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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시키고, 명국정복을 위해 조선을 공격한 영웅이야.


본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은 단순히 명국정복뿐만이 아닌, 인도도 정복하고, 여송(스페인령의 필리핀.)까지 정복하려고 했었던


한명의 호걸이지...(또는 몽상가.) 즉, 아시아내에 있던 모든 서양세력을 몰아내려고 했어...



그건 그렇다 하고, 내가 생각하는 명국정벌 시나리오를 쓰자면, 상당히 청국이 명국을 정복한 시나리오와 비슷하게 나옴.


당시 명나라는 만력제가 제위하던 시기로서 만력제시기 명나라는 지속히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음. 이유는 만력제가 정사를 거의 돌보지


않아서임. 그래서 많은 반란이 일어났던 시기임. 즉, 명나라 국력이 쇠퇴하던 시기. 반면, 당시 일본은 비록 전국시대를 거쳤지만,


사실상 인구감소가 없었고, 문화적인 파괴도 심각하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정체. 군사적으로는 도요토미가신들만 조선 정복에 20만군대를


동원하고, 주요 거점 수비에 10만대군을 둘 수 있었어. 조선 정복에 동원된 군대중 절반이 규슈출신. 당시에도 규슈가 2류지역이었으니,


일본 전지역을 합치면 못해도 50만에서 60만이상의 대군이 튀어나오는 군사대국이었어.


한편, 조선은 동원체계는 있었지만, 국방의식은 매우 결여되어있었지. 그 증거로 개전 2달만에 고니시의 1만 8000군에게 조선군 영혼까지


털리고, 평양까지 빨림.


내 생각으로는 당시 일본군이나 1636년 조선을 공격한 청국이나 군사력차이는 별로 나지 않다고 생각되.


아니, 오히려 일본이 더 강햇을 수도 있겠다. 왜냐면, 청국이 세워진 만주는 당시 허허벌판이라 인구가 200만도 되지 않았고,


요동을 정벌하고, 명과 조선을 침탈해 많은 인구를 보급해야 인구가 간신히 300만을 넘음...


반면, 당시 일본 인구는 최소 1000만이고, 역사가에 따라서는 2000만명정도로 보기도 함...


참고로, 동시기 조선인구는 600만이고, 명국인구는 1억에서 1억 5000만정도로 추산. (당시, 인도도 명국정도의 인구 거주)


시나리오는 이런 식으로 진행됨.


1592년 조선을 20만대군으로 침공. 이후, 조선의 상국 명군을 기다려 몰살시키
1593년 이여송이 이끄는 5만대군을 고니시등이 이끄는 3만대군이 매복해 몰살시킴.(굳이 이여송이나 고니시가 아니어도 됨.)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의주 점령. 조선 군주 선조는 요동으로 망명.
1593~94년 조선을 정복한 일본이 조선군 10만을 고기방패로 징병. 이시기 명군이 20만대군을 들어, 요동을 공격하려는
일본군과 일진일퇴의 큰 전쟁을 벌이나, 둘다 큰 소득이 없다. 명국의 수군도 마찬가지.
1594년, 역시나 전쟁으로 국경지역의 인적 물적 동원이 가중되 민심고가 심해지고, 더욱이 일본과의 전쟁으로 동원된 군사가 막강해 명국 전체의 치안을 유지할만한 군사력이 크게
줄어들어, 지방의 민란과 반란을 진압하기 어려워짐. 결국 민란과 반란이 엄청나게 증가해 명나라의 군사력 동원은 심해지고, 민심은 극심히 나빠짐. 한편 일본은 명국과의 전쟁으로 수만명의 군대를 소모하긴 하였으나, 조선을 정복하였다는 기분에 일본 영주들의 사기또한 높고, 전쟁지지율도 높음.
1596년, 반란때문에 일본과의 전쟁에 차질이 생김. 이 기세를 타고, 일본군은 고기방패 조선군을 선봉으로 삼고, 25만대군을 몰아, 요동으로 진격해, 구멍뚫린 요동 정복.
1597년,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땅을 나눠주겠다는 히데요시의 제안에 전쟁 참여. 순식간에 일본군이 10만이 추가로 늘어남.
1598년, 농민반란군이 산시성과 장안을 점령하고 급속히 세를 키움. 한편, 이시기는 일본군의 침탈이 만리장성까지 미쳐 정예병은 일본군을 막느라, 농민반란군을 막질 못함.
1599년, 농민반란군이 드디어 베이징 당도. 만력제는 자살. 만리장성의 산해관을 지키던 10만이상의 명군은 촉왕으로 삼아주겠다는 일본의 제안에 넘어가, 만리장성을 통째로 일본군에 넘기고, 일본군과 함께, 베이징을 점령하고, 스스로 칭제(스스로 황제를 칭함.)한 농민반란군 수장을 추적시작. 워낙 일본군과 명군이 정예라 순식간에 농민군은 몰살당함.
1600년, 그러나 여전히 명나라군의 반란군이 많음... 여러왕들에게 명해 이들을 진압하게 하고.  일본 천황의 베이징 입성. 베이징을 西京서경으로 삼음.
1602년, 스스로 황제를 칭한 마지막 명나라 반군 섬멸. 일본의 중국 완전 정벌. 이 시기 히데요시가 사망함. 따라서, 인도정벌과 필리핀정벌은 무기한 연기됨.
1620년, 만주의 오랑캐 누르하치가 반란 일으킴. 반란제압후, 속령으로 삼아 보복함.
1700년대~1800년대, 중국과 일본이 역사상 볼 수 없던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림. 이시기 중국의 인구가 1억에서 4억으로 증가하고, 일본또한, 각지에서 오는 조공과 식량으로 큰 기아문제 없이 인구가 꾸준히 늘어,(즉, 텐메이기근등은 거의 없는 정도.) 인구가 1800년대 5000만을 찍음. 중국 운남성에서 오는 대리석과 각종 자제로 인해 일본에는 20층 가까운 거대한 목조 건물들이 지어짐. 이시기 중국에 온 서양인들은 일본을 중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봄. 다만, 중국 백성들은 별로 관심없음. 단지, 지배자가 바뀐 것일 뿐.


1840년, 아편수입때문에 중국지방이 상당히 시끄러워지자, 이를 감독하기위한 사신을 보내나 이것이 전쟁빌미가 되어, 아편전쟁시작. 히데요시 사후 국방력이 약해진 일본령 중국은 이를 막아낼 힘이 없어, 중국내 일본의 지배력은 급속히 약해짐.
1860년, 태평천국운동. 이로인해 급속히 중국내 일본의 국력이 약화됨. 중국 지식인들은 중체서용을 일본 지식인들은 탈아입구를 주장하며 두파가 매우 갈라짐.
1890년대 의화단 운동.
1910년대, 중화민국 건설. 중국내 일본의 세력 급속히 악화. 반면, 일본내부는 탈아입구로 서서히 근대화를 시작하고, 중국과 일본의 사이는 갈 수록 멀어짐. 결국 아시아 전체를 침탈하고자 했던 서양의 사주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시작. 조선과 만주까지 번지나. 조선과 만주에서는 일본군의 진압으로 중국정도로 끝남.
1920년대 중화민국의 전 중국 정복. 일본은 만주와 조선과 일본본토로 영토가 줄음. 다만, 근대화는 착실히 이행.
1937년, 일본의 극우파 집권.중국 영토 회복을 목표로 중국 침공.



정도가 내가 보는 시나리오.


더 쓸수도 있지만, 이 이상은 심한것 같다. 이정도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