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표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묻어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이라면 당연히 놀라고 두렵고 무섭고 기뻐할 텐데, 여태 왜 몰랐을까? 다양한 물고기의 표정이 사람과 너무나도 닮았다(단, 돌고래는 해양 포유류 임).

물고기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눈높이를 맞춘 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표정 변화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 속에는 희로애락으로 표현되는 일차적 감정 뿐 아니라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이차적 감정인 동정심, 동료의 죽음에 대한 애도, 사랑, 자존감, 두려움도 숨어 있다.

물고기의 감정은 눈동자의 흔들림과 팽창, 안면 근육의 수축과 이완, 입 모양의 변화, 지느러미의 움직임 등을 통해 외부로 나타난다. 물고기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바다 생물을 관찰하는데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연구한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표정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표정은 어떤 생명체의 유지와 번식 과정에서 진화적 선택을 통과한 형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다윈의 생각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 덕분에 인간의 감정에 진화론적 잣대를 댈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어류를 포함한 동물이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 표현과 진화의 연관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생물학자인 마크 베코프(Marc Bekoff)는 “감정은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며, 다른 동물들 또한 그렇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의 저서 [동물의 감정]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건드리기만 해봐.” - 긴장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얼룩통구멍이 두 눈을 치켜뜬 채 잔뜩 긴장하고 있다(왼쪽 사진). 얼룩통구멍은 머리 윗부분에 붙은 두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모양이 별을 보는 관찰자를 닮았다 하여 ‘스타게이저(stargazer)’라고도 불린다. 이런 행동은 포식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냥감을 노리는 은신의 방법이기도하다.

‘니모’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흰동가리는 귀엽고 연약한 어류의 상징이지만 산란기 때는 민감해진 탓에 다소 난폭해진다(가운데 사진). 포식자가 수정란 가까이 다가오면 물불가리지 않고 돌진한다. 그 상대가 자기보다 수백 배 덩치가 큰 사람이라도 한가지다. 이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는 흰동가리 이빨에 물려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모든 동물에게 자식 사랑은 본능적이다. 얼개비늘은 포식자의 공격을 막기 위해 수정란을 입안에 머금은 채 부화시킨다(오른쪽 사진).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입을 뻐금거리는 잠깐의 순간 외부로 노출되는 수정란이 신경 쓰이는 듯 눈빛이 긴장감으로 강렬하다.

“나도 화낼  안다고!” - 분노

망둥이는 크기가 작고 흔한 어류라 만만해 보이지만 한번 성이 나면 무섭다(왼쪽 사진). 보금자리를 위협받은 망둥이 눈매에서 강인한 결단의 의지가 엿보인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동물이 그렇겠지만 망둥이 또한 외부의 침입에 물러섬 없이 맞선다.

열여덟 개의 등지느러미 가시마다 강한 독이 있는 쏠배감펭이 성이 났다(오른쪽 사진). 평소 가지런하게 누워 있던 등지느러미를 활짝 펼치자 독가시들이 곧추 섰다. 아프리카 전사들의 분장처럼 온몸에 새겨 놓은 현란한 무늬는 상대를 겁박하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아무리 강력한 포식자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무서워 죽겠어.” - 두려움

필리핀 현지 가이드가 복어를 잡았다(왼쪽 사진). 불의의 습격에 놀란 복어가 물을 들이켜 몸을 한껏 부풀린다. 본능적으로 몸을 팽창시켜 보지만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 지 공포와 절망에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바위틈에서 빠져 나온 문어가 갈 곳을 잃었다(가운데 사진). 먹물을 뿜어대며 이리저리 도망가 보지만 포식자를 피할 수 없다. 날카로운 성게 가시의 보호라도 받으려는 듯 성게 무리 사이로 몸을 숨긴다. 여덟 개의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데 확대된 동공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작은 산호초 어류가 산호초 틈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밖을 내다본다(오른쪽 사진). 표정은 굳고 눈동자는 불안한 듯 흔들린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등장에 놀란 복어가 눈을 부릅뜬 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좌우로 눈을 굴리는 모습이 퍽이나 놀란 듯하다.

