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진 않은데 보고타 아주 재미있지는 않다.”
“너무 많은 곳을 봐서 그럴지도 몰라.”
두 감독님이 둘러본 보고타에 대한 성적표였다. 수십여 나라를 거치며, 험한 오지에서 별에별 풍경을 봐온 두분에게 여행자의 만족도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내 새끼가 또래 친구들에게 처참하게 얻어터진 학부모처럼 속상했다. 아니예요. 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난 잘 보이고 싶었다. 괜히 어줍지 않은 말대답으로 기껏 회복된 팀플레이(이 것도 어디까지나 혼자 생각하는 회복이긴 했지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세계테마기행 출연자 중에 비교적 젊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나로서는, 사소한 주장도 ‘건방진 반항’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내 새끼 같은 보고타가 맹물에 끓인 수제비 같은 도시일까?
감독님이 찍고 있는 이 절묘하게 물든 우울한 오후의 볼리바르 광장. 유럽에서 볼 수 없는 회한과 신흥공업국국에서 볼 수 없는 이 우아함. 나만 그렇게 보이나요?
파스텔톤의 우아한 도시를 강렬하게 가로지르는 전차 트랜스 밀레니오는 어때요? 세련미와 대담함이 공존하는 멋과 예술을 이해하는 도시. 강력한 5부제로 자동차 운행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미래지향적 녹색 도시. 멋지죠? 그렇죠?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천재화가 보태로의 이 유쾌한 그림은 어떤가요? 이 사랑스럽고 낙천적인 인물화만으로도 이 도시엔 점수 조금만 더 쳐 주세요.
유럽과 미국의 내 논 자식들도 시도하기 힘든 코뚜레 피어싱은 또 어떤가요? 과격하게 뚫었다가는 두 개의 콧구멍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의 피어싱을 성공리에 마친 이 연인, 죽어도 헤어지지 않을 거랍니다.
막대 사탕을 즐기시는 노점상 할아버지의 심오한 윙크와
사탕수수에서 막 뽑아 내놓는 말로 표한할 수 없는 달콤한 냉차에다가
그리고 죽어도 안 팔릴 것 같은 비눗방울을 출퇴근길 대로에서 허파힘 다 쏟아가며 불고있는 이 노년의 불안한 노후까지. 보고타는 꽤 특별하다고요.
콜롬비아는 상처가 깊은 나라다. 매년 2만5천명이 살해되고(불과 5년 전까지), 전 세계 납치사건의 절반 가량이 콜롬비아에서 발생했다. 보고타를 비롯한 국가 전역에서 거의 매일 폭탄 테러와 소규모 총격전이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약 150만명의 난민이 떠돌았고, 미국에 공급되는 코카인의 80%, 헤로인의 90%가 콜롬비아에서 재배되어 밀반입 되고 있다. 1960년대부터 게릴라와의 내전으로 정부의 통제력은 거의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우리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급격히 안정을 되찾고 있는 콜롬비아.
콜롬비아의 독립기념일. 전 대통령 후보 베탕쿠르가 6년동안 납치되었다 탈출해 그 분위기는 더욱 뜨거웠다. 지금도 2800명의 인질이 정글 속에서 감금되어 있다.
“리베르닷, 리베르닷(자유)”
아픔의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 그들은 독립기념일 자유를 외쳤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 날 그 엄청난 인파들 사이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 수줍고 선량한 눈동자를 가진 그들이 오늘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력하고 뚜렷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 없나요?”
“프레스 카드가 없으면 안 되요.”
인파는 보고타의 중심광장인 볼리바르 광장을 가득 메웠고, 우리는 어떻게든 이 뜨거운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야 했다. 주변 건물 옥상에서 찍어야 멋지게 나오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차에 좀 올라가게 해 주세요.”
마침 방송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안 돼요. 우리도 바빠요.”
“저희도 한국에서 온 방송팀이예요.”
“잠깐만이예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감독님은 지친 몸으로 방송차량 위에 올랐고, 휘청이는 다리고 중심을 잡고 볼리바르 광장에 우뚝 섰다. 그날의 하늘은 재앙같은 폭풍우가 막 걷힌 것처럼 드라마틱했다. 그들과 함께 자유를 외치던 나는 목이 멨다. 가족이 죽고, 친구가 납치되고, 친구의 친구가 적이 된 아픔. 그 아픔을 이제 당신들이 극복하라. 치유하라. 우리는 아무말 없이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보고타를 담기 바빴다. 우리 중 누구도 보고타가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하얀 셔츠를 똑같이 입고 자유를 외치는 숭고한 역사의 현장 중심에 있다는 것이 목밑까지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이라고 똑같이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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