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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멘닉 petr gumennik

[백색 스튜디오(The White Studio) 인터뷰: 피겨 스케이터 표트르 구멘니크]

진행자: 우리가 오늘날 읽고 보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읽고 보았을까요? 그 책과 영화들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찾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요?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가 변화하는 데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2026년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 중 한 명은 우리 피겨 스케이터 표트르 구멘니크였습니다. 
어려운 상황과 경기 직전 프로그램 음악의 갑작스러운 교체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침착함과 인내심, 그리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다국적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해외 해설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의 프리 프로그램을 이번 올림픽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인 3월 9일, 첼랴빈스크에서 표트르 구멘니크 선수가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오늘 '백색 스튜디오'에는 전설적인 코치들인 알렉세이 미신, 타마라 모스크비나, 베로니카 다이네카의 제자이자, 러시아 그랑프리 파이널 3회 우승자이며 러시아 챔피언인 피겨 스케이터 표트르 구멘니크 선수를 모셨습니다. 
환영합니다, 표트르. 우선 이번 그랑프리 결과 축하드려요. 당신을 이 백색 스튜디오에 모시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당신이 훌륭한 운동선수이고 당신이 하는 일이 매우 멋지고 아름답다는 점 외에도, 당신은 이번 올림픽에서 정말 놀라울 정도로 품격 있는 행동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우리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유럽 팬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정말 따뜻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당신은 모든 사람을 매료시킨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당신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환호하던 이탈리아인들, 프랑스인들까지 말이죠.
현장에서 직접 느끼셨을 때 어떠셨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음, 사실 정말 기쁘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최선의 경우라도 저를 향한 특별한 응원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최악의 경우에는 누군가 야유를 보내거나 저를 방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요컨대 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막상 빙판에 나가니 저를 환영해 주는 소리가 너무나 크고 따뜻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관중석에 제 팬들이 그렇게 많이 와 계신 걸 보고 감동받았고, 그 덕분에 자신감과 힘을 얻어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발생한 여러 어려움들에 대처하는 당신의 태도를 보면, 음악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화를 내거나 항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당신은 이 심각한 시련을 놀라울 정도로 품위 있게 이겨냈어요. 이런 큰 대회에서 단 이틀 만에 모든 것을 완전히 재조정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이 갑니다.

표트르 구멘니크: 네, 하지만 체면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캔들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모든 에너지를 새로운 음악에 적응하는 데 쏟고 싶었을 뿐입니다.

진행자: 제 생각에 그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인 것 같아요. 저에게 올림픽 운동이란 결과로 몇 위를 차지했느냐보다 바로 그런 태도에 관한 것이거든요. 이제 당신이 성장하며 접했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죠. 당신은 푸시킨의 동화 **<황금 수탉>**을 언급하셨어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지 않는 작품이죠. 어릴 때는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왜 이 작품을 꼽으셨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사실 이상하게도 저는 이 작품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여쭤봐야 했죠. 그러다 다시 떠올리기 시작하니 다돈 왕, 황금 수탉, 현자, 그리고 샤마한의 여왕 같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줄거리가 매우 날카롭다고 느꼈고, 어린 시절에는 왕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안타까웠어요. '계속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고 수탉도 도와줬을 텐데, 왜 저런 실수를 했을까' 하고요. 또한 왕에게 죽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도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푸시킨의 글을 보면 샤마한의 여왕을 보자마자 두 아들을 잊었다고 되어 있죠.

진행자: 맞아요. 심지어 그 두 아들은 서로를 죽였죠. 그 여왕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어떤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맞습니다. 모든 약속을 잊게 만들고 말씀하신 그런 실수들을 저지르게 만들죠. 일종의 유혹인데,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게 하고 찰나의 유혹 때문에 큰 성취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런 감정이 이해가 되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그렇게 과장된 정도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당신은 빙판 위에서 이원성(dualism), 즉 우리 안에 선과 악의 양면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들을 연기하기도 했잖아요.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도리안 그레이>**처럼요. 당신의 코치조차 "표트르 안에 이런 면이 있었나?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하지?"라고 말씀하셨죠.

표트르 구멘니크: 음, 저는 도리안 그레이나 오페라의 유령, 혹은 <향수>의 파르퓌메르처럼 모호한 악당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쉽다고 느낍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저 자신에게 투영하기가 비교적 수월해요. 아마 예술적인 관점에서 그런 감정들을 보여주는 게 제게는 더 쉬운 것 같습니다. 단순히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요. 예를 들어 에브게니 오네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그 인물의 모호함을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 감정을 표현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진행자: 에브게니 오네긴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돈 왕의 실수를 이야기했듯이요. 그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제 생각에는 처음부터 가졌던 그의 삶의 방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를 바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부모님이 저를 운동의 길로 보내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항상 삶의 목표를 주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오래 쉬는 것이 힘들 때도 있어요. 매일의 목표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 것 같거든요.

