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글인데 뭔가 감개가 무량해서 좀 수정해서 다시 올려봄. 나 오늘 글 처음 쓰는거임.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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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쿠마모토에 무자수행을 갔을 때였다. 선생께서 주관하시는 일정이 끝나고는 다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관광은 뭐, 그 분들도 대여섯번쯤은 왔을걸. 나도 별로 볼 것도 없고 말이다. 시모토리에 있는 마츠모토 스테키 한번 먹었으면, 관광일정 끝이었다. 가끔, 일본의 다른 곳에 가서 일본의 정취 뭐 이런 걸 느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쿠마모토에 간다고 선생께 연락이 닿으면, 숨쉴틈없는 계고일정을 잡아주실게 뻔하니.
나는 후쿠오카로 가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하루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선생의 소개로 쿠마모토 도심의 한 도장에서 계고를 했는데, 그때 뵈었던 분이 A선생이었다. 첫인상이 딱 일본 엘리트다. 의사인데다가 말끔한 얼굴, 큰 키, 부드러운 매너에다 엄청난 동안이다. 일본말이지만, 말투 자체도 조곤조곤 잘한다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검도 8단이니 가지실 건 다 가졌다.
일단, 얼굴에서 지고들어간데다가 선생의 소개로 간거라 인사말 엄청 연습하고, 눈치 엄청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하지메마시데, 이 데스"는 정말 네이티브했다. 사람들이 "어라"하더라. 그 다음 대사를 까먹어서 "에~"하곤, 당황한채로 "오네가이시마스"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외국인이네"하며 웃더라.
아무튼, 기본기를 마치고 A선생께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서 중년의 아주머니(아마도 검도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것 같았다)께서 A선생과 열심히 계고 중이었다. 기본기도, 타돌도 그냥 초보자라 보면서 흐음- 하고 있었는데, 왠걸. 한판 승부에서 멋들어진 손목을 잡아낸다. 와- A선생도 오- 하신다.
오! 나도! 하면서 들어갔는데, 뭐. 치기는 쳤다. 첫 머리나 나중에 한판 승부에서 머리는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앞의 아주머니와는 다른 종류의 한판이었던거지. 끝나고 나서 그 선생께서는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아, 얘가 내가 말해줘도 알아들을만큼 일본어가 안되는구나'라는 걸 알아채셨다. 그래서 만국공용어 손짓발짓으로 카마에만 교정해주시며 이것저것 알려주셨던 것 같다.
그때 교정했던 카마에가 지금의 카마에다. 한국 돌아와서 그 느낌으로 계속 하니, 어느 순간 "이 밸런스다"라는 느낌이 되어있더라. 카마에나 우치카타는 그때나 지금이나 괜찮지. 아니, 카마에를 수정한 지금이 쿠마모토를 왕래하기 전보다 우치카타는 훨씬 더 좋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닌 상황이 와버렸다.
그 때 느꼈던 한판을 잡아내는 느낌,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의 손목 한판을 나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 상황은 말이다. A선생이 좋은 손목 한판 잃었다고 8단 선생의 검도실력에 의구심을 가질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맞아준 것도 아니다. 그럼 그게 뭐겠나. 서로 간의 아이키가 이루어진거다. 8단 선생과의 계고는 승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선생들도 이미 예엣날에 승부를 즐길만큼 즐기셨던 분들이고 이제 와서는 상대를 끌어주고 지도하는 입장이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단이 아닌 이상, 겨우 4,5단 데리고 맞았냐, 맞지않았냐로 승부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전력을 다해 시합처럼 빠르게 친다고 해서 선생께 임팩트가 갈 일도 없고, 바른자세로 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두루뭉슬하게 "배운다는 자세로"라고 퉁쳐 말하기에는,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고단자와의 연습을 썩 잘해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제와서는 조금 알겠는데, 고단자에게 들어가서는 상대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한판을 목적하면 된다.(물론, 고단자의 성정에 따라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만) '중요한건 교감'이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할까. 교감이란 말이 너무 뜨뜻해서 검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키나 합기(合氣)라는 용어가 너무 어렵다면 그것도 좋은 대체어라고 생각한다.
그저께, 한 아이와 기본기를 하며 느낀 게 있다. 내 앞에 서자마자 (칼을 맞추지도 않고) 그냥 들어와서 머리를 치려는 아이를 막아서곤, 조금만 참고 "이때다"라는 느낌이 들때 들어와 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맞는 나도, 치는 그 아이도 꽤 잘 맞는 순간이 왔다. 그렇게 받아주다가 점점 내가 그 아이의 마음을 읽고, 그 아이도 내 마음을 읽고, 그 아이의 짧은 거리를 내가 채워주고, 부족한 타격력을 맞는 위치를 수정해가며 맞아주니, 어느새 아이는 꽤 그럴듯한 기본기를 하는 검사가 되어있었다. 8단 선생의 세심한 지도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부족하나마 이렇게 맞추어가는 것이 검도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년에 A선생을 뵈면 나도 그 아주머니와 같은 좋은 한판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쿠마모토까지 가서 니시무라 정도되는 검사의 좋은 한판이 아니라, 이름모를 초보 아주머니의 좋은 한판을 목표로 하다니. 겨우 그거 하려고 갔냐 할법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보기엔 제일 안되는게 그건데.
검도를 시작하고 그 어떤 때보다 올 한해 검도가 재밌었다고 생각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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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쿠마모토에 무자수행을 갔을 때였다. 선생께서 주관하시는 일정이 끝나고는 다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관광은 뭐, 그 분들도 대여섯번쯤은 왔을걸. 나도 별로 볼 것도 없고 말이다. 시모토리에 있는 마츠모토 스테키 한번 먹었으면, 관광일정 끝이었다. 가끔, 일본의 다른 곳에 가서 일본의 정취 뭐 이런 걸 느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쿠마모토에 간다고 선생께 연락이 닿으면, 숨쉴틈없는 계고일정을 잡아주실게 뻔하니.
