손짓 하나, 시선 하나를 다듬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죠. 옐레나 차이콥스카야, 니콜라이 모로시킨, 다닐 글레이헨가우스, 베로니카 다이네코, 타마라 모스크비나 등 수많은 분이 "여기선 시선을 좀 더 광기 어리게 해봐", "여기선 손동작을 더 섬뜩하게" 같은 조언을 해주셨고, 속눈썹의 떨림까지 연습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 수포가 된 거죠.
물론 새로 바꾼 음악도 아름답고, 솔직히 저는 그 곡이 더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그건 (준비해온) 그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숙련되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페탸가 "그럼 내가 왜 가는 거지? 그동안의 고생은 다 뭐였지?"라며 폭발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페탸도 가끔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시 마음을 다잡더군요. 아이는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완벽한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러 가겠다"며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좋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연예인 병'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요. 라커룸에 가면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들이 득실대거든요. 페탸가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연예인 병은 안 걸릴 거예요. 라커룸 분위기가 그걸 허락 안 하거든요." 아시겠지만, 라커룸에서 누가 공작처럼 목에 힘을 주면 금방 비웃음을 사고 제자리를 찾게 될 테니까요.

- 올림픽 판정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네요?

네, 판정을 비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는 것 같아요. 통화할 때 "겨우 3점 차이인데, 거기서 내가 잘했다면 어땠을까?"라며 자책을 좀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이 성장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 표트르가 언제 돌아오는지 알려졌나요?

2월 23일입니다.

- 돌아오면 가족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 계획인가요?

아이는 가족 모두와 함께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대가족 모두가 페탸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할아버지는 페탸가 어릴 때 스케이트장에 데려다주곤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영상을 볼 용기가 있는 분은 할머니 한 분뿐입니다. 할머니는 이콘(성상화)을 옆에 두고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시며 점프 하나하나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뛰어라, 뛰어라, 뛰어라!"라고 기도하신답니다.

- 처음에 피겨 스케이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본인의 의지였나요, 가족의 합의였나요?

저는 남자아이라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목을 시켜봤죠. 먼저 수영을 보냈는데 오래 다니지 못했고 성과도 없었어요. 나중에 보니 다들 헤엄치고 있는데 우리 애는 바닥을 발로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웃음). 수영은 영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그다음엔 레슬링을 시켰어요. 아이가 민첩해서 코치님이 칭찬을 많이 했지만, 아이는 그걸 너무 싫어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왜 싸워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싸웠겠지만, 명분도 없이... 매번 울면서 갔고 코치님이 제 품에서 아이를 떼어놓아야 할 정도였죠.

그러다 우연히 스케이트장에 보냈는데, 첫날부터 사랑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달려갈 정도였죠. 첫 코치님은 타티아나 볼코바였습니다. 훈련 기간이 짧아 기술적으로는 많이 가르쳐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인 면모나 동기부여 면에서는 많은 걸 주셨어요. 아주 열정적인 분이라 늘 "곧 대회인데 아직 준비가 하나도 안 됐다, 빨리빨리 해야 한다!"라며 아이를 자극하셨죠. 덕분에 페탸는 금방 흐름을 탔고 대회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 중에 아티스트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스테핀 선생님도 기억납니다.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출신이신데 페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당시 페탸가 표현력이 너무 부족하고 내성적이라 알렉세이 미신 코치님이 그를 부르셨죠. 발레 쪽에 계시던 선생님이 이 어려운 사례를 맡으러 오신 거예요. 그분도 아주 감성적이셔서 "자, 이제 소리 질러봐! 이번엔 부끄러워하는 엄지공주를 표현해봐! 이번엔 뼈다귀를 뺏기게 생긴 커다란 개를 흉내 내봐!"라고 하셨고 페탸는 그걸 다 해냈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얘는 예술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훌륭하다! 사춘기 소년이라 좀 쑥스러워할 뿐이지 곧 꽃을 피울 거다"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이 주문처럼 아이의 봉인을 풀었습니다. 그 거장이 문제가 없다고 하니 페탸도 자신을 믿게 된 거죠. 그때부터 페탸는 아주 표현력이 풍부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결국 페탸에게 피겨 스케이팅은 시작부터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스케이트장에 가는 날이면 기쁘게 일어났죠. 한번은 아이가 6~7살 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등을 구부리고 계속 스케이트 타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코치들이 하도 자세를 펴라고 가르치니까 그렇게 농담을 한 거죠.