진행자: 반드시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어떻게 적응시키나요? 스포츠, 특히 피겨는 "안 넘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분야잖아요. 준비 과정에서도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고요. 고통을 수반하는 이 낙상들을 어떻게 내면적으로 받아들이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가급적이면 덜 넘어지는 게 좋겠죠. 사실 넘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마음을 다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라파엘 브라디미로비치(아르투냔) 코치님이 항상 하시는 비유가 있어요. 새로운 점프를 배울 때, 거대한 구덩이가 있고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다고 칩시다. 한 번 못 넘어서 떨어지면 매우 아프겠죠. 그런데 왜 계속 그 구덩이 위로 뛰어넘으려 하느냐는 겁니다. 선을 하나 그어놓고 그 위에서 도움닫기, 도약 연습을 계속하면 되는데 말이죠. 그러다 힘이 더 생기고 기술이 좋아졌다고 느껴질 때 다시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다시 더 연습하면 됩니다.
제가 트리플 악셀을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넘어질 거야'라는 걸 알게 되면 머릿속의 목표는 '점프를 최대한 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넘어질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개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기술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쁜 점프가 나오게 되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진행자: 방금 하신 말씀은 스포츠에 국한된 게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완벽한 비유 같네요.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는 법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 말이죠. 예를 들어 어떤 여자에게 춤을 청할 때, 그녀와 춤을 잘 추는 법이 아니라 그녀가 거절했을 때 덜 상처받는 법만 생각하는 것과 같네요. 그런데 만약 어떤 여성이 당신에게 사랑 고백 편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어요? 오네긴 이야기를 했으니 말인데, 그처럼 불쾌할까요 아니면 기쁠까요? 그에게 "누구도 나처럼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세요"라고 말할 건가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그런 말을 직접 하는 건 너무 오만해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남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먼저 고백할 때, 오네긴을 통해 불쾌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기쁜 일일 것 같습니다.
진행자: 당신의 가족은 정말 놀랍고 훌륭합니다. 부모님이 교회에서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 만남에서 당신 같은 아이가 태어나는군요. 아버님이 신부님이시죠. 그렇다면 당신이 자라면서 읽은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는 성경이었겠네요. 부모님과 성경에 대해 토론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와 의견이 다르거나 이해가 안 되어 설명을 들은 부분이 있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당연하죠. 성경에는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신부님들은 그런 것들을 잘 알고 계시니 설명해 주실 수 있죠.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부분 같은 거요. 부모님께서는 인간 스스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으며 하느님께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기에 낙타를 바늘귀로 통과시킬 수도 있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거죠. 중요한 건 하느님을 믿는 마음입니다.

진행자: 그 성경 구절에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에 더 얽매이게 된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다면 하느님과 연결되기가 더 쉽겠죠. 하지만 성취, 업적, 부 같은 세속적인 것들이 생기면 그것에 묶이게 되어 더 어려워집니다. 다시 샤마한의 여왕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 여왕은 현자에게도 하느님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인 셈이죠.

표트르 구멘니크: 네, 그리스도인에게 최우선 과제는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을 짓는 것이니까요.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진행자: 당신의 아버님과 형제분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아버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아들이 유명해져서 곳곳에 사진이 걸려 있는 게 자랑스러우시냐"라는 질문에 아버님은 "만약 우리 안에 허영심(vanity)이 더 적었다면 표트르에게는 더 쉬웠을 것이고 더 좋은 결과를 냈을지도 모른다"라고 답하셨죠. 겉으로 보기엔 전혀 허영심이 없어 보이시는 아버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그만큼 본인 안의 마음을 세밀하게 살피시는 순수한 분이기 때문일 거예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맞습니다. 거룩한 사람일수록 자기 안의 결점을 더 많이 본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전 제 안의 결점을 거의 못 보는 것 같네요. (웃음)

진행자: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 허영심이 마치 성경 속 부자의 재산이나 샤마한의 여왕처럼 당신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비유적인 의미든 실제적인 의미든 '점프'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그런 면이 있습니다. 훈련할 때 허영심이라기보다 '자만심(pride)'이 필요한 결과를 얻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톨킨의 **<실마릴리온>**을 읽고 나서야 제 안의 이런 면을 발견했습니다. 거기 '소린'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정말 오만하거든요. 그런 식의 오만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니 제게도 그런 속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도움을 거부하고 혼자서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비논리적인 상황이 되었음에도 자신이 세운 무모한 목표를 끝까지 고집하며 포기하지 않는 식의 오만함 말이죠.