나는 후쿠오카로 가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하루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선생의 소개로 쿠마모토 도심의 한 도장에서 계고를 했는데, 그때 뵈었던 분이 A선생이었다. 첫인상이 딱 일본 엘리트다. 의사인데다가 말끔한 얼굴, 큰 키, 부드러운 매너에다 엄청난 동안이다. 일본말이지만, 말투 자체도 조곤조곤 잘한다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검도 8단이니 가지실 건 다 가졌다.
일단, 얼굴에서 지고들어간데다가 선생의 소개로 간거라 인사말 엄청 연습하고, 눈치 엄청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하지메마시데, 이 데스"는 정말 네이티브했다. 사람들이 "어라"하더라. 그 다음 대사를 까먹어서 "에~"하곤, 당황한채로 "오네가이시마스"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외국인이네"하며 웃더라.
아무튼, 기본기를 마치고 A선생께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서 중년의 아주머니(아마도 검도 시작한지 얼마 안된 것 같았다)께서 A선생과 열심히 계고 중이었다. 기본기도, 타돌도 그냥 초보자라 보면서 흐음- 하고 있었는데, 왠걸. 한판 승부에서 멋들어진 손목을 잡아낸다. 와- A선생도 오- 하신다.
오! 나도! 하면서 들어갔는데, 뭐. 치기는 쳤다. 첫 머리나 나중에 한판 승부에서 머리는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앞의 아주머니와는 다른 종류의 한판이었던거지. 끝나고 나서 그 선생께서는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아, 얘가 내가 말해줘도 알아들을만큼 일본어가 안되는구나'라는 걸 알아채셨다. 그래서 만국공용어 손짓발짓으로 카마에만 교정해주시며 이것저것 알려주셨던 것 같다.
그때 교정했던 카마에가 지금의 카마에다. 한국 돌아와서 그 느낌으로 계속 하니, 어느 순간 "이 밸런스다"라는 느낌이 되어있더라. 카마에나 우치카타는 그때나 지금이나 괜찮지. 아니, 카마에를 수정한 지금이 쿠마모토를 왕래하기 전보다 우치카타는 훨씬 더 좋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닌 상황이 와버렸다.
그 때 느꼈던 한판을 잡아내는 느낌,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의 손목 한판을 나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 상황은 말이다. A선생이 좋은 손목 한판 잃었다고 8단 선생의 검도실력에 의구심을 가질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맞아준 것도 아니다. 그럼 그게 뭐겠나. 서로 간의 아이키가 이루어진거다. 8단 선생과의 계고는 승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선생들도 이미 예엣날에 승부를 즐길만큼 즐기셨던 분들이고 이제 와서는 상대를 끌어주고 지도하는 입장이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단이 아닌 이상, 겨우 4,5단 데리고 맞았냐, 맞지않았냐로 승부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전력을 다해 시합처럼 빠르게 친다고 해서 선생께 임팩트가 갈 일도 없고, 바른자세로 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두루뭉슬하게 "배운다는 자세로"라고 퉁쳐 말하기에는,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고단자와의 연습을 썩 잘해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제와서는 조금 알겠는데, 고단자에게 들어가서는 상대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한판을 목적하면 된다.(물론, 고단자의 성정에 따라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만) '중요한건 교감'이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할까. 교감이란 말이 너무 뜨뜻해서 검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키나 합기(合氣)라는 용어가 너무 어렵다면 그것도 좋은 대체어라고 생각한다.
그저께, 한 아이와 기본기를 하며 느낀 게 있다. 내 앞에 서자마자 (칼을 맞추지도 않고) 그냥 들어와서 머리를 치려는 아이를 막아서곤, 조금만 참고 "이때다"라는 느낌이 들때 들어와 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맞는 나도, 치는 그 아이도 꽤 잘 맞는 순간이 왔다. 그렇게 받아주다가 점점 내가 그 아이의 마음을 읽고, 그 아이도 내 마음을 읽고, 그 아이의 짧은 거리를 내가 채워주고, 부족한 타격력을 맞는 위치를 수정해가며 맞아주니, 어느새 아이는 꽤 그럴듯한 기본기를 하는 검사가 되어있었다. 8단 선생의 세심한 지도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부족하나마 이렇게 맞추어가는 것이 검도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년에 A선생을 뵈면 나도 그 아주머니와 같은 좋은 한판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쿠마모토까지 가서 니시무라 정도되는 검사의 좋은 한판이 아니라, 이름모를 초보 아주머니의 좋은 한판을 목표로 하다니. 겨우 그거 하려고 갔냐 할법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보기엔 제일 안되는게 그건데.
검도를 시작하고 그 어떤 때보다 올 한해 검도가 재밌었다고 생각했다. 음.
좋은 글이다
추천하고감
멋지다 수문옹 - dc App
좋구나~
국검갤에서 요새 썩 볼만한 글이 없었는데... 정독하고 갑니다. 개추는 옵션
그냥해
내것이든 아니든 되게 기억에 남는 한 판이 하나씩 있는 거 같아 그래서 연습을 할 때 ‘그 때의 그 한 판을 어떻게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게 됨
그치. 마음에 남는 한판들을 기억해놨다가 그런 한판들을 1년에 한번씩 , 한달에 한번씩, 하루에 한번씩 낼 수 있게 되면 좀더 수준 높은 한판들을 머리에 새기려고 무자수행을 떠나는거지.
좋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