- 피겨를 그만둘 뻔한 위기는 없었나요?

아이는 없었습니다. 항상 타고 싶어 했죠. 다만 부모인 저희에게 위기가 있었습니다. 12~15세 사이에 아이에게 부상이 정말 많았거든요. 깁스를 달고 살았고, 슐라터병(무릎), 발 부상, 신츠병(뒤꿈치)까지... 점프는 안 되고 모든 게 무너지는 시기였습니다. 결국 알렉세이 미신 코치님 밑을 떠나게 됐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군가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코치님도 저희도 협력을 끝내는 게 맞다고 판단한 거죠. 그때 저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지로 떠나게 됐으니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고, 운동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 페탸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세 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라파엘 아루튜냔 코치님입니다.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페탸가 그분께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분이 페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죠. 갑자기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그러시더군요. "이 아이는 모든 걸 갖게 될 겁니다. 저는 수많은 스케이터를 봐왔습니다. 지금 점프가 안 된다고 낙담하시겠지만, 어떤 아이들은 성장이 늦게 옵니다. 페탸는 신체적으로는 아직 11~12살 같지만 머리와 동기부여는 18살입니다. 신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모든 점프를 다 뛰게 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잘 먹이고 잘 키우면 다 잘될 겁니다."
실제로 페탸는 15살 때까지 트리플 악셀도 못 뛰었습니다. 요즘 어린애들은 악셀에 쿼드(4회전)까지 뛰는데 말이죠. 하지만 라파엘 코치님의 말씀은 저를 안심시켰고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다음에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코치님이 페탸를 받아주셨죠. 그분은 원래 챔피언을 키우기 위해 학교를 만드신 분이라, 문제 있는 선수를 동정심으로 맡아 대충 은퇴하게 두실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이 페탸를 맡았다는 건 가능성을 믿으셨다는 뜻이죠. 그리고 베로니카 아나톨리예브나 코치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해 주셨고요.

첫 대회에서 페탸가 쇼트 프로그램 점프를 다 넘어져서 망쳤던 기억이 납니다. 
베로니카 코치님은 평소 아주 열정적인 분임에도 페탸를 꾸짖지 않고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제가 아직 아이를 잘 몰라서 접근 방식을 못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좀 더 주세요."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신 거죠. 코치가 책임을 지고 아이가 게으르다거나 재능이 없다고 탓하지 않는 모습에 저는 안심했고, 더는 개입하거나 아이에게 운동을 그만두라고 설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부모의 고민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면, 피겨 스케이팅 학부모들이 가장 유별나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직접 겪어보셨나요?

우리 모두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스포츠 가족이 아니라서 뭐가 뭔지 몰랐고, 좋은 엄마이면서 페탸를 좋은 선수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더듬어 찾아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옳을지, 어디서 동기부여를 하고 어디서 혼내야 할지, 어디서 압박하고 어디서 다독여야 할지 말이죠.

