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두 그룹으로 조선정벌전쟁을 치루는데,
가토 키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임.
그런데 두 명의 본거지가 큐슈임.
반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는 오사카임
가토와 고니시는 큐슈의 병력에 토요토미의 물자 제공을 받아서 조선 출병을 하게됨
두 장수는 상당히 경쟁자, 라이벌임. 전공을 세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큐슈는 조선반도와 가장 가까이 있으며 도래인의 역사적 흔적이 가장 많으며 일본 고대사의 핵심이자 조선반도와 문물교류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짐
대한민국 땅넓이가 10만킬로인데 큐슈 땅넓이가 4만 정도임.
현재 큐슈 거주 인구는 1400만명 수준임.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 공장과 중공업이 있음. 위도가 제주도 보다 낮아서 따뜻하며 농사가 매우 잘되는 지역임
반면 일본 중심지인 오사카, 에도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지방정권임
결국 임란은 큐슈지역의 다이묘 2명의 라이벌 관계를 활용하여 일으킨 전쟁임
ㄹㅇ 토요토미가 조선 정벌을 하겠다면, 혼슈지역의 병력도 상당히 징집해서 출발했어야 함.
결국 조선 정벌의 목적은 물자 약탈이고, 원하는 만큼 충분히 약탈을 하고 조선 도공들 끌고 와서 일본 도자기 사업 번창
조선 도공의 정착촌이자 사무라이에 근접한 계급이 된 지역도 전부 북큐슈 지역임. 아리타, 이마리 지역인데, 일본 도자기의 모태가 되는 지역이고 지금도 아주 활발함
(지금도 아리타 도자기, 이마리 도자기 하면 일본 최고급 도자기로 쳐줌, 접시 하나에 30만원씩 하더라 ㅎㄷㄷ)
결국 일본이 후퇴하는데, 후퇴 과정에서 울산에 학성왜성, 서생포왜성을 남겨놓고 퇴각함.
가토와 고니시는 일본에 돌아가서 전공을 인정받아 영지를 할당받는데,
고니시는 아빠부터 천주교 집안이었음 ㅎㄷㄷ 세레명도 있고 포루투칼 신부들과도 교류할 정도.
결국 가토와 라이벌 관계에서 밀려서 가토가 고니시 영토 나중에 다 뺏앗아감.
그래서 만든 성이 일본 3대 성인 쿠마모토성. 쿠마모토의 지리적 위치는 큐수의 정중간임. 대한민국으로 치면 세종시 위치.
니들도 잘아는 임란 말기 왜장이 성안에 명군과 조선군에 갖혀서 3달 동안 물을 못마셔서 오줌 받아먹고 말죽여서 피빨아먹고 한 사람이 가토임 ㅎㅎㅎ
그래서 쿠마모토성에는 특이하게 우물이 몇백개를 파놨다고함
그래서 지금 가토 키요마사 신사가 쿠마모토성 입구 왼쪽에 자리잡고있음
일본여행도 역사를 알면 재미가 있다
배우고 감. 추천
배운분이 개축갤에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