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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옮기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본격적인 요리 수업.


조선 시대의 소금과 쌀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사는 지역의 특산물을 공부하고, 오늘날의 식품사막과 지역농산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 새 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구입한 각종 채소들이 오늘의 주 재료입니다.


반경 50km 내에서 자란 채소들만 납품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다보니 중간 유통을 거쳐 들어오는 채소들보다 신선하고, 유통 과정이 짧다보니 가격도 좀 더 저렴합니다.


다만 엄청나게 대량으로 길러내는 게 아니라 소규모 자영농들이 기른 작물이라 퀄리티 편차가 좀 있는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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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윗층에 자리잡은 요리실습실. 도서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건 아니고,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는 실습실을 빌려서 사용합니다.


전에 다니던 도서관에 쿠킹 스튜디오가 있던 것도 그렇고, 이번 도서관에도 요리 공간이 있는 걸 보면


아직 50살 되려면 멀었건만 지천명, 즉 하늘이 내게 "도서관에서 요리해라"라고 천명을 내린 거 아닌가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약간은 요리 문화교실 느낌이 나던 예전의 쿠킹 스튜디오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자격증 공부하는 분들이 실습도 하는 곳이라 본격적인 업장 셋팅이 되어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스테인레스 작업대의 감촉이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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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론 수업을 마치고 시작된 요리 체험 학습.


오늘의 메뉴는 실컷 배워놓은 조선시대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프랑스 음식, 라따뚜이입니다.


하지만 신선한 채소의 맛을 제대로 살리면서 여러 사람이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메뉴로 이만한 게 또 없지요.


옆 동네에서 자란 양파와 마늘을 잘라서 볶고, 애호박과 가지와 토마토를 끓여 라따뚜이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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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꽤 높은 편이라 요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라따뚜이에 대한 설명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라따뚜이를 설명할 땐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빼놓을 수 없지요.


뛰어난 미각을 지닌 쥐, 레미가 초보 요리사 링귀니를 도와 레스토랑을 이끌어 나가는 애니메이션입니다. 


2007년작이니 벌써 15년을 훌쩍 넘긴 고전 명작에 속하게 됐네요.


여기서 레미는 레스토랑을 혹독하게 까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평론가, 안톤 이고에게 라따뚜이를 대접합니다.


채소와 토마토 소스로 만든 프랑스식 가정요리 라따뚜이는 워낙 소박한 음식의 대명사이기에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미식잡지 편집장이 왔는데 김치찌개를 대접한 미슐랭 레스토랑쯤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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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미가 만든 라따뚜이에는 냉혹한 안톤 이고가 어릴 적 어머니의 손맛을 회상하게 만들 정도로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해준 음식이 어머니의 손맛과 다를 게 없으면 돈 낭비하는 거 아닌가? 일인당  밥값이 수십만원은 할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요리를 좀 배우고 시야가 넓어진 지금에는 그 맛이 완전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먹는 사람을 위한 마음"을 강조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요.


하지만 분명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예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갔던, 라따뚜이 위에 종이를 덮어 오븐에 구우면서도 살짝 찌는 방식을 사용했다거나 일반 가정에서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소스의 깊이 같은 것들이 그런 요소들입니다.


레미가 만들었던 것처럼 여러 채소를 채칼로 얇게 썰어 겹치며 고급스럽게 만든 버전을 "콩피 비야르디"라고 하는데, 앞서 예로 들었던 미슐랭 레스토랑의 김치찌개에 비유하자면 김치의 배춧잎을 하나하나 배치해서 꽃잎 모양으로 만든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프랑스 외의 지역에서는 라따뚜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한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이 버전을 진짜 라따뚜이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 수업에서는 안톤 이고의 과거 회상씬에 나왔던 것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먹는 스튜 형태의 라따뚜이를 만듭니다.


거의 30명에 육박할 정도로 역대급으로 수업 참여 인원이 많다보니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도와주느라 요리 중간에 찍은 사진이 이거 한 장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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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마늘은 다지고, 애호박과 가지는 큼직하게 깍둑썰기 합니다. 토마토는 원래대로라면 끓는 물에 데쳤다가 찬물에 담근 후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씨앗도 제거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가정식답게 그냥 4등분해서 쓸어넣습니다.


이외에도 당근, 감자, 샐러리, 호박, 양배추, 브로콜리 등 냉장고에 남아있는 채소라면 아무거나 다 집어넣고 냉장고 털어버리기 좋은 요리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국물 자작하게 해서 그냥 떠먹어도 좋고, 바게트 얇게 썰어서 그 위에 얹어먹어도 좋고, 파스타 소스 대신 써도 좋은, 그야말로 여러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양파와 마늘을 기름 넉넉히 두르고 볶다가, 양파가 노릇하게 익으면 애호박과 가지와 토마토를 넣고 조리합니다. 채소에서 나온 물이 부글부글 끓다가 증발하면 육수와 토마토 페이스트, 허브를 넣고 끓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끝.


완성된 라따뚜이는 치즈를 갈아서 뿌린 다음 시식해봅니다.


토마토 소스의 신맛과 소금의 짠맛이 치고 들어오다가 신선한 채소가 뒷맛을 채워줍니다.


저는 워낙 자주 만들어봐서 크게 감흥은 없지만, 생소한 프랑스 요리를 신토불이 채소들로 만든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학생 분들도 많은 것 같더라구요.


이렇게 새로운 도서관에서의 첫 요리 수업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년부터 어떤 식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야 할지 슬슬 고민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