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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울고 웃고, 다시 울다... 은반 위의 '사카모토 극장' 막을 내리다



울다 웃으며 환호하고, 다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야말로 '사카모토 극장' 그 자체였다.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연기에서 그녀는 4년 만에 프리 스케이팅과 총점 모두 개인 최고 기록(PB)을 경신하며,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라는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일본 피겨의 일인자로서 짊어져 온 무거운 압박감과 고통을 마침내 떨쳐낸 최고의 피날레였다. 연기가 끝난 후에도, 시상대 위에서도 그녀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선수 생활의 집대성이라 여겼던 2월 밀라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고 분한 눈물을 삼켰던 그녀. 한동안 세계선수권 출전 여부에 대해 확답을 피했지만, 사실은 "일본에 돌아가기 전까지 (출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훗날 털어놓았다.

귀국 후 약 열흘간 빙판을 떠나 '심신을 리셋'한 것이 주효했다. 다시 가벼워진 점프는 쇼트에 이어 프리에서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샹송 명곡 '사랑의 찬가'에 실린 유려한 연기는 표현력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때 그녀는 '실버 컬렉터'라 불렸다. 21년 동안 그녀를 지도한 나카노 소노코 코치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국제 무대에서 늘 한 끗 차이로 우승을 놓치며 '2인자' 자리에 머물렀던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강호 러시아 선수들이 제외되자, 그녀는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하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낯선 정상의 자리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에게 패하며 입지가 흔들리자, 주변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악몽과 가위에 눌렸고 "스트레스가 쌓여만 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코치진과의 갈등 끝에 연습을 무단결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4연패가 좌절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도전자'의 마음가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난 4년의 경험은 몹시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값졌다."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회를 밝혔다.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던 선수 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눈부신 청춘"이었다. 사카모토 가오리는 후련한 미소와 함께, 뜨거웠던 승부의 은반에 작별을 고했다.





원문 의미를 유지하면서 좀 더 부드럽게 읽히게 번역시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