가끔 제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실수 중 하나가 '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페탸가 체중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몸이 불어나는 시기와 키가 크는 시기가 있잖아요? 페탸가 한창 몸이 불어날 때 제가 식단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페탸는 고집이 정말 세거든요. 그런 통제를 도전으로 받아들인 거죠. 결국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눈만 돌리면 눈앞에 있는 모든 걸 순식간에 해치우는 식이었죠.
오래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초콜릿을 순식간에 쓸어 먹고 빵집을 털고 과자를 킬로그램 단위로 먹어 치우는 습관이 한동안 남았습니다. 그래서 페탸에게는 친절하게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지금 제가 피겨 스케이팅 문제로 아이를 혼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옷을 풀어헤치고 다니니, 감기 걸리려고?" 같은 걸로 혼낼 수는 있어도 운동으로는 아닙니다.
부모의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의사로서 피겨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실수를 하는 걸 봅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피겨 스케이팅에만 국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디에나 있는 문제니까요.

- 올림픽에서 표트르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해 누구에게 감사하고 싶으신가요?

표트르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베로니카 아나톨리예브나 코치님, 니콜라이 모로시킨 안무가님,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코치님, 그리고 올림픽 출전 기회를 주신 러시아 피겨 연맹과 모든 팬분께 감사드립니다! 팬들의 강력한 응원이 페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모든 기복과 병치레, 스트레스와 긴장을 함께 견뎌내고 이제 기쁨을 나누고 있는 모든 가족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기사 업데이트 날짜: 2026년 2월 17일


petr gumennik 구멘닉 구메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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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프리 경기 후 Sport24 인터뷰 

러시아 매체 Sport24의 데니스 티린(Denis Tyrin) 기자가 진행한 표트르 구멘니크 어머니와의 인터뷰 전문 번역입니다.

구멘니크 어머니 인터뷰. 표트르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비자 문제, 람슈타인 거부, 길을 잃었던 사건까지

데니스 티린, Sport24
밀라노 올림픽에서 표트르 구멘니크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6위를 차지했으며, 동메달권과는 단 3점 차이였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에 대해 그의 어머니인 옐레나 씨가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Sport24가 그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 표트르의 프리스케이팅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아들의 경기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 아니요, 저희는 페탸(표트르의 애칭)의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전에도 이걸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제 남편인 올레그 신부의 대답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각자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고요. 피겨 스케이팅을 즐기고 페탸를 응원하며 경기에서 즐거움을 얻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인 저희는 역할이 다릅니다. 저희는 너무 깊이 몰입해 있어서 차마 지켜보며 즐길 수가 없어요. 저는 아직도 페탸의 경기 영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 의외네요. 그럼 아들을 위해 어떻게 마음을 졸이시나요?

— 온 가족이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사실 지금은 다 같이 있지는 않아요. 저와 남편, 막내아들이 함께 있고, 둘째는 모스크바에서 훈련 중이며, 딸 다셴카는 따로 살고 있거든요. 결과는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됩니다. 주로 소식이 올라오는 페탸의 팬 그룹들을 봐요. 그분들은 페탸에게 매우 호의적이라서 따뜻하고 진실한 정보가 올라오거든요. 거기서 소식을 접한 뒤에 나중에 결과 표를 확인합니다.

— 페탸의 결과를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 안도감, 기쁨, 그리고 페탸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 축하 인사를 많이 받으셨나요?

— 수십 통이 아니라 수백 통이었어요.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제가 예전에 일했던 곳들을 포함해 온갖 곳에서 페탸를 응원해 주셨어요. 제가 가입된 모든 채팅방에서도요. 저에게 자식이 페탸 하나가 아니잖아요. 둘째 이반의 반 친구들, 막내 콜랴의 반 친구들 부모님들까지요.
정말 사람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페탸가 이런 지지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우랄 지역에 큰 호수가 있는 달마토프 수도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호수가 얼면 수도사들이 거기서 스케이트를 탄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수도원 전체가 페탸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주셨다고 해요.

— 많은 이들이 표트르가 메달을 놓친 것이 큰 불공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하시나요?