진행자: 유혹의 얼굴은 정말 다양하군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자 책으로 **<듄(Dune)>**을 꼽으셨어요. 당신의 프로그램 중 한스 짐머의 음악을 사용해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를 연기한 것도 있죠. 왜 이 캐릭터가 흥미롭고 가깝게 느껴지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전 원래 SF를 좋아합니다. 프로그램을 짜기 전부터 책을 읽었는데, 쉽지 않은 내용이라 여러 번 읽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그 이미지를 제게 투영하고 캐릭터와 동일시해야 했죠.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자신이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예언된 전쟁(지하드)이 일어날 것이고 자신이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진행자: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의지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그저 다른 거대한 힘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혼자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네요. 누군가의 생각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능력이 있지만 아주 드물게 그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루에 한 번,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못 할 수도 있죠. 우리가 내면의 모든 의지를 모아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때,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리의 '비결정론(non-determinism)'이 나타납니다.

진행자: "지금은 나, 표트르가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자주 있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자주 있지는 않지만 가끔 그런 순간이 오고, 그건 매우 어려운 순간들입니다. 두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할 때 내면의 목소리가 양쪽 모두에 함정이 있다고 알려줄 때도 있습니다.

(영화 <듄> 인용부): "미래의 선택지들이 보여. 동시에 모두 다. 적들이 우리를 에워쌌고, 많은 환상 속에서 그들이 승리하고 있어. 하지만 난 출구를 봤어. 좁고 험난한 길을." "우리 가문의 혈통을 봤어, 어머니. 당신은 하코넨 남작의 딸이야. 우리 아버지는 알고 계셨지. 난 생명의 물을 마시고 나서야 알았어. 우린 하코넨이야." "그렇다면 하코넨처럼 승리하자."

진행자: 미래를 보는 폴 아트레이데스처럼, 만약 당신이 무엇을 해도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표트르 구멘니크: 음, 제 생각에는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입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큼이나 품격 있게 연기하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중요하죠. 결과가 같다면 적어도 과정만큼은 품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정말 정확한 말씀이네요. 그래서 당신이 팬들의 마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올림픽 전에는 일리아 말리닌이 당연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과는 달랐죠. 많은 이들이 당신의 프리 스케이팅이 최고였다고 말합니다. 프리 경기를 앞두고 스스로를 어떻게 다잡았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사실 저는 일리아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습니다. 승리만이 유일한 선택지로 간주되고 다른 결과는 누구도 생각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에 나가는 건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반대 상황이었죠. 4년 동안 국제 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제 첫 올림픽에서 본인의 음악도 아닌 곡으로 연기해야 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겹치다 보니 저에 대한 기대치가 최저였어요. 덕분에 전 제가 준비하고 훈련한 것을 온전히 즐기며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훈련 과정에서 방해 요소나 부상도 없어서 모든 기술을 잘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아르투냔 코치님과 함께하며 이미 좋은 기술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저 가진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습니다.

진행자: 연기하는 그 몇 분 동안 무엇을 느끼시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올림픽에서는 극도로 집중한 상태였습니다. 진입할 때마다 모든 점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첫 점프를 생각하고, 뛰고 나면 바로 잊고 두 번째 점프를 생각하는 식이었죠. 깨끗한 연기를 위한 최선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점프를 뛰었을 때의 장면은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상상해 왔던 거예요. 특히 밀라노에 와서 빙상장을 보고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저 순간 내가 다 성공한다면 영혼이 노래할 정도로 기쁠 거야. 감정을 억제해야 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해보니 폭발적인 감정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심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연기에 끝까지 집중해야 했습니다. 사실 연습 때 이미 제가 다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깨끗하게 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공 후 어떻게 기뻐할지 상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바로 지우려 노력했습니다. 제 경험상 미리 성공을 축하하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 방해가 되곤 했거든요.

(경기 해설): "쿼드러플 루프, 살코, 토룹 4-3 조합까지 매우 안정적입니다. 네 개의 쿼드러플 점프를 모두 다른 종류로 성공시킵니다!"

진행자: 어릴 적 좋아했던 또 다른 책으로 **<도울 교수의 머리(The Head of Professor Dowell)>**를 꼽으셨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신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온 운동선수가, 몸을 잃고 머리만 남은 사람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는 점이 말이죠. 본인이 그 입장이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셨나요? 머리만 남은 채로도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표트르 구멘니크: 운동선수에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 가장 큰 공포 중 하나일 겁니다. 저에게 움직임은 곧 삶이니까요. 그래서 이 책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아이일 때는 현실과 허구를 완벽히 구분하지 못하니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죠. 매우 힘들겠지만 극복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전 아직 젊어서 몸 없이 수년 동안 고독하게 버틸 만큼 내면의 풍요로움을 쌓지는 못한 것 같아요. 노년이 되면 그런 지식의 자산을 쌓을 수 있길 바랍니다.

