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첫 도시 보고타에서 우리가 완수해야하는 임무는 엘도라도의 전설을 추적하는 일이다. 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처럼 거창하게, 그 옛날 황금이 자판기 커피처럼 줄줄이 튀어 나왔다는 엘도라도를 찾아가는 것.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거창하고, 있어보이는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PD님, 카메라 감독님,그리고 나. 총 세 명은 황금의 길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다. 6시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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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 아침 식사 - 이 때가 가장 행복하다. 우린 허름한 식당에서 콜롬비아 갈비탕(깔도 데 꼬스떼야)과 오믈렛을 주로 주문했다. 아침 식사론 좀 기름지지 않나 여길 수도 있지만 모두 기름진 음식이 위벽을 코팅해야 식후 만족도가 올라가는 체질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촬영을 한다. 촬영을 하다가 좀 힘들다 싶으면 좀 덜 힘든 촬영을 하다가 만만해지다 싶으면 쉴틈없이 힘든 촬영을 몰아서 한다. 혹 시간이 남으면 남은 시간은 불안하므로 또 촬영을 한다. 이런 식이었다. 나는 나이도 가장 어리고 객관적인 노동량도 카메라 감독님이나 PD님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었으므로 닥치고 촬영에 임해야 했다. 시차에 적응하느라 며칠간 평균 수면 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질 않았다. 모두가 똑같이 감내해야 하는 고생이므로, 시차 적응 운운하며 엄살을 피웠다간 무능하고, 건방진 출연자로 찍힐 것이 분명했다. 잘 해보고 싶었으나 단 이틀 동안의 촬영으로 나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일정이 앞으로도 2주간이나 더 남았다. 이 좋은 콜롬비아에 와서, 그만 집에 돌아가 발 뻗고 자고 싶다는 푸념을 하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비틀 거릴 때 카메라 감독님은 한 컷이라도 더 찍기 위해 위태롭게 케이블카에 매달려 어딘가를 찍고 있다. 민우야, 겸손해지자. 그리고 고통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자. 한계점을 넘어야 한계가 확장되는 거야. 내가 나를 이겨야 한다구.
\"민우씨는 그나마 잘 챙겨 먹는 거예요. 인도네시아 촬영 갔을 때는 제때 거의 밥 못 먹었어요.\"
점심을 건너 뛰고 겨우 저녁을 먹게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콜롬비아에서 가장 전형적인 식사는 이렇게 밥과 계란 후라이, 고기 조금, 아레빠라고 하는 전병이 담긴 접시다.)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파서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와중에 송PD님의 이 한 마디는 잔인하게 내 위벽을 할퀴었다. 허기와 수면결핍을 참아가며 어른스럽게 입다물고 촬영에 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껌종이 정도의 노동량이라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좋질 않았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즐겁고 겸손한 마음으로 촬영하리라 다짐했던 나는 어느새 15년지기 친구에게 울먹이며 이 상황을 뒷담화 까고 싶은 투덜이 스머프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진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이 내 손에 쥐어지면 그냥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민우씨 미안, 다시 저 끝에서부터 걸어와 주세요.\"
\"네, 네!\"
복잡하고 착잡했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태엽감긴 인형처럼 움직이는대로 움직이고, 멈추라는대로 멈추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엘도라도의 전설이 담긴 구야타비타 호수를 찾아가는 길은 어떻게 되든 솔직히 상관 없었다.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여행의 기대도, 촬영의 목적도 남아있질 않았아. 얼른 이 고통스런 일과가 끝나고 침대에 들어가 몸을 누이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여행길을 걷는 단순한 장면 하나도, 결코 쉽게 끝나질 않았다.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다르게 찍고 또 찍었다.
\"또 뛸까요. 말씀만 하세요. 더 멀리서부터 뛰어 오면 편집할 때 더 좋지요?\"
구야타비타 호수. 칩차족의 추장이 온 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이 곳에 몸을 담그며 제식을 치렀다는 곳. 그리고 서구의 침입자들은 그 금을 찾기 위해 이 호수의 물을 모두 빼내는 만행을 저질렀고, 그 탓에 지금도 그 상처로 원래의 모습이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곳. 도착할 때까지는 나는 그냥 멍청ㅎ한 태엽인형이었다. 와야 하니까 온 것이다. 봐야 하는 곳이니까 보는 것이다. 이랬다. 하지만 짙푸르게 일렁이는 구야타비타 호수를 보자 내 마음은 거짓말처럼 같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엘도라도! 그 전설을 내가 마주하고 있다. 어릴적 만화영화 태양소년 에스테반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곳. 내가 지금 이 곳에 와 있다. 사진에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짙은 녹색의 물빛도 굉장하다. 이 아름다운 곳. 황금이 없어도 충분히 찬란한 곳. 결국 오게된 거야. 에스테반. 나도 네가 온 곳을 온 거야.
\"전설의 칩차족이 지금도 살고 있나요?\"
\"아니요. 산 속 깊이 숨어 버렸어요.\"
전설의 인디언들이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사라졌다고 했다. 더 이상 문명인들과 섞이는 걸 두려워해 산으로 숨었다고 했다.
\"좀 더 찾아 볼까요.\"
그들이 보고 싶었다. 황금의 주인들, 그러나 서구 열강에 의해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그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대부분은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중 간혹 살긴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산속 깊이 숨었을 거라고 했다. 산 속 깊이 무작정 헤맬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대로 포기하는 건 왠지 찜찜했다.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숲속 근처 마을로 향했다.
\"혹시 이 근처에 칩차족이 사나요?\"
목적지 산입구까지는 왔다고 생각했다. 인자해보이는 할머니에게 칩차족이 어디 있는지 여쭈었다.
\"내가 인디오야. 내 아들은 숲속에서 살아.\"
반갑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칩차족의 후예였던 것이다. 우리는 산길로 들어가야 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산기슭에 그들은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콜롬비아 사람보다 확실히 작은 체구에 우리네 할머니같은 소박한 주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히 안심이 되었다.
\"문명인들과 같이 어울려 살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고, 제사도 지내야 해. 그걸 할 수 없으니까 숨는 거야. 숲으로, 숲으로.\"
그리고 할머니는 한사코 실내 촬영을 거부했다. 경황없이 그리고 지지부진하게 인터뷰를 끝냈다.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 조르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일정에 쫓기고 있었다. 소금 성당도 찍어야 하고, 저녁에 야경도 찍어야 했다. 숨막히는 일정속에서 떠밀리듯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나는 칩차족 할머니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사진 속 집이 칩차족 할머니가 사는 곳)
아--나도 남미여행할려고 스페인어 배우고 있는데 부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