— 저희는 매우 만족합니다. 제가 심판에 대해 논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일 거예요. 상상해 보세요. 제가 의사인데, 당신이 제 환자에게 전화해서 제 업무 능력을 논하는 것과 같죠. 그래서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합니다. 저는 비전문가라 절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페탸에 대해서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막내아들이 생각났어요.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내는 컴파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때의 상황 말이죠. 결과적으로 페탸는 컴파일러도 없이, 즉 유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경험도 없이 올림픽에 나간 셈이에요. 국제 심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할 방법이 전혀 없었죠.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그 이상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이 결과가 기쁩니다.

— 공교롭게도 페탸는 13일 금요일 23시 13분에 13번 순서로 출전했습니다. 이런 우연이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찜찜하진 않았나요?

— 네, 관련 기사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는 신앙인이라 그 사실이 그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 페탸 본인도 그런 징크스를 믿나요? 혹시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특별한 의식(루틴)이 있나요?

— 당연히 없습니다. 신앙인이라 그런 미신적인 의식은 지키지 않아요.
사람마다 집중하는 방식이 다르죠. 제가 어릴 때부터 지켜본 바로는, 페탸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주의를 조금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어요. 책임감이 워낙 투철한 아이라 경기 생각만 파고들면 결과가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피아노를 치거나 에어하키를 하기도 했죠. 약간의 환기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다 경기 직전이 되면 비로소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올림픽 전부터 모두가 일리야 말리닌의 금메달을 점쳤지만, 그는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표트르가 겪었던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 오히려 그 고난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니까요. 표트르는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심리적으로 아주 단단해진 상태로 임했습니다. 일리야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질 거라 생각해요. 페탸도 저도 일리야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선수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최고의 선수이며, 이번에 단지 실수를 했을 뿐 누구도 그가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겉으로 보기에 페탸는 이런 어려움들을 꽤 담담하게 견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이면을 알고 계시겠죠.

— 정말 많이 긴장했습니다. 올해 그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어요. 건강, 다식, 식단 등 모든 것이 원활한 출전과 좋은 경기를 위해 맞춰져 있었습니다. 본래 그런 성향은 아니지만 규칙적인 생활 패턴도 잡았고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났습니다. 당연히 긴장감도 극에 달했지만, 선수의 경험 덕분에 그 긴장을 뇌의 어느 구석에 몰아넣고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경기 후 아들과 통화하셨나요?

— 네,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저도 페탸를 축하해주고 칭찬해줬죠. 그가 받을 수 있는 혜택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알고 보니 이 순위면 피겨 스케이팅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는 증표인 '올림픽 디플로마'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4위부터 8위까지의 선수들에게 수여되는 것인데, 이 역시 매우 훌륭한 결과입니다.
물론 페탸 본인은 조금 아쉬움이 남았을 거예요. 누군가를 탓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요. '내가 이걸 했다면, 저걸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죠. 하지만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완벽인 것이니까요.

— 그 디플로마가 첫 올림픽에 대한 좋은 추억이 될까요?

— 네, 선수가 올림픽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었고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는 공식적인 인정이니까요. 중요한 성취입니다.

— 경기가 끝난 지금, 아들의 컨디션은 어떤가요?

— 좋습니다.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에너지가 넘쳐서 더 탈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페탸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요.

— 말씀해 주세요!

—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타고난 성향인데요. 어떤 선수는 성취를 위해, 메달이나 1등이라는 야망을 위해 스케이트를 탑니다. 그건 좋고 정상적인 일이죠. 하지만 페탸는 운 좋게도 '스케이트 타는 행위' 자체를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는 타기 위해 탑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도전할 거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찍 그만둘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예요.

— 다음 올림픽에서는 더 큰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요?

— 물론 저희의 출전이 허용된다면요. "우리 컴퓨터에도 컴파일러가 연결된다면" 말이죠. 2030년에도 똑같이 긴장하며 응원하겠지요.

— 올림픽 전부터 페탸에게 특별한 관심이 쏠렸습니다. 어머니로서 그 기간 동안 무엇을 느끼셨나요?