진행자: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대화해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왜 하필 그인가요?

표트르 구멘니크: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말이죠. 사람마다 동기는 다를 겁니다. 불멸의 유산을 남기고 싶은 사람도 있고, 넘치는 에너지나 "할 수 있으니 해야 한다"라는 사명감 때문인 사람도 있겠죠.

진행자: 허영심과 자만심은 매우 효율적인 연료가 되기도 하잖아요. 이야기나 동화 속에서 어둠의 세력을 따르는 이들이 도리안 그레이처럼 큰 결과를 얻기도 하는 이유죠. 그렇다면 허영심에 대항할 수 있는 '밝은 쪽'의 연료는 무엇일까요?

표트르 구멘니크: 피겨 스케이팅으로 보면 가장 좋은 연료는 훈련, 공연, 경기 등 이 모든 스포츠적이고 창의적인 과정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허영심보다 훨씬 낫습니다. 커리어에는 반드시 슬럼프가 오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시기도 오기 마련인데, 허영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런 시기를 견디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쉽게 이겨낼 수 있죠.

진행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올림픽 빙판에 서서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표트르 구멘니크: 네. 경기 직전 몇 시간 동안 스스로를 다잡으며, 일생을 기다려온 이 올림픽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즐기자고 다짐했습니다. 걱정은 줄이고 최대한 만끽하자고요. 그 다짐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진행자: 밀라노 대성당이 최근 가장 강렬한 인상이었다고 하셨는데, 그저 아름다움 때문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셨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매우 독특하고 내부와 외부가 아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2주간은 광장에서 겉모습만 봤는데, 경기 후에 드디어 지붕 위에도 올라가 보고 내부도 봤거든요. 우선 규모에 압도당했고, 내부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 분위기가 쾌적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지만요.

진행자: 쾌적하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표트르 구멘니크: 건축가들이 의도한 것 같아요. 거대한 높이와 면적, 어두운 색조, 수많은 조각상과 웅장한 제단을 보며 그 거대함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느끼게 하려는 일종의 환상을 만든 거죠.

진행자: 올림픽을 치르면서도 자신의 왜소함을 느끼셨군요. 당신은 대학에서 정보학을 공부하고 계신데, 지적인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최근 관심사가 인공지능(AI)과 그것이 통제를 벗어나는 경계에 대한 것이라고요. 어떤 점에 매료되셨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제 취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러너>**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즉 공감능력이나 지능 같은 것으로 복제인간과 인간을 어떻게 구분할지 묻습니다. **<도울 교수의 머리>**는 반대로 정신은 인간인데 몸이 없는 상황이고요. 이제 AI가 실제로 등장했고 인간의 지능과 구별하기 힘들어지면서 이런 질문들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진행자: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복제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고결함을 보여주잖아요. 빗속의 눈물에 대한 독백은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간적인 말로 꼽히죠.

표트르 구멘니크: 네, 주인공 데카드조차 인간인지 아닌지 불분명하죠. 그들의 테스트 방법이 정확했는지도 알 수 없고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인용부): "난 당신네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 위에서 불타던 공격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던 C-빔들.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진행자: 당신이 생각하는 '자아'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무엇이 '표트르 구멘니크'를 규정하나요?

표트르 구멘니크: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정확한 답을 내릴 순 없겠네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철학에서 드물게 유의미한 명제라고 들었지만, 사실 그 말조차 라틴어 원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라틴어 원전에서는 '나(ego)'라는 대명사를 따로 쓰지 않고 그냥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만 하거든요. 결국 '나'나 타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경계를 정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옳다는 보장은 없죠.

진행자: 세계적인 운동선수에게 데카르트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표트르 구멘니크: 사실 운동선수들에게 이런 고민은 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경기 전 긴장이 극에 달할 때, 영원이나 의식, 우주의 무한함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책임감과 압박감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진행자: 운, 당신의 경우에는 신앙인이니 '하느님의 뜻'이라는 요소도 크게 작용하겠죠. 저도 당신처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운'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신 '하느님의 뜻'은 잘 이해하죠.

표트르 구멘니크: 네, 저도 그렇습니다. 실패를 단순히 불운이나 우연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하느님이 나를 지켜보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이고 나중에는 그 실패조차 감사하게 될 테니까요. (제공된 파일의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