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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 대상은 날 좋아한 적이 없다. 중학생 때의 꿈은 봄날 벛꽃처럼 폈지만, 그 꽃은 본 이도 없이 쓸쓸히 저버렸다.

 

처음 고백한 여자애는 날 좋아해주지 않았고. 날 좋아한다고 말한 여자애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두려웠다. 누군가를 사귀게 된다는 게. 하지만, 내가 좋아하게 되면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쩌면 두려운 게 사라졌으니까 더 좋아졌던 게 아닐까.


그래 어쩌면 내가 자유로울 때 사라지는 두려움. 삶의 환기. 현실을 잊는 마취감.


그래 어쩌면...난 꿈을 그 여자애를 좋아한 게 아니라. 이것들을 좋아한 게 아닐까?


어떤 이의삶은 매일이 축제같다. 화려하게 울리는 음악소리 밤을 밝히는 폭죽. 구경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즐거워 하고. 엄지를 올린다.


사실 허상인 줄 아는 난, 그것을 본 뒤에 내가 가진 것을 혐오한다.


내가 가진 가족. 내가 가진 세상. 내가 가진 몸. 내가 가진 잘못. 내가 가진 죄. 모든 것.


주사바늘 같은 꿈이 주는 마취감에 중독 된 난, 이걸 놓았을 때 느낄 추락감이 무서웠다.


이게 아니면 죽을 것 같았던, 순간들.


하지만 그 열정이 식었을 땐, 놀라울 정도로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상상. 나를 좋아해 줄 것 같은 상상. 그래 상상을 할 때 내 심장은 더 뛰었고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정말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내 심장은 원래보다 더 많이 뛰는 것을 멈췄다.


봄이 오면 필 줄 알았던, 내 꽃은 겨울에 가지가 꺾였다.


빨리 피는 꽃이라고 꼭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다. 꽃은 절별로 개화 시기가 다르다. 그렇다면 내 꽃은 언젠가 펴줄까?


가지가 꺾인 그 나무에도 꽃이 필까? 아니면 그 마른 들판에서 꽃이 펴줄까?


나는 영춘화가 되어 가장 먼저 피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벚꽃처럼 화려하게 필 생각은 해본적 없다.


분수에 맞는 들꽃이라도 되었으면 그만이였다.


난 아직도 유년기에 꺾었던 들꽃의 꽃말은 지금도 모른다. 그때 내 방을 밝혀주던 전구에 대한 고마움도 모른다.


또 지금 내 방을 밝히는 전구의 고마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삶 얼마나 혐오스런 기록인가.




주석. 사진은 영화 칠인의 사무라이에서 도탄에 빠진 농민들이 현실을 잊고 즐거워 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