전복에게 가장 큰 위기는 몸이 뒤집어져 연약한 배 부분이 외부로 노출될 때다(오른쪽 사진). 전복은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하는 생각에 몸을 뒤집어 보았다. 놀란 전복이 몸을 원래 자세로 되돌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 기분 좋아!” - 만족

입을 ‘쩍’ 벌린 그루퍼가 청소새우에게 클리닝 서비스를 받으며 나른하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사진). 이빨 사이에 낀 찌꺼기가 성가셨는데 때마침 찾아온 청소새우가 고마울 따름이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양치까지 했으니 그루퍼의 오늘 하루는 완벽하다.

제주도 문섬 해역, 수심 20m 아래. 자신의 영역을 둘러보는 달고기가 퍽이나 여유자적하다(가운데 사진). 사냥감이 풍부한 영역에는 아름다운 연산호가 꽃을 피우고 맑은 물속으로 고운 햇살이 부드럽게 투영되고 있다. 한껏 멋부린 무늬와 기세등등한 등지느러미가 고상한 품격에 손색이 없다. 모든 것이 여유 있으니 어생() 또한 즐길 만하다.

넙치가 바닥면에 배를 깔고 누웠다(오른쪽 사진). 편안하게 엎드린 채 안빈낙도()를 즐기는 넙치 눈에는 거친 물살에서 살아남으려고 온 종일 부레에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는 다른 물고기의 처세가 안쓰럽다. 배불리 먹고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우면 이토록 편안한 것을….

“저희 행복하게  살게요.” - 행복

해질 무렵 얕은 수심의 산호초 사이에서 만다린 피시가 짝짓기에 나섰다(왼쪽 사진). 짝을 이룬 암수(덩치가 크고 푸른색을 띤 개체가 수컷이다)가 함께 머무는 시간은 2~3초. 짧은 순간이지만, 종족 보존을 위한 숭고한 본능임을 아는지 표정에는 진지한 행복감이 묻어난다.

작은 소라껍데기 속에 보금자리를 튼 베도라치 한 쌍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인다(오른쪽 사진). 이들에게 바깥세상의 풍요로움은 관심 밖이다.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잣대는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것 또한 우리가 찾고자 하는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제 끝인가 보다.” - 체념

바다 속을 다니다 보면 통발이나 그물에 갇힌 물고기를 자주 보게 된다.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고기들은 탈출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부딪쳐 보지만 점차 움직임이 잦아들며 체념에 빠진다. 이들의 눈빛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측은함이 절로 든다(왼쪽 사진).

통발 안에 용치놀래기 한 쌍이(푸른색이 수컷이고 붉은색이 암컷) 갇혀 있다(오른쪽 사진). 이들의 운명을 알아챈 듯 불가사리들이 기어들고, 그물 밖에서는 사로잡힌 동료를 바라보는 용치놀래기들이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이별을 예감한 이들의 몸은 떨리고 있다.

“아니, 재는 누구야?” - 호기심

부산 연안에 해마가 나타났다. 열대성 어류인 해마의 출현이 토박이인 용치놀래기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다. 더구나 이 녀석은 바로 서서 헤엄치지 않는가. 용치놀래기가 주변을 빙빙 돌며 호기심 가득 곁눈질하고 있다(왼쪽 사진).

두동가리 한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다가와 눈을 맞춘다. 입을 뻐금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누구세요?”라고 묻는 듯하다(오른쪽 사진).

“좋아 죽겠어.” - 즐거움

울산 고래 박물관. 아쿠아리스트가 공을 들고 수조 안으로 들어서자 돌고래들이 신이 났다(왼쪽 사진). 장난치듯 공을 빼앗으려는 눈빛이 개구쟁이를 닮았다.

거친 팔라우 바다. 야생에서 길들여진 나폴레옹피시가 스쿠버다이버의 출현을 반기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즐기는 듯 몸을 비비며 다가오는 나폴레옹피시의 표정이 오래된 친구를 대하는 듯하다(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