— 아마도 큰 불안감이었을 겁니다. 기대가 크면 나중에 큰 상처가 될까 봐 늘 두려웠거든요.

— 준비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단계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나요?

— 다행히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통제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대회에 나가고 훈련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죠. 아마 가장 큰 타격은 음악 교체였을 겁니다. 저희는 네 살 때부터 피겨를 해왔기에 음악이 경기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잘 압니다.
참, 비자 문제도 있었어요.

— 설마요?!

— 전자 비자를 신청했는데 오류가 생겨서 일반 비자를 다시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그때 전화를 해서는 "기쁜 소식이 있어, 비자는 잘 해결됐어. 근데 정말 안 좋은 소식도 있어. 내 음악이 금지됐대"라고 하더라고요. 출국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 어떻게 밝혀진 건가요? 주변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 올림픽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도 전부 아는 건 아니라서 상세히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왜 거절됐고 왜 이렇게 늦게 통보했는지에 대한 공식 서한이 있었어요. 음악 저작권 해결을 담당했던 분들은 아주 정확하고 시기적절하게 일을 처리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거절 통보가 너무 늦게 온 것이 문제였죠. 그래서 페탸는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전부 다요?

— 거의요. 영화 '듄' 음악도 떠올리고, 예전 '람슈타인' 프로그램도 생각했죠. 그런데 람슈타인 음악에는 지금의 점프와 요소들을 다 넣기가 너무 어렵다는 결론이 났어요. '듄'은 아주 잘 익었지만, 이미 IOC의 음악 등록 시스템이 닫힌 상태라 승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작권 허가를 받는 방법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비트를 맞춘 버전이었는데, 페탸가 그건 음악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라 도저히 못 타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아코뱐(Akobyan)의 음악을 찾았습니다. 전 그 곡이 정말 좋아요. 아주 아름답죠. 페탸가 그 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면 기뻤겠지만, 아쉽게도 그게 최선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른 곡으로 1년 내내 준비해온 사람에게는요.

— 그전에 표트르는 처음으로 러시아 챔피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감정과 올림픽에서의 감정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 감정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엄마니까요. 감정이 늘 넘쳐나서 아직 무게를 재는 법은 모릅니다. "우리 아들이 챔피언이 됐으면 좋겠다, 메달이 참 잘 어울린다" 같은 생각은 먼저 들지 않아요. 그보다는 아이가 어떻게 버텨낼지, 어떤 생각을 할지, 스스로를 자책하진 않을지, 기분과 건강은 어떨지를 먼저 걱정합니다. 저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죠.

— 쇼트와 프리 경기를 모두 보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이번 올림픽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모든 대회가 다 그런가요?

— 저희는 절대 보지 않습니다. 보통 나중에 보는데 이번엔 아직 못 봤어요. 쇼트 프로그램은 올라온 짧은 클립들로 점프 위주로 조금 봤습니다. 프리는 아직 안 봤지만 친정어머니께 소식을 들었어요. 저희 가족은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거든요.

— 페탸 본인은 고민이나 대회 소감을 자주 공유하는 편인가요?

— 페탸는 매우 진실하고 착하며 정직합니다. 다행히 말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에요. 그런 진실함과 정직함에 수다스러움까지 더해졌다면 아마 위험했을 겁니다(웃음). 가끔 저희가 "페탸, 그런 건 대중 앞에서 굳이 말 안 해도 됐을 텐데 왜 그랬니?"라고 하면, 아들은 "진실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라는 속담으로 대답하곤 해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공유는 하되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죠. 참 다행입니다.

— 성공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실패한 순간에 대해서도 열려 있나요?

— 네, 맞아요. 저처럼 감정적이고 화려하게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며 떠들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진솔하게 공유합니다.

— 반대로 페탸가 어머니의 걱정을 알고 위로해 준 적도 있나요?

— 당연하죠. 늘 저를 지탱해주고 충격을 본인이 떠안으려 노력합니다. 한번은 그랑프리 시리즈 쇼트에서 럿츠 점프를 실수해 넘어졌을 때가 기억나요. 전화를 해서는 "엄마, 이해해 주세요. 제가 실전 경기를 한 지 오래됐잖아요. 그냥 럿츠가 있고 경기용 럿츠가 있는데, 경기용 럿츠는 다르게 뛰어야 한다는 걸 잠시 잊었나 봐요.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기술을 좀 조절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걱정 마세요, 다음부턴 잘 될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 뒤로 럿츠에서 넘어진 적이 없어요!

— 경기장 현장 응원이 대단했습니다.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에서까지 직접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페탸가 그 응원을 느꼈을까요?

— 아주 깊이 느끼고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없이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링크에 나가 사람들의 응원과 함성, 플래카드에서 힘을 얻거든요. 그에게는 그게 꼭 필요합니다. 겉으론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는 응원을 정말 간절히 원하고 그게 큰 도움이 됩니다.

— 그런 응원이 없었다면 이번 같은 클린 경기는 불가능했을까요?

— 100% 확신합니다. 페탸가 프리에서 보여준 경기는 진공 상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응원해주신 분들께 정말 큰 감사를 느낍니다.

— 표트르가 버스 지연 때문에 호텔에 제때 못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올림픽 빌리지에서 들려준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나요?

— 버스 이야기는 사소한 해프닝이었어요. 어떻게든 도착했을 테니까요.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네요...

— 어떤 이야기인가요?

—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열린 러시아 선수권 대회 때였어요. 눈 덮인 산속으로 갔다가 길을 잃었죠. 밤은 깊어 가는데 거긴 바위와 눈뿐이잖아요. '스톨비(Stolby) 국립공원'을 꼭 보고 싶어 했거든요.
밤이 되고 어두워졌는데 휴대폰 배터리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대요. 배터리 1% 남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보내왔을 때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 어떻게 해결됐나요?

— 알고 보니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뒤 아침에 그 메시지를 보낸 거였어요. 아마 밤에 길을 잃었을 때 녹화해뒀다가 탈출한 뒤에 보냈나 봐요. 그제야 안도하며 기뻐했죠. 그런 위험한 사고는 그 뒤로 없었습니다.

— 페탸가 밀라노에 일주일 더 머물 계획이라고 하던데, 무엇을 할 예정인가요? 선물은 사 오겠다고 했나요?

— 가장 큰 선물은 본인이 무사히 돌아오는 겁니다. 밀라노에서 뭘 사올지 논의하기엔 이번 대회가 너무 긴박했거든요. 하지만 페탸는 가족을 정말 아낍니다. 어디를 가든 둘째 동생 선물을 항상 챙기고 막내 동생, 누나,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도 꼭 챙겨요. 대가족이라 페탸가 항상 뭔가를 사 옵니다. 아들이 오는 날은 이모, 삼촌, 사촌들까지 모이는 대가족의 축제 날이에요.
어제는 모스크바 훈련장에 있는 둘째 아들이 전화해서 "이 모든 게 우리가 한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 외국 기자들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페탸가 아주 품위 있게 대처했습니다. 스포츠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준비를 했나요?

— 아뇨, 그냥 그 아이가 워낙 선하고 맑으며 질투나 원망이 없는 성격이라서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유머 감각도 좋고요. 그래서 "이건 말해라, 저건 말하지 마라" 하고 따로 준비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은 그냥 페탸의 본모습을 본 겁니다.

— 이번 올림픽 동안 아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태도나 끈기 면에서 특별히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 훈련 때 묵묵히 나가서 자기 할 일을 다 해내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음악 문제 상황에서요. 그건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게다가 페탸는 음악성이 뛰어나서 쇼트 프로그램의 모든 손짓, 눈빛 하나까지 음악에 맞춰 훈련해왔어요.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필요 없게 됐다는 타격을 입었으니... 다행히 잘 맞는 음악을 찾았지만, 페탸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저도 아들을 응원하려 애썼어요. 속으로는 이전만큼 좋지는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페탸, 이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걱정 말고 이걸로 해"라고 말해줬죠. 단 몇 회라도, 단 30분씩뿐인 몇 번의 훈련이라도 확신을 가지고 타게 하고 싶었거든요. 아들이 바보도 아니고 다 알았겠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더라고요.

— 이번 올림픽 이후 멘탈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을까요?

— 틀림없습니다. 아들과도 그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번 일은 정말 큰 시험이었다고요. 제가 마르크 콘드라튜크 선수의 예를 들어줬어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국가의 대표로 나갔을 때 그 압박감을 이겨냈던 일을요. 페탸도 "맞아요, 저도 가끔 그를 생각해요"라고 답하더군요.
"너도 이번 일을 이겨냈으니 이제 대회에서 긴장 같은 건 안 하게 될 거야. 삶과 경기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질 거다"라고 말해줬습니다.

— 올림픽 이후 관심이 더 쏟아질 텐데, 페탸가 그런 관심에 영향을 받을 성격은 아니겠죠?

— 관심에 벽을 쳐야 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당장 학기말 시험을 치러야 하고 졸업 논문도 통과해야 하거든요.

— 대학에 가면 학생들이나 교수님들까지 사진 찍자고 하거나 사인을 요청할 텐데요.

— 그럴 수도 있겠지만, 봐주는 건 없습니다. 논문 방어는 똑같이 해야 하니까요.

— 올림픽이 끝나면 무엇을 할 예정인가요?

— 드디어 쉬겠죠! 23일에 돌아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아들은 몇 년간 휴가 없이 살았거든요. 링크장이 쉴 때는 학기 시험 기간이고, 학교가 방학하면 링크장 첫 전지훈련을 갑니다. 어느 해에는 그렇게 과로하면 안 된다고, 부상 위험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올해는 운 좋게 라파엘 아르튜니안 코치에게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 환경의 변화가 휴식 같은 역할을 해준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페탸가 거기서 훈련 안 하고 놀았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정말 많이 훈련했어요. 다만 링크 내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훈련 영상 대신 일상 영상을 올렸던 것뿐이죠. 워낙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아이라 호기심이 많아요. 도시를 탐방하고 여행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 소위 '연예인 병'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 언젠가 다른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페탸가 그러더군요. "라커룸 분위기가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요. 라커룸 동료들이 가만히 안 둘 거라는 뜻이죠.

— 올림픽을 꿈꾸는 다른 어린 선수들의 부모님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길고 험난한 여정에서 아이를 어떻게 지지해야 할까요?

— 부모로서 조언을 하기엔 상황들이 너무 개별적이고, 제가 그 정도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다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 기꺼이 듣겠습니다!

— 제 환자분들에 대해 몇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소아 뇌전증(간질)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입니다. 저는 제 환자들에게 무척 감사해요. 환자 아이들의 인내심과 그 부모님들의 강인한 정신력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배웁니다.
가끔 제가 치료하는 아이들을 '작은 심지'에 비유하곤 해요. 그냥 타오르는 게 아니라 가늘게 떨리고 있는, 생명력이 아주 위태로운 심지요. 작은 바람에도 꺼질 것 같은 여린 풀잎 같은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싸우고 아이를 보살핍니다. 어머니들은 예쁘게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와서 웃어주세요. 저를 버티게 하는 건 바로 제 일입니다. 환자들과의 소통이죠. 그분들이 없었다면, 제가 다른 일을 했다면 제 마음가짐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그래서 조언을 드린다면, 아픈 아이들을 둔 가정을 돕는 일을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재단을 통해서든 지인을 통해서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그 부모들이 얼마나 진정한 영웅들인지 알게 된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